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편

6화 : 집안일입니다. 신경 쓰지 마시죠. 불청객 씨.

이리는 이테루스와 함께 마을에 진입한다. 그런데...

이리 편: 

집안일입니다.

신경 쓰지 마시죠.

불청객 씨.


물컹. 그의 엉덩이는 탱탱하고 부드러웠다.

"아앙…!"

"죄, 죄송해요! 근데 무슨 남자 엉덩이가 이렇게…"

"시끄러워! 바보야, 제대로 잡아!"

이테루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빼액 소리 질렀다. 이리는 해가 지기 전에 모든 일을 끝냈다.

그런데 그의 발은 서 있지도 못할 만큼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대체 쉬는 동안 뭔 짓을 한 거지?

아무튼 그래서 지금 이 상황.


"그러니까 왕자님 안기는 싫다고 했잖아!"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어요. 쿠온이 언제 올지 알고요?"

"그, 그렇지만 이거 너무…"

"네?"

"…아냐. 알았어. 너, 나머지 돈 절대 떼먹으면 안돼?"

"나 참. 알겠습니다. 탈출하기 전에 꼭 줄 테니 빨리 가자고요!"

이테루스가 입술을 우글우글 다물며 목을 끌어안자 온몸에 후끈거리는 체온이 느껴졌다.

흥, 황금에는 장사가 없는데 네가 창피해도 별수 있니?

이리는 다시 발을 옮겼다.


"…왜 실실 웃는 거야?"

"제 맘입니다!"

비록 계약 관계지만 조력자의 존재는 이리를 안심시켰다. 늑대 앞에서 울었던 아침이 꿈같이 느껴질 만큼.

밀항선 비용은 시간초 밭에 남겨놓은 금화가 있으니 모든 게, 정말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 그래도 이렇게 티 내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리는 입꼬리를 제어할 수 없었다.

'다행이야. 삼주 후면 유리를 만날 수 있어.'


위문에 오자 수갑을 들고 있는 쿠온이 보였고 이테루스는 이리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소지품 압수를 피하기 위해 무기랑 가방도 그가 맡았다.

그렇게 진입한 마을 광장에는 노인들이 원형 탁자에 앉아있었다. 고전 영화나 게임에 이런 거 많잖아. 누가봐도 마을 관리들 이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는데 그들의 손에는… 이런.

'어떻게 된 거야. 쉽게 이길 수 있다며? 전부 총 들고 있잖아!'

그 서신 은근히 허술하다니까. 역시 이테루스를 매수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마을 주민들은 집회를 열었다. 몇 명의 남자들이 임시 감독관으로 지목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차라리 벌금을 내겠다."라며 고사했다. 이유는 마녀에게 자기 집 한 켠을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감옥은 병사를 자주 해서 곤란하다나.

"그럼 이테루스를 임시 감독관으로 정하는 것은 어떻겠소?"

그때 관리들 중 한 명이 제안하자 바닥에 앉아있던 이테루스와 쿠온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특히 "미쳤나!"라고 외치는 쿠온의 얼굴은 장관이었다.

"때마침 그는 아이도 없지 않소? 한가할 테니 딱 좋겠구먼!"

"… …"

관리들이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이테루스를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숙였다.

흠, 잘 모르겠지만 저렇게 죄스러워야 할 일인가.

"뿐만 아니라 그가 마녀를 데려왔으니 적임자라 보오."

"음, 나름 친분도 있겠지."

"아니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도 오늘 처음 봤단 말입니다!"

분위기가 결정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자 쿠온이 급히 일어나 항변했다.

"예의를 지키게!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끼…"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저 마녀는 혼자 도주할 수도 있었습니다! 죽은 감독관 외에는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무엄하오!"

"이테루스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을 겁니다! 아무리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쿠온은 꾸지람에 밀리지 않고 할 말을 쏟아냈다.

'실은 내가 먼저 발견한 거지만… 나름 호소력이 있는데? 정말 이테루스를 많이 아끼나 봐.'

이리가 노예답지 않은 그의 박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넌 어떻게 하고 싶지?"

관리들은 쿠온을 무시한 채 이테루스에게 물었다.

"당연히 거절이죠! 물으나 마나 한 질문을 왜…"

"자네한테 묻지 않았네. 쿠온."

"이테루스! 거절 할 거지?!"

"… …"

쿠온의 물음에 이테루스는 대답 대신 이리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우선 계약을 생각해요!'

이리가 텔레파시를 보내듯 눈에 힘을 주고 미소 짓자 이테루스는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뭐야, 귀는 왜 빨개진 거람.

"좋습니다. 제가 임시 감독관을 하지요."

"제정신이야? 우리 집에서 저 여자를 살게 하자고?!"

"… 미안. 나중에 설명할게."

"야!!!"


쿠온은 이테루스의 어깨를 부러질 기세로 꽉 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순간 이리는 제 어깨가 잡힌 것 같아 몸을 떨었다.

아으, 살벌해라.

이 와중에도 관리들은 껄껄 웃으며 그에게 수갑 열쇠를 건네고 있었지만.

"자네는 책임지고 마녀를 감시하게. 그리고 집행관( bailiff ) 께서 마녀를 보자 하시니 영주관에 데려가시오."


이테루스와 쿠온은 복도에 남았고 이리만 영주관 집무실에 들어갔다. 집행관은 서류가 쌓여있는 책상 앞에 앉아 위조 신분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리에스라, 흔한 이름이군."

그는 이리가 여기서 본 남자들 중 가장 복장이 고급스러웠다. 영주가 육지에 있는 현재, 저택의 주인은 집행관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그곳의 시간초는 얼마나 자랐나?"

"제 허리 또는 머리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슬슬 수확할 때군. 전갈이 오기 전까지 자네는 시간의 선물 작업을 하게."

"… …"

그건 또 뭔데.

이런 의문을 갖기도 잠시, 집행관은 책상 서랍에서 회중시계처럼 생긴 작은 병을 꺼내 내용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 네. 그거로군요. 병 디자인이 대놓고 말하고 있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힘없는 몸짓으로 축 의자에 늘어지더니 바싹 마른 입술을 실없이 실룩거렸다. 충혈된 눈의 눈동자는 초점이 없었다.

이리는 간호조무사 준비를 할 때 이런 증세를 들은 적이 있었다.

"저기요, 주인님?! 지금 상태가 꼭 마ㅇ…ㅑ…!"

"뭔 소린가? 시간의 선물은 술이네."

"아…네. 술이요…"

집행관이 시간의 선물이 담긴 병을 흔들자 다홍빛 술방울들이 책상 위에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찍어 쪽쪽 핥았다.

윽, 아무리 아까워도 저렇게까지 해? 이리는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썼다.

"새 국왕 전하께서 최근 이 술에 금지령을 내리셨네. 국왕령 쪽 주들은 이미 사업을 철수했다 하더군. 알고 있겠지만 이 술은 마을의 유일한 수입원이지. 만약 전하께서 내전에서 승리하시면 상황이 정말 안 좋아 질게다. 이를 대비해 최대한 주조해 둬야 하네."

집행관은 옆에 놓인 장미무늬 인장이 붙은 양피지를 바라보며 한숨 쉬었다.

"근래에 일손들이 줄어 아쉬운 상황이지. 이건 원래 마녀들도 하던 일이니까 무리 없이 할 수 있겠지?"

"… …"

"왜 대답이 없나?"

"…네. 알… 겠습니다…"

이리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놀라지는 않았다.

원래 세계에서도 낙후된 마을이 법의 눈을 피해 밀매를 했다는 해외 뉴스를 자주 시청했으니까.

게다가 잠시 머물고 떠날 마을이 뒤에서 뭘 하든 알 게 뭐람.

하지만 그래도 뭔가 마뜩잖았다. 

'깊이 휘말리는 느낌이라 찝찝한데… 괜찮겠지?'


해가 넘어간 마을은 군청색으로 물들었고 사람들은 기름 등불의 빛에 의지하며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리는 이테루스와 쿠온의 손에 이끌려 그들의 집 앞에 도착했다.

붉은 슬레이트 지붕이 얹어져 있는 아담한 이층집은 상당히 구석진 곳에 있어 근처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도 모를 만큼 말이지.

쿠온과 이테루스가 먼저 들어갔고 마지막에 들어온 이리가 수갑 찬 손으로 현관을 닫았을 때였다. 

[ 철썩! ]

뭐야? 이리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쿠온이 이테루스의 얼굴을 후려친 상황이었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이테루스는 맞은 방향으로 몸이 돌아갔고 뺨은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미친 자식. 어떻게 상의도 없이 이런 일을 벌여?!"

"… …"

쿠온이 노기에 찬 듯한 목소리로 말하자 이테루스는 말 없이 눈만 내리깔았다.

뭐, 그래. 저 남자는 화낼만해. 어차피 잘 이야기하고 화해하겠지? 이리는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있었다.

나찰처럼 표정이 일그러진 쿠온은 돌아간 이테루스의 어깨를 잡아 자신 쪽으로 휙 돌렸다. 

[ 철썩! ] 

그리고 또 한 번 뺨을 때렸고 이테루스는 이번에도 저항 없이 얻어맞았다.

"도대체 이 여자랑 어떻게 한 집에서 지낼래?! 정말 비위도 좋아!"

[ 철썩! ] 

"난 도대체 너한테 뭐지?! 그저 네 부족한 수입 채워주는 사람?!"

[ 철썩 ! ] 

"아니면 네 구멍이 심심해할 때마다 박아주는 기구?!"

[ 철썩! ]

"하! 시발! 진짜 못 견디겠다! 넌 도대체 나와 왜 사는 거야?! 내가 그렇게 우스워?!"

[ 철썩! ] 

이리는 두 남자를 얼어붙은 듯이 응시했고 침을 삼키며 미간을 찌푸렸다. 

'… 왜 멈추지를 않아?'

갈수록 거세지는 따귀 때리기에 이테루스는 결국 콰당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쿠온은 씩씩거리며 그의 가슴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이테루스는 어딘가 영혼이 나간 것 처럼 보였다. 손을 둥글게 쥐었다 풀기를 반복할 뿐, 터진 입술을 뒤틀릴 정도로 꽉 다문 채 그저 버티고만 있었다. 버둥거리지조차 않았다.

오렌지색 눈에 살기 어린 빛을 띈 쿠온은 이를 부드득 갈며 근처에 널브러져 있던 도리깨를 집어 들었다.

미쳤어?!

그것을 본 이리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도리깨를 쥔 쿠온의 손등에는 힘줄이 잔뜩 불거져 있었고 그는 그대로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테루스는 "큭…!" 하며 흐느끼는 소리를 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이 악문 턱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고 있었다.

[ 퍽! ]

그리고 곧 둔탁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 …"

손의 악력 때문에 도리깨가 살아있는 것처럼 뿌드득 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었다.

손바닥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재빨리 뛰어들어 도리깨를 간신히 잡아낸 이리는 이테루스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도리깨의 끝은 그의 머리에서 고작 몇 센티 정도만 떨어져 있었다. 

이테루스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동그랗게 뜬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그는 머리 옆에 떨어진 수갑을 바라보며  옆구리가 오르락내리락 거칠게 호흡했다. 

"너 뭐야?!"

"이러다 진짜 죽이겠어요!"

눈썹을 치켜세운 쿠온이 묻자 이리는 노려보며 반발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 제정신을 차렸는지 쥐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고 이리는 그대로 도리깨를 빼앗아 옆으로 던졌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피했으니 다행이야. 정말이지, 자신에게 이런 치트키 같은 완력이 없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한숨을 쉰 이리는 머리를 긁적였다.

"미리 언질을 못한 점은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면…엇!"

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몸이 공중에 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떨어졌다.

"아으…"

이게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엉덩이와 허리가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욱신욱신 거렸고 무릎이 굳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안돼! 이 마녀를 해치면 모두 죽어!"

이테루스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그제야 이리는 쿠온이 자신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가 바닥에 내리 꽂은 것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가 울려대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제발!"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눈앞을 뭔가가 푹! 하고 찔렀다.

"… …"

다리 사이에 검이 꽂혀 있었다.

서슬 퍼런 날이 징-징-거리며 진동하는 흉기는 이리가 이테루스에게 맡겼던 궁정 검이었다.

거울처럼 매끈한 표면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비쳤다. 목덜미에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한을 느낄만큼.

쿠온은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이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집안일입니다. 신경 쓰지 마시죠. 불청객 씨.“

그는 서릿발 같은 말투로 비아냥거리며 손가락으로 이리의 이마를 툭 쳤다.

“충고하지. 알아서 눈에 띄지 말고 조용히 지내. 마을에는 널 싫어할 사람들이 쓸어 담을 만큼 넘쳐. 우리는 날아오는 총알까지 막을 수 없으니까.”

“… …”

“이해하나? 오래 살고 싶으면 너랑 관계없는 일에 이 따위로 설치지 말라는 거다. 그는 내 사람이고 여긴 우리 공간이다.“

내 사람 그리고 우리 공간.

그 단어들을 듣자 이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쿠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이걸 어떻게 보고 있으란 말이야?! 방금 것은…!'

이 녀석 좀 때려도 되지?

이리는 주먹을 쥐고 일어나 있던 이테루스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두운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야. 왜?

그 무기력해 보이는 모습을 보자 이리는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런가? 내가 괜한 참견을 한 걸까?'

다시 생각해 보니 잠깐 볼 사람들에게 깊이 관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관두자. 오바야.

"알았어요. 미안합니다."

이리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했다.

두 남자는 침실이 있는 위층에 올라갔고 이리는 아래층의 거실에 남아 화로 근처에 요를 깔았다.

집은 방음 시설이 전혀 없었는지 위층에서 쿠온이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렸다.

'밖에서는 저런 관계로 보이지 않았는데…뭔 놈의 이 세계 집구석이 이래?'

이리는 모포를 뒤집어쓴 채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멈출 줄 모르는 쿠온의 고성이 안 들릴 리가 없었다. 그는 이테루스에게 고압적으로 소리쳤다.

“이테루스! 당장 벗으란 말 안 들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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