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테르페의 소설

[HL]궂은 날씨

기본 타입 일반 글 커미션 샘플

Receipt

──────

문호 스트레이독스 나카하라 츄야 HL 드림 페어 - 『궂은 날씨』

Keywords : 상처 / 비 / 배신

에우테르페의 소설 中 가을 타입 글 커미션

ㄱㄱ님 무료 리퀘스트 ⓒ리이네

..........

2022.06.06


궂은 날씨

분명 새벽달을 보고 오늘은 일진이 좋겠구나, 싶었더랬다. 구름이 달을 가리지 않았고 달빛이 더할 나위 없이 밝았으니까. 그러나 해가 밝아오면서 구름이 조금씩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지상에 빗방울을 조금씩 흩뿌렸다.

투둑. 툭. 땅을 적시는 소리가 곧 거세지더니 강한 빗줄기가 몰고 오는 소음으로 세상이 시끄러운 동시에 고요함에 먹혀들었다.

빗소리로 시끄러웠으나 세상의 소리를 먹어버려 그 외에 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한 여성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그대로 맞으며 시궁창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아가타 마야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정확히는 관계에 기대는 것을,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을 포기해버린 것에 가까웠다. 제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삶의 목표였던 친우의 죽음 이후 영혼을 모두 소모해버린 것 같았다.

그의 부재에 절망을 씹어 삼킬 새도 없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발버둥 쳤고, 남은 것은 인간 불신과 지독한 결과주의였다.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무엇이 옳고 그른가는 이제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사쿠노스케는 이미 죽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니 그의 죽음이 가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어떤 이유가 있었다 한들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가 쓴 소설을 보겠다는 삶의 목표를 잃은 그녀는 이제 사쿠노스케가 만들어낸 소설의 조연조차 될 수 없었다.

세계를 창조해 낼 이가 없으니 방관자 또한 될 수 없다. 그가 만든 그 소설 속 세계는 영영 사라져버린 것이다.

멍하니 죽은 친우를 떠올렸다. 오랫동안 비를 맞아서 피부가 아팠다. 아직 겨울이 아닌데도 입김이 나오는 것도 같았다.

아가타 마야는 포트 마피아의 행동대장이었다. 오늘은 부하들을 이끌고 요코하마의 자잘한 뒷세력들을 정리하는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여느 때와 똑같았다. 지루했다. 세계는 소설 속 세계처럼 특별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그저 인과에 따라 쳇바퀴처럼 일상 속을 돌고 돌 뿐. 사람들은 책 속 등장인물이 아니었다. 활자 밖에서 살아 숨 쉬는 절대자였다.

원래부터 아랫사람들에게 평판이 좋지는 않았었다. 제가 워낙 부하들을 험하게 굴리는 편이기도 했고, 뒤로 자신을 씹어대는 소리에는 이미 익숙했다.

그런데 이번엔 질이 나빴다. 습관처럼 부하를 부려 마실 것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 문제였다. 설마, 안에 약을 탔을 줄은.

몸에 한기가 돌아야 할 터인데 열이 올라 날숨이 뜨거웠고,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시야가 흐릿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지가 않았다. 상황판단이 느려졌다.

도대체 뭘 먹인 거지. 이래 놓고 본인들은 저를 시궁창에 버려두고 훌쩍 떠났다. 보스가 알면 가만 안 둘 텐데 도대체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이래서 마피아들이란.

쉴 곳을 찾아 잘 움직이지 않는 발을 떼어 억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몸이 뜨거웠다. 비 때문에 차게 식어야 할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신을 잃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테고, 나는 여기서 저체온증으로 죽거나 이 이상한 약효 때문에 죽거나 하겠지.

아, 아쉽다. 사쿠노스케. 네가 죽은 이후로 새로운 목표가 생겼었는데.

가장 맑고 화창한 날, 모든 것을 손에 쥔 다음에 죽고 싶었다. 이런 궂은날, 부하의 배신 따위로 억지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괜찮아. 이렇게라도 너를 빨리 만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겠지. 나쁘지 않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며 속을 다독였다.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의연함으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처절한 상황에 대처했다.

드디어 소중한 가족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는 네가 만든 이야기를 엿볼 수 있을까. 눈꺼풀이 무거웠다. 몽롱한 정신으로, 백지가 된 머릿속 우주를 부유하며 제 의지로 시야를 닫으려 할 때였다.

“─아가타!!”

환청인가 했다.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아, 환청이구나. 나도 참, 그렇게도 살고 싶었나. 마지막까지 이 목소리에 구원받을 줄은...

“아가타!! 뭐 하는 거냐, 정신 차려!”

몸이 거칠게 들어 올려졌다. 무릎 밑에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는 등을 받친 자세로 누군가 자신을 안아 올리는 게 느껴졌다. 힘이 풀려 축 늘어졌다. 젠장... 그가 욕설을 집어삼키고는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비가 멎었다. 아니, 멎은 게 아니라 근처에 있는 건물에라도 들어왔나 보다. 근처에 비를 피할 만한 건물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마야는 멀어져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자신을 사쿠노스케에게서 또다시 멀어지게 만든 게 누구인지 확인해야 했다.

“...나카하라.”

“그래, 빌어먹을. 이제야 정신이 드는가 보군. ...어이 아가타, 너... 몸이...”

아까는 분명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것 같은데. 여성의 몸은 지금 이보다 냉할 수 없을 정도로 차게 식어 있었다.

츄야는 그녀를 벽에 기대게 해 앉혀 놓고는 뺨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온기를 머금은 손가락이 피부를 느리게 쓸었다. 차가웠다. 잇새로 다시 한 번 낮게 욕설을 읊조리고는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이 자식들이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감히 상사를 이따위로 대해? 아가타, 너는 왜 당하고만 있었던 거야? 너 정도라면──”

“그냥... 이제 갈 때가 되었나 보지.”

“무슨 말 같잖은 소리를...”

그가 으르렁거리며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자신을 보게 했다. 시야가 흐릿했으나 정신을 부여잡으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끙끙거리고 있었다.

이제 곧 갈 때가 되었다는 그 말과는 달리 현실에 남아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래, 좋은 발버둥이다. 아직은 안 된다. 아직 이 여자를 잃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죽어야 한다면, 그걸 이루어주는 건 반드시...

“널 여기서 죽게 내버려두는 건 쉬워. 하지만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다.”

“왜......?”

“너 혼자 편해지려고 하는 꼴이, 보기 싫으니까.”

부하의 배신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런가보다, 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삶의 많은 것을 이미 포기한 상황인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기 자신마저 포기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나카하라 츄야, 자신이 두 눈 뜨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상 아가타 마야는 죽음으로 도망칠 수 없다. 복수를 할 거면 복수를 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 복수의 목적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다자이를 닮은 여자를 보는 게 찝찝했다. 금방이라도 곁을 떠나버릴 것 같아서. 몸에 감은 붕대가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같았다. 곧 부서질 것 같은 아스라함으로 전장에 뛰어드는 모습이 불안했던 것도 같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지. 지금 나카하라 츄야가 아가타 마야에게 가지고 있는 이 감정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동료애? 연민? 동정?

이 모두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무언가 같기도 했다. 이상한 여자였다. 아가타 마야는, 만들어진 자신의 삶을 파고든 가장 불가해한 존재였다.

“...일단 돌아가자. 상황 전달은 내가 알아서 하지.”

“...”

“정신 차려. 잠들면 가만두지 않을 거니까.”

“...어련하시겠어... 간부님.”

자신의 겉옷을 등 위로 둘러주고 그녀를 들쳐업는다. 축 늘어진 몸이 시체처럼 차가웠다. 그녀의 소망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비록 오늘이 화창하고 맑은 날이 아니라 해도, 그녀의 목적인 모리 오가이의 목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해도.

나카하라 츄야는 아무것도 몰랐다. 오다 사쿠노스케 사후 새로 심어진 아가타 마야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녀가 무슨 심정으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지.

당연히 몰랐다. 그녀가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으니까. 아니, 말했다면 이미 내부 처형당하고도 남았을 목적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그가 용납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다시는 두 눈 뜨고 사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아가타 마야는 다자이 오사무와 많은 점이 비슷했으나 완벽히 다른 존재였다.

처음으로 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 이것이 무슨 감정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니면 영영 모르고 싶은 것일 수도. 그녀는 아직 삶의 의지를 꺾어서는 안 되었다. 이거 하나만은 확신했다. 아직 쓸모가 있었다. 그래, 유용한 패를 벌써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러니까...

“......젠장.”

건물 밖을 나서자마자 쏟아지는 장대비가 온몸을 강타했다. 정말이지, 날씨가 좋지 않았다. 오늘은 일진이 나쁘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