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주 탐사 연구원으로 뽑힌 사람 중에서 너는 손에 꼽힐 정도로 바보 같은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리 바보 같았느냐, 너와 관련된 모든 일화가 바보 같아서 하나를 꼽아서 말하기도 어렵다. 대표적으로 처음 면접장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면접관이 심우주로 나간 경우 통신망 구축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너는 일반적인 통신망 구축을 하는 방
아, 사람에게는 소유격을 붙일 수가 없습니까? 미안합니다. 나의 당신. 나, 나의 몸, 나의 생각, 나의 방, 나의 복도, 나의 격문, 나의 정원과 나의 바이옴과 나의 셔틀은 가능한 말이지만 나의 당신은 불가능하단 뜻이군요. 그러나 저번에 접했던 예외적 허용을 적용한다면, 당신은 나를 ‘나의 비늘’ 이라고 불러줘도 좋습니다. 당신은 비늘이 없지만, 당신
시각 정보 없는 기록이라 당신의 겉모습을 잊어버릴까 두렵습니다. 이에 남깁니다 : 나보다 한 뼘 반 작은 키(내 손으로 말입니다), 뿔 없이 매끈하고 둥근 이마, 혈관이 비쳐 보이고 비늘 없이 부드러운 살갗(당신이 오랜 우주 생활의 결과라 말했던 것), 밟아 녹은 눈처럼 질척한 회청색 홍채, 휘지 않은 콧대, 미미한 헤모글로빈의 색이 비치는 입술. 나의
모든 이야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나는 너의 생을 가지고 싶었다. 바라는 것이 없어도, 감히 욕심내지 못하겠다 말해왔어도, 단 하나 그것만을 바랬다. 오랜 세월을 세계와 함께했으니,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내 몸이 부서지는 것처럼 아팠다. 지난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돌리고 싶다고 하기엔 너무 먼 길을 떠나왔다. 뒤로 갈 수 없는 길을 계
모두바니는 바니사우루스들이 살고 있는 행성입니다. 모두바니에서 태어난 모든 생물들은 바니사우루스처럼 토끼같은 생김새인 것이 특징입니다.
2022년도 그림 2023년도 리메이크 버전
0. 사랑에 빠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1. 까마득히 오랜 시간을 살았다. 탄생도 기억나지 않았고 끝을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정말 오랜 시간이었다. 누군가 나이를 물어온다면 한참을 헤아리다 까먹었노라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게 되면 모든 것이 풍화된다. 형체 뿐 아니라 기쁨과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