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문화사 속 여성 - 가부장 자본주의 안의 여성
여성은 언제나 일해왔다
이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어떤 주제를 다룰 땐 관련 데이터를 다시 취합한다고 시간이 좀 걸리는 걸 양해 부탁드린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각설하고,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지난 글들에서 한국 전쟁 이후 여성 이미지로 여공과 식모, 그리고 가정주부를 제시해왔다. 시대의 흐름이 만들어낸 이미지이기에 자연스럽게 깨닫기 힘들 수 있으니 다시 짚어주자면 여공과 식모는 미혼이었다. 이들이 결혼하면 가정주부가 되면서 일을 자연스럽게 그만두는 그림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라. 70년대까지도 여공이 있었지만 그 당시엔 결혼하면 여자는 자연스럽게 일을 그만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대였다. 요즘엔 상상하기도 힘들 텐데 '여성 25세 조기정년제'라고, 어디에 명시가 되어있던 건 아니지만 사회적 관습이 있던 시대란 말이다.
이 조기정년 철폐를 이끌어낸 '이경숙 사건'을 잘 모를 테니 조금 설명해주자면, 24세 회사원이었던 이 씨가 교통사고를 당해 배상금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당시 법적으로 명시된 정년은 55세였지만 "여성의 정년은 25세까지이며, 이후엔 퇴사해 가사에 종사해야 한다"고 서울 고법의 1심 판결이 떨어진다. 이게 왜 구체적으로 말이 안 되느냐면 교통사고처럼 사고로 인해 일을 못 하는 상태가 되면 사고가 없었을 경우 일할 수 있었던 정년까지의 기간에 따라 배상금이 판정이 되어야 한다. 사고 앞으로 일을 못 하게 된다면 55세까지 약 30년 남은 배상금이랑 25세까지 1년까지 남은 배상금을 두고 생각했을 때 어떤 게 합당한가?
그렇게 여성의전화, 여성평우회 등등 6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25세 여성 조기정년제 철폐를 위한 여성연합회’를 조직해서 항소하며 2심에서 1심 판결을 뒤엎어버리며 조기정년이 폐지된 게 1986년이다. 혼인/임신/출산으로 인한 퇴직 강요도 너무 당연히 있었기 때문에 이걸 금지한 남녀고용 평등법 제정이 1987년이고. 이게 다 누가 알아서 고이 쥐어준 게 아니라 여성계에서 투쟁해서 얻어낸 권리들이란 걸 잊지 마라.
위의 예에서 알 수 있듯 7080년대의 여성노동이라는 건 이런 수준이었다. 결혼 전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공장에서 일하다가 결혼하게 되면 가정주부라며 부업으로 내몰리는 게 기본이었다. 80년대 들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가부장 자본주의, 그러니까 남자가 밖에서 돈 벌어오고 여자는 집안일만 하는 그 성별분업을 기반으로 한 부의 축적 모델이 등장하는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게 제대로 기능할 리가 없잖은가. 그 시절 일간지들을 읽어도 금방 알 수 있는데, 가정주부들에겐 언제나 부업이 따라 붙었다.
농촌지역에서는 인프라가 없으니 그 인프라의 부재를 여성은 결혼하여 가정주부가 되는 순간 자신의 노동력으로 메워야 했고 당연하지만 시댁의 농사도 같이 지어야 했다. 통장 하나 없이, 남편이나 시가의 명의로 된 논/밭/과수원에서 뼈가 갈리도록 일을 해도 여성에겐 임금은커녕 사유재산 하나 주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농촌지역에선 자기 명의의 통장 하나 없는 어르신들이 아직도 꽤 있다. 농민 지원금만 해도 가구 기준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세대주가 아니어서 그 돈을 만져보지도 못하는 농민 여성도 많다.
도시라고 별 반 다를 건 없다. 보통은 백화점이나 은행 같은 데서 일을 하거나, 자신의 가게나 마트에 나가서 일을 하기도 하고 사무보조원이라던가 아니면 제조업체에 가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으니까. 사실 이렇게라도 여성들을 고용하길 원한 건 기업들이기도 했다. 당연한 얘긴 게, 인구는 빤히 정해져 있는데 결혼했다고 짤라놓고 보니까 남성노동자 수는 한정이 되어있고, 그렇다고 남성노동자 임금을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더 많이 주긴 싫으니 푼돈으로 착취해먹을 여성노동자를 원하게 된 거다. 되게 멍청한 소리 같지만 진짜다. 가정주부에게 부업을 장려하는 기사는 정말 80년대까지 꾸준-히 나왔다.
그럼에도 여성의 노동은 '중산층'이라는 미명 아래 가려졌다. 여성이 노동하지 않는 게 그 시대 당시엔 진보, 좀 더 발전되었다는 서구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보니 이게 가능했다. 물론 식민지 남성성의 영향도 있다. 나중에 제대로 다뤄주긴 할 거지만 식민지 남성성의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을 자원으로 취급한다는 점이라... 집안의 여성들을 죄 갈아다 남성에게만 모든 자원을 투자하는 모습은 이미 그동안 너무 오래 봐와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가장의 월급이 모자르거나 아니면 그냥 안 줘서 생계가 어려워진 기혼 여성이 밖에서 일을 해도 '가정주부'로 여겨지지 '여성노동자'로는 인식되지 않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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