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 해부 - 매카시즘, 이후의 반문화 (3)
주류 사회문화에의 반항
60년대로 넘어가기 전에 설명한 줄 알고 넘어갔는데 40년에 말에 시작해 50년대를 휩쓴 매카시즘을 잠깐 얘기하겠다. 매카시즘이 뭐냐, '너 빨갱이지?!'다. 대충 설명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거말곤 별 내용이 없다.
이게 40년대 말부터 시작해서 50년대에 절정을 찍었는데... 냉전 때문에 소련의 스파이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가 팽배해있다 보니 위스콘신주 상원의원이었던 매카시가 '미 의회에 빨갱이 있고 난 그 리스트를 갖고 있다!'며 별 대단한 증거도 없이 이 빨갱이 새끼 염병을 떨었는데 이걸 미디어에서 집중조명해주자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며 공화당으로 권력이 쏠렸다. 매카시가 '폭로'라며 증거도 없이 떠드는 걸 미디어에서 돈 된다고 마구 보도하니(이른바 매카시의 '폭로'가 실리면 신문이 훨씬 잘 팔렸다. 기업인 미디어의 입장에선 언론으로서의 소명감이 있지 않는 한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도 으레 그러하듯 말이다.) 심지어 무고했음에도 지목당한 사람들은 실직하고, 업계에서 쫓겨나고, 심하게는 투옥까지 되었다. 물론 매카시즘 덕을 톡톡히 보아서 50년대에 공화당이 정권을 잡긴 했다.
개중에서도 특히 영화 산업 쪽에서 유난히 심하게 당했다. '할리우드 텐'이라고, 너 빨갱이지?! 를 당해서 위원회에 소환된 영화인들 중 10명이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묵비권을 행사하자(정당한 권리다.) 의회 모독죄로 기소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먼로 얘기를 하면서 먼로의 남편이었던 아서 밀러도 그렇고 찰리 채플린, 레너드 번스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이 대표적인 피해자로 유명하고... 가해자로 유명한 게 대통령까지 해먹은 로널드 레이건에 월트 디즈니(디즈니의 그 양반 맞다.)이다. 유명인사들말고도 배우, 작가, 감독들이 300명 넘게 쓸려나갔다. 지금 미국 예술계에서 정치 성향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이유가 이쯤 되면 납득갈 것이다. 예술이 가지는 프로파간다 기능이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체화된 덕이라면 덕이다.
덤으로 한국에서 블랙리스트로 염병 떤 게 어디서, 누구로부터 유래했는지 이제 알리라 믿겠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부분은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본 예술인들이 입은 피해를 구제할 방법이 없는 점과 시즌2가 이미 도래했다는 점, 그리고 이런 일이 있었음에도 예술과 정치가 무관한 척 하는 게 아직도 먹힌다는 점이다. 매카시즘을 이승만부터가 써먹었는데 말이다.
당연하지만 당시 미국의 영화계말고도 문화계 전반이 당했고, 교육계에서는 대학교까지도 빗겨나가지 못했다. 공무원과 육체 노동자도 보안을 핑계로 숭덩숭덩 해고 당했는데 광풍이나 다름 없었고, 그러다 보니 피해를 입은 규모가 커서(전체 노동자 중 20%가량이 사상검증을 당했다고도 한다) 매카시즘 덕에 당시 미국 사회의 동질화가 더 가속되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맛탱이가 간 우파 놈들 눈에 걸리면 너 빨갱이지?! 하고 지목질 당하는데 '누구보다 평범한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보여지기 위해 노력 안 할 것 같은가? 성별과 모든 연령대마다 정상성을 부여받고 싶어 애쓰는 한국인이라면 뉜들 부정 못 할 거다.
이래놓으니 내부에서 피로와 불만이 부글부글 차오를 수밖에 없다. 이런 공포 정치는 그 반작용이 굉장히 명확하다. 두려움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미친 짓을 할 수 있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를 느끼게 되기 마련이다. 이번 팬데믹으로 다들 체험했을 테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별 거 아닌 양 취급하거나 자신의 일상이 시끄러운 게 싫다고 뉴스를 피하거나 대충 뉴스 피로도를 핑계로 뭉개는 모습 등을 떠올려보자. 그렇게 미국 전역에 정치혐오 정서가 퍼졌다.
그래, 정치혐오가 너무 만연해서 '정치 얘기 하지 마!' 타령이 심해진 게 매카시즘 이후부터다.이런 영향이 아직도 있는 걸 영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블랙 위도우>에서 정치와 일부 관련된(하지만 자기합리화 목적이기도 한) 말을 쏟아내는 알렉세이에게 '정치 얘기 그만해'라고 멜리나가 투덜거리는 장면이 그렇고 <돈 룩 업>은 영화 내용의 모든 게... 그랬다. 세상 모든 일이 너 듣기 좋으라고 대충 예쁘게 다뤄줄 수 없다고 비명 지르는 시놉시스에 걸맞게 현실 정치의 면모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혐오가 너무 만연하니 조금만 진지한 이야기를, 정치가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에도 정치 얘기 하지 말라며 입을 틀어막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연히 상대적인 기득권, 강자 쪽의 논리만 존재하게 된다.
이 부분을 곱씹으며 전지적 미국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세계대전이 두 번이나 있었고, 게서 꿀 좀 빨아서 물질적으로는 풍요하지만 냉전 체제에 들어간 것도 모자라 이것도 기회라고 매카시즘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동안 한국 전쟁이 발발했으며 한국 전쟁이 끝나나 싶으니 이젠 또 베트남 전쟁이다. 그렇다고 60년대가 암울하지만은 않았다. 50년대부터 영화계에서는 사회적 불안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핵무기 보유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대국이 되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기 시작했고, 미디어는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매카시즘이 종결되면서 사람들이 매카시즘에 신물났던만큼 신좌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신좌파가 갑자기 뿅! 나타난 게 아니란 점이다. 대중은 매카시즘 덕에 기존 사회상 자체에 신물나 있었다. 대법원에서는 흑인 인권과 관련된 판례도 내려지고 있었고 흑인 운동, 페미니즘 운동과 동성애자 운동도 활성화되며 이런 저런 단체들이 생겨나는 동시에, 이 운동들은 투쟁을 거듭하며 '급진화'하고 있었다. 뭐 급진화라고 해도 엄청 대단한 건 아니긴 한데... 여성참정권 운동의 온건하던 초기 형태부터 나름 급진화한 형태를 생각해보자. 대충 시위에 폭력성이 있으면 급진화라고 부른다. 특히나 백인 학생들이 주가 되던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합(Student for Democratic Society)가 흑인운동에 뒤이어 급진화되어갔는데... 민주당에 대한 백인 학생들의 환멸 때문이다. 이것도 참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 아니던가.
그리고 여기가 중요한 부분인데, 급진화로 인한 폭력 시위가 있었다 한들 절대 보편화된 건 아니다. 1970년 <타임> 지에 발표된 루이스 해리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1963~70년 사이 답변자의 9%만이 '폭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진정한 평등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폭력에 대한 신념과 무관하게 흑인이 '권리를 얻기 위해 아마도 폭력에 의지해야 할 것' 이라고 믿는 게 31%였다. 즉, 약 60%가 폭력에 의지하지 않고도 흑인의 권리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 소리다. 이 부분은 젊은이들에게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한국에서도 폭력 시위라는 단어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보통은 어지간하면 그렇게 급진화하지도 않고 다수가 동의하지도 않아서 지나친 과민반응을 한다고 본다. 애초에 폭동이 일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한국 사회에서 폭력 시위가 대뜸 나온다면 그것도 츠아암 신기한 일일 테다... 당장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부터가 폭력 진압을 당하지 않던가. 장애인들에게 다리나 다름 없는 게 전동휠체어인데, 이걸 파손 시키는 건 다리 부러트리는 거나 다름없는 폭력이다. 이동권을 달랬더니 경찰이 이동권을 몸소 박살내는 것이며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조기기는 더럽게 비싸다. 진짜로, 비싸다. 전동휠체어 가격이 싸봤자 100만원, 보통은 200만원 이상 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부숴놓고 고쳐주지는 않을 거면서 개놈의 자식들이...
여하튼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고 있으니 '반문화(counter-culture)'가 젊은이들 위주로 등장하게 된다. 기존의 주류인 산업사회 문화에 반대하고 도전하는 문화로, 더 쉽게는 대항문화라고도 한다. 신좌파, 성혁명과 함께 꼽을 수 있는 반문화의 대표가 바로 히피다.
신좌파는 위에서 간단하게 다뤘으니 넘어가고 히피를 너무 깊게 다루기엔 내가 피곤하고 또 여성에게 끼친 영향은 대체로 몹시 구렸으니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히피들은 전쟁에 질린만큼 평화와 산업사회에서 떨어져 자연으로의 귀의를 외치며 자체적인 공동체를 만들었고 사이키델릭을 권장했다. 여기서 사이키델릭이라 함은(애시드acid라고도 했다) LSD나 마리화나 같은 환각제를 사용해 의식을 확장하는... 좋게 표현하면 이렇고, 나쁘게 표현하면 고대 샤먼처럼 환각성 물질로 의식을 우주로 날려보내는 뭐... 그런 거다.
히피의 외관이 워낙 기존 문화와 대조되다 보니 히피 운동은 그 등장부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고 딱 그만큼 과대포장되었다. 겉모습은 기존 세대와 비교해서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성별 도식에서 요만큼도 벗어나질 못했다. 기존의 권력관계가 있으니 이 또한 당연한 얘기긴 하다만, 히피는 정말로 구렸다. 로스 스펙이 <새로운 가족>에서 지적했듯, 오히려 히피의 여성성은 퇴행하는 경향이 있다. 히피 여성들은 어머니 세대보다 더 수동적이며 남자들에게 순종적이고 자율성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도 볼 정도로?
생각해보라. 한적한 교외의 큰 집 한 채에 복작복작 모여살곤 했던 게 히피인데, 환각성 물질이 권장되는 집단 안에서 청소고 요리고 뭐 제대로 할 거 같은가? 그나마 요리나 집안일을 하는 건 아니나 다를까 여성이었고, 마약이 권장되었다보니 강간 또한 자연히 발생할 문제 아닌가. 오늘날에도 마약 먹여서 여성을 강간하는구만 그 시대라도 안 그랬을 거 같은가? 래디컬 페미니즘의 중심 인물이었던 슐라미스 파이어스턴처럼 성 혁명 안에서 진행되고 있던 문제들을 인지하고 있던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히피 공동체의 여성 비율은 낮은 편이었다. 추산치긴 한데 대충 남성 4 : 여성 1 정도 되었다 한다.
히피들의 불청결과 마약으로 인한 식욕감퇴 때문에 뼈만 남은 마른 몸은 빠지지 않고 꼽히는 문제 중 하나다. 물론 마약 중독도 그렇고 말이다. 이건 덤으로 하는 소린데...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식욕감퇴제는 기본적으로 마약 성분이 들어있고, 이건 당장 살을 안 빼면 100% 죽는 사람을 대상으로 중독문제가 생기거나 그 외의 다른 건강 문제가 생기더라도 안 빼면 확실히 죽으니까 얼마나 다른 건강이 조져지든 죽지만 말라고 처방해주는 거니까 진짜 좀... 함부로 처방 못하게 해야 한다. 만약 편하게 다이어트 하고 싶다고 먹어볼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진심을 다해 말리고 싶다. 돈으로 쉽게 해결하세요! 하는 건 대체로 돈 버는 놈 입장에선 언급하고 싶지 않는 심각한 부작용이 함께 하는 법이다...
누군가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왜 우리가 이런 걸 알아야 하는가? 마블 최초의 흑인 히어로 블랙 팬서가 왜 블랙 팬서겠는가. 흑인운동에서 급진파로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이 있었는데 거기서 따온 거지. 또 요즘 히트 친 아바타2에서도 신비주의가 또다시 사용되는 걸 봐라. 알면 알수록 보이는 게 많아진다. 그리고 옛날에 조져놓은 걸 알아야지 뻔한 함정에 덜 빠진다.
다음 글에선 아마도 분량상 자른 히피의 한계에 대한 얘길 마저 하고 성 혁명을 중점적으로 다뤄볼까 한다. 그럼 기력 회복하러 일단 줄이겠다.
사족 1. 지금 미국에서 딱 은퇴하는 베이비 붐 세대들이 요 히피 운동의 주체였다. 에엥? 싶겠지만 기본적으로 청소년-대학생 정도의 나이에서 흥했던 운동이기 때문에 그 양반들이 주체가 맞다. 어른들도 젊어서는 익스트림한 인생을 보내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에서도 80년대 학생운동이 그 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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