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케일런은 ‘꼬신다’는 친구를 만들 때 쓰는 단어가 아니고, 그런 곳에 쓰이는 어감도 아니라고 정정하려다 말았다. 대신 그는 콜야의 손을 맞잡았다. 손이 맞잡히자 콜야는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도련님의 새 친구! 거래 성사야!”
단단히 넘어갔단 생각에 케일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에게 별 다른 수는 없었고, 그걸 그도 알았기에 케일런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어깨가 빠질듯 손이 위아래로 붕붕 흔들리는 것이었다.
“언제쯤 책 생겨요? 가능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글쎄다?”
케일런은 잠깐 머리를 굴렸다. 아자드와 친해지는 데 필요한 물건이라 말하면 아마 로널드가 빠르게 구해줄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공항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잡지를 바로 들어 택배로 부친다고 해도, 에크스탄까지 넘어오려면 비행기든 배든 간에 바다를 건너야 하니 정확히 알수 없었다. 당장 케일런도 에크스탄까지 자기가 넘어오는 동안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잘 몰랐다.
“금방 왔으면 좋겠어요! 음, 어떻게 해도 암시장보다 빠르게 미국 물건이 들어올 거예요?”
“… 암시장이 내가 아는 암시장 (black market)은 아닐테고, 여기 시장 이름이 너네 나라 말로 ‘블랙’이냐?”
“음? 아녜요!”
콜야가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저었다.
“시장 이름은 ‘개미 시장’이라고 불러요!”
“…….”
“거래하다가 걸리면 깩! 하거든요. 운이 좋으면 살지만 나쁘면 가족까지 깩~”
“너도 거기서 물건을 사는 거야? 설마?”
물론 미국에도 암시장은 있었고, 케일런이 다니던 학교에도 있었다. 대부분은 대마초나 선생들 몰래 시험지를 거래하고는 했다. 케일런이 아는 몇 무리들도 암시장을 애용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특히 덩치가 크고 살집이 붙은 놈들일수록 학교 바깥을 나가서도 열심히 암시장 멤버로서 활동했다. 마역 팔던 어느 반 누구가 갱단에 들어갔다가 유치장 신세를 졌다는 얘기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콜야가 말하는 암시장은 케일런이 들은 것과는 사뭇 다른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까지 처벌받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케일런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콜야를 바라봤다. 그러자 천진난만한 소녀는 양 손을 들어 변명했다.
“에이, 다들 가요! 안 가는 사람 없어요! 아빠도, 엄마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이웃들도 다 가요!”
“그럼 암시장이 아니지 않아?”
“지도자께서 싫어하시니까요. 암시장에는 어, 그… 음… 아! 자본주의 돼지들 물건이 많으니까요!”
“자본주의 돼지란 단어는 영어로 어떻게 아는 거야?”
“영어 공부할 때 자주 쓰는 단어를 먼저 외우래요! 도련님이 말했어!”
“네 원래 말투가 궁금하다.”
“칭찬 고마워요!”
“하…….”
원래 미치광이 독재자들이 지배하는 나라는 다 이런 건가? 잠깐 케일런은 뉴스에서 시시때도 없이 나오는 미국과 원수 진 몇 나라들을 떠올렸다. 절로 골이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알겠으니까 구하면 가져다줄게. 너도 이제 슬슬 집에 가라. 니네 왕자님이 기다릴 거 아냐.”
“헉! 맞아요, 그러네.”
케일런의 말에 그제서야 자신이 모시던 왕자를 떠올렸는지 콜야는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는 자신의 가방을 고쳐메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도 끝으로 뛰어갔다. 그러면서도 인사는 하고 싶었는지 ‘케이이이일, 내이이이일 봐아아아아아아아…….’ 라고 외쳤다. 그 잠깐 새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기분에 케일런은 기운이 쭉 빠진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콜야와 정반대로 걸어갔다. 오늘 하루동안은 더이상 빨간 머리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
그 다음날부터 케일런은 학교에 나가자마자 나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시도 때도 없이 콜야가 그에게 찾아와 ‘언제 잡지 줘?’라고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교실로 들어가기 전, 복도 캐비닛에 가방을 넣고 있자 어느새인가 콜야가 옆에 서 그를 빤히 쳐다봤다.
“뭐야?”
“잡지 왔어요?”
“미쳤냐? 네가 구해달라고 한지 하루도 안 지났어.”
“혹시 에크스탄 올 때 네가 챙겼을 수도 있잖아요.”
“난 그런 거에 관심 없거든. 모종삽도 안 잡아봤어.”
“식물과 안 친하구나. 그래서 케일이 성격이 이상해!”
“사람 면전에 욕 좀 그만 해라?”
그리고 그 다음날, 케일런은 다음 수업을 위해 교실을 옮기다 또다시 콜야를 마주쳤다.
“이번엔 또 뭐야?”
“잡지 왔어?”
“이제 하루하고 반나절 지났거든.”
“왜 이렇게 느려?”
“미안한데, 나는 토르가 아니거든? 미국 본토까지 이틀만에 왔다갔다 할 수 없다고.”
“토르가 뭐야?”
콜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케일런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어벤저스 몰라? 거기 나오잖아. 토르. 천둥의 신.”
“어벤저스는 뭐야?”
“여기는 극장도 없어?”
“해외 영화는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어어. 그래서 비디오만 있어요.”
“하여튼 토르라고 있어. 무진장 쎄고 번개 쓸 수 있는 신이야.”
“미국은 역시 굉장하네요. 번개도 쏠 수 있구나?”
“토르는 호주 사람이야.”
또 그 다음날.
케일런은 학교 잔디 위에서 대충 땅콩 샌드위치를 씹어먹고 있었다. 근처에 아무도 없어 조용히 먹을 수 있는 구석 자리였다. 그가 잔디 위에 앉은 지 정확히 5분만에, 근처에 누군가 생겼지만.
“잡,”
“아직 안 왔으니까 잡지 얘기 꺼내지도 마라.”
“언제 와요?”
“이제 3일 지났어!”
하루가 멀다하고 물어보러 오는 콜야 때문에 미칠 지경이라, 케일런은 집에 가자마자 로널드의 서재에 들어갔다. 평소의 그라면 발도 들이지 않는 장소였다. 얼마나 이상했으면, 케일런이 서재 문을 열자말자 로널드가 놀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시 누군가 침입한 거냐?’ 아들이 그저 부탁한 잡지가 언제 오는 거냐고 재촉하러 왔단 사실을 알고는, 그는 한심한 표정으로 케일런을 쳐다봤다.
‘그렇게 인내심도 없어서 뭘 하겠다는 거냐? 일주일은 기다려야 올 거다. 중요치 않은 물건이니 비서에게 여유 있을 때 보내놓으라고 말했다.’
케일런은 뒷목까지 올라오는 화를 누르느라 애먹었다.
“미국은 돈이 많으니까 이 정도쯤은 쉽지 않아? 비행기 보내고 그런 거?”
“도대체 미국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매일 연회를 연다면서!”
체념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케일런이 땅콩 샌드위치를 씹든 말든, 콜야는 양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어떻게 연회를 매일 열어?”
“파티 여는 게 뭐 어때서. 그냥 불러서 맥주나 까면 되잖아. 너네는 친구들 집에 초대 안하냐? ”
“어어?”
케일런의 말에 콜야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연회면 샴페인하고 돼지 통구이하고 오페라가 있어야 하잖아! 그런 게 아니야?”
“진심으로 궁금한건데, 혹시 너 어디에서 세뇌 당하고 있, 하. 이미 여기서 당하고 있겠구나. 하여튼간에 그런 거 없어. 그냥 대부분 배달 음식으로 피자나 중국집 정도 시키고 케이크 좀 퍼먹다가 술 마시고 그래. 약도 하는 놈들 위주로 하고. 도로에서 지나가는 애들보고도 파티 오라고 할 때가 많아서 정작 누구 불렀는지도 모를 때가 많아. 부모님이 집 비우면 신나서 파티 여는 거라 눈에 뵈는 게 없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구나…….”
자신이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었단 걸 깨달은 콜야는 시무룩한 얼굴로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뭐야~ 시시해. 파티 시시해!”
“그래서 나도 안 좋아하거든. 그나저나 돼지 통구이는 어디서 나온 거야?”
“우리 연회에는 있단 말이야.”
“…….”
케일런은 아득해지는 정신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에크스탄에 온 뒤로 그는 학교, 집만 오갔다. 그가 지내는 거주지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지은 거주지라 그 안에 모든 편의 시설들이 다 있었다. 물론 케일런의 입장에서는 편의 시설은 아니고 ‘편’이었지만, 식료품점이나 옷가게, 가전제품 수리점 등은 전부 열 블럭 내에 다 있었다. 거주 구역 바깥을 나갈 이유도 없었고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콜야가 종종 말하는 얘기는 케일런에겐 감도 오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그런 연회는 뭐, 누가 여는 거야? 왕이 열기라도 해?”
“응! 도련님의 아버지가 열어.”
“상상도 안 간다.”
입 안에 샌드위치를 다 우겨넣은 케일런은 손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탁탁 털고 잔디 위에 누웠다. 맑은 하늘 위에 구름이 둥둥 떠가는 것이 보였다. 팔을 베고 누우니 슬금슬금 잠이 오기 시작했다. 옆에서 재잘대는 콜야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주변 소리가 작아지고, 내면의 소리가 커져왔다.
‘왕실이라 하더니, 정말 영화에서 나올 법한 행사를 하는 모양이네.’
에크스탄에서 말하는 파티는 미국 부자들이 여는 초호화 파티와도 결이 사뭇 다른 것 같았다. 영국 왕실에서 여는 파티와 닮아있으려나? 케일런은 다시금 자신이 먼 나라까지 왔다는 걸 느꼈다.
‘그럼 아자드는 어떻게 사려나. 걔도 왕자긴 하니까 왕실에서 사는 거 아니야.’
역사가 짧은 나라가 고향인지라, 궁전이라는 단어는 케일런에게 많이 멀었다. 로널드를 따라 유럽 쪽으로 종종 가보긴 했지만 고궁을 보는 취미도 없었을 뿐더러 로널드도 업무차로 가다보니 관광지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케일런은 아자드가 사는 궁전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려 했지만 이내 자신의 상상력 부족을 실감하고 그만뒀다. 대신,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아자드의 얼굴을 그렸다.
콜야가 없을 때마다 아자드에게 말을 걸어보려 꾸준히 노력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자신이 어떤 타이밍에 찾아가는 지 눈치챈 건지 아자드는 케일런보다 발빠르게 움직였다. 찾아가도 아자드의 반 학생들만 있고 아자드는 없어 케일런은 이틀 연속 허탕만 쳤다. 이렇게 귀하게 굴 얼굴인가. 케일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자드의 얼굴은 케일런과 무척 달랐다. 케일런이 봐왔던 사람들 그 누구도 그와 닮지 않았으면서 기억에 남는 얼굴이었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독특했다. 특히 그 노란 눈은 눈을 감기만 해도 선명히 떠올랐다. 사람보다는 동물에 어울릴 눈이었다. 로널드의 말이 아니었어도 케일런은 아자드에게 먼저 말을 건넸을 것이었다. 그는 호기심을 참는 성격도 아니었고, 한번 신경 쓰이는 사람을 그냥 보내는 성격도 아니었다.
케일런이 학교를 다니면서 확실히 느낀 것들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이 에크스탄 출신과 그렇지 않은 출신들로 나뉘는데, 두 그룹은 섞이지 않고 다닌다는 것. 에크스탄 출신 학생들은 이 나라에서 꽤 부유한 편에 속한다는 것. 영국에서 온 놈들은 전부 재수가 없다는 것. 러시아에서 온 놈들은 제법 여기 사람들과 죽이 맞는다는 것. 그리고 ‘모든 학생들은 아자드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학생들도 그를 다르게 대했다. 현지인들이 자신의 왕자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면, 외지인들은 아자드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그 누구도 직접 말을 걸지 않았다. 케일런은 후자가 더 불쾌했다. 외국 학생들은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보듯 아자드를 힐끔거렸다.
케일런이 지켜본 아자드는 하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따돌림당하는 왕자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케일런과 콜야 정도였고, 아자드가 받아주는 유일한 대화 상대인 콜야마저도 반이 멀리 떨어져 있어 둘은 하굣길에서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심심하지 않나? 점점 케일런은 아자드에 대한 생각을 키워나갔다. 하루종일 아무하고도 얘기를 안하면 어떤 기분일까? 집으로 돌아가서는 말할 상대가 있는 걸까? 남들과 대화하는 걸 꺼리는 성격은 아닌 걸로 보이던데……. 하나, 둘 지나가는 생각들이 점차 어느덧 희미해졌다.
“어라. 케일? 자?”
눈을 감고 색색 소리를 내는 동급생의 얼굴 위로 콜야가 손을 휙휙 흔들었다. 이미 잠에 빠진 케일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얘 좀 봐.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자는 건 뭐니?]
콜야가 입을 한껏 내밀고 툴툴댔다. 다시 한 번 더 케일런의 얼굴 위로 손을 흔든 그는 고개를 돌려 나무 옆에 서 있는 자신의 주인에게 손짓을 했다.
[진짜로 자는 것 같아요.]
[정말?]
[제가 귀에 바람을 불었는데도 안 일어나요.]
[으음.]
아자드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여러번 확인하고 나서야 아자드는 천천히 걸어왔다. 무게에 밟혀 바스락거리는 풀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심히 다가온 그는 엉거주춤하게 무릎을 숙여 케일런과 콜야를 바라봤다.
[나하고 친해져서 뭘 하겠다고.]
아자드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콜야가 히죽거렸다.
[왕자님하고 친해지고 싶은가 보죠.]
[자기한테 피해가 갈 수도 있는데 그런다고?]
[저도 별로 신경 안 쓰잖아요. 케일도 그런 성격인 거죠.]
[너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니 그럴 수 있지. 케일런은 그렇지 않을텐데…….]
여전히 아자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좋은 아이 같아요. 왕자님도 그래서 말 거신 거 아녜요?]
[그 때는 내가 경솔했어. 이렇게까지 끈질긴 성격인줄 알았으면 쳐다도 안 봤다.]
아자드는 콜야 옆에 무릎을 꿇고 좀 더 케일런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모르겠어.]
[무슨 생각인지 모르면 어때요! 허튼 짓 한다 싶을 때 거리를 둬요.]
[어떻게 그리 쉽게 말해. 혹시라도… 해를 입으면 어떡하니.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같아 보이는데 그저 무지하다는 이유로 해를 입는 건 억울하잖아.]
콜야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얘가요? 미국 국무부 차관 아들이라면서요. 그럴 일이 있나요? 미국하고 전쟁을 벌일 생각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솜털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걸요. 물론 사고뭉치라 온세상에 광고하고 다니기는 했지만, 아예 내놓은 자식도 아니잖아요. 제가 아직 정상적인 생각과 판단이 가능하다면 전 척도 지지 않겠어요. 아, 그 분은 그럼 척을 지시려나?]
[콜야, 입.]
아자드가 콜야를 노려보며 입가를 두드렸다. 그러자 콜야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댓발로 나온 입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종종 주의를 줘야 아자드는 마음이 편했다. 자칫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크게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직접적으로 대상을 지칭하지 않아도 트집 잡힐 거리로는 충분한 말은 싹부터 잘라야 했다.
[하여간 너무 피하지는 마세요. 친해지겠다고 이만큼 노력은 가상하잖아요. 아니면 혹시라도… 그저 사람으로서 케일이 싫으신 거예요? 확실히 무례하거나 무식한 면이 있긴 하죠. 왕자님에게는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겠다. 그런 이유라면 제가 바~로 내쫓아버릴게요. 아, 그래도 잡지는 받고요. 괜찮죠?]
콜야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자드의 눈치를 보자, 아자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건 아니야.]
[그럼 괜찮은 거죠?]
[그렇다고 해서 이 아이와 친구가 되겠다는 말도 아니야.]
콜야의 밝은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렇지만 셋이서 놀면 정말 재밌을텐데. 진짜로요오….… 꿍얼거리는 소녀의 빨간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자드가 말했다.
[혹시나 모르는 일인 걸. 예외를 두면 언제나 문제가 생기는 법이야. 너도 알잖아.]
[어휴, 알겠어요. 왕자님 편하신 대루 하셔요.]
[오늘은 일찍 들어가자. 니냐가 맛있는 걸 해놓는다고 했어. 너희 아버지가 이번에 새 묘목을 들여왔는데 그게 마음에 든 모양이더라.]
[네에.]
자리에서 일어난 아자드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가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십보 정도를 걷고는 한 번 뒤돌았다. 여전히 케일런은 잔디에 누워 태평하게 잠자고 있었다. 다시 다섯보 정도를 더 걷고는 뒤돌았다. 잠에서 깨려는 건지 케일런이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가 상체를 일으키고 나서야 아자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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