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둘이서 산다


"진짜 바라는 건 많아. 하여튼."

 툴툴댔지만 손은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최민호 요리 실력이야 뻔히 안다. 최민호는 거의 배달을 시켜먹거나 관리한다고 닭가슴살을 먹는 편이라서, 집에 초대한 김에 기범은 작정하고 양손 무겁게 장을 봤다. 한 달만에 본 최민호는 촬영한다고 제법 머리가 길었다. 민호가 머리를 한참 기르던 링딩동 시절이 생각나서 조금 웃었다. 연락이야 매일 하지만 얼굴을 보니 바쁜 촬영 스케줄 탓에 살이 좀 빠진 것 같아 보였다. 기범은 민호가 좋아하는 한식을 준비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오~~ 김기범. 완전 감동인데?"

"나한테 그러니까 잘해."

"얼마나 더 잘해야 돼?"

 정성들여 준비한 요리들이 탁자 위에 연이어 놓아졌다. 민호가 광고하는 위스키와 함께 기범이 좋아하는 와인 그리고 소주까지 준비됐다. 다음 날 방송임을 알면서도 새벽 3시가 넘는 시간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한달이 아니라 일년은 못 본 사이처럼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은지, 그동안의 일들을 풀어놓느라 취할 새가 없었다. 한참 바쁘다가 여유가 생기고, 민호를 보니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다. 최민호 표정도 줄곧 입꼬리가 솟아있다.

 꼼데는 오랜만에 민호가 와서 반가웠는지 기범에게 안겨있다가 민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릎에 발을 얹으며 애교를 부렸다. 경계심 많은 꼼데는 어렸을 때부터 만난 민호에게는 곧잘 안겼다. 꼼데에? 민호는 꼼데와 눈이 마주치자 눈웃음을 치며 웃었다.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꼼데를 부르자 기범이 옆에서 불만을 털어 놓았다. 나한테 그렇게 좀 해보라니까. 우리 기범이 질투났어요? 기범이 인상을 구기며 질색하자 민호가 박수를 치며 깔깔댔다. 이거 바라는 거 아니었어?  기범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자 민호도 따라 웃으면서 비워진 잔을 차례로 채웠다.

"침대에서 자라니까 고집 부리지말고. 허리 아파."

"나 신경 써주는 거야? 감동."

"칫솔 여기 있어."

 민호 이름이 써있는 칫솔을 서랍에서 꺼내자 익숙하게 민호가 칫솔을 받아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예전에는 바쁘면 같이 양치하고 씻는 일이야 수없이 많았다. 오늘은 게다가 시간도 늦었겠다 같이 나란히 슬리퍼를 신고 거울 앞에 섰다. 안 챙겨와도 된다니까 굳이 옷은 또 챙겨와서 갈아입더니 최민호가 옆에서 춥다고 투덜거렸다. 한숨을 쉬뫼 술 마실 때 집업을 하나 챙겨줬다. 옷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지고 가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이렇게 서있니까 예전 생각난다."

"영화볼 때도 우리 집에서 자놓고 새삼?"

"오늘따라 그렇다고."

"이렇게 같이 서있기만 해도 지겹다야. 숙소 살 때는 제일 먼저 씻는다고 가위바위보 하나로 난리쳤잖아."

"맞다. 그랬지."

 양치를 먼저 마친 민호가 샤워기를 틀어 세수를 했다. 기범은 선반에서 꺼내둔 수건을 들고 옆에서 서있었다. 여기. 땡큐. 수건을 받아든 민호가 얼굴의 물기를 꾹꾹 눌러닦다가, 욕조 쪽에 놓인 폼클렌징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자랑스럽다 내 친구 김기범. 아휴, 뭘 또. 클렌징폼은 쓸만해? 모델을 하면서 멤버들에게 세트로 몇 개 선물 했는데 마음에 드는지 궁금하긴 했다. 좋던데? 짧은 한마디에 기범은 기분이 좋아서 꿈틀거리는 광대를 숨기지 못 했다. 다음에 다 쓰면 말해. 민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떡였다. 민호는 수건을 놓고 화장실을 나갔다가 기범이 세수를 하는 사이 다시 들어왔다. 너 취하면 잘 까먹잖아. 자기 집처럼 선반에서 수건을 꺼내온 민호가 세수를 마친 기범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척하면 척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챙겨주는 민호에게 기범은 내심 고마웠다. 

 숙소에서 같이 살 때 진작 알았으면 더 재밌게 놀았을텐데. 그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서로 예민해져서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지금이야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고 서로 싫어하는 행동은 피하다보니 만담하는 노부부가 따로 없었다. 말을 굳이 안 해도 지금 이 관계가 편하고 좋았다.

"기범아 너랑 있으면 제일 편하고 좋다."

"취했니?"

"조금?"

 민호가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던지는 말에 기범은 속으로 뜨끔했다. 이젠 속까지 읽나 싶어서. 정말 취했는지 민호가 기범을 향해 윙크하듯 풀린 오른쪽 눈을 찡긋거렸다. 하도 많이 봤던 장난이라 기범이 바로 안 받아주고 가만히 있었더니 민호가 입술을 삐쭉이며 되물었다. 너느은. 나도 그래. 기범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민호는 실실 웃으면서 다시 술을 들이켰다. 

 쇼파에서 자겠다는 민호에게 무조건 침대에서 자라고 설득했다. 거실은 추워. 추위를 많이 타는 민호 때문에 일부러 온수매트에 보일러까지 틀어놨다. 씻고 나왔더니 이불 속에서 열심히 휴대폰을 하고 있었다. 민호 위로 꼼데와 가르송이 얌전히 앉아 있다. 민호는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축구영상을 보고, 왼손은 가르송의 긴 등을 쓰다듬었다. 기범은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다가, 이불이 들춰진 자리로 쏙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누웠다. 킹 사이즈라도 성인 남성 둘이 누워있으니 좁긴 했지만 술도 먹었겠다, 이불 속 따뜻한 기운에 졸음이 슬슬 몰려왔다. 민호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졸고 있는 기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좁진 않아?"

"괜찮아. 우리 훨씬 좁은 침대에서도 같이 잤잖아."

"하긴 술만 취하면 그렇게 내 침대를 들어왔지."

"10년도 더 된 이야기 자꾸 할래."

"몸 구기면서 꾸역꾸역 참고 잤는데, 고맙다고 말도 안 했지. 그때는."

 왜, 지금이라도 고맙다고 해줘? 응. 고맙습니다. 아이고 착하네 우리 기범이. 옆으로 누워있던 민호의 커다란 손이 기범의 머리카락 사이를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지금이면 떡졌을 텐데. 떡진 머리가 신경 쓰였지만 눈을 감고 있어도 웃는 최민호 표정이 눈앞에 그려졌다. 머리카락을 쓸어만지는 민호 손이 따뜻했고, 이불 속도 따뜻해서 기범은 기분이 좋았다.

 요즘 쉬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바쁜데, 같이 촬영하자는 부탁에 흔쾌히 만나러 와준 민호에게 여러모로 고마웠다. 최민호는 늘 부르면 언제든 어디서든 달려와줬다. 물론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와줬지만. 그런 민호에게 기범은 속으로 많이 기대고 있었다. 고마워. 민호야. 아무리 졸려도 진심은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웅얼거리듯 진심을 전했다. 그러자 기분 좋은 민웃음 소리가 기범의 귓가에 작게 들렸다. 애들 내보내고 자. 옆에서 손님보고 시킨다며 잔소리가 쏟아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기범은 눈이 스르륵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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