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존나박사와 노란 고양이

신과 존나 박사와 노란 고양이 2.

다음날 아침. 나요한은 바로 고양이를 내다버리려고 했다. 이건 고양이 유기가 아니다. 저 놈은 원래 길 고양이다. 혼자 중얼거리면서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며 고양이를 아파트 화단에 내려놓고 새벽 조깅을 했다. 이 때문에 조깅이 2분이나 늦었지만 나요한은 지금 그걸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조깅하는 내내 고양이가 제발 멀리 도망치길 바랐다.

냐아아아.

조깅을 끝내고 돌아오니 고양이가 집 안 소파에 앉아서 태평하게 털을 다듬고 있었다. 문을 열어준 기억도 없는데 어떻게 기어 들어왔는지 놀랄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나요한 박사는 고양이가 어찌어찌 빈틈 사이로 집안으로 들어왔다고만 믿었다.

“망할 고양이 자식, 당장 안 꺼져!”

빡친 나요한이 소리를 버럭 질렀지만 고양이는 꿈쩍도 안했다.

캭!

오히려 송곳니를 드러내며 하악질을 해댔다. 나요한이 고양이의 몸뚱이를 잡아다가 집 밖에 내버리려고 하자 고양이가 손톱을 내밀어 나요한을 할퀴려 들었다.

“야!!”

할큄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어째 고양이의 허리만 쭈욱 늘어날 뿐 여전히 소파 위에 앉아 있는 걸 보고 나요한은 전의를 상실했다.

나요한은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채찍이 안 되면 당근 작전을 쓰는 수밖에.

동물을 키워본 적 없어서 고양이가 뭘 먹는지 잘 몰랐던 나요한 박사는 일단 신선한 물을 한 그릇 떠다가 고양이 앞에 내밀었다. 고양이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목이 제법 말랐는지 혀를 쭉 내밀어 물을 먹기 시작했다.

쓰윽.

나요한 박사는 고양이 물 그릇을 슬쩍 현관 쪽으로 옮겼다. 고양이가 쫑쫑거리며 물 그릇을 따라갔다. 옳지. 이거다. 물로 유인하는 거다.

쓰윽.

나요한 박사는 물그릇을 한번 더 옮겼다. 현관 바로 앞으로.

하지만 고양이는 더 이상 물그릇을 따라가지 않았다. 이미 필요한 만큼의 물을 다 마셨기 때문이었다. 수염에 물방울이 대롱대롱 달린 채로, 고양이는 커다란 눈을 깜박이더니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다시 소파 위로 올라가 버렸다.

“하아-.”

천하의 아이비리그 박사 출신인 나요한도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서 내쫓을 수가 없었다.

망할 고양이 때문에 출근이 30분이나 늦은 나요한 박사는 마침 나란히 한 차로 출근하던 임주환 연구원과 고하겸 연구원을 마주쳤다. 둘 다 나요한 박사 밑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이다.

“엇, 박사님! 오늘따라 출근이 늦으시네요!”

존나 박사의 앞에서 매번 쩔쩔매는 임주환 연구원과 달리 고하겸 연구원은 언제나 당당하고 쾌활했다. 존나 박사가 고하겸 연구원한테 혼을 덜 내서 그런 건 아니고, 고하겸 연구원이 원래 남의 말을 귓등으로 알아듣기 때문이었다. 존나 박사가 짜증을 내든말든 자기 할말은 다 하고 보는 편이었다.

“마침 잘됐네. 고하겸 연구원. 고양이 키워봤어?”

아직 연구실로 출근도 하지 않았건만. 나요한 박사는 주차장에서 다짜고짜 물었다.

“고양이요? 아뇨?”

“왜지?”

고하겸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두둥실 떠올랐다. 내가 어째서 고양이를 키워봤어야 했나? 설마 내가 고 씨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 고하겸은 미국 출신의 자신의 상사가 그런 유치한 개드립을 치지 않기만을 바랐다. 차라리 평소처럼 노잼인간인 게 낫지, 되도 않는 개저드립을 치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박사님. 저는 개랑 햄스터만 키워봤어요. 고양이는 주환이가 키웠죠.”

“형!”

옆에 있던 임주환이 쩔쩔맸다. 임주환은 아침 출근길부터 존나 박사를 만난 게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존나 박사와 어떻게든 말을 섞고 싶지 않았건만! 갑자기 불똥이 자신에게 튄 것에 대한 불만으로 고하겸을 노려보았지만 고하겸은 어깨만 으쓱했다.

“임주환 연구원. 고양이를 키워봤어?”

“네? 네……. 어머니가 키우셔서요…….”

이번엔 나요한 박사가 또 뭔 이상한 걸 물어볼지 걱정하며 임주환은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럼 고양이가 뭘 싫어하지?”

“네?”

“고양이가 싫어하는 게 뭐냐고.”

지금 장난하는 건가? 이 미친 박사가 아침부터 왜 고양이가 싫어하는 걸 물어보는 거지? 임주환의 머리 위에도 물음표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래도 박사님이 여쭤보시는 거니 성심성의껏 대답해서 점수라도 따야겠다. 임주환은 경험에 의거한 가장 확실한 정답을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똥이요.”

나요한 박사는 임주환 연구원의 답이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무리 고양이라도 똥은 싫어하겠지. 하지만 그건 나요한 박사도 싫다는 점이 문제였다. 고양이 놈을 내쫓자고 똥을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나요한 박사는 검색엔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인터넷에서는 상대적으로 상식적인 답변을 찾을 수 있었다.

‘고양이는 레몬이나 오렌지의 향을 싫어합니다.’

“오렌지를 싫어한다고?”

아무래도 똥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리고 오렌지는 맛있으니까, 고양이를 내쫓고난 후에 자신이 먹으면 그만이다.

나요한 박사는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레몬과 오렌지를 각각 한 박스 씩 당일 배송으로 주문했다. 망할 고양이 놈도 오늘로 끝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나요한은 컴퓨터 앞에서 혼자 악당처럼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때마침 볼 일이 생겨 존나 박사의 연구실 앞에서 노크를 하려던 임주환은, 방 안에서 들리는 음침한 웃음소리에 깜짝 놀라 벌벌 떨면서 도망쳤다.

“형, 존나 박사님이 존나 이상해!”

“그 박사는 원래 이상하잖아.”실험쥐 1호와 2호의 집에 베딩(톱밥)을 깔아주며 고하겸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고하겸에게 하소연을 하려고 실험동물사육실까지 따라 들어온 임주환이 옆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존나 박사는 연구소 어디에서나 튀어나오지만, 동물로 실험을 해야 하는 직업임에도 동물을 싫어해서 실험쥐도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만지지도 않았다. 당연히 실험동물사육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말인즉, 실험동물사육실은 존나 박사의 뒷담화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뜻이었다.

“오늘은 더 이상해. 방에서 혼자 웃었다니까?”

“헐. 그 인간이 웃었다고? 내일 지구가 망하려나보네. 오늘 미리 퇴사할까?”

고하겸은 실험쥐 1호와 2호의 집 사료통에 사료를 가득 채워주며 평온하게 말했다.

“아, 진짜 이상하다고. 박사님이 드디어 미친 거면 어떡하지? 오늘도 아침부터 고양이가 싫어하는 걸 물었잖아.”

“맞아, 그건 좀 이상했어. 갑자기 왠 고양이? 그리고 네가 아니라 나한테 먼저 물었잖아. 대체 그 인간이 왜 내가 고양이를 키워봤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고하겸은 존나 박사가 미친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고하겸이 보기에 존나 박사는 항상 반쯤 미쳐있는 작자였으니까. 대신 왜 자신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설마……. 형이 고 씨라서?”

“주환아. 죽을래?”

고하겸이 낮은 목소리로 임주환을 위협하며, 멸균 장갑을 낀 채로 실험쥐 1호의 꼬리를 잡고 쥐를 들어 올렸다.

“존나 박사가 설마 길고양이한테 간택된 거 아닐까? 그 인간 동물을 싫어하니까 일단 집사가 될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몰라.”

“에이, 설마. 고양이도 집사를 가려가면서 뽑을 텐데. 설마 그런 인간을 고르겠어?”

“하지만 멍청한 고양이가 있을 수도 있잖아. 지금 이 실험쥐처럼.”

고하겸이 자신이 붙잡고 있는 실험쥐 1호의 생식기를 면밀히 관찰하며 중얼거렸다.

“지금 1호랑 2호를 합사시킨 지 한달이 지났는데 왜 교미를 안 하는 건지 모르겠네. 분명히 수컷이랑 암컷 맞거든.”

“이 쥐도 어쩌면 자기 반려 쥐를 가려서 뽑는 것 아닐까?”

임주환이 눈을 끔뻑이며 엉뚱한 소릴 하자 고하겸이 한숨을 내쉬었따.

“실험쥐가 쥐를 가려가면서 교미를 하면 대체 실험을 어떻게 하냐.”

“하지만 쥐도 취향이 있을 수가 있잖아.”

임주환의 말에 고하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환아. 너가 이러니까 존나 박사랑 3년째 일하고 있는 거야.”

사실 그렇게 말하는 고하겸도 이 연구소에 취직한 지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자신이 집사로 간택된 줄 모르는 나요한 박사는 오늘만큼은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퇴근했다. 오렌지와 레몬이 배송완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연구실에서 총알같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일 배송을 가능케하는 현대문물에

집에 도착한 나요한 박사는 아파트 현관문 앞에 배달되어있는 오렌지와 레몬 박스를 보고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최고급 오렌지였다. 박스 위에 ‘향이 가득~!’ 하다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든든해졌다. 맛은 모르겠고 고양이 퇴치 효과만큼은 확실하리라고 기대하면서.

오렌지와 레몬박스를 질질 끌면서 현관으로 들어온 나요한은 오늘도 현관 앞에서 망할 누런 고양이가 냐아 타령을 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현관 앞은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이놈의 고양이, 어딜 갔지?”

설마 그사이에 알아서 집을 나간 건가? 그렇다면 완전 땡큐다. 오렌지와 레몬은 아깝긴 하지만 자신이 먹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주방으로 오렌지 박스를 가지고 가던 나요한 박사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분명 불이 꺼져있어야 할 서재의 문 틈에서 밝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망할 고양이.”

분명 고양이가 방에 들어간 것이 틀림없었다. 아까 인터넷으로 고양이에 대해 찾아보는 김에 더 찾아봤는데, 요즘 고양이들은 TV도 보고, 인덕션 불도 켜고 형광등도 켜고 문도 여닫을 줄 안다고 했었다. 고양이의 학습능력이나 지능에 미루어보아 인간과 오래 지낸 고양이면 그 정도의 행동을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딱히 틀리지 않았다. 아마 그 요망한 고양이도 그 정도는 할 줄 아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요한 박사는 껍질을 깐 오렌지를 하나 들고서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슬금슬금 서재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서재의 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고양이가 있어야 할 서재에는, 웬 벌거벗은 남자가 오피스 의자에 앉아 감자칩을 집어먹으며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

“…….”

남자도 문이 열리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서는 먹던 감자칩을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다. 그러다가 나요한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너. 뭐야.”

“아…….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원래 9시 반쯤에 퇴근하잖아요. 이제 8시인데?”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채로 남자는 뻔뻔하게 되물었다. 남자는 검은 머리카락에 작고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피부도 하얗고 몸도 늘씬하게 뻗어있었다. 분명 미남자였다. 문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거였지만.

나요한은 순간 뒷골이 당겼다. 빠직. 오렌지를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오렌지가 터져버렸다.

“너 뭐야! 남의 집에서 뭐하는 짓이야! 당장 신고할 거야!”

“너무 배가 고파서 뭐 좀 먹느라고 잠깐 인간으로 변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어요.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명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뭐? 인간으로 변해? 빨리 올 줄 몰라? 이 남자는 자신의 집에 하루 이틀 있었던 것이 아니란 말인가? 변하긴 뭘 변해? 열 받은 나요한이 손에 있던 뭉개진 오렌지를 남자를 향해 집어던졌다!

퍽-!

하지만 오렌지는 빈 의자 위로 툭 떨어져 버렸다. 원래 남자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자는 순식간에 아예 사라져버렸다. 대신, 책상 위에서 익숙한 누런 고양이가 나요한 박사를 바라보며 얄밉게 울었다.

냐아아아!

오렌지만 터져있는 빈 의자와, 책상 위의 고양이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던 나요한은, 눈을 끔벅이며 방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파악하려 했다.

“그러니까 이상한 남자가 갑자기 고양이로 변해서 책상 위로……. 이게 대체 무슨 …….”

나요한은 평생 과학자로 살았다. 물론 자연 속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곤 하지만, 실험과 증명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그가 평생 해온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고양이로 변한 것은, 자신이 이제까지 배운 모든 것을 종합해도 설명할 수 없었는 일이었다. 이건,

“말도 안돼…….”

나요한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