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설란 (龍舌蘭) 2부: 문 너머의 이야기 w. 주인장 고운 의복을 잘 차려입고 한참 궁을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대전 앞을 지날 때는 어린 시절 멋모르고 이 앞에서 뛰다가 대비에게 불려 혼이 났던 기억, 현비의 손을 잡고 궁을 거닐었던 기억, 세자와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화들. 한참을 거닐다 기현이 걸음을 멈춰서 외딴곳에 있는 궁을 바라보
용설란 (龍舌蘭) 2부: 문 너머의 이야기 w. 주인장 형원은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서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확인한다. 창밖으로 달빛만 새어 들어오는 불 꺼진 방. 그제야 꿈에서 깨었음을 자각한 형원은 얌전히 기현의 뺨 위에 올려진 제 손을 천천히 거두었고, 기현은 잠결에도 그것이 아쉬웠는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형원의 품에 안겨 들어온다. 아, 매
용설란 (龍舌蘭) 2부: 문 너머의 이야기 w. 주인장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 지도 2 주 정도 지날 즈음이 지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제 방 앞에 얌전히 앉아 밤새 강녕했느냐 묻는 기현에 형원이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 부탁한 이후로 기현은 옷방 앞에서 멀뚱히 서 있다가 형원이 나오면 고개만 꾸벅 숙여 안녕히 주무셨느냐 묻는 것이 다였다. 형원은 그마저도
용설란 (龍舌蘭) 2부: 문 너머의 이야기 w. 주인장 기현은 저가 궁에서 머물던 방보다도, 형원의 별채에서 썼던 방보다도 좁은 방 안에 우두커니 서서 둘러본다. 아까 형원이 뭔가 달칵이더니 환해졌는데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기현은 어두운 방 안에서 벽을 더듬거리다가 제 손끝에서 달칵하며 눌리는 것에 놀라 손을 뗐고, 그와 동시에 하얗고 밝은 빛이 터져
용설란 (龍舌蘭) 2부: 문 너머의 이야기 w. 주인장 이상한 꿈이었다. 민속촌에서나 볼 법한 옛날 건물이 덩그러니 놓인 숲 속이었다. 그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은 그곳에 꽤 오래 머물러 있었던 듯, 익숙하게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문득 때가 되었음을 알았는지 수풀 쪽으로 가서는 풀을 헤치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는 장면이 바뀌었나? 자신이
용설란 (龍舌蘭) 1부: 순백의 산신 w. 주인장 기현은 제 손을 더 강하게 쥐어 오는 이를 결국 뿌리치지 못하고 강녕전에 다다른다. 내관의 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금상의 침전 앞에 도착한 기현은 기척도 없이 대뜸 문을 열어 젖히는 형원의 뒤에 숨는다. 감히 지존에게 절을 올릴 수도 없이 단단히 잡힌 손을 빼 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형원은 제
용설란 (龍舌蘭) 1부: 순백의 산신 w. 주인장 기현은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가는 듯했다. 그를 지켜보는 별궁의 궁인들은 어찌 대군의 건강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시는가에 대해 걱정을 금치 못하였으나, 그의 상태를 되려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도 이 넓은 궁에 필시 있을 터이었다. 기현의 잔기침은 날이 갈수록 거세어져, 걸음을 걷다가도 멈춰 서서는 몸을 웅크
용설란 (龍舌蘭) 1부: 순백의 산신 w. 주인장 형원은 외출할 채비를 마치고 기현의 침소로 향한다. 그에게로 향하는 걸음 하나하나가 무거웠으나, 결국 자신의 선택이며 그것이 그에게도 더 나은 일일 것이라 스스로 되뇌어 본다. 형원이 기현의 침소 앞에 다다라서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면, 꼭 그 앞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는 듯이 기현이 맑은 얼굴로 은은한
용설란 (龍舌蘭) 1부: 순백의 산신 w. 주인장 형원의 별채에서의 기현의 하루는 동이 트고서도 늦게 시작되었다. 궁에서와 달리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면 언제나처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저를 반겼고, 뜰에 나가 산책을 하다 보면 형원이 제 방 창문에서 저를 불렀다. 탕약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투덜거리며 침소로 가서 그가
용설란 (龍舌蘭) 1부: 순백의 산신 w. 주인장 언제 세상에 났는지, 언제 세상을 뜰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런 나를, 인간들은 선인이라 불렀다. 어느 날, 하늘이 내게 말했다. '연정을 다 하면 용설란은 만개하게 되리라.' 달가운 천명이었다. 내 그대를 만나, 그대로 인해 내가 눈을 감을 수 있으니, 내 삶은 그걸로 되었다. 이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