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웹툰 불매운동 + 여주판의 무성화에 대하여

몸도 안 좋고 해서 마지막까지 이걸 언급을 해야 하나 고민하긴 했는데, 일단 체력이 허락하는 안에서 다뤄볼까 한다. 뭐를? 네이버 웹툰 불매 운동을. 원래 하려던 여주판 얘기도 맥락이 일부 이어지는 부분 있어서 그런다.

뉴스도 나고 해서 알고 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네이버 웹툰에서 창작의 자유를 빌미로 여성혐오 표현을 전혀 거르지 않고 방치해둔 일로 불매 운동이 일었는데, 이를 항의를 무시하는 걸로 모자라 조롱까지 하는 바람에 10-20대 여성 이용자 수가 20% 가량 빠졌다. (관련 기사 :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64759.html

)

제대로 된 사과나 개선 사항 없이는 불매 운동이 끝나지 않을 게 뻔한 상황에서 얼레벌레 심사일에 맞춰 적당히 떨어트리고 뭘 잘못했다는 건지 알 수 없고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건지도 애매한 제목만 사과문을 올리는 걸로 대충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관련 기사 :

https://www.khan.co.kr/article/202411221118001

)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짚어두고 싶은 부분이 몇 가지 있다. 

1) 작가가 플랫폼에 피해를 입힐 때는 이를 제재할 조항이 계약서에 있는 걸로 아는데 이리 반대로 플랫폼이 작가에게 피해를 입힐 때의 상황에 관련된 조항이 계약서에 없는 걸로 안다. 하면 이를 공정한 계약으로 볼 수 있는가? 공정한 계약으로 볼 수 없다면 작가가 플랫폼에 실질적으로 종속된 관계라는 지적은 합당하지 않은가? 

2) 종속된 관계로 보는 게 합당하다면 웹툰작가들에게 MG는 타당한 제도인가, 아니면 원고료를 주는 게 타당한가. MG가 실질적으로는 원고료를 주는 대신 빚을 달아두는 거나 다름 없는데 이는 하청 기업이 자립할 수 없게 대기업들이 줄 돈으로 장난질 치는 방식보다 더 악질이다. 유통 권력을 쥐고 있는 플랫폼과의 거래를 이어갈 경우 이는 엄연한 빚으로 남는다. 

3) 수수료는 30~50%까지 떼면서 작가에 대한 보호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번 사태로 발생한 손실분은 작가와 출판사에게도 엄연히 존재하고 이 사태 자체를 네이버 웹툰이 유발했으나 보상할 리도 만무하고, 당장 웹툰작가들은 필명을 내거는 순간 생계 위협이 닥칠 걸 아니 익명으로만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작가들에게 그림 그릴 툴을 자신들이 제공을 해주는가, 아니면 그 작업량을 요구하면서 어시스트를 저들이 붙여주는가. 대체 그 수수료를 받아가며 지원하고 있는 게 대체 뭔가? 

4) 혐오 표현만 하더라도 일관되었으면 차라리 욕이라도 덜 먹었을 걸 집게손은 고쳐 그리는 등 인셀들 눈치는 오지게 보면서 '퐁퐁남' 표현은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던 척 하던 주제에 외부 자문위원회를 마련한다고 말은 하는데, 뭐가 문젠지는 명시 안 하면 뭘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건가? 개선할 맘이 있긴 한가? 이전부터 기안84 웹툰에서부터도 지적되어온 여성/장애인 혐오 표현 문제가 있었는데도 여태 문제 의식이 아예 없었는데 소비자는 뭘 믿고 이 공허한 약속을 믿어야 하는가? 검열을 할 거면 명확한 기준선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입을 꾹 닫고 있으면서 인셀들의 감성에 맞춘 선택적 검열이 앞으로도 계속 되지 않을 거라는 약속조차 없지 않은가.

5) 네이버 웹툰만이 아니라 시리즈 또한 불매 운동에 같이 묶이는데 과연 웹소설이라고 웹툰과 대단히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난 여름 퉁구스카 작가의 <제국사냥꾼>의 외전에서 이번 일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는데, 작가가 혐오 표현을 하는 것 자체는 그렇다 쳐도 이게 아무 필터링 없이 게시 된다는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다못해 편집자가 붙어있다면 '이거 이대로 올리면 논란 생길 거 같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어볼 만한 내용이 다이렉트로 올라가는데, 작가가 플랫폼에 입히는 피해에 대한 조항은 관리 인력을 뽑기 싫은 네이버의 비용 전가에 불과한 게 아닌가.

이런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시리즈 쪽을 굳이 볼 필요를 못 느끼는지라 가급적 여주판은 다 살펴보며 얘기를 하려고 하지만 불매 운동에 참여하는 의미로 시리즈를 쓰지 않으려 한다. 단행본으로 나오는 건 살펴볼 용의가 있으니 리퀘박스에 남겨주면 참고하겠다.

네이버 웹툰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 어떠한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여성 혐오를 용인하였고, 여기에 더해 플랫폼 봄툰에서도 자학적 선택을 한다. 

우후죽순 소설의 웹툰화를 하며 원하는 만큼의 수익이 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탕쥐 작가의 <장미 저택의 도도훈 씨> 웹툰을 사전협의와 달리 6-7화 내로 조기완결을 내라며 통지를 했고 이에 웹툰작가와 원작자가 모두가 항의를 했지만 회차연장을 거절하며 웹툰에서 원작 표기를 빼고 소설을 플랫폼에서 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거기에 모자라 <새디스틱 뷰티>의 그림작가 이금산 작가의 신작으로 폴닉의 <역지사지>라는 소설의 웹툰화를 했는데... 미성년자 성폭행, 불법 촬영 및 유포 등 현실의 여성이 피해를 입는 범죄를 페티쉬화한다는 비판을 받을 법 하단 생각은 안 해본 듯 하다. 이 페티쉬화에 모욕감을 느낀 소비자층이 등을 돌리는 것 또한 당연히 벌어질 법한 일 아니던가.

플랫폼들의 자학적 운영을 보면 한숨이 멈추지 않는데 이미 그간 포스타입이든 트위터에서든 블루스카이에서든 지적해온 부분이다. 현실의 범죄를 연상시키는 페티쉬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여성들이 느끼는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데 이에 둔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모르겠고, 웹소설을 원작으로 웹툰화를 하든 드라마화를 하든 원작에 대한 존중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데에 환멸을 느끼는 건 창작자만이 아니다. 이미 듀나 작가가 드라마 <정년이>에 대한 비평으로도 짚어주었고, 기존의 팬층만이 아니라 예민한 소비자들도 느끼고 있다.

인셀 장사하고 싶으면 당당하게 하면 욕이라도 덜 먹을 것을 아닌 척 한다고 고생이 많은데 이들이 절대 인셀 장사를 한다고 밝히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이유는, 이전부터 강조해왔듯 문화산업의 가장 큰 손이 10-20대 여성이라서가 맞다.

카카오에서 백덕수 작가의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이하 괴담출근)은 사전연재 2800만 뷰를 찍었고 리디에서는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이하 데못죽)의 e북 일 거래액을 11억을 찍었다. 이래서 자꾸 여성 소비자를 잡아야 한다고 모든 마케팅에서 떠드는 거란 걸 이번 일로 모두가 실감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럼 그동안 이런 반응이 일어난 적 없는지도 바로 예상 갈 거다.

그래, 가장 큰 이유는 재미 없어서이긴 하다. 하지만 다른 이유 또한 명확하다.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데 불쾌한 게 없어서' 또한 중요하다. 백덕수 작가가 트렌드를 잘 읽고 만들어내는 작가인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백덕수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은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는 부분을 다루는 방식이다. 백덕수 작가는 갈등을 다루는 데 망설임 없다. 그 갈등을 다루면서 나올 수 있는 여러 시각을 고려하고 소설에 잘 녹여내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다. 백덕수 작가의 장점에 대해 자세히 다루라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니 이 부분은 일단 미래의 나에게 맡기겠다.

그간 여주판을 지켜보면서 침묵을 지켰던 건 아직은 성장하는 도중이라는 판단도 있었고, 또 내가 개인적으로 무협을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싯적에 읽었기 때문에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긴 하는데 그거랑은 별개로 호오를 따지면 불호다. 협을 추종한다는 거 자체는 뭐 그래 그럴 수 있는데 무협 세계관에서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과 영웅적 개인의 무력으로만 해결되지 때문에 유난히 친해지기 어렵다. 뭐 그런 거 때문이면 요즘 판타지랑도 친해지기 어렵지 않냐 싶겠지만 그래서 지금도 힘들어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해서 판타지에서 현대판타지, 로판까지 두루 살펴 보았을 때 지금의 여주판이 가지는 공통점은 타 장르보다 템포가 살짝 느린 작들이 많단 점이다. 여타 장르에선 주인공의 행동으로 보통 넘어가는 씬들에서도 대화가 진행되는 경우가 일단 좀 많다. 이건 뭐 그렇다 치자, 이렇게 하는 게 좋은 작도 있고 독이 되는 작도 있으나 이걸 구별해내는 것 또한 작가의 실력이니. 하지만 내가 기괴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여성주인공들이 '무성화'되는 작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우선 이것부터 말해둬야 할 거 같은데, 여주판 노맨스 자체는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동안 여성에게 로맨스가 강요된 문제는 그 세월이 워낙에 길다 보니 여성주인공 소설에 조금 괜찮은 남캐가 나오면 '연애해! 연애해!'를 외치는 사람만큼이나 러브 스토리 진행 중엔 '그거 말고 메인 서사는 어떻게 되는 건데!'를 외치며 대충 건너뛰어버리는 사람이 존재하니 '여기서 굳이 로맨스를 찾지 마시오'란 의미로 노맨스를 쓰게 된 거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맨스를 아예 기피할 이유는 또 없다. 저 '로맨스 싫어'의 의미는 그냥 남자랑 여자가 한군데 있으니까 이어줬단 식의 관성적 로맨스가 싫단 의미니까 기깔나게 쓸 수 있으면 로맨스 서사를 넣어도 된다. 물론, 이게 쉽다고는 안 했다. 

노맨스 자체는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무성화가 왜 문제라고 지적하고 싶으냐면 맥락이 달라서 그렇다. 안 그런 작들도 있긴 한데... 대체로 여주판 안에서 여성주인공들은 그들의 사회에 내재된 성차별을 목격하는 경우는 있어도 성차별을 직접 겪는 일은 비교적 적거나 아예 없다. 심지어 조연 여성캐릭터들은 성차별을 겪지만 주인공이 이를 직접 겪는 건 매우 드물다. 겪는다 해도 매우 낮은 수준의 성차별, 모욕성 발언 정도다. 승진에서 배제되거나, 연애/결혼/임신/출산처럼 사생활에 타인이 가타부타 간섭해들어온다거나, 의견을 내거나 요구를 해도 무시당한다거나, 남성보다 일에 대한 보상을 적게 받는다거나, 생면부지의 타인에게서 갑자기 공격 당한다거나 등등 다 늘어놓기엔 너무나도 많은 성차별들이 있으나 주인공은 이를 겪지 않는다. 모욕성 발언 또한 곧바로 주인공에 의해 반격당한다.

이렇듯 주인공은 엄연히 여성이지만 현실의 성차별과 너무도 괴리되어있으니 여주판을 보며 '여주판의 가장 판타지인 부분은 주인공이 여자란 점이다'라는 말이 나오는 게다. 이런 현상을 무성화라 부르지 뭐라 불러야 한단 말인가?

작가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다.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건 알겠는데, 대리만족보다 강력한 게 카타르시스다. 여성주인공을 다루면서 여성주인공이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피할 필요가 있단 말인가? 워낙에 피하는 경향성이 크다 보니 피하라는 권유(라고 하지만 무시하기 어려울)를 듣는 게 아닐까 미심쩍을 정도다.

늘상 하는 말이지만, 여성 소비자들은 문화산업에 있어 원하는 걸 제공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이래야 한다고 강요되는 것을 제공 받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이 사회로부터 얻은 비슷한 형태의 상처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여성이란 이유로 성차별을 당하지 않고 자란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고, 단지 자신이 가진 상처를 들여다보기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뿐이지. 하지만 그런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없다. 

사족 1. 열 때문에 골골해서 글이 좀 많이 거칠다. 감안해달라.

사족 2. 오늘 언급한 부분 관련해서 제일 거침없이 다루고 있는 건 여율령 작가의 <작가 죽이고 지옥 갑니다>가 아닐까 싶다. 사실 처음 나왔을 때는 마녀사냥 모티프라서 미심쩍게 바라봤는데 어려운 소재를 고른 것치곤 수작이다. 완결 나면 평할 예정이다. 힘내라, 미래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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