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교환

저녁 내내 돌아가던 턴테이블이 멎고, 레코드판을 든 종업원이 지친 걸음을 옮긴다. 주방과 홀을 오가던 발소리는 어느덧 현저히 줄어든 채였다. A는 글라스를 닦던 손을 멈추고 낡은 기숙사의 감독생에게 시선을 던진다. 아니, 이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감독생은 더 이상 낡은 기숙사에 머물지 않았으니까.

B 씨.

마지막 테이블을 닦던 B가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상념에 빠져 있었는지 도통 속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저희가 맡은 부분은 얼추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만, 뒷정리는 여기까지 할까요?

A의 말대로 모스트로 라운지 내부는 평소의 단정함을 거의 되찾은 상태였다. 잠시 주위를 둘러본 B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라운지 내에 남은 사람은 그들 둘만이 아니었다. 아직 조명이 꺼지지 않은 주방에는 몇 명의 종업원이 남아있을 테고, VIP 룸 어딘가에서는 지배인이 장부를 정리하고 있겠지.

고풍스러운 조각이 새겨진 문밖으로 빠져나오자 색채 다른 조명이 두 인영을 길게 비춘다.

고작 문 하나를 경계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숨이 멎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어째서일까. B는 막연한 답을 떠올린다. 어쩌면 모스트로 라운지 자체가 심해를 본뜬 공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폐호흡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

먼저 걸음을 뗀 것은 B다. A가 느린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큰 키만큼이나 넓은 그의 보폭은 종종 함께 걷는 사람을 한참 앞지르곤 했다. 그것을 막기 위한 예방책일까. A는 다른 사람과 같은 선상에서 걷는 경우가 드물었다.

…모든 인간은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어.

비유적인 표현인가요?

아니. B는 잠시 말을 고른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밀회는 두 사람만의 작은 취미였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늦은 시간의 복도, 목적지 없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복도를 걷기만 하는 공백의 시간. 대화의 장소로 담화실이나 개인실을 택하지 않은 것은 그저 타인과 유리되어 서로만을 의식하에 두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이 세계의 종의 기원 따위는 몰라. 이곳에서 인간이라고 불리는 종족이 내 세계의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종일 가능성도 있고.

하지만 적어도 내 세계에서, 인간의 진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간 끝에는 바다 생물이 위치해 있어.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어쩌면 우리는 너희만큼이나 바다와 가까운 생물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B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A는 반듯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로운 가설이네요.

그렇다면 당신이 옥타비넬을 선택하게 된 것 역시 우연은 아닐지도. A는 이어질 말을 삼켰다.

B는 스스로를 바다 생물에 비유했다. 하지만 A는 B를 바다에서 태어난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다의 생존방식은 약육강식. 뿌리내릴 곳을 찾지 못한 치어는 격렬한 해류에 휩쓸려 짧은 생애를 마감하기 마련이다. 이따금 근처의 수초를 모아 스스로의 몸을 고정시킨 채 잠드는 부류도 있었지만… A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억을 더듬는다. 그 어설픈 매듭을 슬그머니 풀어버리는 것은 어린 날의 A와 C가 공유한 추억이기도 했다.

연한 깃으로도 B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한다. 그것은 바다 생물보다는 오히려 다른 것을 닮아 있었다.

문득 B의 걸음이 멈추었다. 뒤따르고 있던 A가 함께 멈춰 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감한 헤이즐넛 색 눈동자가 천천히 A를 담는다. 여전히 한쪽 팔을 휘감은 선명한 색채에서 A는 비로소 답을 찾았다.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별말씀을요. 부기숙사장으로서 기숙사생을 챙기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이니까요.

담백한 어조와 달리 A의 시선은 부드러운 온도로 B를 향한다. 그 시선을 마주 본 B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A는 짧은 시간 그의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간 만족감을 놓치지 않았다. B는 늘 자신이 있을 자리를 요구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A는 자신의 미소가 기울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눈을 휘어 웃었다. 해류에 젖은 날개는 오랜 비행에 적합하지 않다. 과연 나비가 날갯짓을 멈추고 영영 이곳에 정지하는 것은 어느 때의 일일까.

당신은 분명 바다 깊은 곳까지 가라앉아 주시겠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속내는 인어의 폐 속을 한참 유영한 끝에야 조용히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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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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