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존나박사와 노란 고양이

신과 존나 박사와 노란 고양이 4.

다행히 이번에는, 그 망할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신인지 하는 놈은 다시 고양이로 변할 의향은 없어보였다. 나요한이 김치찌개 속 돼지고기를 퍼먹는 걸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사람의 형태를 한 ‘그것’은 일단 숟가락으로 김치찌개의 돼지고기만 골라퍼 퍼먹더니 (이것은 나요한의 심기를 상당히 거슬리게 했지만 나요한은 일단 이 남자의 정체가 더 황당해서 그걸 저지할 겨를이 없었다.) 좀 짜다면서 밥을 달라고 했다. 밥이야 그냥 자기가 밥솥에 있는 걸 퍼먹으면 되는 일인데. 나요한은 열 받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그 남자의 요구에 따라 밥그릇에 공기밥까지 퍼다 주었다.

“그래서, 정체가 뭐야?”

“신입니다.”

김치찌개를 야식으로 만족스럽게 퍼먹은 후 남자는 대화를 할 의향이 생긴 듯 했다. 나요한은 기가 막혔다. 사실 그 와중에 자꾸 알몸의 남자 사람 형상의 몸을 자꾸 쳐다보게 되어서 (젖꼭지와 눈이 마주치는 문제로 대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졌다.) 자신의 옷가지를 갖다주기까지 했다. 이제까지 살면서 남을 갈구기만 했지 이렇게까지 남에게 휘말린 건 처음이었기에 나요한은 정신이 혼미했다.

“신이 뭔… 김치찌개를 먹어?”

“신도 배고파요.”

나요한은 어이가 없었다. 이 남자는 그냥 미친놈이다. 신이라는 것도 구라일 것이다. 날이 밝으면 경찰을 불러서 내보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보내기엔, 물어볼게 좀 있었다. 그 며칠간 고양이 새끼와 같이 지내면서 찜찜함이 너무 쌓였던 것이다.

“그 누런 고양이는 뭔데?”

“고양이로 지내는 게 편해서 보통은 고양이인 채로 있어요. 노란 치즈 고양이면 귀엽지 않아요?”

귀엽다는 얘기는 무시하고 나요한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물론 앞의 내용도 무시할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안타깝게도 더 급한 게 많았다.

“지금은 왜 사람이야?”

“김치찌개 먹고 싶어서요.”

“그거 내 건데?”

천하의 나요한이 직접 요리했을 리는 없고, 근처 백반집에서 포장해서 싸온 것이다. 맛집으로 유명하긴 한데, 고양이 주제에 어떻게 또 맛있는 건 알고 줏어먹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같이 사는데 같이 먹으면 안됩니까?”

신인지 고양이인지 하는 작자는 뻔뻔하기 그지 없었다. 얼굴이 반듯하게 생긴 미남자가 아니었다면 나요한은 벌써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나요한은 거실의 시계를 한번 보고 (새벽 네 시였다.)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멍청한 꿈이기를 바랐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한심한 꿈을 꾸진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왜 너랑 같이 사는데?”

“물도 주고 밥도 주고, 고양이 화장실도 만들어 줬잖아요. 이 정도면 완전히 같이 살자는 거 아닌가요?”

“그건 네 놈이 고양이일 때 얘기지! 게다가 네 놈이 남의 집에 처들어왔잖아.”

“당신이 저를 불렀잖아요. 불러서 열심히 찾아온 건데, 왜요!”

“내가 언제 널 불렀어?”

“아, 여기 시간으로는 좀 됐나요? 예전에 ‘하느님 도와주세요~’ 이랬잖아요.”

이름과 달리 무신론자인 나요한은 남자의 말에 이제 완전히 대화의 의지를 상실했다. 나요한은 살면서 그런 기도같은 걸 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는데 무슨 개소리야? 나 교회 안 다녀!”

“이상하다. 당신이 분명 그랬거든요? 하도 불러 대서 내 귀가 따가웠단 말이에요!”

“개수작 부리지 말고 당장 내 집에서 나가!”

나요한은 이제 결단이 섰다. 이 놈, 내보내야 한다고. 그러나 내보내서 나갈 놈이었으면 아예 안 들어오지 않았을까?

“싫어요.”

“뭐?”

“사실 사정이 좀 복잡해서 저 당분간 이렇게 지내야 하거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신세 좀 지면 안돼요?”

“누구 맘대로!!”

“저 이래봬도 나름 신인데 인심이 되게 야박하시네요. 요즘에는 그냥 절에 가도 밥 주는데.”

“그럼 절에 가든가!”

“지겨워요. 저 절에 한 몇 천년 있다가 왔다고요.”

나요한은 나중에 조현증이나 기타 자기애성 정신장애에 대해 검색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상대가 고양이로 변하는 사람이든, 사람으로 변하는 고양이든 간에 적어도 허언증인 건 확실해 보였다.

“그럼 교회를 가. 신이라며.”

“거긴 요즘 물이 안 좋아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나요한은 멀뚱멀뚱하게 자신을 쳐다보며 앉아있는 정체모를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드디어 강제 퇴거를 실행할 강력한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요한이 휴대전화를 드는 걸 보고 남자, 아니 고양이, 아니 자칭 신이 바로 반박했다.

“경찰에 신고해봤자 소용없어요. 내가 고양이로 변하면 어쩔 건데요?”

“그럼 계속 고양이인 채로 있으면 안 될까?”

“왜요? 사람 모습 별로 마음에 안 드나요? 이것도 나름 그쪽 취향에 맞춘 건데?”

나요한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의 취향인 건 맞았다. 잘생긴 남자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아가지고. 그 요상한 남자는 분명 겉모습만큼은 나요한 취향의 미남의 형태이긴 했다. 하지만 얼굴이 반지르르한 상대로 다 뭘 하고 싶은 건 아니지 않은가? 저 놈은 미친 놈이고 고양이로 변하기까지 한다. 나요한은 저 놈과 절대 어떻게든 엮이고 싶지 않았다!

“틀렸어. 내 취향은 상식적인 사람이야.”

“저런. 그건 좀 어렵겠네요.”

남자는 다행히 메타인지가 잘 되는 타입 같았다. 저런 허언증도 있나 싶긴 했지만 나요한은 무시했다.

“아무튼 나가든가 고양이로 지내든가 둘 중 하나만 해.”

“그럼 고양이로는 괜찮다는 거죠?”

남자가 나요한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 순간, 나요한은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어쩌면 영원히 후회할지도 모르는 그런 거대한 실수를. 그저 치즈 고양이 하나에 마음이 약해져버려서는!

“자, 잠깐만!”

나요한의 머리속을 스쳐지나가는 어떤 생각들(이를테면 자신조차 가늠할 수 없을 영겁의 세월 동안의 후회)때문에 방금 전에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건 인지를 했다. 나요한은 이를 황급히 수습해보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시간은 신에게도 자비가 없었다. 신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나요한은 눈앞에서 고양이로 변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냐-!

남자, 아니 고양이는 나요한을 향해서 입을 쫙 벌리며 하품을 한 다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거실의 소파 위에 폴짝 올라가더니 꼬리를 돌돌 말고는 눈을 척 감아버렸다.

나요한은 그 꼴을 보고 기가 막혀서 (사람이 고양이로 변하는 꼴을 보면 누구라도 기가 막히긴 한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 * *

‘고양이로 변하는 사람은 신인가요?’

검색엔진 검색창에 이런 걸 검색해봤자 제대로 된 게 나올리는 없다. 나요한 박사는 멍하게 모니터 화면만 쳐다보았다. 지식인에 질문을 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랬다간 자신이야 말로 허언증 소리를 들을테니까.

오늘 나요한 박사의 오늘 루틴은 완전 엉망이었다. 새벽 내내 잠을 설치느라 입사 후 하루도 어긴 적 없던 미라클 모닝은 대차게 실패했다. 그냥 미이라 모닝이었다. 공복 조깅은 물론이고 명상도 못했다. 명상을 할라치면 머리속에서 고양이가 사람 목소리로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왜죠?’ 이러면서 시비를 걸었다. 일이라도 하려고 평소처럼 8시 출근을 했지만 일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진짜 급한 전자 결재 서류 몇 개만 넘긴 후에 책상에 앉아서 미라 모닝을 보내고 있는 나요한은 오늘 하루는 이미 글러 먹었다고 생각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그런 생각까지 했다.

“오늘 연차낼까?”

하지만 연차를 내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집에? 그 망할 고양이가 있는데? 집이 아니라면 어딜 간단 말인가? 이 깡촌 시골 마을에서 갈 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차를 타고 나가면 수상한 카페같은 곳들이 있지만 정말로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카페 옆에 커피 콩을 숯불에 볶기 위한 숯불 제조 공장이 있는 식이었다.

극한의 집돌이인 나요한은 집을 제외한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집 밖은 다 외출로 치기 때문에 회사에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연차를 내는 보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은 집에 갈 수도 없었다.

“박사님, 오늘 연차 내세요?”

고하겸 연구원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더니 활기차게 외쳤다. 저 새끼는 왜 저렇게 자신의 연차를 바라는 표정인 것일까? 아니, 일단 방에서 혼자 그냥 중얼거렸는데 밖에서 그걸 듣고 방문까지 열어 제끼면서 물어보는 것 자체가 황당했다. 사무실 방음이 잘 안되나?

“아닌데?”

“아, 아니시구나.”

고하겸은 그러고 나서 나가지는 않고 나요한의 책상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방문 너머로 차마 들어오지는 않고 고하겸만 졸졸 따라온 임주환 연구원의 모습도 보였다. 사무실 안에 되도록 혼자 있고 싶은 극 내향인 나요한은 고하겸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야, 왜 안 나가? 나한테 볼일 있어?”

“네. 박사님. 그럼 주환이랑 제가 대신 연차 내도 되나요?”

나요한은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둘이 놀러 나갈 계획인 듯 했다. 임주환 전에 있던 연구원에 비해서 고하겸이 유독 임주환과 친하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나요한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냥 둘이 사귀나? 싶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고 하지?”

“네?”

나요한이 표정하나 안 변하고 두 눈 크게 뜨고 평소처럼 말하자 고하겸이 잔뜩 쫄았다.

“연차는 회사 임직원의 권리잖아. 날짜 남았으면 전산으로 신청해.”

“그럼 결재해주실 건가요?”

“봐서.”

“아!! 박사님!! 이럴 까봐 미리 물어보는 거잖아요!!”

고하겸이 비명을 내질렀다. 임주환도 문 밖에서 기겁을 했다. 나요한은 기가 막힌다고 생각했지만, 새벽에 본 광경 (사람이 고양이로 변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이 정도면 상식적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빠지려면 실험 스케쥴 봐야되니까.”

“쥐새ㄲ- 아니 쥐들 밥 다 줬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야? 다음엔 연차같은 건 전날 미리 신청해.”

“네! 감사합니다!”

“나한테 왜 감사한거야?”

고하겸이 황급히 방 밖으로 나가는 걸 보면서 나요한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연차 결재 신청하기 어려운 인상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로, 다음에 연구실에 혼자 있고 싶으면 저 둘한테 연차를 줘서 연구실에서 합법적으로 내쫓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 잠깐만.”

이번엔 나요한이 사무실 방문을 열고 나와 이번엔 임주환의 책상 앞으로 갔다.

“왜요? 제 연차 취소하시려고요?”

“안돼요…! 예매 취소 시간 지났다고요!”

황급히 퇴근 짐을 싸던 임주환과, 그 옆에 있던 고하겸이 같이 우는 소리를 했다. 나요한은 진짜 알고 싶지 않은 소식들을 알게 되어서 괴로웠다. 장성한 사내 둘이 몰래 데이트하러 가는 길인 건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사람으로 변하는 고양이에 대해서 알고 있나?”

“박사님도 혹시 웹소설 같은 거 보세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박사님도 연차를 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날 고하겸과 임주환은 하마터면 어렵게 구한 예매를 취소도 못하고 날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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