non-standard cherisher 3
칡뿌리와 등나무가 서로를 의지해서 휘감아오를때, 자립할 수 없었던 나무들이 곧게 서서 자랐다.
이하는 칡나무와 등나무가 마주쳐 성장하기 시작한 이야기다.
침엽수가 아득히 자라난 거칠고 험한 산기슭.
잉게르는 다가오는 사냥감을 조용히,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어떤 녀석이 걸릴까. 이왕이면 지명수배자가 좋겠다. 만약 그렇다면 귀찮은 과정 없이 바로 제압해서 중앙청에 넘기면 편하게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아, 저기 가까이 온다. .. ... ..아, 코볼트다.
잉게르는 저와 닮은 개 인간을 싫어했다. 기분 나쁜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적당히 기억을 조작해서 아는 사람 인척 다가가 돈이나 얻어가려고 했건만... 불쾌해졌다. 시체에서 꺼내가야겠다.
잉게르는 잠시 머리를 굴려 가까운 동굴로 들어갔다. 이 동굴은 온갖 마력들이 뭉쳐있는 기묘한 장소라서 여러 여행자들이 홀리듯 들어오곤 한다. 저 코볼트도 이리로 들어 올 테니, 이 동굴의 마력을 이용해서 저 녀석을 끝내야겠다.
맥스는 한참을 집에서 걸어 나왔다. 마차도 얻어 타고. 짐 칸을 얻어 타고. 한참을 걷고 걸었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최대한 집에서 멀리멀리 걸어 나온 다는 것이, 처음 보는 마을에 들어왔다. 술집에 들어가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이 주변에 있는 가장 높고 가파른 산 아래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동굴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소곤거림이 들렸다. 뭔진 몰라도 그 동굴에 가 봐야겠다.
마시던 술을 계산하고 곧장 험하고 높은 산을 찾아봤더니 글쎄, 너무 높고 커서 지난 겨울에 쌓인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산을 하나 발견했다.
입안에서 술 냄새가 가시기도 전 순식간에 동굴 앞까지 왔다.
...어라? 누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랑 같은 코볼트 인가..?
궁금해진 맥스는 동굴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 순간, 맥스의 머리 위로 천창이 무너졌다.
잉게르는 동굴 깊은 곳에서 숨어 저 수상한 코볼트의 머리 위로 동굴 천장 일부를 떨어뜨리는 데에 성공했다. 가면에 방진 마법을 걸고 먼지 사이에서 그 코볼트를 발견했다. 아쉽게도 살아있었다. 나를 보고 있나..?
"이... 이봐... 거기 너.... 좀 도와줘.."
"...."
잉게르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공용어로 말을 했다. 자기들끼리만 알아 들을 수 있는 코볼트어만 하는 징글징글한 꼰대는 아닌가 보다.
"가... 갑자기.. 동굴이 무너져서... 이렇게 됐는데... 다리가 완전히 깔린 것 같아."
"...그거 완전 짓이겨졌네... 여기서 나가려면, 다리를 자르는 게 빠르겠는걸."
잉게르는 천천히 상황을 살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가진 건 별로 없어 보이는데.... 원래 계획대로 죽여버릴까? 아니면 적당히 마법으로 도와주면서.. 더 많은 돈이나 뜯어낼까?
"아.. 그러냐.. ...젠장.."
"... ..내가 마법으로 도와줄 수 있어. 잘 하면... 자르진 않고.. 조금만 다치고 끝이겠네.."
"그...! 그러냐..?!"
"그래... 이런 데 서 도움 받는 거.. 공짜 아닌 거 알지?”
“....젠장..”
잉게르는 맥스가 깔려있는 그 돌덩어리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저기에 그 마법을 걸고, 이쪽으로 흐르게 하면...
“... .. ...이봐 너... ...코볼트냐?”
“..?!”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잉게르는 눈에 띄게 흠칫 거리며 놀라서 저 코볼트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아낸 거지? 냄새를 흘렸나? 꼬리가 보였나?
“... 얼굴 가리고 다니는 녀석들이야 흔해.. 보여 달라고 안 할 테니까 그냥... ...다리 빼는 거나 도와줘..”
“...”
그럭저럭 눈치 볼 줄은 아는 녀석 이구나.. 목숨 정도는 살려줘야겠다고 생각한 잉게르는 찬찬히 마법을 시전 했다. 동굴에 고여있는 마력은 잉게르가 사용하기 좋은 천연마력 이었다. 이 코볼트의 다리를 깔아 뭉갠 바위를 천천히 밀어내는 동시에 다리에는 시간 정지 마법을 걸어서 피가 멎게 만든다. 잉게르의 계획은 완벽했다.
-...코볼트란 걸 어떻게 알아낸거람..
-그냥..그럴 것 같아서...
-...!!
잉게르는 저도 모르게 생각을 코볼트어로 말해버렸다. 상대방은 인간과 짐승의 사이인 그 종족이고, 당연하게도 잉게르의 중얼거림을 가까이서 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대답까지 해 줬다. 코볼트어로!
너무 놀란 나머지 손은 삐끗거렸고. 마법진은 마력이 튀고, 마법은 시작됐다.
“으..아아..!”
“뭐... 뭔데...!?”
바위가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게 지금 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잉게르에게 스칠때쯤 잘못 된 것이 보였다.
흥건하게 젖어든 바닥에선 기분 나쁜 붉은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다. 불쾌하게 으드득 거리는 소리는 분명..
-... ... ...제기랄.. ...아프네..
“출혈이..!”
출혈을 멈출 시간 정지 마법만 작동하지 않았다. 덕분에 저 코볼트는 엄청나게 아프겠네.. 제기랄 어줍잖게 기억조작 시도 하지 말고 그냥 죽여버릴걸... ....젠장 내가 코볼트인 걸 어떻게 들킨건지만 알아낸 후에 죽이건 기억을 지우건 해야겠다..
-... 가만히 있어봐. .. ....제기랄... 잠깐 내가 봐줄게..
-그래... ...처음 보는 사람한테.. 신세를 지는군...
신세? 신세라... 내 실수를 못 알아채고... 여전히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잉게르는 여전히 상대 코볼트를 어떻게 처리 할 지만 생각하며 그에게 진통 마법과 느린 치료 마법을 걸어줬다.
대충 걸을 수는 있겠지만 도움이 필요 할 거다. 이놈, 수고비는 있으려나?
-...너, 도시에서 고급 치료사에게 치료 받은 적 있냐?
-딱 한번.. 돈 많은 녀석한테 고용됐을 때 최고 등급 치료사한테 받은 적 있는데...
-네 돈으로 받은 적은?
-아.. 그래, 없다. 그냥 가진 돈의 절반만 받아가.
-...오늘은 수확이 별로네..
-가난해서 참 미안도 하군...
-..됐다. 넌 그냥... ...우리 집이 근처에 있어. 거기서 더 나은 마력을 공급받을수있으니까, 거기서 더 괜찮은 치료를 해줄게.
-워.. ...대뜸 모르는 놈을 초대한다고?
-그게 뭐? 좋잖아. 너같이 가난한 녀석이 내 고급 마력을 동원한 치료를 받을 기회가 삶에서 얼마나 많을 거라고 생각해?
-하... 그냥 코볼트도 아니라 부잣집 가출 청소년인가...
잉게르는 순간 소리를 지를뻔했다.
-뭐..! 뭐야! 너.. 너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은 거냐!? 내가 누군지 알고 찾아 온 거야?!
-알기는 무슨... 그냥 구린 물들이 고이는 곳에 너 같은 놈들이 한바가지다.. 야... 이거 받아라. 내가 가진 돈 절반이다. 치료는 여기까지만 받을테니까...
맥스는 저를 도와준 가면 쓴 누군가 에게 작은 주머니를 짤랑 소리가 나게 던졌다. 벽을 짚고 어렵사리 일어났더니 그 덩치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서 눈이 가득한 가면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 ...뭐야. 돈 더 없다.
-내가... 코볼트인 걸 어떻게 알아냈지?
-글쎄다.. 그냥 그럴 것 같았는데...
-무슨 헛소릴..!
덩치 큰 코볼트는 주먹에 힘을 주고 동굴 벽이 울리도록 세게 내리쳤다. 두려운 소리가 가득 울려 펴지며 잉게르의 가슴속에 심어진 불안은 공포심으로 자라났다. 내가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내 모든 흔적을 지워가며 살아왔는데, 이 코볼트가 대체 뭐라고 내 정체를 다 아는 듯이 구는 거지?
-...있잖냐 꼬맹아, 사람을 협박하려면 적어도.. 너부터 지레 겁먹으면 안되지..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 어머니가 걱정하신다.
-...누구더러 자꾸...!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어떻게 아는 듯이 그렇게..!
-그냥... 걷는거나.. 말 하는 거.. 숨 쉬는 방식 같은 거.. 노인은 아니고.. 나보다 좀 어린 거 같았다... ...다른 종족이라면 전혀 몰랐겠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알았다면 뭐.. 어쩌게?
-...제기랄...! ...그..그럼... 그런 걸 알아낸 네가 이상한 거야..? 아. 아니면... 다, 다른 코볼트 들이라면... 다.. 다 알아채는 거야?...
-그건.. ...글쎄다.. 나는 그냥.. 많이 돌아다니다가 알게 된 거고... 코볼트 라면 어지간해선 용병이니까.. 이런 쪽으로 알아내기 쉬운 놈들이 많을 거다. ... ...그러고 보니 마법을 쓰는 코볼트라...
-... ...
-...이름이나 물어보자.. 난 맥스다.
-... ...
-이름도 안 알려주냐?... 가명 같은 것도 없어? 하나 쯤은 있을 텐데..
-.....잉게르.
-그래.. 이름 멋진 거 보니까.. 너 스스로 지어준 이름이구나..
-... ... 여기 동굴 반대편으로 나가면.. 산으로 올라갈 수 있어. ...이 동굴의 마력 때문에 안 녹는 설산이야... 거기에.. 내 집이 있어. ...거기서 치료 해 줄 테니까... 업혀. ..걷기도 힘들 것 같네..
-...갑자기 또 그러냐...
-...그냥 돌려보내면 내가 짜증날 것 같으니까 그냥 좀 따라와..
-.... ...
잉게르는 슬쩍 맥스에게 다가가 진통 마법을 해제했다. 맥스는 순간 고통이 밀려와 제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아 버렸다. 주저앉는 그 순간 까지도 강한 격통이 온몸을 관통하듯 지나갔다. 그는 고통이라면 익숙하다고 자부하면서도 매번 새롭도록 고통스러운 자신의 상처가 지긋지긋 했다. 이렇게 아프기 싫어서 여행으로 도망 왔는데, 이 여행에 의미가 있는 걸까.
잉게르는 새파랗게 굳은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그 코볼트에게 등을 내어줬다. 이미 대화를 몇 번 나눠버렸으니 기억을 조작해서 친해지는 건 무리다. 억지로 가까워져서 마음을 열게 한 후에 기억을 읽어봐야지. 내가 못했던 경험들 따위, 기억을 읽어서 흡수하면 그만이야. 같은 코볼트라면, 마법을 뚫고 알아본다고? 내가 더 정교한 마법을 만들면 돼. 그래 불쾌하지만 이 자식이랑 조금만 어울려주고... 내 마법의 헛점만 파악한 다음 곧장 버리는 거다.
-.. ...고맙다..
-뭐가.
-...갑자기.. 아파서..못 움직이는데... ...집까지 안내해주면서 도와주고... 내가.. 좋은 놈은 잘 못 알아보거든.. 아까.. 뭐라고 했던 건... ...지금 내 상황이 좀 별로라서 그랬다..
-...내가 진짜로 널 등쳐 먹으려는 사기꾼이면 어떡하려고 벌써 사과를 해.
-뭐.. 기껏 해 봤자 죽겠지..
-흥..
죽음보다 더 두려운 걸 보여줄 수 있는데. 잉게르는 온갖 무시무시한 마법들을 떠올렸다. 제발 저에게 잘못했다고. 살려 달라고 아니,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이 코볼트의 낯짝을 보면 조금은 이 불쾌한 기분이 나아질 것 같다. 그래, 조금만 도와주는 거다. 그 후 부터가 진짜니까..
어떤 마법을 걸어서 고통스럽게 만들어줄까... 그런 음습한 생각을 하는 잉게르는 어느새 동굴을 빠져나와 거친 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산다고? 진짜냐?
-아.. 거참 말 많네... 너네들 이야말로 너무 더운 곳에서 사는 거 아니야?
-덥다니.. ..너 장모 코볼트냐?
-..!....
잉게르는 저의 입으로 정보를 흘린 것에 심히 당황했다. 제기랄.
맥스는 말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자꾸만 움찔 거리는 이 잉게르 라는 코볼트가 심히 우스우면서도 저의 동생 같다고. 혹은 저의 어린시절 같다고 도 느껴졌다. 얼굴도 모르는데. 냄새도 잘 안 나는데. 괜히 한마디 더 놀리고 싶었다.
-뭐 그렇게 숨기는 게 많냐? 얼굴 팔리면 안되는 귀족 태생이야?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가족들이 안 찾아오냐?
-다.. 닥쳐...! 버리고 간다..!
-그래... 장모종 귀족..잉게르... 당장..떠오르는 집안은 없네...
-... ...닥치지 못해?
-그래..그래 그래... 미안하다....
맥스의 말이 점점 느려졌다. 아까 전 동굴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데다가 고통으로 인해 쇼크가 몇 번 올뻔했었다. 거기다가 얼어 붙을 듯이 추운 설산이라니. 정신이 점차 혼미해졌다. 나를 업어준 이 젊은 코볼트는 등이 푹신했다. 분명히 장모종 중에서도 이중모에 아주 긴 털 일 것이다. 자기는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따뜻한 털이라니.. 조금은 부럽다고 느끼면서 기절해버렸다.
-..저기요..? ...야! 너 일어나..!
-....
맥스는 대답이 없었다. 잉게르는 조급해졌다. 깊은 설산의 어느 골짜기. 무언가를 숨기듯이 자라난 울창한 침엽수들 사이로 커다란 오두막이 나타났다. 산 너머 어느 부자의 휴양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제법 크고 멋진 오두막 이었다.
잉게르는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곧장 층계 아래 지하실로 향했다. 비밀스러운 향기가 넘실거리는 곳. 무언가가 기억을 잃는 곳. 누군가 가 기억을 훔치는 곳. 동굴과 설산의 마력이 마주쳐 흐르는, 갈망 하는 자들의 염원 속 낙원. 마법사의 지하실이다.
잉게르는 미리 준비한 듯이 깨끗하게 정리된 넓직한 시체테이블 위에 맥스를 올려놨다. 이 자의 짐가방은 모두 기억을 흡수하는 마법진 위로 올려두고, 부러진 양 다리를 살폈다. 이런, 아까 전 시간 정지 마법이 벗겨지면서 회복 마법도 상당히 훼손되어 있었다. 아주 흐리고 약한 회복력만 겨우 흐르고 있었다. 살아있는 게 용하군.
편안한 장소로 왔으니, 다시 한 번 마음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회복 마법을 걸어 놨다. 이미 한 번 마법이 걸렸다가 훼손된 전적이 있으니, 강한 회복은 어렵지만, 꾸준히 느릿하게 치료 할 수는 있을 것 이다. 진통 마법은.. 걸어주지 말자. 내 집에서 쉽게 돌아다니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이불 하나 덮어주고, 내 방으로 가서 쉬어야겠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다.
이 자식..일어나기만 해봐..
맥스는 지독한 추위에 눈을 떴다. 입김이 훅 들이쳤다. 정신을 차렸다. 다리 쪽에서 미묘한 온기가 느껴져서 바라봤더니 아마 마법을 걸어둔 듯 하다. 여기가 어디람... 아, 맞다. 그때 동굴에서 만난 이상한 코볼트.. 집에 도착했구나... 여기가 집 맞나? .... 하아.. 멍청한 맥스 로스카이.. 기어코 장기 매매의 현장에서 시체 역할로 삶을 마감하게 됐구나.. 그토록 많은 생명을 잔인하게 죽인 업보가 돌아온 걸까? ...무섭다.
맥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저가 모르는 온갖 약초며 용도를 모르겠는 나무 조각 쇳조각 놋철조각 등등이 가득했다. 다리는 좀 움직일만한가?
!!
얼얼한 감이 남아있는 다리를 힘껏 들어 바닥으로 내려봤다. 바위가 떨어지던 그 고통이 다시 한번 발 끝에서 다리를 타고 온 몸으로 타고 올라왔다. 제기랄 눈물이 찔끔 흘렀다. 젠장 제기랄 이렇게 아프다니. 젠장! 속으로 욕만 몇 번이나 삼켜가며 책상에 몸을 기대 서서 겨우 겨우 일어섰다. 양 발은 불 타는 듯이 아파왔고 부러진 다리는 후들거렸다. 단지 서있기만 해도 토 할 것만 같았다. 이런 고통 속에서 맥스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해져서는, 저가 죽여왔던 링 위의 도전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죽은 방식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이보다 아팠겠지. 이만큼 아팠을까.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그런 기만적인 방식으로 저의 고통을 어떻게든 줄여보려 노력했다. 살고싶어서.
벽에 몸을 기대고, 한 걸음 씩 한 걸음 씩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주변은 어두웠고 여전히 너무 추웠다. 나가는 곳이 어디지? 여기도 지하인가..? 맥스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 층 더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계단 위의 방에서 불빛이 작게 보였다. 아마 저곳이 나가는 곳 인가보다. 그런 희망에 다시 한번 더 조금씩 조금씩 계단을 올랐다. 제발 나가는 문이 저기에 있기를. 너무 아프다.
다시금 눈물을 참아가며 불빛이 새어 나오는 방문 앞에 선 맥스는 불길함이 스쳤다. 불빛이 마치 등불처럼 약한데.. 지금이 몇 시지? 저녁인가? 고통 때문에 시간 감각도 무뎌졌다. 혹시 지금이 한 밤 중인가? 불안 불안한 마음을 안고 조용히 문을 열어봤다.
방 안은 희한하게도 따뜻했다. 맥스는 이 따스함을 알고 있다. 좁은 방 안에 적어도 한 사람이 계속 서있어서 온 방안이 따스해지는. 지금 상황에는 아주 아주 불안한 온기였다.
작은 등불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창 밖은 너무도 어두워서 불이 꺼져 있었다면 아마 그냥 벽과 구분하지 못 했을 것 이다.
방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듯한 커다란 침대 위에서 가면을 쓴 잉게르 라는 코볼트가 자고 있었다. 참나. 저 웃기는 가면은 잘 때도 벗지 않다니. 사춘기가 와도 단단히 왔구나.
그나저나, 여기가 밖으로 나가는 곳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도저히 그럴 용기가 들지 않았다. 이 방은 유일하게 따스했고, 다리는 지금 두 번 세 번은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듯이 아팠다. 그래 포기하자. 차라리 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이 사춘기 범죄자가 깨어나길 기다려야겠다. 그래 죽이려면 죽여라.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의자에 털썩 앉아버린 맥스는 잠시 고통에 움찔 거렸지만 이내 가만히 자고 있는 저 가면 쓴 어린 코볼트를 조용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알아채지 못 했다는 건, 잠 귀가 어둡다는 건데. 얼굴이나 한번 구경해볼까.
맥스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어나 잉게르의 가면으로 손을 뻗었다. 그 가면은 얌전히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다가오는 손을 눈치채지 못했다.
“....”
맥스는 이내 자신이 한심한 기분이 들어 그만둬버렸다.
의자에 다시 몸을 파묻고 조용히 고통을 죽여가며 잠에 빠져들었다.
잉게르는 아침 잠이 많은 잠 귀가 어두운 코볼트였고.
맥스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초식동물같이 예민한 코볼트였다.
오늘은 특히나 예민해서, 아주 잠깐 잠깐 얕게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해가 떠있었고, 맥스는 그래도 잤으니 괜찮다며 스스로에게 다독이며 피곤한 눈을 비볐다.
잉게르는 아직도 자고있었다.
맥스는 다시한번 호기심이 생겨났다.
아주 느리게 손을 움직여 가면을 벗기고, 깊은 잠에 빠진 잉게르의 얼굴을 대면했다.
감은 눈은 꿈속에서도 이리저리 열심이 돌아다니려는 듯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밝다 못해 하얗게 보이는 베이지색 긴 털과 짙고 확연한 갈색 무늬. 눈가가 쳐지고 얼굴과 입이 늘어진 이 젊은 코볼트. 자고 있는 맨 얼굴을 보니 더욱 어린 것 같아 맥스는 동정심이 일었다.
‘...정말 장기매매 같은 걸 하는 걸까? 어쩌면 정말로 마법사일지도 모르지..’
순간 잉게르가 눈을 떴다.
밝은 별처럼 빛나는 노란빛 눈이 맥스의 탁한 하늘빛 눈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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