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판타지 속 로맨스 서사와 페미니즘(3)
설명하다 피곤해져서 은근슬쩍 넘어가게 된 1950년대 문화 파트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정말 대충 사는 사람이구나 싶은가? 정답이다. 체력이 안 되면 사람이 이렇게 글러먹어진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체력이 안 좋아지면 집필 중 집중력 유지가 힘드니까 코어근육을 만들어 둬라. 뇌근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색하고 말하면 뇌란 장기의 효율은 극악을 달린다...
아무튼 간에. 다시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정리해보자. 1920년대 플래퍼 패션이 흥했다가 사라지고 1930년대부터 여성을 우아하고 곡선미 있는 모습으로 미디어에서 그린다고 지난 글에서 말했는데 이렇게 고정된 여성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떻게 각인되어있는지 1950년대의 스크린에 나오는 여성 배우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으로 말이다.
그레이스 켈리는 여성에게 강요되던 우아함을 대표하는 배우다. 의상, 머리 스타일, 스크린에서의 연기하는 모습도 그렇고 모나코의 대공과 결혼해 공비가 되었는데 교통사고로 죽었다. 50년대까지 인기있던 스타일과 패션을 그레이스 켈리가 보여준다면 마릴린 먼로는... 섹스 심벌이라고 그럴 듯하게 부르지만 남성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멍청한 금발 미인'상이었다. 돈 밝히는 속물에 가슴과 엉덩이는 허리에 비해 풍만하고, 성에도 개방적인데 멍청하기까지 하다면 거 참... 속여먹기 쉬워 보이지 않겠는가. 먼로도 자신에게 대중이 바라는 이미지가 뭔지 알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먹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미지에 의한 희생양이기도 했다. 먼로에게 바라는 건 성적인 이미지 뿐이라 유난히 스캔들도 많았고 그로 인해 사생활마저 어그러졌으니 말이다.
어쨌든 먼로 이후로도 이 '멍청한 금발 미인' 이미지는 할리우드에서 그 맥을 유지한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아주 전형적인 미인상(금발, 백인, 글래머 타입, 노골적인 섹스어필, 귀찮지는 않은 멍청함)이다 보니 오히려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지는데, 당연하지만 할리우드도 이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2001년에 '금발이 너무해' 같은 영화를 찍기도 한다. 이것도 지금 보면 어마어마하게 올드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이미지가 쿨 걸(Cool Girl) 문화로까지 번지는데... 요건 좀 뒤에 얘기하자.
헵번은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특히 패션에 큰 영향을 줬다. 1953년에 찍은 '로마에서의 휴일'에서는 디올의 뉴룩 패션을 주도했는데, 이어 찍은 1954년 작 '사브리나'에서는 펜슬 스커트, 하이 웨이스트 숏팬츠, 9부 카프리 팬츠 등을 입으며 지방시의 뮤즈가 됐다가 1961년 작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서 나온 리틀 블랙 드레스와 진주 목걸이로 미니멀리즘 패션을 유행시켰다.
그런 헵번의 신체적 특징을 꼽자면 키가 큰데 몸이 굉장히 말랐단 거다. 어린 시절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되면서 유년기에 극심한 영양실조를 겪은 후유증인데, 헵번 말고도 이런 극단적인 마른 체형으로 트위기란 별명의 모델 레슬리 로슨이 60년대를 휘어잡으며 이후의 여성 이미지에 영향을 미친다.
이게... 미국 사회의 특수성과 맞아들어가면서 아주 골 때리는 방향으로 여성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줬다. 미국은 이제껏 기근을 겪은 적이 없는 나라다. 식량 사정이 안 좋았던 적이 짧은 미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미국 사회에서 과체중은 언제나 빈곤과 나태의 증거처럼 다뤄졌다. 이탈리아계 이주민들이 시작한 미국식 이탈리아 요리를 보면 더 명확해지는데 투스카나와 시칠리아의 서민 요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고기가 퍼부어져있다. 피자와 미트볼 스파게티로 대표되는 이 이탈리아계 미국 요리말고도 얼마든지 더 찾아볼 수 있는데 흑인 노예들로부터 유래한 소울푸드를 대표하는 옥수수빵과 프라이드치킨이 그렇고 바비큐, 햄버거, 미트로프 등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서민 요리들을 보면 죄 다 고기고기하다. 게다가 지금도 미국의 정육 공장은 저임금 이주노동자의 대표적인 일자리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미국 사회에선 계급에 따라 일상적인 식단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난다. 요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는 집에서 사는 경우도 허다하고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신선식품의 가격이 전자렌지에 돌려 먹을 수 있는 식품보다 훨씬 비싸니 영양 밸런스가 무너져있을 수밖에 없다. 즉, 계급이 낮을수록 고도비만, 초고도비만은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문제다. 게다가 너무 어릴 때부터 이런 냉동식품들에만 노출되어 자라서 신선한 야채를 먹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하기 때문에 금방 이해하겠지만(그래도 한국은 급식이 잘 돼있는 편이라 미국보다 훨씬 낫다) 미국이 더 심각할 수밖에 없는 건... 이놈들은 가난할수록 의료보험도 없다. 의무가입이 아니다 보니 부자일수록 더 좋은 의료보험을 가지기 마련이라 저소득층이든 고소득층이든 어디 아파서 병원을 가게 되면 경제적으로 살해당하니 대체의학이나 정체모를 건강보조제품, 효과가 애매한 의료보조기구를 쓰기도 하고... 마약성 진통제나 아예 마약을 암시장에서 구해서 복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 때 아이들에게 채소를 조금이라도 더 먹여야 한다고 학교 급식을 어떻게든 개선하려고 노력했지만 식품업체들의 로비로 망해버렸다. 오늘의 상식, 미국에서 로비는 합법이다. 미국 사회의 안 좋은 면이 개선 안 되는 이유 중 상당수가 여기서 기인한다고 보면 된다. 가끔 한국에서 로비를 합법화하자는 놈이 있으면 그놈을 죽여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데 순수한 진담이다.
이런 사회적 배경 안에서 다시 이 헵번과 트위기에서 나온 여성 이미지를 보자. 그들이 아름다워보인만큼 당시 여성들을 다이어트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다이어트 제품 시장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다.
미국 사회에서 내내 마른 여성을 선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사람의 몸이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사진을 보면 마르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이면 붙어있어야하는 근육이 있는 게 보인다. 하지만 칼 라거펠트를 위시한 하이패션 업계가 정말 극단적인 길고 마른 몸매의 모델들을 걸어다니는 마네킹처럼 쓰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완전히 모델과 아이들의 거식증 문제가 그제서야 가시화 된다. 그 전까지는 10대들의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도시전설로 치부됐다.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가시화 됐으니 왜 마른 몸을 찬양하는 게 위험하다는지는 이제 모두가 알리라 믿고 넘어가겠다. 그러다가 죽는다... 여성이 아름다워보인다고 모멸당하지 않는 게 아니다. 아름답다고 세상 일이 다 잘 풀리지도 않는다. 아름답지 않다고 모멸받아야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상처받는 거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평가하는 놈이 뭐... 그런 인성 주제에 면상이나 몸매가 대단들하던가? '와 나는 네가 사람이라고 그래도 예의 차리는데 너는 왜 안 차려?'라고 받아치면 대부분 얼레벌레 닥친다. 괜히 움츠러들지 말고 네 인성은 안녕하니? 마인드를 장착하자.
60년대는 젊은 세대들의 소비력이 중시되던 때고 동시에 존 F.케네디 암살, 마틴 루터 킹 암살, 베트남 전쟁 패배를 거쳐갔다. 영 패션이라는 영역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 히피스타일, 모즈룩, 미니멀리즘, 스페이스룩, 유니섹스, 미니스커트 등등 많은 유행이 새로운 운동과 철학, 예술 위에서 피고 졌다. 그리고 이 시기, 컬러 TV가 상용화되며 소설은 대중문화의 범람 속에서 과거만큼 흥행하기는 어려워지는 것처럼 보여진다. 특히나 이 시기엔 영화가 그렇게 흥하지 못했다고 한다. 집에서 앉아서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데 굳이 영화관까지 가야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한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다 70년대, 미국 사회가 오일 쇼크와 함께 다시 보수화되어가는 와중 문화적으로는 다시 폭발했다. 60년대 히피로 촉발된 반문화, 반권위주의 문화가 전세계로 퍼져나갈 정도였으니 미국 사회 내에서도 이로 인한 다원화는 필연적이었다. 그런 기반 위에서 흑인민권운동, 페미니즘,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세계화가 버무려지며 문화적인 지평이 갑자기 넓어진다. 하지만 예술계 전반에 퍼져있던 작가주의가 사그라들며 점점 상업성을 노골적으로 요구받게 되는데... 동시에 이 시기는 비디오 게임의 시대이며 락 스타들의 시대이자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시대였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다른 말은 블록버스터의 출현이었다. 죠스, 스타워즈로 대표되는 블록버스터의 특징은 사멸해가던 마이너 장르(SF나 오컬트, 공포처럼 지금은 컬트 영화로도 진화한 장르들)의 이야기라도 창작하는 사람의 재주가 뛰어나면 엄청 재미 있으니 충분한 자본을 퍼부어서 TV 프로그램이 따라오기 힘든 예산이 시각적으로 활활 불타는 맛이 있다는 건데... 다수의 극장에서 동시개봉하면서 광고하고 관련상품을 좌아악 뽑아서 팔아먹으며 이윤을 보니 블록버스터는 예산만큼 반드시 히트쳐야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원작 소설의 판매량도 영화의 히트와 함께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뭐 죠스의 경우엔 상어가 너무나 악마적으로 그려지는 바람에 원작 소설 작가가 말년엔 상어 보호 운동에 힘을 쓰는 등, 지나친 각색으로 인한 폐해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쨌든 자극적이어야 잘 팔린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영화가 장르적으로 다양해지면서 소설 또한 그 장르의 특성을 유지해나갔다. 사실 할리우드에서 어느 정도 히트친 블록버스터의 원작은 대부분 소설이고 운이 좋아 히트친다면 영화와 함께 더 많이 팔리니까 굳이 소설이 장르를 포기해야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1980년대 들어서 장르는 확연하게 그 아이덴티티를 확보한다. 동시에 당시 미국은 레이건 정부였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강했고 대대적인 감세정책, 공공지출 감소, 민영화, M&A, 각종 규제 철폐 등을 거치며 몇몇 기업들로 대표할 수 있는 독과점화가 심화된다. 디즈니라던가 할리퀸이라던가 특정 회사 이름을 얘기하면 어떤 걸 만드는지 팟 떠오르게 하는 일들이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레이건 집권으로 인한 영향을 얘기하려면 신보수주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먼저 이것부터 확실히 하고 가자. 미국 사회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영국이 식민지 겸 유배지로 써먹다가 독립한 나라고 이 말인 즉 이들의 기본적인 사고는 영국놈들과 비슷한 면이 많다. 앵글로색슨 청교도가 기본으로 상정되어 만들낸 사회기 때문에 미국에서 나온 이미지만 보더라도 1970년대까지 내내 백인 남성, 백인 남성, 백인 남성 아니면 백인 위주다.
그런 백인 남성들의 입장에서 65년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되는 걸 지켜보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이 일이 위협이 될 수 없는데도 대단한 위협으로 느끼고 이들은 대거 공화당 지지층으로 돌아서게 된다. 특히 남부가 그랬다.
이렇게 민주당 지지층이 60년대 후반에 무너졌는데 70년대 들어서는 일본과 독일의 생산성이 미국을 따라 잡으며 70년대 중반부터 미국은 전후 최초로 무역적자를 기록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니 그간 실컷 꿀빨던 세계시장에서 미국이 점점 밀려나가게 됐다. 게다가 여성인권운동, 흑인민권운동,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이민해오는 다른 인종들(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이민 오는 사람들이 60년대까진 적었다. 그간은 1000만 명정도였는데 70년대 들어 4500만 명으로 훅 늘어난다.) 때문에 제 입지가 사라진다고 느끼는 백인들이 대거 공화당으로 돌아서며 '좋았던 옛날'처럼 살길 바랐다. 당시 레이건의 슬로건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였다. 그리고 이 슬로건으로 트럼프가 당선되던 모습을 생각하면 음...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레이건의 집권은 예전처럼 잘 살고 싶은 서민들의 선택이었지만 오히려 레이건은 서민살이를 더 팍팍하게 만들었다. 80년대 미국 산업계에 구조조정의 광풍이 불었는데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고용과 해고를 용이하게 만들고... 뭐 이제는 별로 신선하지도 않은 익숙한 방식으로 고용안정성이 아주 작살나버린다.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더라도 80년대 이후로 미국 가정의 생활 수준은 이후 30년간 큰 변화가 없는데 소득 격차가 심화된다. 70년대와 비교해서 산업구조가 변화한다고 해도 비교적 벌이가 안정적인 고급인력인 대졸 노동자의 임금은 17%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CEO들의 임금은 30~300배로 증가했다. 같은 단위로 만들면 3000~30000%다.
게다가 이 구조조정이 레이건 정부일 때만 한 일시적인 게 아니라 이후에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민간에서는 지금까지도 상시적으로 구조조정하는 시스템으로 남아버리는데 이익을 보고 있더라도 더 큰 이익을 볼 거 같으면 사업을 매각해버리고 직원 해고도 맘대로 하다보니 결국은 노조를 만들게 됐지만 미국과 노동운동의 역사는 정말 험악할 수밖에 없달까... 1981년 미국 항공관제사노동조합(PATCO)이 파업하자 레이건 정부가 PATCO 조합원 전원을 해고하고 노조를 해체시켜버리는 등 미친 짓을 저지르니 위축될 수밖에 없어 노동자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진다. 블루 칼라든 화이트 칼라든 상관 없이 말이다.
팬데믹으로 인해 워낙 사람이 많이 죽었다보니(미국의 코비드19 사망자 수는 약 95만 명이다. 한국은 약 8천 명으로 어마어마한 선방을 했다. 이건 문재인 정부의 대단한 위업이다. 전세계 사망자 수가 약 594만 명인 와중에 1만 명도 안 넘긴 건 정말 사람을 갈아넣어 만든 기적이다) 이제야 노조들이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지만 지금까지도 미국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은 30분이다. 흔히 미국 영화에서 자기 책상에 앉아서 샌드위치와 감자칩을 먹는 장면들이 간식이 아니라 점심 먹는 거다. 이런 거 잘 모르고 마냥 미국으로 건너가 취직했다간... 순식간에 해고된다.
이렇게나 기업 프렌들리한 레이건 행정부는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과 독일을 줘패서 자국의 환율을 조정해 제조업의 명줄은 살려놨지만... 경제구조가 개편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지식/기술 집약형 공업이 주류를 이루면서 자동차와 철강으로 대표되는 러스트 벨트의 부흥이 다시 오는 것이 아니라 선 벨트로 공업지대가 옮겨가게 된다.
게다가 에이즈를 방치하고 흑인 거주지역을 게토화해버렸는데 빈민가에 흘러넘치는 마약 문제도 마약 문제지만 더 최악인 건 교도소를 민영화해버린 점이다. 그래, 미국은 교도소도 민영이다. 이명박도 이거 하고 싶어해서 국내에도 소망교도소라고 최초이자 유일한 민영교도소가 있긴 한데 없어졌으면 좋겠고, 아무튼 간에.
교도소를 민영화한 게 왜 문제가 됐냐, 민영교도소란 말은 교도소를 운영하면서 수익을 보겠다는 건데 그럼 어떻게 하겠는가? 민간이라지만 사립학교에도 당연히 교육비 지원이 들어가는 것처럼(모든 이들에게 교육 받을 권리가 있으니 아무리 부자 학교라 해도 세금 지원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그 꼬라지로 애들 볼모 삼아서 멋대로 운용하는 거다) 정부지원금 받는 건 받는 거고, 그 김에 수용자들을 부려먹으면 되지 않겠는가. 공짜 인력인데. 게다가 범죄자란 딱지가 붙어있으니 대단히 인권을 챙겨줄 리도 없다. 그러니 교도소 운영자가 사법기관에게 돈을 조금 찔러줘서 좀 더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달라고 살짝 로비하는 것만으로 공짜 인력이 굴러들어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흑인이면 더 엄벌을 양형하는 경향이 발생했고 이 기조가 미국의 사법기관엔 아직까지도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 이런 부분을 잘 묘사했다.
이런 상황 안에서도 60-70년대를 거치며 만들어진 문화가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으니 계속 자라오고는 있었다. 80년대의 문화 아이콘이라고 하면 당연히 마이클 잭슨이지만(보이는 음악의 시대로 넘어감과 동시에 흑인이어도 주류로 나설 수 있단 의의가 있다) 영화계에서도 큰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 천국의 문이란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라는 영화사가 망했다. 이 일 이후로 할리우드에서 감독 권한이 약화된다.
그렇게 '좀 더 안전한 투자'를 원하다보니 프랜차이즈 무비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데... 슈퍼맨도 이때부터 프랜차이즈화를 시작했다. 뭐 프랜차이즈가 시작되긴 했다지만 이 시기 영화는 명작들이 흘러넘친다. 에이리언2, 샤이닝, 블레이드 러너(사이버펑크 하면 떠오르는 비주얼은 이 영화에서 기인했다), 시네마 천국, 백 투 더 퓨처, 매드 맥스2, 다이 하드, 풀 메탈 자켓, 터미네이터, E.T. 등등... 다 세기 힘들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들이 이런 한계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참신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메이저 배급사들이 독립영화 레이블을 하나둘 정도는 가지고 있고 선댄스 영화제 등으로 신진들의 등장을 장려하고 자신의 색채를 가진 채 할리우드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소설로 넘어오면 지금의 로맨스 소설과 같은 장르 소설 카테고리가 명확하게 구분되어지는 게 80년대다. 이즈음부터 로맨스 또한 여성의 장르로 완전히 취급되며 할리퀸 엔터프라이즈(도 M&A를 피하진 못해서 다른 회사에게 먹히긴 했다)가 세계화를 시도한다. 한국에도 번역되어 들어왔다. 한국 로맨스 소설이 그래서 할리퀸의 영향이 강한 채로 시작한 거고, 할리퀸 소설의 특성상 그 즉시 저질 문화로 취급되어왔다. '어어어디서 그아아암히 여자가 발랑 까져서 성욕을 드러내느냐' 정도로 말이다. 아직도 한국의 로맨스 소설 분석할 때면 고려해야할 사항이니까 기억해두자.
동시에 미소지니로 가득 찬 이미지가 미디어에 범람하다보니 할리퀸 소설 안에도 자연스럽게 돈과 지위를 다 갖춘 마초마초한 남성상과 그들을 사랑하는 걸로 의존하지 않으면 당장 죽어버릴 것처럼 구는 여성상이 로맨스 장르 안에 선명하게 남았는데... 그럼에도 미국의 미디어가 얼마나 여성용으로 취급되는 로맨스 소설을 미워하냐면 '로맨스 소설은 나이 많은 여성들이 읽는 거'라는 고정관념을 만들기까지 했다. 농담이면 좋겠는데... 미국 문화 안에서 북클럽이나 로맨스 소설을 읽는 여성독자를 묘사하는 방식이 정말 그렇다. 활달한 사람들은 좋아할 수 없는 취미이자(미국 사회에서는 내성적인 성격을 죄인 것처럼 아직까지도 취급한다 이자식들...) 이성에게 섹스어필을 못 하는 매력 없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도피하는 것처럼 그려댔다.
게다가 이 시기에 홈 비디오 시장이 급성장했다. 89년에 비디오 배급이 극장수입의 2배를 찍을 정도였는데 재밌는 건 80년대 중반부터 외려 영화관에 가는 관객 수가 증가한다. 바꿔 말하면 소비자에게 자신의 취향이 정립되니까 더 좋은 방식으로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행동에 나선 셈이다. 동시에 거지 같은 포르노 범죄가 시작되는데... 홈 비디오와 기술의 발전과 함께 포르노는 완벽하게 범죄의 영역으로 향한다. 개인들이 찍은 포르노 영상이 유출되는 걸로 시작해서 인터넷이 발달하고 나서부터는 완전 아동성범죄와 불법촬영범죄와 성범죄 촬영으로 가버린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포르노 범죄의 이면에는 백래시의 영향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포르노에 대해서는 이전에 다뤘으니 일단 넘어가겠다.
이쯤에서 한국으로 넘어와보자. 80년대 한국은 전두환 시절이다. 이승만도 그렇지만 박정희를 이어 전두환도 레드 컴플렉스과 매카시즘에 대단한 감명들을 받으셨는지 반공을 내세워 자신들의 독재에 방해되는 이들을 끔찍하게도 괴롭혔는데... 당연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고문하고 재산을 탈취하고 죽이기까지 하니 민주화운동, 특히 청년세대의 학생운동이 크게 꽃피었다. 프로파간다 앞에 신문과 소설은 아주 당연하게 검열 당했고 심지어 출판만화도 박해 받았다. 그러다 3저 호황을 타고 3S 정책으로 넘어가는데 이즈음부터 대중가요가 흥하며 자체적인 한국 대중문화가 자라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장르 소설이 자국 내에서 생산되긴 했다. 바로 무협과 로맨스다.
처음에는 대만에서 수입해서 번역해서 싣다가 금방 그걸로는 공급이 모자라져서 중국 작가인 척 하는 한국 작가들이 생겨났다. 물론 당시 장르소설 작가들의 환경은 열악 그 자체였는데 이런 시대다 보니 성적인 의미로 19금인 묘사를 반드시 넣어야했고 시대와 환경이 험악하다보니 명확한 방향이 없는 폭력성으로 드글거리거나 했다.
로맨스도 당시 70년대 말부터 있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만화카페지만 그 전은 대여점이고 당시엔 만화방이었는데 만화방 자체는 남녀노소에게 모두 열린 공간이었기에 책을 좋아한다면 여성들도 가는 장소였다. 로맨스가 있긴 있었다는데 자료가 너무도 없어서 분석이 어렵다. 당연하지만 저작권법에 대한 인식도 없던 시절이기 때문에 원작이 있는 건지, 있다면 뭔지도 알기 힘드니 말이다. 그 시절 얘길 들으면서 놀란 건데, 80년대쯤부터 여성 독자층의 선택은 크게 로맨스 소설 아니면 세계 문학 전집이었다고 한다. 만화는 만화대로 읽어도 소설 취향은 나름 확고하게 갈렸다나. 그렇게 된 이유가 할리퀸을 번역해 들어오면서 그 안에 성애가 적나라하게 있다보니 굳이 그런 성애 취향이 아니면 다른 나라의 문학으로도 재밌었다고 한다.
또 이 시대에 대해 한국 문화를 얘기하려면 일본 영향을 빼놓을 수 없는데, 당시 일본은 버블경제로 접어들어 돈을 정말 미친듯이 써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속성장기에 곧 접어들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당시 사람들은 일본 문화에 대한 선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상황을 보면... 이젠 정말 옛말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3S정책이 대중문화, 특히 장르소설에 있어서는 영향력이 있다고 개인적으론 판단하는데 소설이 외설적이지 않으면 단속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소설이 원래 그렇다. 글은 사고 위에 자란다. 글만큼 생각을 전하는데 명확한 방법은 없고, 사고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적어보아야만 그게 대단한 건지 바보 같은지가 드러난다. 제아무리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해서 사상과 철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떤 의미에선 저속해야 살아남는 시대였달까... 예술계라고 독재정권의 부역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돈이면 다 된다고 믿는 배금주의 맹신자들은 어느 시대든 있었으니 말이다.
90년대 들어서 PC통신으로 다시 장르소설이 재정립되는데 여기서부터의 흐름은 <판타지와 여성주인공의 계보>에서 다뤘으니 90년대 미국 얘기로 돌아가겠다.
1990년 걸프전이 발발한다. 전쟁이 왜 일어났냐? 석유 때문이다. 미국이 왜 참전했는가? 계속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미국 대통령이 부시인데... 이전의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했기 때문에 미국은 이 전쟁을 빠르게 종식 시키는 것과 함께 자국민들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 미친 짓을 저지른다. 부시 행정부가 언론을 꽉 잡아 부리며 현대 최신무기가 사용되는 전쟁의 모습을 중계했다. 특히 CNN이 이 중계를 통해 이득을 크게 봤다. 걸프전이 일어나자 미디어는 전쟁을 무슨 전쟁영화처럼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로 다뤘는데 폭탄이 바그다드에 떨어져 터지는 모습은 보여줘도 부상당하거나 죽은 병사의 모습이나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들의 모습 같은 참혹한 일면은 보도하지 않았다. 정보 통제도 정보 통제지만 이러한 '승리하는 전쟁'을 통해 군수업체들의 하이테크 무기를 광고하게 된 효과도 있지만 시청률과 그에 따른 광고수익을 톡톡히 얻었으니 말이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이 종식되고 1993년에야 빌 클린턴이 당선되며 정권 교체에 성공하게 된다. 빌 클린턴의 슬로건은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였는데 그렇다고 클린턴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그만둔 건 아니다. 정부를 전산화한다며 30만 명의 공무원을 해고하기도 했고... 닷컴버블이 생기기도 했지만 경제 호황기긴 했다.
클린턴의 집권기에 지금 우리가 미국하면 떠올리는 문화 산업이 발달하게 되는데 클린턴의 다문화 정책으로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란 인식을 재확인하고 흑인이란 말 대신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란 말을 쓰는 등, 지금의 미국이 중시하는 이미지를 새로 제시한다. 또 90년대 영화 중에 유난히 명작이 많다. 델마와 루이스, 양들의 침묵, 터미네이터2, 쥬라기 공원, 펄프 픽션, 포레스트 검프, 쇼생크 탈출, 유주얼 서스펙트, 세븐, 타이타닉, 가타카, 인생은 아름다워, 트루먼 쇼, 식스센스, 매트릭스, 좋은 친구들, 크리스마스의 악몽, 토이 스토리, 나홀로 집에, 콘택트, 스크림, 쉰들러 리스트... 너무 많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국의 문화 컨텐츠들은 전세계에 유래없이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다.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발상, CGI 기술로 재밌는 영화를 주구장창 뽑아대니 90년대 중반부터 해외수익이 국내수익을 넘는데 당연하지만 미국이 가진 문화적 배경이 모두의 취향에 맞을 리도 없으니 어느 나라든 자국 영화에도 눈길을 주는 경향이 생긴다. 한국 영화계도 이때부터 자신들의 색을 가지는, 전환기를 가진다.
이제 한국에서의 로맨스에 다시 집중해보자. 이러한 문화적 배경 때문에 한국 대중문화에 있어 미국의 영향이 강력한 건 당연한 얘기다. 과거에 비해 대중문화에 있어 일본의 영향력은 약해지다 못해 찾아보기 힘들고, 그렇게 자신의 색을 가진 한국의 컨텐츠가 해외에서 먹히는 일도 이젠 드물지 않다.
그렇지만 장르소설로 넘어오면 소설이 여성들의 것이냐는 질문을 했을 때 만족스러운 답변이 나오기가 어렵다. 만화방 시절은 그렇다 쳐도 대여점 시절은 로맨스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원하는 여성의 욕망이 조명되나 싶으니 '여성들이 좋아하고 여성들이 쓰는 소설은 로맨스 같이 하찮은 것' 같은 쌉소리나 해대면서 기어코 분류해내 한구석으로 치워냄으로써 남성 위주의 판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꼬라지가 그래서 더 빡치는 거다.
문제는... 한국의 장르소설은 그 역사가 짧다보니 연구하는 사람도 적고, 로맨스 판타지는 암만 짧게 쳐도 10년은 더 늦게 정착된 장르다 보니 연구하는 사람이 더 적단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분류폭력에 내재된 백래시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볼 토양이 이제는 간신히 생성된 건지도 사실 애매하다. 소설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바뀔 때마다 세대 단절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만화방 시절은 할리퀸이었다지만 대여점 시절은 한국 작가들의 한국 배경의 로맨스가 강세였고 이런 로맨스 취향이 아닌 여성독자들은 판타지와 무협으로 발을 넓혔으나 소설의 공간이 웹으로 옮겨가고 나서부터는 또 방향성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전환기마다 백래시가 꼭 달라붙어 함께 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지 작가의 '상수리나무 아래(이하 상수리)'를 슬슬 다뤄볼까 한다. 지금의 리디북스를 있게 한 '상수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정말 읽기 힘든 타입이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그동안 상수리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피했던 이유 중 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했다간 스트레스 반응으로 내가 먼저 죽을 거 같아서 드문드문 읽어서 그랬다. 보통 감상 겸 비평한다고 올린 소설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최소 3번은 정독했는데 상수리는... 그렇게 읽기엔 너무 버거웠다. 세금 문제 없는 5천만원이라도 받지 않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공들여 정독할 각오가 서지 않을 정도랄까...... 아무튼 개인적으로 힘들어서 띄엄띄엄 읽긴 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이 작품이 왜 히트했는지는 짐작은 간다. 사적 가치도 물론 있고 말이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리디북스의 카테고리부터 말해야 하는데, 리디북스는 로맨스 카테고리 안에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를 다 모아놨다. 그리고 상수리의 히트는 이 분류의 덕을 보긴 했다. 출판 계약이 2017년이라고 쓰여있는 걸로 보아 집필 자체는 최소 2016년 전부터라고 짐작하는데 왜 이렇게 년도를 자꾸 따지느냐, 페미니즘의 대중화 때문에 그렇다. 상수리는 페미니즘이 요구되는 시기에 맞물려 나왔지만 독자 타겟은 아직 페미니즘이 낯설었을 로맨스 독자층이었다고 본다.
그도 그럴 게, 상수리는 전통모험물에 포르노 픽션을 듬뿍 섞은 스타일이다. 남성향에서는 드물지도 않은 바로 그 스타일 말이다. 100화 넘게 소설의 내용을 포르노 픽션으로 채웠기 때문에 오히려 포르노 목적으로 로맨스를 사용하는 독자층도 대단한 거부감 없이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이렇게 100화 넘게 포르노 픽션으로 채워놓으니 포르노를 즐기던 독자층이 충실한 독자층으로 남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한국 배경을 더 선호하는 로맨스 독자층에게 서양 배경의 포르노 픽션에 익숙해지게 만들었으니 이들에게 슬금슬금 모험물을 섞어 먹이기 시작하니 맛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잖은가. 로맨스 독자층은 기본적으로 모험물을 안 먹어 버릇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첫 모험물이 상수리일 가능성이 높고 당연하지만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모험물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톨킨과 톨킨 재단이 인종차별주의자일 가능성이 높은 거야 새로운 얘기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톨킨을 아직까지도 사랑하는 이들이 많잖은가.
그리고 이것 때문에 정말 죽어라 호불호가 탔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인 게, 로맨스 판타지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 없느냐로 이 소설에 대한 기대치가 독자층에 있어 갈리기 마련이다. 주인공 맥시는 소설이 진행됨과 함께 서서히 성장했다. 그러니 모험물은 맞다. 맞는데 아무리 그래도 로맨스판타지를 로맨스보다 모험물 측면을 크게 인식하고 있는 독자에게 책 4권 분량의 포르노 픽션을 먹이면 인내심이 끊길 법도 하지 않은가.
외에도 '상수리'가 비판 받을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너무도 전형적인 로맨스의 공식을 따름으로 인해 생긴 문제들이기에 로맨스의 문제점이라고 비판 받는 지점과 동일한 문제들이라 딱히 새로울 건 없긴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또 이제 와서 또 상수리와 같은 스타일이 나온다고 해도 먹히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쨌든 이젠 웹소설 독자층 내에서도 어느 정도 취향이 형성됐을 시기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니 여성주인공이 판타지나 현판에서 나올 수 있던 거고, 2020년쯤부터 백래시가 거세졌기 때문인지 로판 내에서도 그런 백래시 경향을 읽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여성 주인공이 사랑을 먼저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성 주인공이 구애를 해오고 이를 인지하고 자기 할 일 하다가 천천히 마음을 여는 방식으로 연애를 묘사하는 작품들이 급속하게 늘었다. 어느 정도 안전한 연애에 대한 욕망이 이런 식으로 발현된 셈이다. 동시에 사랑 때문에 무조건적인 희생과 양보를 하는 여성의 모습에 이젠 신물을 내는 건데 과거에 비해 벌써 이만큼이나 변한 거다.
쓰다보니 또 한없이 길어져서 지금의 로맨스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얘기하겠다. 그러니까... 로맨스란 장르로 예쁘게 포장되어있는 전제, '여성은 남성을 기본적으로 사랑하는가?'에 대한 얘기다.
사족 1. 대선이 다가왔다. 반드시 투표하자. 나 또한 여태껏 살아오며 단 한번도 투표를 빼먹지 않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국은 미국과 똑같은 승자독식정치고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않는 세상이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건 지금까지 싸웠던, 지금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덕이다. 그들과 함께 해주길 바란다.
사족 2. 트위터에서 글 쓰다 빼먹은 부분 짬짬히 붙이고는 있는데 이쪽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질문 있거나 반론 있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해달라.
사족 3. 헌터물이나 성좌물을 쓰고 싶다면 90년대 영화 중 트루먼 쇼는 한번 보길 권한다. 그 영화의 엔딩이 기본적인 대중의 태도다. 조건 없는 애정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그런 조건 없는 애정이 어떤 건지 감을 못 잡는 것 같아 하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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