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햄] 손톱달 - 5 (完)
썰 수정본 백업
손톱달
w. 주인장
기현은 형원의 가슴팍에 등을 기대고 앉아 형원과 손장난을 치다가, 제 고개를 돌리는 형원의 손길을 따라가 그와 입을 맞춘다. 형원의 품이 곧 기현의 보금자리였고, 이 깊은 산속만이 둘만의 세계였다. 형원이 어두컴컴해진 주위에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생각하는 찰나, 기현이 바닥을 더듬다 작게 웃어 보인다. 기현의 손끝에 닿는 것은 줄기가 기다랗고 작은 잎들이 촘촘히 둥글게 자라난 것이었다. 꽃이라고 하기에는 그리 화려하지 않았으나, 그저 잡초라 하기에는 그 자태가 고운 것이, 꼭 제 연인을 닮아 있노라 생각한다. 기현은 그 주위에 손을 더듬다가 비슷하게 생긴 것들을 여러 송이 꺾어 제 다리 위에 둔다.
형원은 기현의 하얗고 고운 손끝이 세심하게 움직이며, 토끼풀로 꽃반지를 만드는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본다.
"꽃 가락지 만드는 법도 알아?"
"어려서 아버지 따라 산에 갔다가 배웠어."
이렇게 줄기 하나를 살짝 벌려서 안에 다른 녀석을 하나 집어 넣고, 하며 작게 중얼거리는 기현의 입술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형원이다. 기현은 풀 두 개를 엮고서 형원에게 '손'하고 말하자 형원은 얌전히 자신의 손을 내민다. 형원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더듬던 기현의 손이 그의 약지에서 멈추고, 엮은 풀을 손가락 가장 안쪽에 맞추고서는 두 개의 줄기가 끊기지 않게 조심스레 매듭 짓는다. 연약한 줄기가 행여나 찢기진 않았는지, 저가 잘 묶은 것이 맞는지 몇 번을 쓰다듬어 보다가 기현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됐다' 하고 또 작게 중얼거린다.
"내게도 매어 줘."
형원은 기현의 손짓을 되새기며 그가 했던 대로 토끼풀 두 송이를 엮어 그의 약지에 풀을 둘러 매어 준다.
"우리의 정표야."
형원은 기현의 손가락에 매듭을 지어 가락지를 만들어 주고서도 한참 동안 기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제 둘이 엮여서 하나가 되었으니 끊어지지만 않으면 되겠다."
"곱다."
"그치. 가락지 예쁘지?"
"가락지도, 너도."
형원은 제 품에 기댄 자신의 연인을 끌어안고서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는다.
내 이번 생에 처음으로, 너와 함께하면서 이 지독한 삶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도 그러할까, 기현아.
오늘 형원은 평소와는 다르게 기현보다 먼저 눈을 떴다. 일찍 일어났음에도 몸이 개운하여 다시 눈을 감지도 않고, 맑은 눈으로 제 품 안에서 잠든 기현을 가만히 바라본다. 서로의 손에 나눠 낀 꽃 가락지는 제 숨이 꺾인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생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고운 눈을 가만히 감은 채 조용히 고른 숨을 내쉬는 제 연인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고서 그의 이마에 포근히 입을 맞춰 주고 조심스레 그의 머리 밑에 놓인 자신의 팔을 빼내자 잠귀가 밝은 기현이 어렴풋이 눈을 뜬다.
평온히 웃는 그 얼굴은 보고 있어도 그리운 것이라 형원은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였다. 다정하게 잘 잤냐고 물어오는 것에도 괜시리 벅찬 까닭은 아직 잠에 젖어 있는 너의 마음이, 날 향한 너의 연정이 고와서겠지. 형원은 기현에게 한 번 더 입을 맞춰 주고 아쉬운 걸음을 떼어내 장에 갈 준비를 한다. 근처 내천에서 세안을 하고 저번에 장에서 새로 얻어 온 말끔한 백의를 입고서 평소처럼 기현에게 당부를 한다.
"기현아,"
"알고 있어. 다섯 번 두드리면 열라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척이 들리면,"
"나는 괜찮으니 몸 성히 잘 다녀와."
제 연인은 이제 팔을 더듬지 않고도 곧장 제 얼굴을 그러쥘 수 있었다. 제 뺨을 어루만지는 손 위에 제 손을 겹치고서는 그의 손바닥에 애틋하게 입 맞추고는 걸음을 나선다.
산내음까지 쾌청했다. 삭막했던 가지에 새싹들이 돋아나고, 바닥에는 어린 풀들이 밟힌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이른 봄의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형원은 새싹들의 기운을 받은 듯이 성큼성큼 산을 걸어 내려간다. 오늘은 푸줏간의 주인장까지 제게 친절했다. 이런 날은 흔치 않은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형원은 어딘가 찝찝하다기보다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 또한 하나의 인격체이기에 당연히 그랬다. 기현으로 인해 인간의 따스함을 배워가던 형원은 오늘에서야 그것이 참임을 느낀다.
그래서였을까. 형원은 오늘 하루에 심취해 있었기에 장의 끝에 위치한 관청이 분주한 줄도 몰랐다. 해가 저물고 하늘이 짙은 청록빛을 띨 때가 되어서야 형원은 제 연인과의 보금자리로 걸음을 옮긴다. 노을마저 사그라든 하늘은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풀 밟는 소리마저 경쾌하고, 산 아래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까지 청아하다. 형원은 얼른 집에 가서 기현에게 자신의 하루를 들려 줄 생각에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형원이 제 앞을 막는 나뭇가지를 헤치고 고개를 들자 둘만의 세계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는 기쁜 마음에 아직 집에 다다르지도 않았건만, 크게 '기현아' 하고 제 연인의 이름을 불러 본다. 자신의 부름에 제 연인의 대답 대신, 제 목소리가 이내 메아리가 되어 다시 제 귀에 꽂힌다.
돌아오는 답이 없다. 선잠에 든 걸까. 형원은 의아한 마음에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한 발씩 걸음을 내디딜수록 달빛은 받은 둘의 보금자리가 명암을 띄며 선명해진다. 오두막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형원의 걸음은 점차 느려지다가 머지않아 자신의 집 앞에서 형원은 걸음을 멈춘다.
처참하게 부서져 있는 문. 이리저리 흐트러진 살림살이. 기현과 함께 잠을 청하던 침상도 보기 싫게 어질러져 있다.
그래서 제 연인은?
형원은 그 생각이 들자마자 빠르게 내달리며 집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하는 어린 풀들을 모질게 밟으며, 겨울의 그것보다 따뜻해진 공기를 헤치며, 정신없이 기현을 찾다가 그를 처음 발견했던 산속의 풀숲에 다다라서야 형원은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는다. 어디로 간 걸까. 홀로 밖에 나서지도 않는 네가. 위험할 때면 내가 지켜 주겠다고 했는데. 그리 자만하며 말했는데.
형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자책 때문이기도 했으나, 제 몸에 이는 통증 때문이기도 했다. 형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아, 저 손톱달.
꼭 하늘은 그가 저를 바라보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했다. 형원의 시꺼먼 두 눈동자에 붉은 손톱달이 새겨지는 것과 동시에, 아까보다 더 극심한 통증이 제 몸을 감싼다. 미처 몸을 웅크릴 틈도 없었다. 형원이 바닥에 양팔을 짚자마자 온몸에 있는 관절이 뒤틀리며, 골격이 기이하리만치 커지고, 그의 몸에서 흉한 짐승의 털이 자라난다.
형원은 기현이 제 곁에 없다는 상실감과 그리움에 몸부림치듯, 더욱이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뱉는다. 제 입에서 나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형원은 자리에 주저앉아 제 얼굴을 감싼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기현의 이름을 부를 수 없음에, 매서운 발톱을 드러낸 손으로 그를 감쌀 수 없음에, 형원은 한탄하듯 포효한다. 그날 형원은 언젠가 기현과 함께 머물렀던 동굴에 들어가 초라하게 몸을 웅크렸다. 기현이 제 발로 스스로 저를 떠났을 리는 만무했다. 문이 부서져 있는 것만 봐도 그랬으니.
제 품에 불안하게 안겨 있던 그가 그리웠다. 제 꼬리를 이불 삼아 따스히 잠든 그의 체온이 그리웠다. 흉측한 몰골을 한 자신을 따스히 보듬어 주던 그의 손길이 그리웠다. 지독한 외로움을 채워 주던 이가 없다는 것에, 자신이 생에 처음으로 연정을 준 이가 없다는 것에 그는 견딜 수 없었다. 형원은 자신의 발톱 끝에 걸린 꽃 가락지로 조용히 시선을 옮긴다. 너와 나의 징표를 내게 매어 주던 네 얼굴을 기억한다. 그 어떤 것보다도 따뜻하던, 오로지 나만을 향한 미소였다. 그렇기에 나는.
형원은 네 발로 동굴의 입구로 걸어가다가, 동굴을 벗어나서는 두 발로 무작정 내달렸다. 흙바닥에 커다란 짐승의 발자국이 찍히고, 이제 막 새싹을 피운 나뭇가지들은 날카로운 발톱에 잘려 나간다. 인간들이 제 몰골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손가락질을 해도, 행여나 저를 죽이겠다 나서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는 이 생에 날 때부터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내게 삶의 이유를 준 네가 없으면, 이따위 삶이라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일까.
형원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칠흑 같은 밤이 기현의 세상과 같단 생각에 안광을 빛내며 고을로 내달렸다. 이따위 삶이지만, 그럼에도 기현과 함께 살아내고 싶었으므로. 기현이 위험할 때면 저가 구해 주겠노라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기현에게 다짐했으니.
기현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조용히 '형원아' 하며 자신의 연인을 찾았다. 행여나 또 크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가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그 사내의 호통이 들릴 것이 뻔했다.
일순간이었다. 기현은 그 혼란한 틈에 들리는 사내의 목소리를 단번에 기억해 냈다. 자신의 머리칼이 잘려 나갔을 때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자신의 옷값을 반드시 치를 것이라 으름장을 놓았던 그 목소리. 저항할 새도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낯선 이의 어깨에 둘러메져서는, 달리던 것이 멈추자 곧장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 후로는 꼭 자신을 인형 대하듯, 낯선 이들이 제 옷을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이곳이 어디냐 물어도, 누구냐 물어도, 제게 향하는 손의 주인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내 옷값은 치른다 하지 않았더냐. 내 아량을 베풀어 가진 것 없는 천한 백정 놈에게서 네놈 하나라도 데려온 것이니 그 값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 뒤로 자신의 얼굴을 쓰는 손길을 쳐내자 험한 말과 함께 제 뺨이 돌아갔고, 제 몸 위로 쏟아지는 발길질을 받아 내야만 했다. 성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리자, 사내가 나갔다는 생각에 욱신거리는 몸을 조심히 움직여 문을 찾으려 했으나 이내 저를 향한 조롱에 기현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 홀로 내몰린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소리를 들어도, 냄새를 맡아도, 그 감각들을 온전히 믿는다 해도, 촉각으로 그것이 거짓임을 깨달았을 때 더 큰 절망에 빠지게 한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더더욱 네가 필요한데. 내 눈이 되어 주던 네가 그리운데. 늘 내 곁에서 온기를 나눠 주던 네가 그리워.
한참을 얼굴 모를 사내에게 시달리던 기현은 고요한 밤이 되어서야 겨우 기어서 방을 빠져 나왔다. 신도 제대로 신지 않고,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허공에 손을 뻗어 걸음을 옮기다 넘어지기도 하며, 그렇게 형원을 찾았다. 기현이 겨우 걸음을 옮기다가, 그마저도 기운이 빠져 주저앉아 응어리진 그리움을 토해내듯 형원의 이름을 내뱉을 때였다.
"저, 저게 도대체,"
"무엇 하는가! 당장 병사들을 깨우지 않고!"
"여, 여봐라!!"
"이쪽으로 오고 있질 않은가! 전원 무기를 챙겨라!"
기현은 제 머리 위로 들리는 목소리에 숨을 죽인다. 지독한 어둠 속에서 불에 타는 나무 냄새가 가득 찬다. 기현은 그 지독한 냄새에, 제 귀에 들리는 겁에 질린 사내들의 목소리에, 분주히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는다. 그리고 차마 그 공포에서 벗어날 새도 없이 제 앞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기현은 몸을 흠칫 떨며 제 등에 닿는 돌벽으로 몸을 더욱 붙인다. 지독한 횃불 냄새에 코가 마비되는 듯했다. 기현은 제 앞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가진 것이 어떠한 기척도 없기에 조심히 입을 열어 본다.
"…뉘시오."
제 물음이 떨어지자 그 온기가 더 가까이서 느껴지고, 이내 그것이 지닌 체향이 제 코끝에 스치며 기현은 덜덜 떨리는 팔을 들어 그것을 향해 뻗는다. 아, 이 체향. 이 냄새. 잊을 수가 없는 것이지. 기현은 떨리는 몸으로 뻣뻣하게 서 있는 털들을 찬찬히 쓰다듬는다.
"형원아…."
제 부름에도 그는 답이 없었다. 기현은 손을 옮겨 그의 얼굴을 더듬는다. 거친 털이 덮인 얼굴에 불툭 튀어나온 주둥이를 찬찬히 쓰다듬다가 기현은 애써 웃어 보인다. 안대 아래에 가린 눈의 앞머리에서 굵은 방울이 흘러 코 옆으로 굵은 눈물 선을 만들어 낸다. 기현이 그의 목을 더듬고, 팔을 더듬어 내려가다가, 그의 손끝에 간신히 걸린 꽃 가락지를 만지작거리며 속에 진 응어리를 터뜨린다.
"형원이 맞구나. 종일 기다렸는데…."
"전원 저 괴수를 포위하라!"
기현은 제 머리 위에서 들리는 그 사내의 목소리에 온몸이 굳는다. 그리고 이내 들리는 것은 저를 둘러싸는 분주한 발소리, 흙바닥이 쓸리는 소리, 팽팽하게 실이 당겨지는 소리. 기현은 그 순간 만큼은 시각을 제외한 자신의 다른 감각이 선명한 것이 원망스럽기도, 감사하기도 했다. 기현은 제 심장이 빠르게 뛰며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지도 못한 채, 형원의 가슴팍을 밀어내었으나 꿈쩍도 하지 않음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형원아, 이제, 이제 빨리 가."
그를 몇 번이고 밀어내 봤으나, 그는 되려 더 제게 가까이 몸을 붙이고서는 그의 품에 저를 가둔다. 형원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가만히 기현을 안고 있는 것뿐이었다. 주변을 대충 둘러봐도 족히 서른 명은 되는 사내들이 저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다. 지금이라도 너를 안고 다시 산으로 도망갈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나를 살려 둘까? 아니, 너를 살려 둘까? 네가 없는 나는 의미가 없는데, 내가 없으면 너는 행복할까? 형원은 기현에게 그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저 한스러웠다. 내 생이 끝나면 너는 어떡하지, 기현아. 내가 너를 지켜 주리라 약속했는데, 지금이라면 내가 너를 어찌 지켜낼 수 있을까.
"형원아."
슬픔을 가득 머금은 목소리가 형원의 귀에 꽂힌다. 넘실거리듯 요동치는 목소리를 겨우 뱉어 내고서 기현은 형원의 목을 힘껏 끌어안는다.
"형원아."
응, 기현아.
"실은… 실은, 네가 계속 내 곁에 머물렀으면 해."
그리 말해 주길 바랬어.
"너무 이기적이지."
아니야. 나도 그러고 싶었어. 나도 네 곁에 있고 싶어.
"네가 없는 생이, 이제, 너무 무서워."
기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형원의 품에 안겨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같이 가… 나 혼자 두지 마."
형원은 저를 향해 있는 화살이 더 팽팽히 당겨져 있는 것을 눈으로 훑는다. 그래, 내가 너를 혼자 두고 어떻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어. 내가 없는 너는 이 모진 생을 어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형원은 제 품에 안으로 제 연인을 따뜻하게 끌어안고,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서 마지못해 이를 세운다. 제 연인의 가녀린 목덜미에 흉측한 송곳니를 박아 넣는 것과 동시에, 제 온몸으로 수십 발의 화살이 꽂힌다. 따뜻했던 기현의 체온이 차게 식어 들어가고, 이내 제 품에 스러지는 연인을 세게 끌어안고서 형원 또한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 그대로 쓰러진다.
그렇게 지독히 외로웠던 두 사람은, 서로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기현은 심드렁한 얼굴로 책을 덮는다. 그 늑대인간 한번 거하게 로맨틱하네. 기현은 이번 발표를 맡은 부분에 필요한 내용을 정리해 두고서 책을 들고 책장으로 향한다. 시험 기간도 아닌데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심 답답하긴 했지만, 장학금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아버지 혼자 외벌이 하시는데 대학 등록금이 좀 비싼 것도 아니고. 기현이 설화집을 원래 있던 위치에 놓는 와중에, 자신의 머리 위로 뻗친 팔이 설화집을 집는 것에 고개를 돌린다. 뒤에 있던 사람과 거리가 제법 가까운 탓에 기현이 흠칫 놀랐음에도, 기현의 뒤에 있던 남자는 되려 기현과의 거리를 더 좁혀 온다.
"한참 찾았어."
"네?"
"많이 아팠겠다."
영문 모를 말을 하며 엄지손가락으로 제 목 위에 나란히 있는 점 두 개를 살살 만지는 남자의 손길에 굉장히 당황스러웠으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그 눈에 기현은 그저 굳어 있었다. 남자는 기현과 한참 눈을 맞추다가 작게 웃어 보이고는 먼저 책장 사이를 빠져나간다.
남자는 도서관을 벗어나기 전에, 기현의 자리로 가서 자켓 안주머니에 있던 토끼풀 하나를 꺼내어 그의 공책 위에 얹어 두고서는 자리를 벗어난다.
늦어서 미안해, 기현아.
그래도 나 자신에게, 너에게 약조한 것이 있잖아.
항상 네 곁에 있을게.
- 손톱달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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