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 바깥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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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절간 스님 by 넵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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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트 가의 저택에서 근무 중인 사용인들은 갑작스러운 다섯째 도련님의 귀환 소식에 분주했다. 손님까지 함께 온다고 하니 그 손님이 얼마나 오래 이 저택에 머물지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아주 많았다. 자신들의 고용주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용인들은 이곳에 없었다. 평소 그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고용주께서 잘 언질 해주었기 때문에 신경 쓸 부분이 적었으나 그네들 입장에서 평생에 걸쳐 한 번을 볼까 말까 한 도련님과 아가씨는 또 다른 문제였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시간관념은 백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간과 차이가 있는 탓에 그들은 외형적으로 보나 이제 갓 스물이 되었을까 싶은 도련님께서 고용인들 중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세월을 살아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하여 21세기가 되어서도 아주 느리게 20세기에 멈춰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그들은 작동방식을 관측할 수 없는 전기회로보다는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사의 발전 속도는 어찌 보면 찰나에 불과한 그 시간 속에서도 유독 빠르게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하자면 한 없이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그 모습은 어떤 형태로 비춰질 것인가. 그들은 그저 오래된 귀족이었다. 뱀파이어들은 외형적으로 인간과 매우 흡사하고 때때로 인간이 뱀파이어가 되기도 할 정도로 인간과 가까운 이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뱀파이어가 인간사회에서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현대에 와서 그 세력이 점차 약소해졌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그렇게 역사 깊은 귀족이었다.

홀트 가의 다섯째 도련님은, 그러니까 도핀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부터 전용기를 타고 본가가 있는 사유지로 향했다. 입출국을 위해 고양이로 변해야 할 때를 제외하고서는 장장 한나절에 가까운 비행 속에서 샤뮤에드는 얌전하다 못해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말을 걸면 대답을 해 주기는 했으나 그것이 대화로 이어지기는 요원한 탓에 도핀은 절로 샤뮤에드의 안색을 살피고 말았다. 사냥꾼들의 시신을 사람들이 발견 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말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데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은 것일까? 샤뮤에드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괜한 참견한다 생각될 수 있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H’가, 그 ‘홀트’였군.”

어딘가 멍하게 앉아있던 샤뮤에드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어 즐거운 기억이라도 떠올랐는지 킥킥대는 웃음을 뱉었다. 도핀은 그가 웃는 것을 보니 기분이 안 좋았던 게 아니라 생각하느라 조용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안도도 잠시. 나름대로 유서 깊은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귀족이나 뱀파이어사회 기준이었지, 샤뮤에드는 전혀 그런 곳과는 연이 없어 보였는데 무언가 알고 있는 맥락에 도핀은 의아했다.

“들어본 적 있어?”

“아, 어디서 들어 본 거 같다 했더니. 전에 만난 적이 있어.”

샤뮤에드는 즐거운 웃음이 섞인 흥미로운 낯으로 도핀을 보았다.

“홀트 녀석들은 여전히 인간들에게 우호적인가 보네.”

비아냥 같기도 하고 감탄 같기도 한 말이었다. ‘여전히’라는 것을 보면 만난 지 시간이 상당히 지났다는 사실은 알 수 있겠다. 자세히 물어봐도 샤뮤에드는 ‘그렇게까지 자세히 기억할만한 일은 아니었다.’정도로 말을 일축했다. 본가에 도착하면 알게 될까? 그런 도핀의 궁금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뮤에드는 그저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다. 기분 좋아 보이니 된 건가. 도핀은 자신도 그 모습을 보면서 웃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 + +

 

뱀파이어라는 집단들이 본디 동족애가 강한 편이긴 했으나 홀트의 성을 따르는 뱀파이어들은 유독 가족의 형태를 중시했다. 홀트 가의 뱀파이어들은 본가라고 불리는 저택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종종 젊은 뱀파이어들이 인간사회로 스며들기도 했지만, 그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나설 준비를 하는 것이 홀트 이름으로 묶긴 뱀파이어들이 가진 특징이었다. 작고 약한 것들을 귀히 여기는 자들. 어린 것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이들. 그렇기에 인간들에게 무심할지언정 잔인하지는 않은 족속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제 어린 아들이 데려온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저런, 인상 쓰지 마. 이제 얼굴에 주름도 생겼던데? 그래, 우리 구면이지?

샤뮤에드는 응접실에 비치된 소파에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탁자 위에 올라온 차의 향을 즐기면서 도핀의 부모를 마주하고는 낄낄댄다. 전대 가주의 아들이자 현 가주의 동생인 도핀의 아버지 하버트는 이 ‘손님’을 알고 있다. 그래, 그는 자신이 제 아들만 하던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있던 짐승을 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비록 뒤집어쓰고 있는 껍데기가 바뀌었을지언정. 골치 아픈 일이다. 하필 저것이 제 아들에게 관심을 보이다니.

그런 하버트의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뮤에드는 가벼운 손짓으로 찻잔을 흔들었다. 잔잔했던 잔 안은 얕게 파도치며 은은한 홍차향을 퍼트린다. 다즐링인가. 딱 자기네들 같은 걸 마시는군. 선대 홀트는 모르겠으나, 역시 지금 세대의 홀트들은 자신을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놀랍게도 샤뮤에드, 그도 분위기라는 것을 읽을 줄 안다. 대체로 읽을 줄 앎에도 신경을 쓰지 않아서 문제지만 어쨌거나 이곳에서 굳이 잡음을 만들어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읽어낸 분위기로 장단은 좀 맞춰줘야지. 이 생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볼 일이 있어서 응접실에 자신만 따로 불러냈을 텐데 아직까지 이야기도 안 하고 뭐하는 짓이람. 음. 생각해보니 전대 가주를 꼬여내어 문을 열도록 만들었으니 저들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감사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러고 보니, 맞네. 너 왜 나한테 띠껍냐? 깍듯해야 하는 거 아니야? 지 아들이랑 왔다고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얼굴에 다 쓰여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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