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판타지 속 로맨스 서사와 페미니즘(2)

이 얘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로맨스 = 여성용이라고 취급받는 현실에 대해 먼저 다뤄야한다.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되게... 맥락이 깊어서... 역사 얘길 해야하니 분량을 각오하길 부탁한다. 그리고 본론부터 내던지며 시작하자면 로맨스는 그 탄생도 존재도 온전히 여성을 위하지 않는다.

영미권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보자. 그 동네는 기사도 문학의 영향이 강해서 로맨스 소설에서 남성 위주의 세계관을 쉽게 읽을 수 있다. 기사로써 더 대단하다는 묘사를 위해서 아름답고 우아한 귀부인으로부터 고결한 사랑을 받는, 여성을 일종의 트로피로 보는 성질이 아주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이 설명을 보고 어 이거 한국에서도 좀...? 싶은 당신. 정답이다. 그러니까 으레 판타지/현판/무협에서 남성 주인공이 좀 잘 나간다 싶어지면 별 서사도 없이 대충 자연스럽게 붙여주는 히로인의 존재가 딱 여기서 발전한 게 없는 양상이다. 

그러다가 18세기 들어서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등의 서양 철학의 기반을 닦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인물들이 나타나는데(경제학자들이기도 했다. 한번쯤은 다들 이름 들어본 그 인물들 맞다) 이들의 철학에 사람들이 영향을 받다보니 18세기 말 여성들이 대거 소설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글은 남성들의 영역이었기에 로맨스 또한 남성들의 시선으로 재단되었다는 얘기도 하다.

이렇게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계기와 당시 시대상이 중요한데, 이 시기가 바로 빅토리안 시대였기 때문이다. 성에 대한 엄숙주의가 어마어마해서 여성에게 정숙함이 강요당한 건 아주 기본이고 당시 상류층 여성들은 남편이 죽으면 3년동안 상복을 입어야 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그리 행동해서 그게 '미덕'인 양 찬사받으니 그리 됐는데... 그렇다보니 이 시기의 여성이 자신의 성에 집중하는 소설들을 읽는 게 전복적인 일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당시엔 로맨스라고 쓰고 그 안에서 여성의 자유와 성욕을 말하는 소설을 읽는 게 그 자체로 여성의 성에 대한 억압에 맞서는 일이었다. 이때 나온 게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요즘엔 워더링 하이츠로 번역되어 나오더라),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이고 아직까지도 3대 로맨스 소설로 불린다.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철학이 시작하는 이 때 끝내주는 작품들마저 쏟아져나오니 19세기 영국에서는 여성들의 문학클럽이 발달하게 된다. 

이 시대의 여성에게 소설은 일상의 탈출구였고 동시에 교육과 노동과 관련해 존재하던 극단적인 남녀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이기도 했다. 그렇다보니 19세기 페미니즘은 초기 사회주의 운동에 근거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때 로맨스는 여성들의 것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이게 오래 가진 못한다. 20세기부터 급속도로 약해지는데... 이는 영화 산업의 발달과 전쟁의 환장할 콜라보레이션 때문이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서 가장 큰 사건을 말하라면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1차 세계대전이 페미니즘에 끼친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만큼 대중예술에 끼친 영향도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페미니즘부터 얘기해보자.

1893년 뉴질랜드가 세계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부여하고 이어 호주가 1902년, 핀란드가 1906년, 노르웨이가 1913년에 여성참정권을 차례차례 인정했고 1차 세계대전이 1914년 발발, 소비에트 연합도 1917년에 인정했는데 영국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18년에나 여성참정권이 부여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그 대가로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하사한 양 말하는 꼴을 보면 딥하게 빡이 친다. 당시 남성들의 반응은 '전쟁도 끝났으니 이제 다시 여자들은 내 일터에서 꺼져. 집에서 애나 보라고.'였으니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그렇고 매번 불황이 찾아올 때면 이게 또오오옥같이 지겨울만큼 반복된다. 

영국 사회의 여성참정권 확보는 전적으로 여성들의 투쟁과 사회 기여의 결과물이다. 애국심을 보이면 여성에게도 상을 준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여성에게 유난히 애국이 강요된다는 문제도 엄연히 있는데 이 자식이 무슨 약을 팔려고 이렇게 지멋대로 떠드나 싶어지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왜 이렇게 확고히 선을 긋는지 더 이해하기 쉬울 거다. 그래, 서프러제트 운동을 주도한 팽크허스트 말이다. 영화로도 나왔다. 팽크허스트가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결성해 활동할 때만 해도 평화로운 운동노선을 탔다. 집회, 선전활동, 낙선운동 같이 현대에서도 으레 하는 온건한 방식으로 말이다. 근데 1908년 자유내각이 들어서면서 전투적 투쟁 노선으로 전환하는데... 당시에도 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있었다지만 개인적으론 팽크허스트가 그럴 만했다고 본다.

영국 정치의 특징이 얘네가 굉장히... 관습적이란 점이다. 집권 세력이 바뀌어도 과거의 관습은 어지간해선 고스란히 유지된다. 유난히 전통을 좋아해서인지 뭔지 몰라도 법이 관습과 판례로 이뤄진 불문법인 게 영국이다. 계약서를 한 장 쓰지 않았어도, 상호간의 동의 한번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사회 내에서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계약으로 보고 그 자체로 법적 효용이 있다고 보는 게 불문법인데, 이런 불문법으로 빚어진 사회에서 어떻게 이제껏 한번도 사회 내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권리를 확고히 얻어낼 텐가? 

여성에게도 선거권 주세요! 라고 정중하고 온건하게 얘기할 때는 무시만 당했는데 상점에 돌을 던지고 우체통에 불을 지르고 전선을 끊고 정치인의 저택을 습격해 폭파시키고 수감되면 단식 투쟁을 하고, 결국 경마대회에서 국왕의 말에 에밀리 데이비슨이 몸을 던지기까지 하고 나서야 이들이 온전히 조명되었다. 평화적으로 여성권리 찾을 때 주지 그랬냐는 반응이 나올만도 하지 않은가. 에밀리 데이비슨이 여성참정권을 위해 항거하다 사망한 게 1913년인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터졌다. 팽크허스트는 이때 전투적 투쟁을 중단하고 여성의 전쟁 지원을 지지했다. 

아무튼 그렇게 전쟁에 징집된 남성들의 빈 일자리에 여성들이 들어서게 됐다. 운전수, 은행원, 집배원, 공장 노동자, 판매원, 당연하지만 인간은 먹지 못하면 죽으니 농업에도 동원됐다. 특히 공장 노동자는 가장 마초스러운 군수산업에까지 들어갔고, 입대한 여성들도 있다. 그것도 아주 많았다. 영국에서만 9만 명이었던가 그런데 영국만 그런 것도 아니고 미국, 독일에서도 여성이 참전했다. 하지만 전투원 영역까지 공격적으로 파고드는 게 가능했던 건 러시아 정도다. 물론 뭐가 됐든 남성 급여만큼은 절대 안 줬고, 기껏해야 보조직까지만 주고 관리직은 절대 안 주는 등 시대적 한계가 엄연히 존재했지만 당시엔 혁신이었다.

초기 페미니즘은 아무래도 특정 계층의 여성의 권리를 획득하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WSPU의 1913년 행동은 모든 계층의 여성에게 여성참정권 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팽크허스트의 사후에 나온 1918년 인민대표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은 30세 이상의 일정 재산을 가진 여성이나 재산을 소유한 남성과 결혼한 여성에게만 투표권을 인정했다는 한계가 엄연히 있지만 과연 WSPU가 아니었다면 1928년 평등선거권법(Equal Franchise Act)처럼 21세 이상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선거권을 가지는 일이 영국에서 가능했을까? 팽크허스트가 여성참정권 투쟁에 나서게 된 이유는 빈민 구제위원으로 있을 때 아기를 뺏기는 미혼모들, 노동을 해도 재산권과 자식에 대한 권리가 없는 여성들, 결혼해 남편의 연금을 받지 못하면 구휼 대상이 되는 여성들, 남편에게 예속되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팽크허스트는 평등선거권법을 더 좋아했을 거 같지 않은가.

이런 배경을 기억하며 이제 문화 쪽을 보자. 20세기 들어서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로 대표되는 모더니즘 문학,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갈래로도 발달하게 되는데... 동시에 20세기 초는 대중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기기도 했다. 

자, 이쯤에서 1차 세계대전 그 자체를 잠깐 얘기해보자. 1차 세계대전의 양상은 그 자체로 굉장한 충격이었다. 이전까지는 전쟁이 일어나도 사망자의 수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기관총, 독가스, 화염방사기, 탱크, 비행기, 잠수함 같은 신무기가 사용되며 사망자 수가 이제껏 없던 규모로 치솟았다. 비행기는 기술 발전이 그렇게까지 진행되지 않아서 지면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수류탄 까넣는 정도였다지만 어쨌든 이 신무기들은 아주 간단하게 도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탱크가 진격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날아오는 총알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서 참호를 팠다. 그렇게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 양상이 되었다. 좁고 긴 참호 속에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툭하면 흙이 떨어지는 공간 안에서 생활해야했다. 전투 시에 몸을 잘못 내밀면 황천행이고 머리 위로는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적 참호로 진격하라고 명령이 내려오면 포탄과 총탄 사이를 맨몸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 와중에 적이 화염방사기 들이대면 고통스럽게 비명 지르며 타죽어가는 아군의 모습을 봐야했다. 잠수함과 독가스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는 거다. 무기만이 아니다. 이 와중에 스페인 독감, 더 정확히는 H1N1 바이러스까지 돌았다.

1차 세계대전 사망자가 장병 약 9백만 명, 민간인이 약 2천만 명 정도 죽었다. H1N1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5천만 명이다. 못해도 대충 8천만 명이 전세계적으로 죽었다.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는 전쟁이 그간 인류의 역사에 없었기에 이는 당시의 대중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줬다. 그러니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은 변해버린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간의 가치관은 모조리 뒤흔들렸고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시대를 가리키는 말로 벨 에포크(Belle Époque)가 있을 지경인데 정작 19세기 말~20세기 초에는 쓰이지 않은 회고적 표현이기에 이러한 정서를 읽을 수 있는 반증이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대로 들어서자 대중문화에 있어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 전에는 대중문화라는 게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다. 문화라는 건 대체로 귀족들의 향유물이었고 서민들이 누릴 수 있는 문화가 영 없었다. 식민지가 가장 오지게 착취당한 제국주의 시대라지만 농촌을 떠난 도시 노동자 계급 또한 착취를 안 당한 건 아니기 때문에 금속활자로 인쇄물의 가격이 저렴해진 이후로는 인쇄물이 그나마 대중문화에 가까웠다. 공연 문화도 한때는 흥했지만 인간으로 미어터지는 산업화 초기 대도시에선 또 힘든 얘기였다. 

하지만 1920년대로 들어와서 영화 산업과 라디오 방송이 천천히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1920년 1월 미국 워싱턴의 아나고스티아 해군비행장으로부터의 군악대 연주방송이 전파를 타자 곧 전 세계에서 방송국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미디어(Media) 시대, 정보와 데이터를 일방향으로 전송하는 대중매체 시대의 등장이었다.

잠시 영화 얘기로 넘어가보자. 영화 자체는 1905년에 만든 기술이고 새로운 종류의 예술이었기 때문에 여느 예술의 태동기가 그렇듯 매우 자유로웠던 편이다. 이 말인 즉, 여성들이 활약하고 있었단 소리기도 하다. 벨 에포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프랑스 영화가 업계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 때 말 그대로 산업을 정지시켜버리면서 몰락했다. 그렇게 빈 자리를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할리우드가 등장해 이 산업을 아예 잡아먹어버린다. 그리고 이때부터 여성들은 영화업계에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때부터 로맨스 서사는 여성들의 전유물로 볼 수 없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조금 뒤에 하겠다.

이 모든 문화적 폭발이 가능했던 건 1920년대는 미국이 호황기였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채무국이었다가 채권국으로 전환하게 된다. 다른 나라들이 전쟁으로 자신들의 모든 자원을 소모하는 동안 전선과는 먼 곳에서 안정적으로 이것저것 생산해 팔아제끼니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성장하는 건 어느 의미에선 당연했다. 

이렇게 미국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라디오에 이어 텔레비전이 발명되고 이미지의 힘은 고스란히 미디어의 힘이 되었다. 사진과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 시기의 미국 사회상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영화 시카고를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 TOP3 안에 들어가는데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 영화의 벨마 켈리 캐릭터가 딱 전형적인 플래퍼(Flapper)의 외형이다. 보브컷, 종아리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 재즈가 울리는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고 립스틱을 칠하고 춤을 추고 남자와 자유연애를 하는 모습 말이다.

플래퍼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에게 강요되던 긴 머리를 짧게 잘라버린 젊은 여성들들이었으며 여성의 다리가 패션으로 노출되는 첫 유행을 만들었다. 또한 낮에는 일해서 돈을 벌고 밤에는 신나게 노는 생활을 즐겼지만 당연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플래퍼를 '급진적이고 무례하고 자유연애와 재즈, 술, 담배를 즐기는 사치스런 젊은 여성'으로 봤다. 참 세상 인식이랄 게 변화가 없지 않은가. 

플래퍼 패션 자체는 그래도 굉장한 영향력을 보여주는데 짧은 머리와 허리선은 로우 웨이스트로 엉덩이께까지 내리고 스커트는 무릎까지 오는 스타일을 전세계에 퍼트렸다. 신여성이나 모던걸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이미지들 말이다. 춤을 추는데 걸리적거리는 게 싫으니 치마를 가벼운 소재로 만들고 끝에 구슬을 달기도 했고 가슴이 풍만한 것은 구시대적으로 생각해 납작하게 동여매는 등의 나름 전복적인 모습도 있다. 하지만 플래퍼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바로 이 부분인데 영화 산업도 그렇고 방송 산업도 그렇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제한적이던 시절에 형성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결정권자가 다 남자니 미디어에 비춰지는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의 시선으로 재단된다는 건데... 여기에 벨 에포크 정서까지 더해져버렸으니 여성이 그 자체로 온전한 여성으로 제대로 조명될 수가 없다. 

또한 당시 미국은 정말 레드 컴플렉스가 심각했다. 1920년대 미국의 공산주의자 소탕 작전 모토가 S.O.S(ship or shot)였는데 이 말인 즉 추방 혹은 사살이었다. 이렇게까지 비합리적이고 히스테릭할 지경이었으니 누구 하나 조지고 싶은 극우 애국주의자라면 그 누구를 볼셰비키로 몰아가면 그만이었을 정도였다. 이러고도 또 매카시즘이 1950년대에 있긴 했다. 이것도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아니던가.

그러다 1930년대, 대공황이 왔다. 경제가 망해도 이렇게 망할 수가 없었다. 이 시기 대공황이 왜 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정부의 방임이 문제였다고 보는데(시장논리가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는 낙관적 태도가 이 시기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다), 미국의 대공황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그 범위가 확장된다. 인플레이션과 실업 문제가 특히 심각했고 살기 팍팍해진만큼 파시즘이 대두하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확산되었다. 길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나니 또 시대 분위기가 '여자는 집으로 꺼져'로 또 팽배해졌다. 그렇게 여성에게 요구되는 가치가 다시 전통적인 가치로 회귀했는데 의외일지 모르겠지만 경제가 망한 만큼 영화가 흥했다. 살기 팍팍해지니 공상의 세계로 도망치는 성향을 이렇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갖은 미디어에서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곡선미를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여성을 그려내는 모습은 한동안 이어진다. 19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문화사에 변곡점이 왔는데, 여성들이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보니 정부 차원에서 여성들이 바지를 입는 걸 권장하게 됐으며 유럽은 전선이다 보니 문화산업을 말아먹었지만 미국은 지속적으로 영화나 인쇄물 같은 문화제품을 생산해 공급했고 완전히 세상의 문화적 중심이 미국이 되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미국이 그렇게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후버 정부에서부터 시작했던 증세가 결정적인 힘이 됐다고 본다. 재정 적자여선 정부가 아무것도 못하니 소득세를 3배 정도 올려버렸는데 그렇게 확보한 재정으로 이어 들어온 루스벨트 정부가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실업수당, 노령자/장애인/유족 연금을 지급하고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떼야한다며 20만 달러 초과 소득에 대해서는 94%의 세금을 물려버렸다. 그렇게 대공황 전에는 최상위 1% 고소득층이 전체 국민소득의 25%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50년대 들어서는 10%로 줄어들며 중산층이 많은, 교과서적인 다이아몬드 형 소득분포가 되었다.

1950년대는 그야말로 미국의 황금기다. 풍요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이 시기부터 이미지의 힘을 몸소 실감할 수 있게 된다. 5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꼽으라면 '중산층 백인 가정'이다. 이민자들의 나라면서 아주 그냥 백인우월주의가 골수까지 박혀있달까... 어쨌든 이 이미지로 인해 여성들에게 강요된 여성상, 하우스와이프(Housewife)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자. 모름지기 애를 대여섯 명 정도 낳아야 하지만 그래도 몸매를 열심히 유지해서 허리는 23인치 이하여야 하고 1년 365일 24시간 풀메이크업에 머리도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게 잘 손질해서 하이힐까지 신은 예쁜 모습으로 언제나 환하게 웃으며 밖에서 일하고 온 가장에게 맛깔난 음식을 해먹이는 등 모든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주부상을 두고 하는 말이 바로 하우스와이프였다.

2차 대전 후 기업의 제품 광고들은 행복한 표정의 가정주부들을 대거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미지는 너무나 강력했기에 여성들은 여성잡지와 광고들이 보여주는 하우스와이프 상에 자신을 맞추려 엄청난 노력을 했다. 1950년대 미국 광고들을 살펴보면 지금은 기함할만한 증명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메스암페타민과 암페타민 광고다. 당시 제약회사들이 여성들에게 우울증 치료제나 다이어트 보조제랍시고 메스암페타민/암페타민 성분이 들어있는 약을 팔아치웠는데... Abbot의 Desoxyn과 Desbutal 및 Wellcome의 Methedrine, SKF의 Dexamyl, Robins의 Ambar 등등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왜 다이어트 보조제 먹지 말라는지 감이 좀 오는가? 보통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을 팔아먹을 생각만 하지 자신들의 제품을 쓰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법적 처벌이 대단치만 않다면야 돈이면 다다, 기업은.

가사노동, 돌봄노동으로 이미 완전히 지쳤는데 외모도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라는 압박에 사람이 힘들다 못해 돌아버릴 거 같으니 약을 먹던지, 아니면 키친 드링커(Kitchen Drinker)라고 해서 부엌에서 일하면서 술을 계속 마시는 알콜중독이 되는 여성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오죽하면 베티 프리던이 1963년에 쓴 여성성의 신화(구 번역은 여성의 신비)가 제2물결 여성주의 운동에 불을 당겼겠는가. 그리고 베티 프리먼의 저서 덕에 페미니즘은 심리학과 이미지와 연계된 연구를 하기 시작한다.

제2물결 여성주의운동(제2세대 페미니즘이라고도 한다)은 어떤 의미로는 예정되어있었다. 참정권을 얻고 사회진출이 시작되긴 했지만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질 때마다 여성들은 자기들의 일자리를 남성에게 넘기고 다시 집으로 꺼지라는 압박을 받았다. 임금도 남성보다 싸게 주는 주제에 말이다.

이 꼬라지를 보고 자라온 여성들의 입장에서 이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남자와 여성은 권리가 같고 여성에게 더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처럼 말로만 떠드는 꼬라지가 믿겨지겠는가. 그것도 투쟁과 전쟁 기여로 굳건히 따낸 권리마저 이리 대충 취급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라고 뭐 대단히 다르다 느꼈겠는가. 그러니 전업주부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여성도 있을 법 했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우리에게 할리퀸으로 유명한 할리퀸 엔터프라이지스 출판사가 로맨스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1960년대는 인권운동의 부흥기였다.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해먹었고 2차 세계대전에선 핵폭탄이 터지는 꼴까지 봤으니 세계적인 반전 분위기가 생길 만도 했고 이러한 흐름이 히피들을 만들어냈다. 하위문화가 상위문화에 영향을 주는 드문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히피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그들의 사상적 기반이 반전운동이긴 했지만 매카시즘 덕에 더 만연해진 정치혐오 때문에 심도 깊은 얘기를 하질 못하니 지속적으로 운동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히피들이 대단히 페미니즘을 받아들였냐면 또 그건 아니라 페미니즘과 관련해선 패션 쪽에서나 좀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히피들의 등장 이전 여성의 머리카락은 반드시 손질하고 관리해야만 하는 부위라서 예쁜 모양으로 묶거나 땋지도 않고 펌을 하지도 않고 자르지도 않은 생머리를 대충 풀어헤치고 다닌다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오늘날엔 그런 압력에선 보다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로판에서 화려한 르네상스 어드메 드레스를 입었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아무런 장식도 하지 않은 여성의 모습을 표지에 걸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거다. 뭐 이런 사소한 것까지 고증을 지켜야하는지엔 좀 시큰둥하지만 로판에서 애용되는 벨 에포크 정서 자체에도 시큰둥하니까 대충 넘어가자. 그냥 그래서 그렇게 됐단 얘기다.

이렇게 또 페미니즘의 바람이 부는가 싶다가 1970년대 들어서서 불황이 또 온다. 이 부분을 생략하면 안 되는데, 루스벨트가 했던 소득분배 정책들이 이때 흐지부지 되기 시작한다.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재임해서다. 언제나 우파들은 고소득자에게 높은 세율 물리면 빨갱이 새끼들이라고 발작하다보니 자기들이 정권을 잡으면 분배정책은 절대 다시 무력화시켜버리기 마련이라서 서민살이가 슬금슬금 팍팍해지면서 50~60년대를 그리워하는(Good old days) 정서가 팽배하는데 암만 그래도 과거로 쉬이 돌아갈 수는 없어서 7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 드디어 맞벌이 가정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정부가 나눠주는 분배정책이 사라지며 서민들의 주머니가 얇아지니 벌이를 더 늘리는 게 좀 더 살만하지 않겠냐는, 지금 대한민국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발상이다. 한국도 IMF 사태가 기점으로 맞벌이 가정이 늘어났다.

그렇게 1980년대로 들어서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섰고, 어마어마한 백래시가 왔다. 흑인 거주지역을 게토화 하는 등의 문제도 얘기하고 싶지만 너무 길어져버렸으니 문화에 한해서만 설명하자면, 아주 특이한 백래시 양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영화계에서 마초스러운 남성을 찬양하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반드시 불행해진다고 묘사하는 영화가 갑자기 늘어났다. TV 쇼도 똑같았다.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와 여성창작자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여성답지 못하다'며 남성 임원진이 맘에 안 든다고 내리라고 뿌에에엑 하면 강판됐다. 슬슬 왜 한국에서 로판이 생기게 된 이유가 분류폭력이라고 자꾸 말하는지 이제 알 거 같지 않은가? 행동주체가 대중 레벨로 내려오긴 했지만 행동원리는 같다. '남자인 내가 보기에 지금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성상이 맘에 안 드니까 내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꺼져'말곤 내용이 없는, 아아아주 전형적인 백래시다. 이걸 어쨌든 지들 꼴리는대로 관철해내서 문제고, 그래서 로맨스 판타지에 자연스러운 백래시가 왔던 점도 있다.

수잔 팔루디의 저서 '백래시'에서 지적했듯 미디어는 언제나 백래시의 선두주자다. 미디어에서 비추는 여성상을 생각해보자. 언제나 어리고 언제나 예뻐야하고 언제나 말라야하며 언제나 순종적인 여성상이 있다. 이런 기준을 채우지 못하는 여성은 미디어 안에서 기준이랄 것도 없이 오만데가 모자란 남성들에게 모멸당하는 모습을 전시한다. 남성은 범죄를 저질러도 뻔뻔하게 다시 스크린 속으로 돌아와 저보다 훨씬 나은 여성에게 입을 함부로 놀리며 평가질을 한다. 여성에게는 조그만 흠결이라도 나면 천하의 죽일 년이 돼서 재기를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폄하당하는데, 뭐 아직까지도 계속 그렇다.

고도의 전문성을 갖춰도 이런 일상적 모멸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 방송업계가 정말 유난한데... 공영방송이라 해도 여성 아나운서는 비정규직인 건 아는가? 남성 아나운서들은 정규직이다. 둘 다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같은 시험 치는 건데 왜 여성 아나운서만 비정규직일까? 왜긴 왜겠는가. 고용해야하는 늙은 남성임원의 입장에서 대충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게 그냥 젊고 예쁜 시절 스크린 예~쁘게 치장했다가 나이 먹고서 지들 눈에 보기 싫어지면 대충 치워버리기 더 편하지 않은가. 

이래서 절대 고위직에 여성이 일정 비율 이상 있어야만 한다. 방송국의 국장들이 죄 남성이라 이런 성차별이 너무도 당연스럽게 내재되어있고, 가끔 시청자 반응이 어쩌고라며 핑계는 대지만 냉정히 말해 지들 꼴리는 대로 하는 거다. 그나마 MBC에서 이런 문제를 당사자가 저항해서 주목된 게 긍정적인 점이... 진짜 심각한 곳에선 당장의 생계만이 아니라 후환이 두려워 소리도 못 낸다. 안경을 쓰는 여성 아나운서도 있으니 어떤 의미로는 그나마 방송업계 내에선 제일 성차별이 덜해서 문제제기가 가능했던 걸 수도 있다는 아주 암담한 얘기다. 이런 현실인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네 당에선 성비위 문제가 있을 수 없다고 입 털어대는 꼴까지 보면 대한민국 정치판도 조용한 쪽이 더 심각할 거란 짐작은 틀리지 않을 거다.

소설로 다시 얘기를 돌리면, 주 소비자층이 여성인 상태로 계속 소설은 그 명맥을 이어나갔으나 이미지의 힘이 너무도 강력해 이 이미지의 영향이 소설로도 흘러들어온다. 그러니까 시각적으로 노출되는 여성의 상에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단 얘기다. 특히나 영화와 상업적 광고 이미지들로 가장 아름답게 미화되어있는, 어디까지나 남성의 기준에서 매력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말이다. 

그럼 이런 게 왜 여성에게도 먹히는지를 따져야 하는데... 아주 심플하게 말하자면 자본이 퍼부어져서 그렇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보다 위의 계급으로 올라가길 원하기 마련이고 상업 이미지는 이를 이용해서 상류층에 대한 이미지를 물건 팔아먹기 좋도록 마냥 예뻐보이게 가공하는데... 뭐 솔직하게 얘기해서 대한민국의 신흥 귀족들인 재벌가를 보자. 그 재벌 여성들이 상업적 이미지에 얼마나 가깝던가? 피부에나 돈을 퍼부어댄 티가 나지 입는 옷의 스타일은 일반 여성들과 비슷하다. 질이야 훨씬 낫겠지만 대체 누가 1년 365일을 몸을 조이는 옷에 파묻혀 살고 싶겠는가. 그리고 이 양반들이 그나마 이미지로 잡힐 때는 법원 가야할 때 뿐이니 더 속기 쉽다. 

조금 더 건전한 예로는 여성 국회의원과 전문직 여성들이 있긴 하다. 의외일지도 모르나 이러한 상은 대한민국이 나은 점도 있다. 더 늙고 크게 꾸미지 않은 여성들이 스크린에 나온다는 건 확실히 서구의 장점이나 '격식'이 요구되는 순간부터 여성에게 하이힐이 강요되는 서구에 비해 한국은 하이힐에 대한 권력부여는 좀 덜하다. 특히 이런 부분은 미국이 제일 구린데... 보수 언론사인 폭스 뉴스의 여성 아나운서들을 관찰하면 더 명확해진다.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는 일이 거의 없고, 다리가 보이는 치마 차림에 하이힐을 꼭 신으며 여성 아나운서의 진행 중에 다리가 보이는 장면을 어떻게든 잡는 편이며 금발의 백인여성을 선호한다. 폭스 뉴스가 만든 업보는 이것말고도 더 있는데 다음 기회가 있으면 언급해보겠다.

지금 설명한 예시들을 어쩌면 단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 없지 않은가? 여성이 여성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그 욕망이 이미 어느 정도 미소지니에 오염되어있기 때문에 여성들 또한 미소지니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강조하는 게 이런 의미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백래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그렇게 미디어와 자본은 여성들에게 무력감을 지속적으로 학습시킨다. 특히나 로맨스는 그 정도가 심하다. 

미디어 속 로맨스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생각해보자.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속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 특히 할리우드 로맨스코미디 영화가 심각한데 남자 주인공에게 여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가 진심인가 싶을 정도로 막장이다. 어쩌다 실수해서 눈이 맞았는데 그걸로 사랑에 빠지다니 이게 무슨... 남자와 여자를 한 방에 두면 반드시 사랑에 빠져서 나오기라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사랑한답시고 툭하면 남성은 폭력적으로 구는데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남성을 보는 순간 현실에서는 안전이별각을 재야하는데 오히려 이런 폭력성이 관성적으로 창작물에서 미화되고 있고, 대부분 이런 걸 보면서 자랐으니 여성향이라면서도 장르소설 안에서 외려 반대로 남성성 = 폭력성이라는 공식이 용인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집착 코드가 그렇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사랑해서 미친 짓을 하는 장면을 두고 성별에 따라 상황에 대한 이미지가 아주 극명하게 달라지는데 여자가 남자를 사랑해서 스토킹 하고 집에 숨어들어있거나 자살협박을 하면 제대로 미친년이지만 남자가 여자를 사랑해서 스토킹 하고 집에 숨어들어있거나 자살협박을 하면 사랑의 증명처럼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이게 어느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구체적으로 용인되냐면... 국내 장르 소설 안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의 의사를 무시하고 폭력으로 볼 수 있는 정도의 행동을 하는 판타지 소설이 후로스트 작가의 '변방의 외노자' 정도 밖에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 그 정도로 남성들의 시각 안에서 여성은 순종적인 존재여야만 사랑할 수 있는 거다. 

이러한 성질을 반대로 이용해서 꽤 흥미로웠던 작품이 no5 작가의 '소니아 리위스의 완벽한 계약결혼'이었다. 미러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랑에 대한 롤플레잉이 남자 주인공에게만 실행되는데... 일반적인 로맨스의 공식을 절대 따르지 않아서 흥미롭고 이 부분이 지독하게 호불호를 탈 요인이다. '아냐 그래도 이 둘은 사랑을 할 거야'라는 장르적 기대를 가지고 볼 거라면 차라리 보지 마라. 기존 로맨스 공식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있어야 재밌을 소설이다. 남자주인공이 여성주인공에게 강요되는 사랑에 대한 롤플레잉을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세계관은 여느 르네상스 언저리의 남존여비 사회라 아주 자연스러운 불협화음이 나는데 그런 불협화음을 즐기기 싫은, 소설은 머리 비우고 보고 싶다! 파에게는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 부조리극을 즐기는 마인드로 봐야하는 소설이다. 재밌었다, 개인적으론.

그럼 왜 할리우드에선 이런 로맨스가 나오게 됐느냐. 감독도 남자고 임원진도 남자고 투자자도 남자니 지들에게 만족스러운 로맨스를 만든다고 그런 거다. 그 남성들 특유의 유치하고 낡아빠진 '내게 아무것도 바라는 건 없으니 내가 아무것도 해줄 필요 없지만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예쁘고 어리고 순종적인 여자가 이 세상 어딘가엔 있을 거야'라는 환상을 채워주려고 하다보니 이 꼴이 난 거다. 감독이 여성이더라도 투자자 말을 안 들을 수 없는 할리우드다 보니... 더... 그렇게 됐고, 우리는 그런 걸 보고 자라서 어떤 사람은 문제를 못 느끼기도 한다. 당장 지금도 집착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져서 재생산 되는데 더 말할 나위 있을까.

80년대 쯤에 영미권에서도 로맨스 장르 안에서도 바운더리를 넓히려고 새로운 시도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장르 소설에 있어 로맨스는 주류에서 뚝 밀려나가 대중 모두가 즐기기엔 무언가 대단히 다른, 여성들만의 장르로 취급당하기 시작한다. 백래시의 여파로 여성독자들이 원했던 건 현실 도피였던 점도 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출판업계의 임원진들 또한 대다수 남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백래시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는 없었고,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섀도우 헌터스'였던가 지금 좀 가물가물하긴 한데 여튼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성년자 독자를 타게팅하던 소설의 장르를 바꾸거나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라고 작가 카산드라 클레어에게 압력이 들어갔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자꾸 플랫폼의 프로모션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팔릴 거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공개를 해야한다고 얘기해야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인데, 여성들이 정말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온전히 알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마케팅이 정말 이상한 성질이 있는데 돈을 많이 쓰면 쓴만큼은 보통 팔린다. 물론 진짜 구리면 아무리 돈을 써도 안 먹히긴 하는데 이 말인 즉 고객선호도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되든 어느 정도의 과다수요를 생성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게 플랫폼으로 오면 독자층이 특정 코드를 정말로 좋아해서 소비자가 붙는 건지, 특정 코드가 잘 팔릴 거라 예상하고 그 코드를 매대 가득 채워놓아서 관성적인 소비를 한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또 이러한 코드를 완전히 회피하는 게 윗사람들 눈에 안 차는 일이라 기회조차 뺏기는 거라면 이는 온당한가? 이러한 코드에서 벗어난 소설을 쓰는 이들, 특히나 장르 이름까지 새로 가지게 된 이들이 프로모션을 제대로 받고 있긴 하던가? 또 새로운 영역이랍시고 스윽 자리를 빼내 찬밥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기네들이 장르를 새로 만들 거라면 당연히 돈을 써야 자리가 만들어질 텐데 말이다. 판드 얘기하는 거 맞다.

이쯤 얘기했으니 알겠지만 오늘날의 로맨스 서사 자체에는 이미 할리우드 발 미소지니 듬뿍 로맨스가 어쩔 수 없이 약간은 섞여있다. 이게 왜 그렇게 된 건지, 백래시가 일어나며 미디어에 로맨스가 이용되는 맥락을 설명하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성욕과 성애를 자본과 엮어 팔아서 발생한 문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다. 특히 루키즘에 관련된 얘기도 조금 해볼 생각인데 일단 체력과 기력을 채우러 이만 줄이겠다.

사족 1. 글에서 언급된 '백래시'나 '여성성의 신화' 정도는 읽어두는 게 좋다. 물론 워낙 옛날에 나온 책들이라 작가도 자신의 미소지니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이건 지금이라고 과거와 대단히 다르긴 또 힘든 일이니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기혼여성과 미혼여성의 대립구도를 만드는 건 좀 이상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정책이 기혼 위주라고 비판하는 건 온당하지만 미혼도 챙겨달라고 요구해 관철해내는 게 맞지 기혼여성이 정녕 미혼여성의 적이던가? 자신의 행복만큼 그들의 행복을 존중하자. 여성 차별할 놈들은 어차피 기혼 미혼 다 한다. 그놈들을 조져야 제 몫을 찾는다.

사족 2. 다음 글에선 김수지 작가의 '상수리나무 아래'를 언급해보려 하는데... 이 소설이 호불호를 극명하게 타는 이유를 나도 이해는 하는데 너무 폄하당하는 면도 있어서 한번은 해야겠다.

사족 3. 건강이 안 좋아져서 글을 자주 올리지 못할 것 같다. 여기서 더 악화되면 수술을 받아야한다는 의사의 경고가 있었으니 무시할 수가 없다.(...) 대충 로또 맞아서 수술하고 쉬고 싶은 소시민이라 당장은 별 수 없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두 편 정도는 꾸준히 올릴 생각이니 양해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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