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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문화사 속 여성 - 가정주부

가정주부 이데올로기

자아, 80년대도 그렇고 여성 이미지와 인권에 대한 얘길 하려면 가정주부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 왜냐? 여러분의 머리엔 가정주부 이데올로기가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얘기를 시작하면 분명 가정주부? 가? 이데올로기? 라고 떨그럭 얼어버릴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테니 차근차근 시작해보자.

이데올로기는 그만큼 대단한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데올로기의 정의 자체는 사회 집단에 있어 사상, 행동 등을 제약하는 관념이다. 그러니 당연히 역사적, 사회적 맥락이 있는 사상이자 의식체계다. …라 말해봤자 이해를 쉽게 할 리 없으니,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볼까 한다.

여기 A와 B라는 사람이 있다. 이 둘은 낭만적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였고, 가족이란 공동체가 구성되었으니 경제적 이득을 최대한 보기 위하여 A는 직장을 그만 두고 집안일을 하기로 하였고 B는 직장을 계속 다니며 돈을 벌기로 하였다. A의 성별은 어느 쪽일 거라 생각하는가? 여기까지 쭈욱 읽었다면 분명 십중팔구 A는 여성일 거라 대답할 것이다.

왜 A를 여성이라 생각했는가? 물론 A를 여성이라 생각한 이유는 당연히 합리적일 것이다.

이게 바로 이데올로기의 힘이다.

예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낭만적 사랑’으로 결혼한다는 게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도 18세기 이후 발전한 ‘낭만적 사랑’이란 이데올로기의 힘으로 1960년대에나 가능해진 건데 이젠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적 맥락이 있으니 사랑해서 결혼했을 거라 아무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게다. 또 나는 B의 성별이 여성일지 남성일지 아무 힌트도 주지 않았지만 한국은 동성혼이 금지되어있는 몇 안 되는 구린 나라인 만큼 여러분은 B를 당연하게도 남성으로 상정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A가 직장을 그만둔 합리적 이유가 있을 거란 전제로 A를 여성으로 상정했을 테고 말이다.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세계에서 1위인 만큼 ‘덜 버는 사람이 집안일을 하는 게 합리적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둘에게서 경제적 곤궁이 있을 수 있단 전제는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그러하니 그리 생각햇을 것이고, 또 설령 내가 그런 경제적 곤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전제를 주었다 해도 여러분은 A를 여성이라 골랐을 것이다. 왜냐. 여성이 결혼해서 일을 안 하면 ‘백수’인 게 아니라 ‘가정주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의 이데올로기가 작용한지 이제 좀 감이 왔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매우 당연하게 여기는 이러한 관념들이 바로 이데올로기고, 이 이데올로기들에는 모두 합당한 이유가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주류 이데올로기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게다. 일단 글을 읽고 있단 것 자체가 사회화 과정을 거쳤단 얘기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 이제 가정주부 이데올로기가 뭔지 슬슬 감이 올 것이다. 그래, ‘여성이 결혼해서 바깥으로 나가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면 가정주부’라는 고 관념부터가 가정주부 이데올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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