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존나박사와 노란 고양이

신과 존나 박사와 노란 고양이 3.

나요한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어째서인지 자신의 침대에 무채색의 이불까지 덮여 얌전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시선 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머리맡에서 웅크리고 있는 누런 고양이.

“…….”

고양이를 보자 기절 직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왠 미친놈이 알몸으로 내 방에서 감자칩을 먹으면서, 그것도 심지어 부스러기를 책상과 바닥에 더럽게 흘려가면서 먹다가, 나를 보며 당황하더니 갑자기 고양이로 변했었는데.’

그리고 저 고양이는 지금 바로 눈앞에 있다. 심지어 저놈은 며칠째 자신의 집에서 무단으로 기거하고 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사람이 고양이로 변해? 그럼 고양이도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일인가? 이게 말이 되는 일이야? 당연히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나요한 자신이 미쳤거나 헛것을 봤다는 뜻인데. 살면서 가위 한 번 눌린 적 없는 나요한은 귀신을 믿지 않는 건 물론이고 종교도 없는 무신론자이다. 초능력은 물론이고 영적 지도자들의 신비 체험 같은 건 당연히 개무시했다. 그런 건 나약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환상이며 자신은 강하기 때문에 그런 걸 겪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딴 걸 보다니, 그렇다면 내가 나약해진 건가?

여기까지 생각한 나요한 박사는 기분이 불쾌해졌다. 자신은 나약하지 않다. 이제까지 멀쩡하게 살아왔고, 이 나이에 갑자기 정신병이 올 리도 없다. 그냥, 저 고양이 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 것 뿐이다.

냐아아아암.

나요한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자 고양이가 하품을 하더니 앞발을 뻗어 쭉쭉이를 했다. 그것만 보면 굉장히 귀여운 광경이었겠지만, 문제는 나요한의 이불 위에서 그런 짓을 벌였다는 점이었다.

“당장 꺼져!”

냐아아아!!!

나요한은 험악하게 이불보를 펄럭이며 고양이를 쫓아냈다. 세상에 누가 감히 고양이에게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 오직 나요한 뿐일 것이다.

고양이는 별수 없는지 일단 침대 위에서 폴짝 내려갔다. 그러더니 기다랗고 노란 꼬리를 올리고서는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아, 씨. 저 고양이 새끼. 어떻게 내쫓지?”

나요한은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벅벅 긁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방의 베란다 창으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아침이었다. 시계를 보니 무려 오전 여섯시. 평소보다 30분이나 늦게 일어나버렸다! 하지만 나요한은 태평하게 하품을 했다. 오늘은 조금 늦어도 괜찮았다.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하지만 토요일에도 조깅은 해야 한다. 입고 있던 파자마를 벗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던 나요한은, 근육질 몸에 러닝셔츠를 반쯤 걸친 채로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언제 파자마로 옷을 갈아입었지? 퇴근하자마자 기절했는데? 심지어 자신이 어제 입었던 바지와 셔츠와 속옷은 빨래 바구니에 제멋대로 담겨 있었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자신이 넣었을 리가 없었다.

나요한은 앞으로 이 이야기에서 광공이 될 운명이다. 그리고 이미 광공답게 옷가지들을 각을 맞추어 개어놓곤 했다. 설사 만취상태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대충 던져놓을 리가 없었다.

모든 정황이 수상했다. 누군가가 기절한 자신의 옷을 갈아입힌 다음에 침대에 얌전히 눕혔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자신의 집에 누군가가 불법침입을 했단 말인가?

불법침입을 할 놈이라면 어제 그 알몸의 미친놈뿐인데, 그 놈이라면 분명 고양이로 변했는데……?

옷을 입다 만 채로 나요한은 당장 방문을 박차고 나서서 거실 소파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고양이에게 달려갔다.

“너야?”

냐아아아.

말을 걸자 고양이가 귀찮다는 듯 나요한을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곧 고개를 들고 눈을 깜박거리며 윙크를 했다. 마치 발가벗은 나요한의 상체를 훑어보는 것처럼 기분 나쁜 눈초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다시 눈을 깜박였다.

“아씨, 이게 뭔. 고양이한테 말을 걸어봤자.”

고양이를 한참 보던 나요한은 대답을 듣기를 포기했다. 고양이가 대답을 한다고 한들, 자신이 알아들을 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옷을 마저 입고 집을 나서려던 나요한은, 현관 앞에서 어제 반쯤 뜯어놓은 오렌지 박스를 발견했다. 괜히 심술이 나서, 오렌지를 하나 들어 거실에 있던 고양이에게 힐끔 내밀었다.

캬아악!

고양이가 질색을 하며 후다다닥 어딘가로 도망갔다. 어쩐지 오렌지로 고양이를 내쫓는 것도 실패할 것만 같았다. 저놈의 고양이를 어쩌지? 나요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깅 후 다시 집에 돌아온 나요한의 손에는 고양이 화장실, 고양이 모래, 고양이 사료 등등 기본적인 고양이 물품이 잔뜩 들려있었다. 나요한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분명 조깅하는 내내 고양이 놈을 어떻게 쫓아낼지 궁리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아파트 근처 반려동물용품 전문점 입구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고양이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오렌지를 싫어한다는 것뿐이라, 가게 직원한테 물어봐서 이것저것 잔뜩 사들고 집에 들어오면서 잔잔한 현타를 느꼈다.

“저놈이 이 집에서 나갈 때까지 만이야. 아무 데서나 똥 싸면 안 되니까.”

고양이 화장실 안에다 삽으로 모래를 퍼담으면서 나요한이 중얼거렸다. 가게 주인의 말을 들어보니 고양이 키우기는 귀찮은 일 투성이었다. 똥간도 매일 청소해 줘야 하고 털은 수없이 날리며 빗질도 해줘야 하고 가끔 토악질 하는 걸 치워줘야 하고 매일 사냥놀이도 해줘야하고 사료와 물도 매일 줘야 한단다. 사료도 건식이 있고 습식이 있어서 골고루 줘야 한다나. 세상 귀찮은 일 천지였다. 게다가 길고양이면 병원에 데려가서 기본적인 건강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유기묘일 수도 있고, 동물 등록이 되어있는지 확인도 해야 하며 혹시라도 성묘라면 중성화 수술도 해야 한다고 했다.

“악. 짜증나!”

거실 구석에 깨끗한 모래를 잘 깔아둔 고양이 화장실을 갖다 놓으며 나요한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고양이 놈은 고양이 화장실을 포장하고 있던 박스 안에 들어가서 꼬리를 살랑이고 있었다.

“비켜, 이놈아!”

왜애애앵

나요한이 박스를 치우려 들자 고양이가 거부의 의미로 추정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나요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스를 흔들었다. 상자를 빼앗긴 고양이가 나요한을 잔뜩 째려보았다.

“박스 더러워서 버려야 된다고!”

나요한은 연구 외엔 세상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터라 고양이의 습성을 잘 몰랐다. 고양이에게 박스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냐아아아!

열 받은 고양이가 번쩍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나요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악!”

당황한 나요한이 얼른 뒤로 물러서자 고양이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물론 순간적인 순발력으로 가볍게 착지하며 꼬리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다시 뒤를 돌아서 나요한의 손에 들린 박스를 보며 앞발을 흔들었다.

그 날카로운 고양이의 표정을 본 나요한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게 주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건 고양이가 아주 좋아하는 건데요. 너무 많이 주면 안 되긴 하지만…….’

고양이를 처음 키우면 필요할 거라며 직원이 추천했던 바로 그것, 츄르를 재빠르게 꺼내 들었다. 봉제선을 뜯고 츄르를 한 방울 흘려보내자, 고양이의 코가 벌름거리고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더니 눈을 끔벅이면서 츄르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옳지. 망할 고양이 놈. 이거나 먹어라.”

입으로는 고양이를 욕할지언정 나요한 박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츄르를 쭈욱 짜내어 고양이의 입가에 가져갔다. 고양이는 킁킁대며 츄르의 냄새를 맡더니 곧 혀를 내밀어 날름날름 츄르를 빨아먹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눈이 커지며 꼬리가 바짝 올라갔다. 흥분상태로 고양이는 정신없이 츄르를 핥았다.

“진짜 정신을 못 차리는군.”

나요한의 얼굴에 묘한 고취감이 떠올랐다. 드디어 이 고양이 놈을 자신에게 굴복시켰기 때문이었다. 고양이가 자신을 노려보기는 커냥, 자신에게 몸을 조아리고 츄르만을 따르는 모습에 나요한은 쾌감을 느꼈다.

딴 거 다 필요 없었다. 이 츄르 하나면 고양이 놈을 유인해서, 잘하면 집 밖으로 내쫓을 수도 있지 않은가!

“자, 잠깐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츄르가 동났다는 걸 깨달은 고양이는 남은 츄르 껍데기를 몇 번 더 핥더니 몸을 휙 돌려서는 나요한이 구석에 던져놓은 박스로 유유히 걸어가서 몸을 다시 웅크리고 말았다.

고양이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나요한은 무척 피곤해졌다.

주말동안 나요한은 외출을 하지 않았다. 원래 친구가 없어서 회사일이 아니면 평소에도 외부 일정이 없는 집돌이이지만 이번 주말엔 특별히 고양이 핑계를 댔다. 이 망할 고양이의 동태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고양이 화장실과 먹이같은 기본적인 세팅을 마친 후 나요한은 요망한 고양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한참 더러운 상자에서 웅크리며 골골거리던 고양이는 내심 심심했는지 상자 밖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다가 물을 몇모금 마시고는 수염에 물방울을 대롱대롱 달고 다녔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사료를 깨작깨작 먹고는 소파 위로 풀썩 올라와서는 소파 가죽을 벅벅 긁어댔다.

“야! 하지마!”

소파 주인인 나요한이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고양이는 눈을 살짝 가늘게 뜨더니 다시 소파를 벅벅 긁어댔다. 하는 수없이 나요한은 장난감 쥐를 흔들며 고양이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가게 직원이 고양이 스크래처를 사라고 할 때 진작 살 걸, 이러다 소파를 하나 날려 먹게 생겼다며 내심 후회를 했다.

한참 이리저리 날뛰며 사냥놀이를 한 고양이는 제풀에 지쳤는지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슬금슬금 어딘가로 기어갔다. 나요한은 관심 없는 척하면서 고양이의 동태를 계속 살폈다. 고양이는 화장실에 걸어가 맛동산과 감자를 생성한 후 뒷발로 열심히 모래를 덮어 감추더니 곧장 나요한의 서재로 유유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감자칩 부스러기가 말끔히 사라진 책상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마침 창문으로 비춰오는 햇살에 따땃하게 데워진 양장책 위에 앉아서는 고릉고릉 소리를 내며 푹 잠을 자기 시작했다.

“고양이 녀석, 게을러터졌군.”

고양이가 부지런해서 어디다 쓰려는 건지. 나요한이 바지에 붙어 있던 고양이 털을 떼어내며 투덜거렸다. 오늘 해야 할 논문 리뷰도 미룬 채 고양이만 관찰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원래 보통 고양이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고양이가 특별히 이상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좀 이상한 점은, 멋대로 나요한의 집을 제집이라고 여기고 나요한이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나요한을 집사로 여긴다는 점 정도.

하지만 하루종일 고양이를 노려봐도 도무지 사람으로 변할 기미가 보이진 않았다.

정말 내가 잘못 본 걸까.

나요한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방의 불을 끄고 파자마를 입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들 준비를 했다.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긴 한데, 자신이 본 게 있으니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혼자 사는 동안 정말 자신이 미쳐버린 건 아닐까. 집에 고양이가 들어왔다는 것조차 환각이면 어쩌나. 옛날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신이 나를 데리러 왔다는 둥 헛소리를 했던 게 어쩌면 환각을 봐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자신도 이제 죽을 때가 된 것인가. 이대로 죽으면 안 되는데. 기껏 한국까지 왔으니 옛날 일은 속시원히 밝히고 죽어야 하는데.

갑자기 나요한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흘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운 적이 없었는데. 아니구나, 군대에서 화생방 훈련할 때 한번 울었구나.

부끄러워진 나요한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는데, 문득, 방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 부스럭거리면서 살금살금 움직이는 소리. 그리고 달그락거리면서 부엌의 식기가 움직이는 소리.

망할 고양이 놈이 야행성이랍시고 이제 일어나서 설치려는 것일까? 하지만 고양이는 움직일 때 소리를 내지 않는다. 굳이 소리를 낸다면,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떨어뜨릴 때 정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나요한이 헐레벌떡 파자마 차림으로 방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두 개의 빛이 있었다. 바로 고양이의 눈. 부엌 쪽에 있었다! 나요한은 고양이가 대형 사고를 치기 전에 재빨리 불을 켰다.

“너. 너 뭐야!”

차라리 고양이가 사고를 치는 거면 다행이었으련만. 나요한의 눈앞에 있는 건 벌거벗은 채로 가스레인지 옆에서 숟가락을 들고 있는 어제 그 남자였다! 게다가 그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는 건…….!

“감히 내 김치찌개를! 그것도 돼지고기만!”

“헉! 미안해요!”

나요한을 보고 놀란 남자는 얼른 도망치려 했지만, 이번엔 나요한이 더 빨랐다. 나요한이 재빨리 남자의 손목을 붙들어 잡고 외쳤다.

“이 새끼 너 딱 걸렸어. 너 사람 아니지? 그 망할 고양이지?”

나요한은 스스로 말하면서도 이 얼마나 한심한 개소리인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헉, 아니요. 둘 다 아니에요.”

고양이일 때의 모습과는 달리, 얼굴이 하얗고 볼은 빨갛고 눈이 커다란 젊은 남자는 나요한에게 손목이 잡힌 채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밤중에 몰래 김치찌개의 돼지고기 건져 먹으려고 한 놈치고는 당당한 눈치였다.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그다지 외설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벌거벗은 몸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럼 뭔데!”

“믿기지는 않겠지만, 저는 신입니다.”

“뭐? 신?”

“네. 당신이 믿지않는 그 ‘신’이요.”

나요한은 남자를 붙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히 미친 놈이네. 나보다 더 미친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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