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역배우가 돌아왔다. 4화

연극부원을 모으는 거?

솔직히 쉬운 줄로만 알았다.

250명이나 있는 초등학교에서 연기하고 싶다는 애들이 다섯 명도 없을까 생각했다.

그는 선배 형 누나들에게도 달려가서 연극을 하지 않겠냐며 물었고, 또 동기나 후배 등 학교 전체를 들쑤시며 같이 연기할 사람을 찾았다.

태웅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도.

연극에 참여하는 애는 없었다.

호기심을 갖고 부에 들어오거나 태웅이라는 인물 자체에 호감을 느끼고 부에 들어와 실제로 연극부 창설은 몇 번 된 적은 있었지만.

연기 자체에 열의가 없던 애들에게는, 태웅의 열정이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퇴부 하는 인원도 꽤 되었었다.

그 때문에 창설, 폐부, 창설, 폐부를 반복했다.

 

“방법이 없나...”

 

5학년 2반 뒷자리 창가 자리에서 턱을 괴고 고민에 빠진 태웅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뒤에서 타박타박, 실내화 소리가 가까워졌다.

 

“또 연극부야?”

 

자신의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가현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참 오래도 만난 친구.

 

‘얘는 연극부에 안 들어오려나.’

 

다른 친구들은 호기심에라도 한 번쯤은 연극부에 들어왔었는데, 어릴 때부터 친했던 그녀는 한 번도 연극부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너도 꽤 포기하지 않는 구나.”

 

그녀의 목소리에 태웅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뒤를 돌아봤다.

 

“내가 포기를 왜 해.”

“5년 동안 동료를 모았는데, 안 됐잖아. 루피가 너처럼 동료 모았으면 원피스는 시작도 못 했겠네.”

“왜 또 시비야.”

 

가끔 그녀는 태웅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았으면, 자신의 첫사랑은 성공적으로 끝냈곘지.

태웅은 힐끗 그녀의 얼굴을 본 뒤 입을 열었다.

 

“그냥 네가 힘들어하니까, 말하는 거지.”

“들어올 것도 아니면서... 됐어. 그냥 시비만 걸거면 남자친구나 만나러 가.”

 

남자친구란 말에 가현은 몸이 멈칫거렸다.

이제 그녀의 남자친구 자리는 태웅이 아니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예뻐져만 갔고, 반에서 인기는 많아졌다.

그리고 가현이 5학년이 되자마자 3반 반장에게 고백을 받았다.

어쩌다가 고백을 받아줬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으나 반장이 성격도 괜찮고 외모도 준수하니 받아준 것이리라.

 

“여기서 뭐해?”

 

가현의 남자친구 반장이 나타났다.

본인의 여자친구를 보러 온 것.

 

“어... 그냥 얘기?”

“아, 얘랑?”

 

반장은 태웅을 흘겨보더니 짧게 혀를 찼다.

음... 성격이 괜찮다는 말은 취소다.

최소한 태웅을 싫어하는 건 분명했다.

반장이 한참의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입술을 뗐다.

 

“...알았어. 점심 시간에 봐!”

“으응.”

 

가현은 조금 떨떠름하게 반응했다.

태웅은 이날,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 이가현 시점.

 

끼익. 끼익.

 

“하아...”

 

한숨을 내쉬며 그네를 타고 있는 가현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 대신 위성이 깜빡이는 밤하늘이었지만, 가현은 거짓된 반짝임만 있는 우주를 올려다보는 것이 즐거웠다.

밤하늘의 공기와 풍경이 기억하기 싫은 기억들을 잊게 해주었으니까.

 

띠링-.

띠링-.

 

남자친구에게서 온 문자.

가현은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옆 반 반장이 갑자기 고백을 해왔을 때도 가현은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다만, 반장은 원래부터 인기가 많은 남자 애였고.

고백받던 당시 주변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며 받아달라며 분위기를 만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거절하지 못하고 고백을 받아주었다.

 

“그때 받는 게 아니었어.”

 

반장은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가현은 그의 사랑이 버겁기만 했다.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으니, 그와 사귀는 하루하루가 미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릴 뿐이었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주변에서 반장을 가지고 논 거냐며 팬클럽 비스무리한 여자 무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게 뻔했다.

 

“바보! 멍청이!”

 

휙!

 

그네에서 뛰어내린 가현은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9시 29분.

 

집에 들어갈 시간인데 들어가기가 싫었다.

부모님은 툭하면 이혼한다며 다투었으니.

가현에게 있어서 집은, 더 이상 안전한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학교도 싫고, 집도 싫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가 좋다.

그리고.

 

“아아, 반가워요. 저는 이혼 법률 변호사, 신지혜라고 합니다.”

 

연기가 좋았다.

유치원 때는 태웅이 남자 친구 연기를 해주던 순간이 행복했었고.

부모님 앞에서 선보인 졸업 연기도 즐거웠다.

 

‘저의 꿈은 유치원 선생님입니다!’

 

태웅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꿈으로 선택했던 순수했던 시절을 한 번 떠올린 뒤.

가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혼하고 싶다고요? 무슨 사유인가요?”

 

낮게 깔린 여성의 목소리.

집에 자주 들락거리며 부모님을 갈라 세우려는 악덕 같은 여성.

오늘 그녀는 이혼 법률 변호사 신지혜를 연기했다.

가증스럽고 없어졌으면 좋겠는 그녀를 연기함으로써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그녀를 밖으로 쫓아낼지, 신지혜를 연기함으로써 생각한다.

더욱 차가운 눈빛과 빨리 이혼해서 돈을 달라는 야수와 같은 눈매.

더욱 낮게 깔린 목소리는 돈이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높아진다.

 

“어머, 그러시구나!”

 

가증스러운 사람.

배우가 되고 싶었던 가현이 어떠한 대본도 없이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에.

자주 연기할 때 따라 하곤 한다.

그리고 이렇게 연기할 때면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다.

 

‘태웅...’

 

가현은 목을 가다듬는다.

 

“우선 합의 이혼이시고, 법적 절차는 안 밟으시는 거죠? 사유는 성격 문제...”

 

성격?

고작 그런 걸로 헤어져?

엄마와 아빠는 자주 웃었었잖아!

 

“아무 문제 없죠...”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겠다는데 어떠한 문제도 없어. 당연해.’

 

태웅과 연인 연기를 했을 때도.

실제로 반장과 연애를 할 때도.

그리고 그들과 헤어진다고 해도.

부모님이 자신을 떠나간다 해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

가현은 지금처럼 연기할 수 있는 환경만 주어진다면, 상관이 없었다.

태웅의 연극부에 들어갈 걸 그랬나...

그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들어갈 수 없었다.

자신의 연기 실력과 태웅이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했을 때의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

 

‘내가 들어가면 민폐야.’

 

태웅의 연기를 저질스럽게 만드는 역할밖에 되지 않는다고.

사춘기의 감정이 조금씩 고조된다.

이제 이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그저.

분출할 뿐.

 

“그럼... 이혼 서류에 싸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건 싫은데요?”

 

멀리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이혼은 거절하겠습니다.”

“...당신은.”

 

가현은 홱하고 고개를 돌렸다.

...태웅의 얼굴이 보였다.

 

“그나저나 신지혜 변호사님. 저희 따로 얘기할 게 남아 있지 않나요?”

“...무슨 얘기죠?”

“우선 동아리 이야기부터 꺼내도록 할까요?”

 

그의 재치있는 애드립에, 가현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실소를 터뜨렸다.

 

‘이런 모습 때문에 동아리에 들어가기 싫었던 거라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 사이에 가현의 눈물방울 하나가 뚝,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 * *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눈물을 훌쩍이며 간신히 말을 꺼낸 가현.

태웅은 그런 가현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너네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나 밤길이 익숙해서 괜찮아.”

“그런 얘기가 아닌...”

“그보다!”

 

태웅은 눈을 반짝이며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연극부 입부 신청서였다.

 

“어떠신가요? 신지혜 변호사님. 이 서류에 싸인을 하는 게.”

 

그는 다시 연기하는 톤으로 말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발성에 힘이 느껴졌다.

가현은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너 내 연기 봤잖아. 형편없는 거.”

“아뇨, 아뇨. 가현 변호사님께서는 훌륭하게 두 남녀의 이혼을 이끌었어요. 박수가 절로 나오던데요?”

 

하다못해 가현 변호사라니.

가현은 피곤하다는 듯 눈매를 내리깔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졌다, 졌어.

 

“...당신.”

“왜 그러시죠?”

“이혼은 안 좋은 게 아닌가요? 뭘 좋다고 박수까지 치나요?”

“이혼 법률 변호사에게는, 이혼하는 상황을 만든 게 최고죠.”

“제가 의사였다면, 사람을 아프게 하고 치료했다고 해서 박수를 치실 건가요?”

“네. 당연하죠. 의사는 아픈 사람을, 변호사에게는 분쟁을, 선생님에게는 무지한 사람을, 광대처럼 연기하는 저희에게는 생각 없이 웃기만 하는 관객을 원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

 

연기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연기로.

제 4의 벽을 순식간에 깨부수면서 연기 톤을 잃지 않는 태웅의 몰입력.

가현은 실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없이 웃기만 하는 관객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잖아.”

“실제로 그게 맞으니까. 아니면 너는 어떤 관객이 왔으면 좋겠는데?”

“어떤 관객?”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이다.

평범하게 연기하는 게 좋았을 뿐이니까.

자신의 연기를 봐줄 사람 같은 건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부모님...”

“나도 그래. 그리고?”

“...너.”

 

가현이 생각나는 대로 입 밖으로 말을 뱉어냈고, 그녀는 주워 담지도 못할 말을 소매에 넣은 태웅은 잠시 몸이 멈칫거렸다.

그렇게 몸을 멈칫거리던 태웅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얼마든지 봐줄게. 연기 쯤은.”

“못한다고 놀리거나 그런 거 아니지?”

“그럴 리가. 너의 연기가 형편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내가 장담할게.”

“...알았어.”

 

가현은 못이기는 척 연필을 들고 이름을 적어갔다.

반장과의 관계?

이제는 상관이 없다.

 

‘부모님들도 다 자기 멋대로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야!’

 

이혼 후 전학 가든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다시 그와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가현은 싸인하다가 손을 멈췄다.

 

“그런데 우리 두 명이잖아.”

“응. 근데?”

“우리 이번 학교 축제 때 못 나가는 거 아니야?”

“음...”

 

매년 열리는 학교 축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교내를 돌아다니며 각 반에서 연 벼룩시장에서 음식을 용돈으로 사 먹고 노는 축제.

몇 년 뒤에는 학생 수가 줄어들어 이 축제도 안 할거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그리고 이 축제에 하이라이트는 학생들이 모여서 하는 장기 자랑이다.

춤이나 노래 이런 것들을 거대한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곳에는 부모님도 앉아서 볼 수도 있다.

사실 장기 자랑을 선보이는 댄스 동아리나 밴드 등은 이런 축제에 서지만.

인원수 미달인 태웅의 연극부가 무대에 설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다.

 

“가현아, 가까이 와봐.”

“응?”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는 태웅.

가현은 몸을 당겨서 귀를 태웅의 얼굴에 가까이 댔다.

그러자 태웅이 귀를 간질이는 바람을 섞어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선생님께 부탁해봤는데. 이번만 특별히 두 명만 있어도 축제에 설 수 있게 해준대.”

 

‘진짜...?’

 

가현은 한동안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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