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성녀, 입학 (1)
1차 GL 자캐 CP 리엔세라 : 연재
“...힐렌다 님.”
“...”
“……벌써 사흘째예요.”
소냐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힐렌다라 불린 여성은 탁자 앞에 앉아 성경을 펴고는 뚫어져라 그것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냐는 애가 타는 마음으로 간절히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듯 힐렌다는 묵묵부답이었다. 보다 못한 소냐가 결국 본론을 꺼냈다.
“세라엘님께서 기도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신 지 벌써 3일입니다. 이제 곧 발데마인에 입학하셔야 해서 준비할 것도 많으신데, 저리 방 안에만 계시니…”
“놔두세요. 시위하는 겁니다. 어차피 금방 제풀에 지쳐서 곧 스스로 나올 겁니다. 기다리세요, 소냐.”
“으음...”
소냐가 애매한 소리를 내며 어설프게 대답을 미뤘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세라엘을 본다면 나흘을 넘기지 못하고 나오기 일쑤였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굶어 죽지 말라고 수녀들이 문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음식들을 건네주면, 바로 가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쥐 죽은 듯 있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 좀 달랐다. 세라엘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여태까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직접적으로 그 말을 눈앞에서 듣고야 만 것이다. ‘천한 사생아’. 소냐는 세라엘 이전의 성녀들을 떠올렸다.
유레이토 가문이 성녀를 배출하던 가문이었던 것은 벌써 먼 옛날의 이야기다. 라헤니오 후작가에서 여식들을 성녀로 보내오기 시작하면서 가문은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성녀로 보내야 한다면, 적녀가 아니어도 피를 잇기만 하면 상관없지 않을까. 답은 간단했다. 사생아였다.
귀족에게 있어서 사생아는 아주 흔히 있는 치부였다. 오히려 사생아가 없는 귀족이 드물 정도였다. 어느 순간부터 라헤니오는 사생아 여아들만을 골라 신전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뭇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신전 측은 그걸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다. 어차피 그들도 라헤니오의 이름을 가진 희생양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세라엘 이전의 성녀들도 대부분 라헤니오의 사생아들이었다. 세라엘이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대의 성녀, 마흔아홉 번째 성녀는 조금 달랐다. 이전의 성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자유분방함과 강한 자아, 그리고 사욕(私慾)이었다. 이 모든 것은 세라엘에게 ‘추락한 성녀’라는 별명을 달아주었다.
소냐는 알고 있었다. 힐렌다는 딱히 세라엘이 사생아라서 냉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모든 성녀가 다 똑같았다. 왜냐하면, 힐렌다는…
“소냐. 지금쯤이면 성녀님께서 포기하고 밖으로 슬슬 나오실 겁니다. 기도실 쪽으로 가 보세요.”
“...네? 아, 네!”
멍하니 있던 소냐가 화들짝 놀라며 바짝 선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부리나케 기도실이 있는 방향으로 종종걸음쳤다.
*
“...젠장.”
세라엘이 낮게 욕설을 읊조리며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녀는 현재 로나지에 신전의 작은 기도실에 처박혀 있었다. 늘 찾아오는 자신만의 조그마한 낙원. 리엔시에를 떠올리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던 그 공간. 최초의 성녀 조각상이 놓인 탁자와 작지만 고상한 스테인드글라스가 그 위에 달린 심플한 기도실이었다.
세라엘은 제가 무릎 꿇은 앞에 놓인 탁자 다리를 노려보다 갑자기 주먹질했다. 쾅─ 손마디만 아프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고는 분을 삭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성녀 상에 손을 대는 불상사까지 일어날 것 같았기에.
“...성녀란게 이런 거였어? 왜 아무도... 나를 존경하지 않는 거야. 나는 대단한 사람이 맞을 텐데... 어째서. ...짜증 나.”
분노를 언어에 담아 내뱉은 순간,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붉은빛이 내리쬐었다. 눈을 찡그린 세라엘이 위로 고개를 들었다. 석양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배도 고프고, 지루하기도 하니 이제 슬슬 나가 볼까.
“어휴, 어휴! 남들 앞에서 창피나 주고 말이야. 내가 외출 좀 하겠다는 게 뭐가 그리 아니꼬워서.”
또 나흘을 넘기지 못하고 독방 시위를 마친 세라엘이었다. 오래된 나무 문을 열자, 소냐가 기다렸다는 듯이 앞에서 맞이했다. 세라엘은 그런 그녀를 흘겨보며 뾰로통하게 말했다.
“뭐야, 대기하고 있었어?”
“세라엘니임~ 다들 걱정했다구요! 어서 침실로 드시지요. 간단한 요깃거리를 가져올게요!”
“다들은 무슨… 누가 걱정한다고. 굳이 따지자면 너 말고는 없을걸.”
둘이 수다 아닌 수다를 떨며 성녀의 개인 공간이 있는 곳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복도의 기둥 뒤에서 숨어 바라보고 있는 존재가 있었으니… 힐렌다 수녀였다. 힐렌다는 두 인영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저도 모습을 감췄다. ...복도에는 곧 아무런 인기척도 남지 않았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