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 해부 - 스펙터클의 사회 / 68혁명

후... 어려운 얘기 해야 할 때가 또 와버렸다. 사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보단 권하는 책을 읽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 무엇을 얻을지 미주알고주알 다 알려주지 않으면 읽어볼 생각조차 않는 게 오늘날이니 소개해주는 내용이 맘에 든다면 책을 꼭 읽어보란 소리를 꼭 해두고 싶다.

트위터를 보는 이들은 잘 알겠지만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현대의 유일신은 돈이며 사랑은 사멸해가는 종교'다. 이 문장을 봤을 때 어떤 이들은 공감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반발감을 가질 게다. 그럼 오늘은 이 말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 알아보자. 

1967년,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La Société du Spectacle)>라는 책이 나왔다.(개정판도 있다, 읽어보자.) 기 드보르는 이 책에서 현대사회가 대중을 조작된 이미지로 둘러싸 진실을 압도하고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러니까, 아주 쉽게 말하자면 삶에서 이미지가 나와야 하는데, 이 진짜와 가짜의 순서가 역전 되어 이미지가 삶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개인의 욕망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고, 소비를 통해야만 하는 판타지에서 벗어난 욕망을 가지기가 불가능하고, 소비 없이는 행복해지기도 불가능하다. 이렇듯 스펙터클은 자본주의적 경제 논리를 벗어나, 이미지를 매개로 한 인간관계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기도 하다. 

'스펙터클'의 개념은 68혁명, 그리고 현대 예술에 아주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68혁명의 정신적/이론적 토대가 바로 국제상황주의(Situationist International)였고, 이 국제상황주의에서 기 드보르가 이론적 리더였기 때문이다.

기 드보르에 따르면 예술과 일상의 이분법은 자본주의적 산물이다. 일상이 자본화될수록 예술은 자본을 거부하고 더욱 순수해지려고 상아탑으로 들어갔고, 일상은 스펙터클에 점령되었다고 기 드보르는 주장한다. 하여 국제상황주의자들은 예술을 일상에 들여놓아 일상 자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미적 혁명으로 간주했다. 물론 정치혁명과 미적혁명 사이의 간극에서 갈등해서 나중엔 해산하지만, 아무튼, 이들은 예술에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고 이후 많은 예술 형식의 모태가 되었다. 이들 덕에 기존 예술의 형식에서 벗어난 서브컬쳐에 우호적인 태도가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하였고 펑크, 힙합, 개념미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가장 도드라지는 부문은 역시 영화다. 미국에서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 프랑스에서는 누벨 바그, 독일에서는 뉴 저먼 시네마 등 60년대 말서부터 70년대까지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영화는 오락이자 예술, 즉 대중예술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다진다.

신좌파들이 이 책에 열광하는 건 당연했다. 매카시즘으로 시달릴 만큼 시달렸는데다가, 좌파들의 이상향이었던 소련은 전체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이었기에 더는 자본주의 vs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은 효용을 다 했다. 반문화의 주체였던 대학생들인 신좌파는 절충적인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해 권위와 전체성에 도전해 개인의 삶의 자아실현을 일상에서 구체화하려고 했다. 

이렇듯 신좌파들이 이끌어낸 68혁명은 문화적 혁명이다. 만인이 자신의 계급, 성별, 인종에 구애받지 않고 개인이 가진 모든 능력을 자유로이 발전시켜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라는 레디컬 페미니즘의 슬로건은 68혁명를 관통하는 정신이기도 했다. 이 68혁명을 기점으로 여성, 흑인, 성소수자 가시화는 함께 했으며 생태주의가 나올 토양이 되었다.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은 68혁명을 빗겨나갔다. 아니 뭐, 당연한 게... 한국은 그때 누가 집권하고 있었느냐? 박정희였다. 그러니 당연히 한국은 68혁명의 영향을 받을 수가 없었다. 일본만 하더라도 68혁명의 영향으로 전국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전학련),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전공투), 적군파 등의 대학생 중심의 무장 혁명 세력이 나타나긴 했는데 그... 사실 유럽이나 미국이라고 과격한 시위나 투쟁이 없던 건 아닌데(뭐 바리케이트를 치고 건물을 점거한다던가, 화염병을 던진다던가) 일본 정부는 헬기에서 최루탄을 학생들에게 쏘는 등 과하게 진압하는 데다가 투쟁 노선을 두고 내부분열은 일어나고, 다당화는 좀 되었는데 정권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야당 지지율은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이후 학생운동이 거의 바닥을 기게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사회에 68혁명의 영향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70년대 버블 경제 덕에 이 급격한 문화 팽창이 가능했던 건 사실이지만 68혁명의 영향이 없었다면 서브컬쳐는 지금과 달리 '저급한 문화'로만 취급받고 있었을 테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2000년대 쯤에 운동권쪽에서 68혁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긴 했는데... 직접적인 영향에서 빗겨난 탓에 당연하지만 대대적인 인식의 변환은 없었다. 한국의 전체주의적이고도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는 단 한 번도 대중의 문화적 도전을 당해본 적이 없는 상태로 이어져온 셈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 부분이 안타깝다. 386세대/5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생)라 불리던 이들이 독재에 맞서며지금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던 학생운동은 이명박 시절에 대학에서 문자 그대로 뿌리 뽑혀져 나오다시피 했고, 70년대 초반 대학생층이 선호하던 서구의 라이프 스타일과 대중문화를 추종하는 흐름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처음 사용되던 청년문화는 이제 10대/20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로 정의가 바뀌었지만 계급 과시를 위한 소비 형식만큼은 변하는 게 없다. 문화적 빈약함은 여전하다 못해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찬양으로 천박함이 대중문화 도처에 깔려있다. 그리고 이 모든 현실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문화를 평가할 때 자본의 규모 논리를 들이대는 걸 망설이지도 않고 말이다. 어느 작이 이만큼 벌었으니 무조건 대단하고 비판 받아서는 절대 안 된다는 양 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려온다.

기존체제와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까진 아니더라도 비판적 시선이라도 가지길 권하는 것도 그래서다. 이제 와서 이미 지나간 혁명의 영향을 다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안목을 가지라고 해봤자 당연히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니 그리 쉽게 문화적 토양을 쌓을 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최소한 요즘 같은 다원주의 시대에서 주류가 무엇인지, 왜 주류가 되었는지를 파악할 줄은 알아야지 앞으로도 이어질 저성장 시대에서 도태 당하진 않을 거 아닌가.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대중예술을 하기 위해 돈을 포기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현실이 그렇다. 자본주의는 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아래 괴물로 변모해갔다. 거대 자본이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거대 자본을 다시 독점하는 시대인 걸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이미 60년 쯤 전에 지적했던 대로 이미지가 범람하는 뉴미디어 시대에서 이미지로 개성을 드러내는 것에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 현대인에게 뭐 그리 대단한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순전히 개인의 잘못은 아닌 만큼, 최소한 알려주는 걸 토대로 자기 머리로 생각해보고 미약하나마 구조에 대한 의심의 시선을 던질 줄 아는 작가가 되라고 조언을 준 거다.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도 타협하지 말라고만 하지 않았는가.

작금의 로판은 애석하게도 포르노 시장으로 전락했다. 요즘 문학은 디아스포라, 페미니즘, 고전 재해석 세 가지로 주로 나간다고 손수 일러주었고, 고전 재해석이 결코 만만찮은 일이니 페미니즘을 섞는 게 쉽다고 분명히 강조해주었다. 물론 고르는 건 작가의 자유다. 그러니 고급화라며 고전 재해석이라고 그런 형태를 취했을 수는 있다. 있는데, 그 수준을 결코 고전 재해석이라 봐줄 수가 없다. 

과거는 현재와의 맥락 속에서 의미가 끊임없이 변하기에 현대적 시선에서의 해체와 재해석을 필요로 한다. 정말로 애석하게도, 이를 해낸 작가를 나는 아직도 발견을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의 로판에서 흥하는 그 유행은 근대 고전풍 포르노에 불과하다. 대체 그 전개와 그 설정의 어디에서 현대인인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포르노성을 떼놓고 얘기해서 고전 오마쥬라고 우길 수는 있겠지만... 그래, 못 쓴 오마쥬도 오마쥬라면 오마쥬다. 

애초에 그 포르노성을 선택한 이유가 돈 말고 더 있긴 한가? 새롭고 과감한 시도를 하는 것 때문에 상업성이 떨어질까봐 걱정돼서 포르노를 선택했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으면 나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그런데 대체로 그 수준은 아니잖은가. 

솔직해지자. 괜히 사랑이 사멸해가는 종교라 말하는 게 아니다.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랑이 아니라 권력이 된 지 오래인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로맨스란 이름 아래서 여성 독자층이 무엇보다 즐기고 있는 건 감정권력이다.

헤테로 커플처럼 권력구도에 있어 한 쪽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게 분명한 관계에서, 사랑이든 죄책감이든 감정을 원인으로 이 권력구도가 뒤집히는 게 바로 감정권력이다. 감정사회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니 궁금하면 서적을 직접 찾아보고, 대중이 이러한 방식으로 로맨스를 즐기고 있다는 게 대단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다 똑같으니 말이다. 

다만 이 감정권력은 결코 진정한 권력이 될 수가 없다. 여주가 자신에게 가학적으로 굴던 남주를 단죄하기 불가능하다. 왜냐? 남주가 없으면 여성에게 요구되는 모든 정상성을 박탈되기에 여주는 결코 남주를 부정하거나 버리지 못한다. 보다 좋은 다른 남성 캐릭터로 갈아타기는 가능해도 결코 객체로 존재하질 못 하니 여주는 결코 자유롭지 못한, 종속되는 존재에 불과하다. 소설 속의 여주는 자아도 없다.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른 대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애쓸 뿐이지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의조차 똑바로 말할 수 없는 이에게 자아가 존재할 리가 없다. 결국 이 감정권력 안에서 즐기고 있는 건 가부장제의 보호 아래 안온하고 안전하게, 보다 계급적 지위를 확고히 확보했다는 착각이다. 으레 나오는 그 강간 자체가 여성을 물건이자 수단 취급을 하는 건데도 말이다. 이 공공연히 전시되고 있는 강간 판타지가 여성이 성욕을 드러내면 수치를 주는 사회에서 기인했다고 말해주기도 지쳤고, 냉정히 말해 지금의 이 유행은 명백한 백래시의 영향이다.

이러한데 작금의 로판이 평가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가? 로판의 이름 아래 향유되고 있는 여성 이미지는 역할 지경이다. 어른에게 이쁨 받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하는 어린아이가 적당히 예쁘게 자라 잘 생긴 남성을 옆에 끼고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가호 아래 유년의 결핍이란 건 세상에 존재치 않는다는 양 사랑 받는 모습 아니면 제국주의 시절 착취로 쌓아올린 독점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온 문화에 대한 로망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여성을 강간하는 남주의 모습을 욕망하거나 아니면 모두가 날 좋아한다는 하이틴 로맨스 풍 무엇이다. 68혁명이 문화에 다원주의를 불러왔건만 유난히 로판에서만 다원주의를 찾아볼 수가 없단 점이 참으로 안타깝고, 쌓인 말이 많지만 이만 줄이겠다. 

다음엔 진짜로 70년대 말서부터 금융으로 권력이 넘어가게 된 얘기를 해... 볼 수 있음 좋겠다. 

사족 1. 사실 68혁명이 현대에까지 남긴 영향이 저거 말고도 더 있는데 글에 섞기엔 흐름이 좀 애매해서 덧붙이자면 현대 들어 일상에서 반대와 저항의 의미로 하는 특정 기업의 불매 운동이나, 한국에선 보기 어렵지만 해외 시위 장면 보면 들고 다니는 플래카드를 개인이 다 일일이 쓰고 나오는 등 시위에 있어서 개인의 모습이 도드라지는 등의 모습도 그렇고, 하다못해 한국에서 문화를 계급 상관 없이 누려야 한다며 건물 앞에 세우곤 하는 조형물들 있잖은가? 그것도 68혁명 이후로 일상에서의 혁명이나 예술이 대중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퍼져서 가능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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