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측 바깥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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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소리

절간 스님 by 넵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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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한복판에서 벌어진 학살에 대해 인간들은 얼마만큼 소란스러워질 것인가. 애석하게도 도핀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그 주변에는 인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까. 도핀은 자신을 안아서 들고 있는 샤뮤에드의 품에서 그의 옷자락을 살짝 제 쪽으로 당겼다. 그러고는 비밀이야기를 하듯 속살거린다. 이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샤뮤에드의 태도에 자신이 영물답지 않게 무지하다 생각되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샤뮤에드, 왜 여기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거야?”

“으응?”

 

샤뮤에드는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눈을 굴렸다. 설명해 줘야 하나? 하긴 마녀나 마법사니 하는 것들이 죄다 숨어버린 것도 800년 정도 됐다. 그보다 더 지났던가? 마녀사냥이랍시고 인간들끼리 깡그리 잡아 죽여댄 탓에 제대로 된 마법조차 그 명맥이 흐릿해져 어린 것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뱀파이어들은 얼마쯤 살던가. 모르긴 몰라도 지금 제 품에 안겨있는 것이 천 살도 안 되는 핏덩이인 것은 알겠다. 그래, 어린 것들에게 아량을 베풀어야지. 샤뮤에드는 제법 큰맘 먹고 심성을 곱게 써 보기로 했다.

 

“위상변환이지. 마법의 일종이란다, Sweetie. 굳이 비유해보자면 세상 위에 셀로판지를 이용해서 겹겹이 쌓아두는 행위 같은 것이지.”

“셀로판지?”

“그래, 셀로판지. 평소에 존재들이 지내는 곳이 파란 셀로판지면, 지금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빨간 셀로판지 위에 있는 거야.”

 

호텔 비타에도 아마 비슷한 마법이 걸려있었다. 이것보다는 훨씬 정교하고 세련된 형태였지만, 그 공간에 있되 간섭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제법 비슷하지 않나. 샤뮤에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법이 작용하는 범위만 벗어나면 돼.”

“그럼…. 저들은?”

“글쎄, 뭐 자기네들끼리 찾으러 오지 않을까?”

 

꼴을 보아하니 최소한 반경 200m 정도는 위상변환으로 분리되어 있어 보였다.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이가 인간 중에 남아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이곳이 한때 신을 숭배하던 장소였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특성일지도 몰랐다. 신이 직접 이 장소에 있었을 가능성도 존재하니 말이다. 분리된 공간의 크기를 짐작하게 되자 샤뮤에드의 판단은 자연스럽게 후자로 기운다. 신화가 가진 권위는 추락하고 전설의 신비는 때 묻은 시대에 진실로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는 자는 아주 드물어졌으므로, 그는 사냥꾼들이 특정 방법을 통해 이곳에 진입하는 법을 알았을 뿐 직접적으로 마법을 시행한 장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추측이나 그는 아주 오래 살았고, 그만큼 알고 있는 것이 많았으며 또한 겪어본 일도 많았기에 연륜에서 나온 통찰은 대체로 진실에 가까운 편이었다.

 그렇기에 샤뮤에드는 여기서 죽은 사냥꾼들의 시체는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품에 안긴 도핀은 죽어 널브러진 고깃덩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불쌍하네….”

“뭐?”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라고 착각할 만큼, 그래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작은 소리였다. 도핀 자신도 무심코 내뱉은 말처럼 샤뮤에드가 되묻자 황급히 작은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그러다 얼버무리듯 어물어물 정리되지 않은 말을 이어간다.

 

“아니, 그냥.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누구도 죽었는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그게 불쌍한가?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하는 도핀을 샤뮤에드는 빤히 바라보았다. 수천수백의 존재들은 이 지상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가고 수천수백의 존재들이 이 지상에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사라지는데. 그 모든 것은 거대한 순리에 지나지 않건만. 그럼에도 도핀은 죽음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혹은 삶에 대한 예의일지도 몰랐다. 죽은 자들이 한때 있었음을 누군가가 발견이라도 하면 좋겠어. 작은 목소리가 속살거렸다. 풀벌레가 우는 것처럼 귓가가 간질거린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한다며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제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저 단순한 변덕에 지나지 않으리라. 샤뮤에드는 고개를 숙여서 안아 든 작은 것과 이마를 마주 댔다. 짐승은 언제든 그 하얀 목덜미를 잡아챌 수 있다는 듯이 가까이 다가갔다. 도핀은 살짝 시선을 내리깔다가 이내 반듯한 짙푸른 청색 눈으로 바라본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야, 샤뮤에드 너는 강하니까.”

그러니까 약한 이들을 가엾게 여길 줄 알아야 해.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샤뮤에드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코웃음을 치려고 했다. 당연하게 벌어지는 일에 그가 감정의 이름을 붙이지 않은 지 인간의 역사보다도 긴 시간이다. 자신의 생에 십분의 일은 살았을까 싶은 것이 제게 설교를 하고 있었다. 겁을 잔뜩 먹고 움츠러들면서도 심해를 담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빌어먹을 계집애 하나가 떠오른 탓이다. 그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투덜거리는 샤뮤에드에게 도핀은 조심히 손을 뻗었다. 케이지에서 나오지 않는 고양이를 기다릴 때처럼 은근한 어투와 함께 도핀은 그의 뺨을 도닥였다.

“Oh, dear. 저것들이 발견되면 사냥꾼들이 또 괜히 나를 귀찮게 할 거야.”

“사냥꾼들은 이미 너를 알아챘어, 샤뮤.”

“나는 저것들이 왜 자꾸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겠어.”

“잠잠해질 때까지 우리 본가에 갈까? 거기로 가면 아무도 널 귀찮게 안 할 거야.”

본가라 함은 명망 있는 뱀파이어들의 요새나 다름없다. 너를 내 손님으로 대우해줄게. 그 울림이 샤뮤에드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때때로 그는 변덕이 심하였고,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았기에. 그에게 있어 시체 몇 구를 사람들이 발견할만한 곳에 가져다 두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귀찮으니 인간들이 걸어 다니는 번화가에 던져둘까도 싶었지만 그러면 사냥꾼들도 금세 냄새를 맡고 쫓아올 것이 분명하니 어느 정도 한적한 뒷골목에 던져두기로 했다. 시체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장소가 있었고, 그곳에서 시체가 대여섯 구 나온들 사건 사고에 이골이 난 그곳의 인간은 자기네끼리 쉬쉬하리라. 그러다 사냥꾼 집단의 귀에 들어가면 그네 알아서 제 동료들을 수습해주겠지. 사실은 위상변환 마법이 끝나는 지점에 대충 던져둬도 상관없었으나, 그런 곳에 두면 짐승이 뜯어먹는다며 도핀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제가 알 바인가? 하고 그는 되묻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인간을 잡아먹는 짐승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샤뮤에드, 그가 이대로 사냥꾼들을 입안에 집어넣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아직 도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탓에 지나지 않았다. 도핀이 이 사실을 알 리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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