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테르페의 소설

[HL]아직은 이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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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노말 키스 시미즈 사토루 HL 드림 페어 - 『아직은 이른 밤』

Keywords : 야근 / 일상 / 고백

에우테르페의 소설 中 가을 타입 글 커미션

S**님 무료 리퀘스트 ⓒ리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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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1


아직은 이른 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부드러운 봄바람이 스며 들어온다. 어두운 밤의 향기를 머금은 공기는 기분 좋은 상쾌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단 한 사람만은 그 상쾌함을 마음 놓고 만끽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퇴근한 늦은 밤. 호다카 디에루는 사령관실에 남아 어떤 사건에 대한 시말서를 수도 없이 써 내려 가고 있었다.

“또 시말서가 한가득, 아아. 절대 오늘 하루로 끝날 양이 아닌데.”

팀 검은 고양이의 숙명이었다.

사령관인 그녀의 의지에 따라 파라노말의 안전 확보, 체포 후 갱생을 모토로 활동하는 이 팀은 그만큼 실적도 낮고 사건의 발생 빈도도 높았다.

사령관은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존재다. 즉, 그녀가 이 모든 경위에 대해서 낱낱이 보고하고 문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디에루는 풀이 죽은 기색으로 책상 위 서류 더미 위에 널브러졌다.

“아으으... 팔이야. 어깨도 결리고. 또 시말서, 시말서, 시말서... 하물며 경위서도 아니고 시말서야. 설마 이렇게 될 걸 알고서 스텔라가 일부러 나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나...”

...설마, 아니겠지.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려 머리를 휙휙 내젓고는 한숨을 폭 내쉰다. 이건 늦퇴도 아니고 야근 확정이다. 땅땅. 오늘도 일찍 자긴 글렀다.

펜을 너무 오래 잡았더니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했다. 나가서 뭔가 사 올까. 카페테리아는 문을 닫았을 테고, 근처 편의점이라도──

“하아. 나가기도 귀찮아... 어라?”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인기척이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앞에 하얀 비닐봉지가 쑥 내밀어졌다.

“──사토루 씨. 퇴근한 거 아니었어요?”

“사령관을 혼자 두고 가는 건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말이야.”

봉투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허기진 위장이 곡 소리를 낼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몸이 긴장했다. 디에루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봉투 안을 살폈다.

“그리고 슬슬 배고플 시간이고.”

안에는 맛있어 보이는 오렌지색의 튀김이 검은 플라스틱 케이스에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디에루는 반사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걸 먹으면 시말서도 힘내서 열심히 쓸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아,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사토루 씨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이게 무슨 무례람.

“도시락까지 사 와 주신 거예요?”

“이 앞 도시락집의 가라아게는 정말 최고거든. 게다가 밤늦게까지 하니까.”

디에루는 괜히 슬며시 웃으면서 그를 떠보았다.

“사토루 씨 역시, 제 마음 다 읽을 수 있는 거죠?”

그 말에 사토루는 픽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의 리본으로 묶인 옆 머리를 슬쩍 매만졌다.

“─사령관이 가라아게를 제일 좋아한다는 것 정돈, 금방 알 수 있는걸. 항상 사령관을 보고 있으니까.”

코끝에 진실의 향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나를 보고 있다고.

그 마지막 한 마디에 가슴이 저릿했다. 지난번 가상현실 SNS에서도 그러더니 현실에서도 그는 자신을 다정한 말로 흔들어 놓고 있었다.

배려심 넘치는 태도와 따스한 말투로 감정을 휘저어놨다. 디에루는 머뭇거리다가 봉투를 열어 도시락을 꺼냈다.

“고,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같이 먹을래요?”

“난 괜찮아. 사령관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걸? 아하하, 농담. 나는 이미 먹었어.”

“그으렇구나...”

애매한 눈빛으로 그를 흘기자 그가 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

“...왜 그래? 목덜미가 붉어졌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차피 이것은 저만의 감정이었다. 그의 마음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기대를 해서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바라고 마는 것이다. 자꾸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정말로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맞는지. 나를 배려해서 해주는 말이 아닌 건지, 알고 싶었다.

*

“...맛있네요.”

“그렇지? 내 안목은 틀리지 않는다니까.”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토루가 자연스럽게 디에루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엄지로 훔쳤다. 괜히 낯이 뜨거워진 디에루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오늘 일어난 사건이요.”

“응.”

“...그때의 대형 폭파 사건과 관련 있는 인물이 사고로 휘말렸다고 들었어요.”

“...응.”

사토루는 디에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아야리와 부모님이 사망했던 그때의 일을 꺼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마음을 읽으려 했으나 역시나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표정을 살폈다. 무거운 얼굴이었다. 끔찍했던 과거의 일을 말하는 것 치고는 평온한 어조였고, 그런 사건과 관련된 원흉의 죽음을 입에 담는 것 치고는 담담한 태도였다.

“힘들면 내가 대신 할까?”

“괜찮아요. 사령관은 나인걸.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의젓하게 말하고 있지만 어깨까 가늘게 떨렸다. 디에루는 지금 과다하게 복잡한 감정 상태를 겪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아야리의 마지막 한 마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너만은 빛을 보며 걸어가 주었으면 좋겠어.’

─빛. 디에루는 지금 밝은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희게 빛나는 안개 안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감정들이 떠다녔다. 슬픔, 회한, 증오, 안타까움...

어둠 속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원망했던 존재가 사건에 휘말려 명을 달리했다. 디에루는 그것에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이상한 감정이었다.

“미안해요. 괜한 얘기를 꺼내서.”

“아니야. 지금 오늘 일어났던 일 시말서를 쓰는 거지?”

“오늘 일은 사실 따지자면 시말서가 아니라 경위서이긴 한데... 뭐, 이것도 많은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편하려나요.”

에헤헤, 웃으면서 사토루를 바라보자 그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디에루가 고개를 갸웃댔고, 남자는 그녀의 생각이 다른 곳으로 튈세라 서둘러 입을 열었다.

“나도 조금 도울게. 일찍 끝내야 사령관도 퇴근할 수 있잖아?”

“아... 그럼 조금만 신세 질게요.”

“조금만이 아니라 많이 의지해줘.”

그러기 위해 여기 있는 거니까. 뒷말은 가슴 속으로 삼켰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적절한 시기를 보고 가장 좋은 장소에서 그녀에게 감정을 고백할 것이다. 구 스텔라의 자료실로 사용하던 이런 사령관실에서가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된 장소에서.

남자는 다시 서류 작업을 하기 시작한 그녀의 맞은편에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밤은 아직 길었다. 비록 시말서를 쓰는 일이기는 해도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기에 나쁘지만은 않았다.

*

‘하아... 졸려.’

배도 부르고 안심이 되어서일까, 급격하게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옆을 흘긋 보니 사토루 씨는 의외로 열중해서 서류 작업을 돕고 있었다. 집중해서인지 자신이 몰래 쳐다보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자꾸 가물거리는 눈에 힘을 주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몸이 천천히 폭신한 서류 더미 위로 기울었다. 디에루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이 뒤집혔다. 쿠울... 수마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그 모습에 사토루가 잔잔히 웃으며 턱을 괴고 잠시 그녀를 지켜보았다. 많이 피곤했는지 꿈쩍도 하지 않고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다. 그는 슬며시 일어나 제 겉옷을 벗어 그런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인기척에도 깨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조용히 몇 마디, 입에 담아보았다.

“좋은 꿈 꿔. 사령관, 아니... 디에루.”

색색 숨을 고르게 내쉬며 등이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한다. 머리 위에 다정히 키스해주며 그가 중얼거렸다.

“언젠간 제대로 말할 테니까.”

당신을.

“좋아한다고.”

이전부터, 계속.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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