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화리
빗소리가 요란하다. 흐트러진 자세로 소파에 기댄 B는 낡은 계단의 삐걱거림에 귀를 기울였다. 고작 서너 가구가 거주하는 그의 아파트에는 새벽 손님을 맞이할 만한 인사가 없었다. 오직 B를 제외하고. 현관 앞에 다다른 발소리가 잠시 멈춰 섰다. B, 자? 새벽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쾌활한 목소리. 뻣뻣한 몸을 일으켜 세운 B는 잠깐의 망설임 끝에 현관문을
서걱. 무딘 검날이 교도의 목 언저리를 파고들었다. 숫제 동물을 해부하듯 휘둘러진 칼날은 삽시간에 살점을 가르고 핏물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비명 하나 없이 스러진 교도의 뒤로 기형검을 내던진 청명은 그대로 시산屍山에 주저앉았다. 주위에 마른땅을 찾아보기가 힘들만큼의 난전이었다. ...몇이나 살아남았지? 핏물을 담뿍 뒤집어쓴 채 숨을 헐떡이는 자가 셋, 생
붙잡는 손을 뿌리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이 흥분 상태가 되면 언제든 활로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과연 별호에 마魔를 붙인 사내들답게 빈틈없는 포위진이었으나 나 역시 천라지망을 피해 도망친 전적이 있는 사내였다. 탈진한 듯 몸에서 힘을 뺀 뒤 가장 경계가 약한 쪽으로 달려들었다. 실상 도박에 가까운 수였으나 기이하게도 그들은 절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유리창은 알 수 없는 자국과 먼지로 더럽혀진 채였다. 멜은 소매 끝으로 붉은 얼룩을 문질러 닦는다. 얇은 천 너머 미지근한 온기가 선연했다. 한때 자신과 같은 온도로 맥동하고 있었을 생명. 그러나 어떤 감정은 결코 비등하게 주고받을 수 없다. 멜. 구두가 젖을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트린다. 방금까지의 무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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