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darling by 달링

* 무간도 양금영×진영인

* 첨밀밀 여소군×샹치(MCU) 웬우

1. 어제보다 오늘이 더 고된 하루인지, 내일은 오늘보다 여유로울지 퇴근하는 당사자들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아침은 든든하게 먹었으나 오랫동안 추적해 온 지명수배범은 영인의 점심시간을 길바닥에 쌀국수 엎어버린 듯 날려버렸고 금영은 웬 정신 나간 놈(이성은 있지만 제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잡범) 때문에 영인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했던 넥타이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그래도 나쁜 하루는 분명히 아니었다. 일기 예보와는 달리 저녁까지 온다는 비는 낮에 잠깐 내리고 다음 날로 미뤄졌고,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게 일반 시민들에게도 경찰들에게도 좋은 거지만 갑자기 야근을 하게 생겼다던가 다음 날까지 집에 못 들어간다던가 하는 일 없이 둘이서 손을 살며시 잡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여기 많이 아팠겠다.”

“살짝 긁힌 정도인데요. 약도 발랐으니 금방 나아요.”

둘의 보금자리로 가는 길의 마지막 엘리베이터 안에서 영인은 금영의 턱밑을 손가락 끝으로 콕콕 긁었다. 직사각형 반창고가 금영의 반듯한 턱 일부를 가리고 있다. 자기는 잡혀갈 짓까지는 아니었다며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생긴 흔적이다. 심한 상처는 아니지만 주변에 있던 이들 몇 명은 자기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지저분하고 날카로운 쇠붙이가 금영의 턱을 긁었고, 그를 잡아당기려다가 넥타이를 찢었다. 제압당한 그가 끌려가고 누군가가 알아서 금영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소독한다. 금영은 너덜너덜하게 망가진 넥타이를 더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잘생긴 얼굴에 상처라니 이게 뭐야.”

“그렇다고 못생겨진 건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긴 해.”

영인이 금영의 턱에 입을 맞추고 금영은 영인의 뒤통수를 탐스러운 복숭아처럼 움켜쥔다. 물기 어린 소음은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림과 동시에 사라진다. 서로를 잃지 않도록 둘은 다시 손을 맞잡는다. 현관까지 스무 걸음이 남았다.

2. 비가 온다더니 결국엔 오지 않는 듯하다. 혹시 몰라서 기다란 우산 하나를 들고 온 웬우는 가게 앞에서 애매하게 서성거렸다. 소군은 오늘 마감 담당이라 늦을 것 같다고 어제 자기 전에 한 번, 오늘 아침에 한 번 더 얘기했다. 피곤하면 먼저 자도 되고, 다른 사람이랑 약속을 잡아도 되고, 외박을 한다면 자기한테도 문자를 남겨달라고 부탁하면서. 딱히 만날 사람은 없었고, 먼저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고, 굳이 집을 두고 다른 곳에서 잘 생각은 없다.

우유부단한 면도 있고 덜렁거려서 주변으로부터 잔소리 들을 때가 많다며 머쓱하게 웃기는 했지만 소군은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다. 웬우는 그렇게 생각한다. 마지막 손님이 답답한 걸음걸이로 나온 후에도 정리가 다 되었는지 불은 다 껐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듯했다. 가게 불이 꺼지기까지 몇 분이 더 소요되었다. 오늘의 운영이 종료된 가게에 눈인사를 한 소군은 뒤를 돌아보고 방긋 웃는다.

“웬우.”

“늦게까지 고생했구나.”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었는데. 우산도 고마워요.”

“비가 온다더니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지만.”

“우산 없을 때 비 내려서 젖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소군은 웬우에게서 길다란 우산을 건네받는다. 손잡이는 소군의 손으로 감싸 쥔 것보다 조금 더 길고 원단은 웬우가 즐겨 입는 겉옷처럼 심플한 검은색이다. 한 손에는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준 애인의 손을, 다른 손은 그에게서 가져온 우산을 잡는다. 지팡이처럼 우산 끝이 거칠거칠한 바닥을 톡 톡 톡 두드린다. 두 사람의 발소리에 맞춰서. 심장 박동과 화음을 만들며.

“오늘 많이 바빴을 것 같은데….”

“그랬던 것 같지만, 웬우가 와줘서 별 상관 없어졌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인지.”

다른 거 다 상관 없고 흥미 없고 당신이 곁에 있어서 기쁘다는 애정을 가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웬우는 작은 숨소리도 호들갑 떠는 것으로 비칠까 봐 꾹 참고 낮은 웃음만 흘린다. 가볍게 잡은 손은 등나무 덩굴로 자라난다. 두 사람은 더 꼭 붙는다. 여느 날처럼 평범하고 반짝이고 보잘것없고 특별한 달과 별 아래의 먼지 묻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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