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영영인] 빙수 먹으러 가요

darling by 달링

* 무간도 양금영×진영인

옆 테이블 학생들은 10대답게 먹성도 좋아서 한 사람 앞에 한 그릇이었지만, 파릇파릇한 시절이 많이 지나버린 두 사람으로서는 빙수 한 그릇 나눠먹는 게 적절했다. 곱게 갈린 얼음에 시럽이 뿌려져 더 달달해진 과일 토핑, 생일 선물 포장에 예쁜 포인트가 되는 리본처럼 올려진 아이스크림 한 스쿱까지. 평소 시간을 바쁘게 보내는 탓에 이토록 여유로운 시간은 오랜만이었고, 잔뜩 신난 영인이 새로 나온 맛 포함해서 세 그릇 시켜 먹자고 했으나 막상 실제 양(다른 사람이 주문해서 나온 것)을 보니 의욕이 겁을 먹고 몸뚱이를 절반으로 굽혔다. 그렇게 시킨 한 그릇도 느릿느릿 먹는 중이다.

“아깐 더워서 그냥 아무 그늘 가서 누워버리고 싶었는데 여기서 너랑 같이 한가하게 이러고 있으니까 좀 살만하다. 맨날 오늘 같았으면 좋겠네. 내일도 그냥 출근하지 않고 이러고 싶어.”

“내일도 이러려면 은퇴해야 할 텐데. 그러면 어때요? 돈은 내가 다 벌게.”

“말은 똑바로 들어야죠, 양 반장님. ‘너랑 같이’라고 했잖아.”

“나 대신 데려가면 되잖아요.”

금영이 턱짓으로 아까 영인이 뽑았던 인형 고리(고리가 달렸지만 달 곳이 따로 없어 손에 들고 다녔음)를 가리켰다. 동그란 눈동자가 달린 곰돌이 인형일 뿐인데 너랑 닮은 게 있다며 신나게 달려간 영인이 인형 뽑기 기계 도전 3회차에 뽑은 물건이다. 인형들이 가득 쌓인 기계에서 탈출한 인형의 머리를 쭈물거리는 영인은 쪼그만 양금영도 커다란 양금영도 바보 같다고 놀렸다. 애인을 바보라고 하다니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항의하는 내용을 흘려보내는 목소리는 여전히 영인에게 무르고 부드럽기만 하다.

“안돼. 미니 금영은 빙수 싫어해.”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마음으로 통했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눈동자가 똑같이 휜다. 같은 박자로 웃는다. 지지난 주까지 이곳에서 매니저로 근무했던 아명이 둘을 봤다면 왜 저러냐며 자신의 양 팔뚝을 벅벅 긁으며 지나갔을 것이다.

다음 데이트 때에도 또 오자고 했지만, 갑자기 아침부터 영인이 몸살로 끙끙 앓는 바람에 약속은 파투 나고 말았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던지. 금영은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다며, 나 생각하면 전화 끊고 푹 쉬라고 했다. 통화가 끊기자마자 급속도로 차갑게 식는다. 길거리의 먼지와 매연 냄새가 꿉꿉하게 목구멍을 누른다. 의욕을 잃은 금영은 저번에 갔던 빙수 가게에 홀로 들어간다. 똑같은 메뉴를 시킨다. 저번보다 능숙한 직원이 만들었는지 더 예쁘게 담긴 빙수를 변명을 늘어놓는 잡범과 겹쳐본다. 스푼이 아이스크림을 깨고 얼음 숲을 마구 헤집는다. 세 스푼 떠먹었을 때쯤 머리가 너무 아팠다. 금영은 누구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을까? 매장에서 인기 아이돌 그룹의 최신곡이 흘러나오고 창가 자리에 앉은 20대 초반의 풋풋한 학생 둘이 가사를 따라 부른다. 영인의 집 근처에는 허름하지만 괜찮은 죽집이 있다. 그곳을 들러야겠다며 절반 정도 남은 빙수를 두고 일어섰다.


* 빙수가 남은 그릇은 매장 식기 반납 코너에 갖다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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