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 왕국의 공주는 아버지를 선

일처다부제 왕국의 공주-3

첫날-2

웹소설 by 도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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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왕의 어깨에 매달린 채로 달린지 육 분 정도 되었다. 더 이상 천둥왕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리였다.

"아아, 재밌었다. 그치?"

"응..."

"그럼 내 딸 할래?"

"아뇨..."

남자는 조금 과장되게 웃으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까 왜 뛰기 시작했더라. 뭔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만 중간부터 '천둥궁'은 '궁둥이'랑 발음이 비슷하네,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완전히 잊어버렸다.

"하아, 하아... 오늘 다 둘러보는 건 무리니까 일단 여기까지만 보고 점심 먹을까."

광대는 숨을 고르며 윗쪽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커다란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내 방이야."

"와아."

광대왕의 거주지는 마치 성벽 안의 오아시스같았다. 각진 구조나 밋밋한 외벽은 다른 건물과 똑같다. 그러나 다른 건물들과는 현저히 다른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알록달록한 창문이었다. 알록달록한 창문이라니! 청색, 자색, 적색으로 빛나는 창문들을 나는 처음에는 바깥에 걸린 액자라고만 생각했다.

'창문에 햇빛이 박혀있네. 유리가 해를 너무 많이 쐬면 저렇게 되는 건가?"

알록달록한 창문을 보며 나름의 추리를 내려봤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열 살의 덜 여문 사고로 내리기에는 너무나 날카로운 추론이었기 때문이다.

***

"더워!"

광대왕의 방 안은 밖에 비하면 상당히 수수했다. 상당히 깔끔히 정리되어있긴 하지만.

본인 몸처럼 화려한 보석과 금이 치렁치렁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짝이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거울조차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엄청나게 덥다는 점. 왜 다른 방에는 그렇게 예쁜 무지개 유리를 두지 않는가 의문이었는데, 이제 알겠다.

사막 한복판에서 커다랗고 반짝반짝한 창문을 내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구나.

"윗문을 열면 좀 나아져. 잠깐, 거기 앉아 있어봐."

"응..."

광대왕이 높은 창문으로 손을 뻗는 사이, 나는 바다에 뛰어들듯이 방 중앙에 놓인 침대로 겅중 몸을 떨어뜨렸다.

"아, 거기 말고!"

"악!"

몸을 덮친 것은 예상치 못한 충격이었다.

딱딱해! 대체 무슨 침대가 이렇게 딱딱한 거람.

나는 휙 하고 이불을 바닥으로 치웠다. 커다란 이불을 한 손에 치우는 것은 무리였지만, 이불 밑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들춰내기에는 충분했다.

"으아..."

"...설명할게."

침대는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갈색 머리칼이 끼어있는 머리빗부터 주머니 시계, 뭔지 잘 모르겠는 거, 안쪽에 음료가 말라 붙어있는-용케 깨지지 않은-유리잔과 과자 가루, 뭔지 잘 모르겠는 거, 텅 빈 병, 뭔지 잘 모르겠는 거, 뭔지 잘 모르겠는 거, 벗어둔 옷가지와 양말, 기타 등등.

이불 밑에 아주 생태계를 기르고 있구나.

"...사실 내 방에는 있지, 요정들이 살거든. 자리를 비울 때 과자를 두고 가지 않으면 이렇게 장난을 친단다!"

"네에..."

"치워줄게."

헛소리 말고 집 좀 치우고 살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열 살 꼬맹이를 연기해야 했으므로 대충 동조했다. 광대왕은 팔로 슥슥 잡동사니를 밀어냈다. 침대 밑으로 와장창 물건들이 떨어지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침대의 빈 자리에 앉으라는 시늉을 한다.

"...더러운 곳이 침대 위에서 바닥으로 이동했을 뿐 아닌가요."

"아니지, 바닥은 원래 더러웠으니까 결과적으로... 아 맞다, 바닥 청소했지! 네 말이 맞아, 똑똑하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그리고 방금 요정들이 어지른 거라며.

"왕족은 방청소같은 거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줄 알았어요."

"보통은 그렇지. 내 방만 이래."

그는 너털 웃음을 지으며 커튼 뒤에서 찻잎을 꺼냈다.

"차는 아직 못 마시나?"

"못 마셔요."

"그럼 우유."

커튼 뒤에서 꺼낸 차는, 이라는 앞단은 꿀꺽 삼킨 채 답했다. 적어도 우유는 침실에 없겠지.

...그렇겠지?

"오늘 좀 망한 것 같으니까 그냥 본론부터 말할게."

그는 어디선가 헹궈 온 컵 두 개를 들고 옆에 풀썩 앉았다.

"내 딸이 되지 않을래?"

"싫어요."

아, 단답하지 말고 두루뭉술 넘겼어야 하는데. 반사적으로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광대왕이 방금 우유를 베개 밑에서 꺼내왔기 때문이다.

"상처받았어, 흑흑."

다행히 남자도 한 번에 승낙 받기를 기대한 건 아닌 듯, 우는 시늉을 하며 잉잉거렸다.

"...나도 지금 당장 정하라는 건 아니야. 그치만 조언하자면 말이지- 내가 제일 잘생겼고, 제일 재미있고, 제일... 이상하지 않아. 다른 왕들 만나보면 알 거야. 내가 여기서 제일 상식인이라는 걸."

그는 우유에 꿀-꿀단지는 옷장에서 나왔다-을 타서 휘휘 저은 후 건내주며 옆자리에 앉았다. 침대에서 또다시 후두둑 잡동사니들이 떨어져내렸다.

"...소거법으로."

"아빠는 정하는 게 아니라 찾는 거잖아요?"

나는 최대한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답했다.

"난 진짜 아빠 찾아서 같이 살 거에요."

'난 권력 싸움에 끼어들기 싫어, 그런 거 몰라, 니들끼리 해,' 라는 뜻을 담아 일부러 더 어린애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물론 이 갑작스러운 궁중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느 정도의 합의는 필요할지 모르지만, 나는 진심으로 친아빠를 만나고 싶었다.

광대왕은 씁쓸하게 웃었다.

"쉽지 않을 걸.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솔직하지 않아."

"광대씨는 솔직해요?"

"당연하지! 나는-"

그 때, 돼지가 우는 듯이 커다란 꾸르륵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광대왕이 빨개진 얼굴로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아침 안 먹었어요?"

"아침에 좀 바빴어서."

"내 아침밥 만들어 주느랴 바빴어요?"

광대왕은 잠시 머뭇거리며 아랫입술을 갉작거렸다. 자기 몫의 꿀 타지 않은 우유를 두 모금 정도 마신 후에야 입이 열렸다.

"널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바빴어."

그는 찻잔을 내려다보며 미소지었다. 아까 천둥궁 앞에서 지었던 것 같은, 완벽하지 않은 미소였다.

"진심이야."

***

성과 사람들에 대한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두 잔의 우유를 비웠다. 우유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 펄펄 끓는 방의 상온에 방치된 것이 영 불안해서 찔끔찔끔 마셨는데, 신기하게도 아주 신선한 단맛이 났다.

광대왕은 우쭐하며 '다 비법이 있지'라고 말할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낯선 곳으로 오게 된 것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나쁘지 않은 어른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마음 속에서 광대왕에 대한 호감도가 조금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다 마신 우유 잔을 또다시 이불 위에 방치하는 걸 보고 조금 하락하기는 했지만.

"그럼 저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있어요?"

"응. 그치만 걔는 부인이랑 사이가 별로 안좋아."

"저는 엄마랑 얘기 해본 적도 없어요."

"괜찮아, 나도 별로 없어. 다른 왕들도 그럴걸."

광대왕은 입가에 하얀 우유를 묻힌 채로 웃었다.

"그럼... 다들 엄마 별로 안 좋아해요?"

내가 이해하는 결혼의 개념과 많이 다른 모습에 진심으로 호기심이 돋아 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광대는 질문을 조금 서글픈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우유잔을 내려놓고 어린애를 위로하려는 듯한 짜증나는 목소리를 했다.

"그-... 아니... 좋아하지, 나도. 그냥, 이야기를 많이 해본 적 없어서."

"거짓말 안 해도 괜찮아요. 나도 엄마 별로 안 좋아해요. 이야기를 많이 해본 적은 없지만."

"흐하하."

바보 같은 너털웃음. 오늘 두 번째로 듣는 소리였다.

"그럼 나도 솔직히 대답할게. 응, 엄청 사랑하지는 않아.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그치만 너희 엄마 너무 불쌍하게 생각하지는 마. 부인을 엄청 좋아하는 왕도 하나 있으니까."

"누구요?"

그 때 갑작스러운 폭음이 귀를 때린다.

"앙크바야르!!!"

깜짝 놀란 광대왕의 엉덩이가 반 뼘 정도 펄쩍 튀어올랐다.

뒤에 앉아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리의 출처는 문의 바깥이었다. 얼마나 목소리가 큰 걸까,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는데.

"남의 방 문 앞에서 뭘 하는 거야."

광대가 문을 벌컥 열었다. 문 밖에 서있는 것은 아까 보았던 둥궁...궁...궁둥... 그곳의 주인.

여기까지 경보로 쫓아온 것일까, 숨이 약간 거칠다. 팔짱에 눌린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자, 이걸 노-오-크-라고 해. 따라해봐."

"이런 날씨에 어린애를 데리고 종일 걸어다녔나?"

광대왕은 문을 똑, 똑 두드리며 어린애를 대하듯이 노크 시범을 보여주었다. 목소리 큰 남자는 그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저벅저벅 방으로 들어왔다.

어제부터 느낀 건데, 저 왕은 사람과의 대화가 묘하게 맞지 않는다. 제멋대로인 남자로군.

...귀가 들리는 거 맞나?

"아이!"

"아, 네."

칼이 스르릉 검집에서 빠져너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슬퍼런 무기를 치켜 든 천둥왕이 소리치고싶은 것을 간신히 억누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숨이 아까우면 그 남자한테서 떨어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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