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한국의 현대문화사 속 여성 - 식모 (4)

가사노동, 돌봄노동

가사노동과 돌봄노동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조선조로 먼저 돌아가야 한다. 신분사회였던 조선의 경우 전기에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네 신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뭐 후기가 되면 양반의 몰락이 흔해지고 중인 세력이 커지기도 하고 그러지만 그보다는 노비를 좀 들여볼 필요가 있다. 

늘 그렇지만 사람은 늘 돈을, 그리고 돈이나 다름 없는 귀한 노동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뽑아먹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동양이든 서양이든 노동과 관련된 분업화가 이뤄지기 마련이었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이름들이다. 시녀(Lady's maid)니 하녀(Housemaid)니 뭐 외에도 이것저것 로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문직의 시초들이 당연하지만 조선에도 있었다. 유모, 보모, 수모, 염모, 침선비 / 침모, 식비 / 식모 등이 그렇다. 그 왜, 보모상궁 소리는 사극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게 아닌가. 

돌봄노동이 필요한 대상이 젖을 먹여야 하는 아기면 그 젖을 먹여가며 돌보는 이를 유모, 오늘날 유치원교사와 가정교사를 겸해 아이의 양육과 교도(교육이랑은 조금 다르다. 굳이 따지면 밥상머리 교육에 가까운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를 담당하면 보모, 여성의 몸단장을 돕던 수모는 혼례 때면 신부의 도우미이자 주례가 되었으며 궁궐에서 혼례가 있을 때면 불려가 가체를 손질하기도 하는 등 어떻게 보면 헤어 디자이너이기도 했으며, 천에 염색 입히는 일을 하는 이들은 염모라 불렀다.

자, 이쯤에서 생각해보자. 문화는 보통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전파되는 것이라 예전에 알려주었던 걸 기억하는가? 왕실에서 하면 민간에도 퍼지곤 했다. 고걸 잘 보여주는 이름이 바로 침선비 / 침모, 식비 / 식모다. 왕실의 의복을 전담하는 상의원 소속 노비를 침선비라고 불렀는데 민간에서 이 일을 하는 이들을 관직명으로 불러줄 수는 없으니 침모라 불렀고, 관아에서 요리를 비롯한 부엌일을 도맡아 하던 여성을 가리키던 식비에서 식모란 단어가 유래하게 된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사라지긴 했어도 그게 부의 재분배를 뜻하지 않는다는 건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저어기 미국에서도 노예 해방 시기에 돈 없는 흑인들이 주인집에 얹혀 살며 적은 급료를 받거나 아니면 무상으로 일하게 되며 예속적 관계가 여전히 유지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데... 조선도 똑같았다. 그리고 이 부분도 웃기지만 똑같은데, 상황이 어떻든 꾸준하게 인기 있는 건 요리를 잘 하는 노비였다.

그러다 잘 알다시피 일제강점기에 접어든다. 간혹 이 시대 자료들을 보면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고 문장의 정확한 해석은 이렇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농촌에서는 제일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딸을 일찍 시집 보내 먹을 입을 줄여버린다. 이렇게 버려진 딸의 운명이 어땠을 거 같은가? 기본적으로 아동노동력을 갈취 당하고 성적으로 학대 당하기도 하며 심심찮게 살해 당하기도 한다. 이래서 유엔이 조혼풍습이라고 하면 이를 악물고 없애려고 노력하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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