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영영인] 우산의 색깔

darling by 달링

* 무간도 양금영×진영인

* 누락님께서 주신 키워드 ‘우산’으로 짧은 글 쓰기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견제와 응원과 박수 속에 진영인은 무사히 복직하는 데 성공했다. 수년간 건강을 제대로 유지하기 힘든 환경이라 정식 복직 후에도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야 했다. 그만한 경력이 없기 때문에 마약 관련 수사로 조언을 구하는 일도 은근 잦았다. 아무리 평소에 정신력 좋다는 사람이라도 잠입 수사는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다. 양지에 사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던가, 자체를 포기하던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영인처럼 낮과 밤이 너덜너덜해져 가며 견뎌온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니 다들 친밀감 없는 사람들도 모를 수가 없는 진 씨를 찾는다. 영인은 거부하지 않았다. 3분의 2는 무의식적인 동정심과 호기심과 짓궂음과 꺼림직함과 슬픔을 매번 마주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씨익 웃는다. 웃으면 약간 괜찮아진다.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영인은 그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두꺼운 코트처럼 두른 덤덤함과 여유 속에는 자신을 놔버릴 수 없다는 진심이 숨겨져 있었다. 깡패 시절과 동일하다. 강하게 의식하면 심적인 에너지를 낭비하게 될 것 같아서 떠올리려고 하지 않지만, 이따금씩 비가 오면 택배 상자처럼 축축하고 눅눅해진다. 하필이면 우산도 깜빡한 날이다. 박스라도 멀쩡했으면 머리라도 가리고 길가로 달려가서 택시를 잡았을 텐데. 비 오는 날이니 택시 잡기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형식적으로 설치된 3단짜리 계단에 쪼그려 앉는다. 유치원생이 타는 노란색 자전거에 쪼그려 탄 동네 아저씨 꼴이 되었다. 처량한 진 씨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영인아.”

“양 반장도 퇴근이야?”

물컹한 상념에 끌어내는 호칭에 영인이 눈을 꿈뻑거린다. 팡, 하고 펼쳐진 우산은 제 몸을 천천히 기울여서 영인의 발끝도 안락하게 덮어준다. 영인은 위를 올려다보며 히히 웃는다. 회색 천장과 서류와 건조한 비명과 물 흐르는 소리와 시계 초침과 별과 바람과 해와 구름을 금영이 모두 가려주고 있다. 으차차, 하고 영인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릎에서 뚜둑, 소리가 났다. 일어나면서 잠깐 휘청거렸지만 바닥이 미끄러운 탓이다. 그걸 알면서도 금영은 그의 이마에 손등을 대고 열이 없는지 확인하고 입꼬리를 뾰족하게 올린다. 영인만이 볼 수 있는 움직임이다.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전골 만들어서 먹을래요? 기본 재료는 다 있어요.”

“표고버섯도?”

“네. 그리고 후식으로는 망고를 먹죠. 어제 집 앞에서 싱싱한 생망고를 괜찮은 가격에 팔더라고요.”

완벽하네. 박수를 한 번 키며 영인은 기지개를 켰다. 찌뿌둥한 몸은 미미한 식욕이 받쳐준다. 그 시간 이후로 영인은 맛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무책임적인 연민, 흥미에 얽힌 얌심, 근거 없는 염오, 일쩌워하는 한숨…그 모든 것으로부터 색과 빛을 모두 눌러버리는 안도감만이 그가 식탁까지 가는 길을 즐겁게 한다. 금영은 그걸 진작에 깨달았고 나머지는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 둘이 알아야 할 것은 오늘 둘이 거주하는 집에서 전골을 먹으며 같이 볼 TV 방송과 다시 출근해야 할 내일의 날씨다.

+ 둘이 동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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