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아역배우가 돌아왔다. 5화

저출산.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때문에 학교 축제에 참여하는 학생 또한 줄어들게 되었다.

무대에 서는 학생이 너무 많이 줄어들게 되면 원래 있던 다른 스케쥴도 무너지게 되기에.

당장 무대에 설 학생이 필요했다.

무대의 퀄리티?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무대에 선 그들의 친구들이나 자식들의 장기 자랑을 보러 온 부모님만 만족시키면 되니까.

그래서 무대에 오르는 조건의 허들이 낮아졌고.

태웅의 연극부가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믿기지가 않아.”

 

연극부 연습실 안, 스트레칭을 하는 가현이 태웅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에, 태웅은 손깍지를 껴 팔을 하늘 위로 기지개를 켜며 입을 열었다.

 

“또 뭐가?”

“우리가 무대에 서는 거!”

 

가현은 기쁜 듯 말했다.

연기자가 무대에 선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태웅은 그런 그녀를 힐끗 보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 한 달밖에 안 남았어. 빨리 준비를 해야 해.”

“한달이라... 우리 무슨 연극을 할 거야?”

“아직 안 정했는데?”

“...뭐? 그럼 어떡해?”

“어쩔 수 없잖아. 부원이 나밖에 없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연극부의 부원은 태웅 혼자였고,

선생님이 두 명만 모여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면, 무대에 설 수 없을뿐더러 미리 내용을 정할 수도 없었다.

보육원에서 했었던 연극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그렇기에는 사람이 두 명밖에 없었으므로.

헨젤과 그레텔을 해도 마녀와 쿠키와 나무가 없으니, 2명 이상 필요로 하는 연극은 불가능하다.

태웅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보며 말했다.

 

“어떤 내용이 좋을까.”

“음... 독백?”

“그건 우리 유치원 때 한 거잖아.”

“하지만, 내가 해본 건 혼자서 하는 연기밖에 없다고.”

 

매번 놀이터에 가서 혼자서 연기 연습하는 것밖에 해본 적이 없던 가현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말하자 태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매번 놀이터에서 연습했던 거야?”

“그렇지? 너는 그 놀이터에는 어쩐 일로 온 거야?”
“아아, 그냥 주변을 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라서.”

“아아.”

 

우연히 찾은 놀이터.

저녁에 밤 산책을 하다가 고양이를 발견했고, 고양이를 좇다가 길을 잃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는 태웅과 그런 그를 귀엽게 보는 가현.

그렇게 둘은 몸을 다 풀고 이제 막 회의를 시작하려던 찰나.

 

“가현아.”

 

반장이 찾아왔다.

그는 방가후 전에 이미 가현이에게 연극을 시작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에, 덤덤하게 말했다.

가현도 그의 방문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응, 무슨 일이야?”

“내일 주말이잖아. 어디 안 갈래?”

“주말... 좀 바쁠 거 같은데. 한 달 뒤에 우리 무대잖아.”

“부원이 된 지 한 달만에 무대에 오르는 게 가능해? 두 명밖에 없잖아.”

“가능하대.”

“누가?”

“태웅이가.”

 

반장은 한숨을 내쉬며 옆에 서 있는 태웅을 노기 서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래?”

“응.”

 

가현의 말을 천천히 듣던 반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연극부원도 두 명이라 무대 준비도 힘들 테고, 대본도 그렇고. 제대로 되겠어?”

 

반장의 말이 맞긴 했다.

현실적으로 초등학생 두 명이 모든 무대를 꾸미고, 연극을 한다는 건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태웅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무대 장치가 부족하다면 목소리로 메우면 되고, 또 사람이 부족하다면 적은 사람만으로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대본을 짜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태웅이었지만, 뭐 일반적으로는 반장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겠지.

반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춤이나 그런 것도 아니고 애들 둘이서 연기를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볼 것 같...”

 

퍽-.

 

가현이 반장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쳤다.

 

“넌... 여자친구의 꿈이 뭔지 아직도 몰라?”

 

전에 반장에게만 말했었다.

배우가 되고 싶다고.

그래도, 남자친구이니까 사랑으로 시작하지 않아도 점차 서로 알아가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틀 줄 알았다.

하지만.

반장의 이러한 반응은 가현을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나가.”

“나는 너를 위해서...”

“미안해. 끝나고 연락할게.”

 

가현은 반장을 쫓아냈다.

반장도 그녀를 위해서 하는 말인 줄 알고 있었다.

초등학생의 연기?

그것도 대규모 연극도 아닌 단 둘의 연기다.

누가 보는 사람이 있을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었다.

연기라는 것을.

 

* * *

 

학교 근처 유명 카페에 들어간 태웅은 아메리카노를, 가현은 초코 라떼를 시켰다.

보육원에서 카페 음료를 시켜봤자 어차피 가장 싼 아메리카노밖에 사주지 않았었고.

그 때문에 태웅이 카페에서 가장 잘 마시는 음료가 아메리카노가 되었다.

뭐 다른 걸 먹어보고 싶긴 했지만, 생각보다 비쌌다.

지금 가현이 먹고 있는 초코 라떼만 해도 4000원이고 아메리카노는 1500원이니.

말 다했다.

 

“그래서 연극 주제는 뭐로 할까?”

“두 명이니까... 우선 동화같은 건 힘들겠지?”

“흥부와 놀부도 최소 3명은 필요하니까.”

 

아메리카노를 크게 홀짝인 태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은 선택할 수가 없다.

의상 관련 문제도 있으니, 서양의 이야기를 하는 건 힘들다.

그렇다 해도 동양의 의상이 만만하다는 것도 아니다.

무대, 의상, 조명.

그리고 배우.

이 모든 걸 초등학생 두 명이 맞추고 각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렇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순 없지.’

 

태웅은 이번 무대에 서는 걸 목표로 했다.

어머님에게 아역배우를 뽑는 오디션에 참가하고 싶다고는 말했지만, 바로 혼나버렸다.

아직 초등학생인 그가 연예계에 진출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불안한 것.

자신의 정서가 확실하게 바로잡지 못한 상태의 초등학생이 연예계에 진출했을 때 연예인 병에 걸릴 수도 있고, 또 인성적으로 올바르게 자라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중학교를 예고를 나와서 정식적으로 연기를 하라는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태웅은 6년 간 학교에서 홀로 연기를 해야 했다.

 

‘연극부원만 빨리 모았으면 진작에 무대에도 몇 번 서보는 건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기회.

태웅은 놓칠 수 없었다.

가현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초코 라떼를 마셨다.

입가에 묻은 초코 라떼는 휴지로 닦아낸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는 부모님 부를 거지?”

“그렇지. 가족이나 친구들은 어떻게든 다 봐달라고 해야지. 너는?”

“...안 될 거 같아.”

“부모님이 싸우니까?”

“응. 부모님은 서로 모이는 걸 싫어하니까, 부르면 괜히 또 싸우다가 바로 이혼해버리면 어떡해...”

 

그렇게 말하곤 눈을 내리깐 가현이 초코 라떼를 홀짝였다.

 

“무슨 상관이야?”

“응?”

 

초코 라떼를 마시다가 급하게 고개를 드는 가현은, 입가에 조금 초코를 흘렸다.

태웅의 말에 화들짝 놀란 것.

그는 가현에게 휴지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혼이랑 무슨 상관이야.”

“만나면 싸우잖아.”

“너 때문에 싸우는 거야?”

“...아니.”

“네가 싫대?”

“...아니.”

“그럼 괜찮잖아.”

“그 말이 아니...”

 

괜히 울컥한 가현은 눈물이 찔끔 나올 뻔했다.

태웅은 그런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이런 애들도 많았지.’

 

보육원에는 부모님에게 버림받은 애들이 많았다.

이혼당하고 버려지기까지 한 그들의 상처들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태웅에게 있어서, 가현은 오래전부터 함께한 친구 같았다.

그녀는 유치원보다 더 오래된, 태성의 인격체를 보듬어 주는 그런 존재였다.

 

‘특히 가출 팸에는 넘쳤었고.’

 

가출팸 형 누나들과도 어느 정도 알고 지냈던 태성의 기억.

가현이 상처를 받지 않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어렸던 그는 그러지 못했다.

가현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이게 했으니까.

하지만, 그를 보듬어 줄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현아.”

“...”

 

울컥함에 더는 말하지 못했던 그녀 대신해서 태웅은 먼저 입술을 뗐다.

 

“연극 때 부모님을 부르자.”

“...하지만.”

“부모님이 서로를 싫어할 수는 있어. 하지만 가현 너는 좋아하시잖아. 사랑스러운 딸의 연기를 보여줘야지.”

“...부르면 둘은 안 싸울까?”

“싸우시겠지. 너는 괜찮곘어?”

“뭐가?”

“부모님이 이혼하시면, 더는 부모님에게 연기를 못 보여주는데?”

 

이혼하고 길을 잘못 든 형 누나들이 몰래 술마시며 하는 후회 중.

부모님에게 좋은 말을 한 번을 못 한 게 후회가 된다며 하소연 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런 후회를 하는 사람 대다수는, 본인들은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부모님들의 성격과 의견 차이로 이혼하게 되고 혼자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래, 가현과 마찬가지의 사람들.

 

“우리 연기하자. 부모님들에게 보여주는 거야.”

“...무슨 연기를 할 건데?”

“나에게 다 생각이 있어. 내가 내일 대본을 가져올게.”

“직접 쓰게?”

“그렇지.”

 

좋은 생각이 났다.

태웅은 그들을 이혼시키고 싶지 않았다.

가현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싫었으니까.

지금 이 생각이 과연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지, 아닐지는 미지수.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가만히 있다가 둘이 이혼하는 결과라면.

그 사이를 각색을 해봐도 되지 않은가.

시청률이 어떨지는 방송을 해봐야 아는 법.

 

“너는 부모님을 꼭 데리고 와. 알았지?”

 

가현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 이가현 시점

 

삐-삐-삐-삐-삐-.

 

철컥.

 

가현은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

“그니까! 왜 이러는 거예요? 집은 또 왜 늦게 들어와요!”

“누가 보면 바람 핀 줄 알겠네! 회식이 있다고 했잖아! 당신이야말로 제발 저린 거 아니야?”

“애 앞에서 못하는 얘기가 없어!”

 

부모님이 싸우는 익숙한 거실.

가현은 숨을 내뱉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서 숙제할게요...”

“그, 그래. 밥도 해놨으니까 밥도 먹고!”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현은 엄마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고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말하라고...”

 

가현은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렸다.

책상 위에 올려진 만 원.

아빠가 올려놓은 거였다.

 

[아빠는 가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생각해보니, 곧 양육권 문제도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 뒤로 부모님이 더 잘해주는 것 같다.

 

“하아...”

 

만원 위로 가현의 눈물 자국이 묻어났다.

참지 못했다.

원래 이렇게까지 눈물이 많은 애가 아니었는데...

 

‘고마워요.’

 

가현은 흘린 눈물을 감추려 만원을 주머니에 넣었다.

부모님들은 자신을 사랑한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랑을 받고 자랐다.

정작, 부모님끼리는 서로 사랑을 주고받지 못한 모양이지만.

자식이 받은 사랑의 반도 받지 못한 부모님들은 스스로 무너졌다.

 

부모님의 사랑은 벌써 종점에 도착했고, 자식은 저 멀리 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띠링-.

 

문자 한 통.

남자친구의 미안하다는 문자.

생각해보니까 방가후 끝나고 문자를 준다고 했는데, 연락을 주지 않았다.

 

‘미안하네.’

 

그런 마음에 반장에게 문자를 보려는 순간.

 

띠링-.

 

문자 한 통이 더 왔다.

태웅의 문자.

그의 문자를 받자마자 가현의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상하게 그의 문자를 받으니까 안심이 됐다.

 

대본 다 완성했어!

 

태웅의 말.

용기가 났다.

부모님이 종점에 서서 오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끼익-.

 

가현이 연 문틈 사이로 부모님의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연기하자.

부모님 앞에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하는 것쯤 이제 가능하잖아.

 

‘후...’

 

가현은 부모님의 앞에 섰다.

 

“엄마, 아빠?”

“응?”

“어, 왜.”

 

부모님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얼굴에는 부모님을 품을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저 연극부에 들어갔어요.”

“연극부?”

“네. 그리고 한 달 뒤에 학교 축제에서 연극을 할 거에요. 보러 와주실래요?”

“...”

“바쁘시면 어쩔 수 없지만요. 아니, 엄마. 아빠.”

“으응?”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가현의 모습에 부모님들을 온갖 생각이 들어 반응이 조금씩 늦어졌다.

가현은 천천히 숨을 토해내며 조금 낮은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러 와주세요.”

 

그녀는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와달라고.

가현이 부모님에게 처음 목소리를 크게 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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