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잡설에 대한 잡설

잡설 이전에, 일단 들어왔던 질문부터.

Q. 제일 좋아하시는 작품... 궁금해요!

A. 이 질문에는 정말... 가슴 아픈 얘기를 해야 합니다. 소싯적 제일 사랑했던 작품이 전민희 작가의 태양의 탑이었다는 거죠. 세월의 돌로 데뷔하고 바로 다음작이었던 게 태양의 탑인데 일러 표지가 표절이라 그렇게 기한 없는 연중에 들어갔고, 그래도 계속 기다렸는데 룬의 아이들 윈터러가 나왔고... 룬의 아이들 윈터러, 데모닉 완결 나고 이제 진짜 태양의 탑이 완결날까 했는데 블러디드가............. 네에 그런 겁니다. 이 경험 덕인지 '제일 좋아하는'을 잘 만들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룬의 아이들 3부를 원하던 팬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20년을 기다리면 사람이 맛이 가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요즘 기준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끝까지 즐기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면 됩니다. 펜들턴 혁명, 순백의 엘리사벳, 다시 피는 꽃, 패스파인더, 독신 마법사 기숙 아파트, 용의 조각, 교활하지 못한 마녀에게 등등... 은근 취향 보이죠? 골수 모험물 선호층이에요. 비평이라는 작업 자체가 개인적 호오와 떨어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분석을 못 하는 건 아니니까 가급적 장점 위주로 보려고 노력합니다.

Q. 비평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예전에 2021부터 6세대로 끊어야 할지 고민이다..요즘 로판은 좀 백래시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는 트윗을 하셨는데 혹시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이런 건 조금 세월이 지나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긴 한데 지금까지 판단하고 있는 정도로만 정리하겠습니다. 아닐 가능성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읽어주세요. 

한국 사회 안에서 여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유 없는 적대감이 사라지기 무섭게 혐디컬 종자들이 등장하기도 했고,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에 적대적이라 이대남이니 뭐니 하는 쉰소리를 떠들며 남성들에게 계속 너희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별 의미 없는 권력을 부여하고 있었는데다가... 글로벌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국의 젊은 여성 자살률이 피크를 찍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상황이 안 좋았거든요. 현실이 시궁창 같아지면 로맨스로 도망치는 경향 자체도 당연히 뚜렷해지기 마련이고, 판드 섹션이 생기면서 현대 배경의 헌터물은 그쪽으로 빼니 로판은 더 기존의 장르 이미지로 고정되겠죠? 기존 로판의 장르 이미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웹소설의 웹툰화가 활발해지다보니 신작에 도전할 이유도 줄어들어서 그런지 기성작가들의 신작 중에 전작보다 발전한 소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이 기준이 대단하지도 않은데도 말이죠. 그래서 평범하게 백래시가 왔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제대로 판단하려면 당분간은 좀 더 두고 봐야할 문제긴 합니다.

쉬어가는 김에, 장르잡설에 대해 얘기해보자. 장르잡설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쓰고 있는 글들을 살펴보면 로맨스 판타지의 탄생과 여성주인공 장르소설의 계보, 그리고 여성 이미지 아래 있는 욕망들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루는데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느냐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어려운 얘기지만 일단 쉽게 쉽게 가보자.

여성문학의 정의는 여성이 창작주체로서 쓴 문학 또는 여성주의 시각을 담은 문학이다. 작가가 난 딱히 페미니스트가 아닌데? 해도 여성이 창작한 이상 이미 여성문학이다. 고로 로맨스판타지는 여성문학이다. 로맨스판타지 장르 안에서 여성주인공은 보통은 주체적인 인물이고 악녀를 재해석하는 등 여성서사적 특성도 갖추고 있는데다가 낭만적 연애에 있어 고정된 성역할을 변형시켜버리기도 한다. 그 어떤 장르보다 여성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게 이런 의미다.

하지만 로맨스판타지는 어느 날 갑자기 뿅 튀어나온 게 아니다. 그리고 남성문학과 달리 여성문학에서는 계보가 매우 중요하다. 작가들이 선배들의 문학적 업적을 흡수하고 나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를 긍정하거나 거부하는 건 문학사의 핵심 사실이지만 남성 작가와 달리 여성 작가들은 선배들의 세상을 읽는 방식을 배우는 걸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읽는 시각을 갖추는데서 시작해야한다. 

세상이 그렇듯 문학 또한 남성문학이 오랜 세월동안 주류였고 장르로 오면 더 그렇다. 그러니 여성 작가에게 있어 선배 여성 작가는 존재를 부정하거나 죽여야 할 위협적인 힘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가부장적 권위에 저항한 예시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정표다.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결코 평등하지 않고 여성들은 특히 이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여성문학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속성은 대체로 고요한 분노다. 세상이 개 같지만 직설적으로 드러내면 당장 작가가 위험해지니까 감정을 정제해 언어 뒤에 이중적으로 전시하는 방식은 유구하게 내려왔고, 또 사회는 여성에게 침묵을 배우라 강요하기 때문에 그렇게나마 표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은가? 여성들에게는 분노를 남성처럼 거칠게 드러내지 말고 위협적이지 않도록 세련되게 표현하라고 강요하고 있으며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불안이나 불만을 표현할 때도 조용히 어디 처박혀서 처연하게 울거나 그 자리를 피하는 게 현명한 양 다루지 악을 쓰며 맞서 싸우는 모습은 권장되지 않는다.

분노는 세상을 바꾸지만 여성들의 고요한 분노는 무시당하기 십상이었고 남성문학 안에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여성혐오가 반영되어 있다. 현진건의 소설에서 김첨지가 마누라 패는 꼬라지가 그랬고, 김훈의 소설에서 생리를 묘사하는 장면이 그랬으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지금도 어지간한 웹소설에서 여성혐오 찾아보기 놀이를 한다면 영영 놀 수 있다. 문화 콘텐츠에 전반적으로 남성지배적인 시선이 깔려있다보니 아무래도 여성 작가들은 필연적인 모순을 품게 된다. 원하는 건 따로 있는데 으레 여성들에게 권장되는 형식의 대체품을 쥐고 그게 대단히 소중한 양 굴어야한다는 모순 말이다.

모든 작가에게 있어 자신의 예술적 자아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자기주장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자신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작가는 으레 사회에서 미화되어있는 이미지를 반영해 비춰낼 뿐이지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내질 못한다. 특히나 장르소설 같은 여성문학의 하부 문화에서는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가 '사회를 통해 학습한 불안'이다. 이 불안은 본질적으로 작가에게 내면화되어버린 가부장적 가치관에 의한 공포다. 여성이 느끼는 위험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노골적으로 무시해야만 하고, 겸양과 굴종을 거부한다면 노골적인 무시와 험악한 공격을 받는 현실에 대한 공포가 여성들이 향유하는 장르소설 안에는 녹아있고 이게 모순을 부른다.

그 공포는 타당하다. 타당하지만 지금은 딱히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는 않다.

계보가 중요한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여성 작가가 이 타당한 공포를 다루는데 있어 여성이 도망치지 않고 정면에서 싸우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말하는 역사이자 그런 반항을 하는 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이자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확실한 입증이기도 하다. 여성주인공으로 대변되는 이야기들은 여성들에게 있어 더 중요하다. 알버트 겔피가 말했듯 예술가는 자신의 경험을 죽여서 예술로 만든다. 여성이 스스로를 하나의 인격으로 완성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고, 더 나아가 다른 여성들을 도와줄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걸 말하는데 있어 가장 적합한 도구는 여성주인공의 이야기다. 

냉정히 얘기해 가부장적 사회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젠더를 고통스러운 장애물 내지는 취약하게 만드는 무력감으로 경험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여성 작가의 고독에는 남성 선배들로부터의 소외감, 독자가 드러내는 미소지니적 반감에 대한 두려움, 여성으로서 창작하는데 있어서의 불안감 등이 한데 버무려져있기 마련이고 이 모든 열등화 현상들이 여성 작가들이 작가로써의 자아를 정립하는데 방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작가들에게 여성 선배에게서부터 내려온 계보는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여성문학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다. 여성문학 안에서 형성되어있는 여성의 이미지나 그 흐름을 분석해봐야 여성 작가는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미 문학 안에 구축되어있는 여성 이미지 자체가 지난 <로맨스판타지 속 로맨스 서사와 페미니즘> 시리즈에서 얘기했듯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압력이 반영되어있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를 분석하지 않고 관성적으로 쓰다보면 샬롯 브론테가 제인 에어에서 그러했듯 여성의 지위에 대한 비관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며, 다른 말로는 남들과 비슷비슷해진다.

로판에 페미니즘 기조가 거세게 불어들기 직전에 마녀 소재의 소설이 갑자기 훅 늘었던 걸 기억하는가? 순결한 성, 교활하지 못한 마녀에게, 가출한 마녀가 돌아왔다 같은 소설들을 떠올려보자. 이 마녀로 대표되는 여성 이미지가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표현을 빌려 남성의 시각에서 '집 안의 천사'로 대표되는 여성 이미지에 대한 반발이고 대립상이라서 그렇게 여성향 장르 안에서는 꾸준하게 인기 있고 꾸준하게 사용되는 거다.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해도 이미 느끼고 있는 거다. 예술의 본질이 그렇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표현하는 게 본질이기 때문에 명확한 언어로 정리하지는 못하더라도 대중이 못 알아볼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자신감 가지고 탐구하고 분석하고 새로운 걸 시도해보란 얘기다. 

분류폭력으로 장르가 쭈그러들기 무섭게 포맷이 웹소설로 넘어가면서 기존의 명맥까지 거의 잘렸으니 최소한 로맨스판타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남겨둬야할 거 같다는 의무감에서 시작했지만 로판 안에 이미 자리잡아버린 장르내적인 모순이 로판을 망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도 갈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게 안타까워 여성 이미지 해부 쑈를 선보이는 셈 치고 남긴 글들이 장르잡설의 존재 이유다.

이건 개인적인 신념이긴 한데, 비평은 무엇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인증 도장을 찍기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고 믿는다. 요리로 예를 들면 갈비와 삼겹살이 있는데 눈치 보더니 삼겹살만 먹고 있는 여자애에게 '삼겹살 좋아해? 삼겹살도 맛있지. 갈비도 좀 먹어볼래? 이것도 맛있어. 다양하게 먹어봐야 네가 뭘 제일 좋아하는지 알지.'하고 그릇에 갈비 조각 몇 개 올려주는 맘이랄까...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여자애한테 이렇게 하는 게 고기가 더 크게 나온다, 연육은 이렇게 하면 더 잘 된다, 배합을 이렇게 하면 엔간하면 망한다고 팁 일러주고 맛이 어떻다 기술이 어떻다 요 부분은 취향 타겠다 말해주는 행위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요리도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천차만별로 맛이 갈리는데 소설도 소재와 플롯, 연출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로 나오지 않던가. 내 주장의 기반에는 언제나 애정이 전제되어있으니 가끔 쓴소리 한다고 일단 꽁하지 말고 한 번 생각이나 해보자는 얘기다. 만들던 소설이 도중에 변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만들던 거 안 망치거나 다음에 만들 때 더 잘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건데 내가 보인 여성 이미지의 분석을 참고하는 건 좋은데 오리지널리티 논쟁이 붙을 수도 있으니 참고했으면 했다고 밝혀두는 게 어쩌면 나을 거다. 이런 고오급 분석을 돈도 안 받고, 그것도 이해할 수 있을 레벨로 쉽게 정리하는 걸 장르에 대한 애정만으로 해줬는데 이 정도 크레딧은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고오급 분석이란 건 반 농담이고, 밝혀두는 게 낫다는 건 완전 진담이다. 오리지널리티는 기본적으로 작가의 재해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특정 이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면 필연적으로 표절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차라리 영향을 받았음을 미리 밝혀두는 게 괜한 표절 시비는 안 걸릴 거라고 본다. 겸사겸사 나도 보람을 느낄 수도 있고 말이다.

현대에선 아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전의 재해석에 집중하거나 페미니즘을 듬뿍 섞거나(아니면 여성문학이 그냥 주류가 되던가) 디아스포라 문학 같은 갈래로 발전하는 편이다. 장르소설이 디아스포라 문학을 다루기엔 현실도피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제일 적용하기 어려울 거고, 고전의 재해석은 사실 작가의 실력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서 난이도가 높으니 사실 제일 작가가 드러낼 수 있는 자유도가 높고 작게나마 시도할 수 있는 게 페미니즘이다. 개중에서도 페미니즘 비평이라는, 아직은 생소할 수밖에 없는 시야에 노출되어보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보다 많은 이들이 알면 좋겠다는 기원과 언제나 보내주시는 후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만 줄인다.

사족 1. 여성문학을 읽는 페미니즘 비평의 시각이 궁금하다면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로맨스 소설과 프랑켄슈타인처럼 여성이 쓴 장르소설에서의 시선을 알기 쉬워 일단 추천하는데... 1000페이지가 넘는데다 재밌...는 책은 아니다. 그래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혹시라도 더 관심 있다면 영미권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비평이 프랑스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일레인 쇼월터의 '페미니스트 비평과 여성 문학'까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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