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신루海市蜃樓
개인작
붙잡는 손을 뿌리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이 흥분 상태가 되면 언제든 활로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과연 별호에 마魔를 붙인 사내들답게 빈틈없는 포위진이었으나 나 역시 천라지망을 피해 도망친 전적이 있는 사내였다. 탈진한 듯 몸에서 힘을 뺀 뒤 가장 경계가 약한 쪽으로 달려들었다. 실상 도박에 가까운 수였으나 기이하게도 그들은 절기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의 반응이야 어쨌든 간에 나는 다시 바다에 뛰어들었다. 흑어黑魚를 잡기 위함이었다.
여전히 세계는 무음에 잠겨 있었고, 양손에는 검 두 자루가 쥐어져 있다. 낚시를 재개하는 데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바닷길은 결코 평탄한 법이 없었다. 해류는 때로 일정한 모양을 그렸지만 작은 풍랑 한 번에 어처구니없을 만큼 흐트러졌으며, 사방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암초가 산재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솜씨 좋게 파도에 섞여들었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컨데 평생을 바다에서 살았다는 말은 결코 안전을 보장하는 말이 될 수 없다. 바다에서 살아남는 데에는 경험보다 운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허옇게 눈을 까뒤집은 흑어를 일검에 베어낸 나는 몸을 반 바퀴 꺾어 수면 위로 솟구쳐 올랐다. 잠시간 올려다본 하늘은 짙은 자줏빛으로 물든 채였다. 기이한 일이로고. 그렇게 중얼거리자마자 시커먼 바닷속에서 손 하나가 불쑥 솟구쳐 나와 내 옷자락을 잡고 끌어들였다. 단박에 검을 휘둘러 주변의 흑어를 모조리 도륙내었다. 바닷속이라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물 밖에서도 소리가 들리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발밑에서 사체가 짓밟히는 감각이 불유쾌했다. 그런데도 사방에는 여전히 흑어가 드글드글했다. 만약 내가 어부였다면 평생 잡을 물고기는 다 잡았다 생각했을 터였다.
손에 들린 낚시 도구라고는 조금씩 무뎌지고 있는 검 두 자루 뿐이었던 터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쩌면 물고기를 잡는 데에 굳이 도구를 쓸 이유는 없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민들은 칼이 없어도 능숙하게 대가리를 따내지 않던가? 기름과 핏물 따위로 잔뜩 무거워진 검을 집어던진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흑어의 목을 잡아채었다. 덩치에 비례하듯 힘차게 퍼덕거리던 물고기는 목으로 예상되는 부분을 눌러 꺾자마자 축 늘어졌다. 조금 품이 들기는 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방법이었다. 히죽 미소지은 나는 몸을 낮추어 머리 위를 스쳐 가는 대도를 피했다. 원래 낚시를 이런 식으로 하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즈음부터는 완전히 난전이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흑어를 낚았다.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반으로 잘린 물고기, 머리만 남은 물고기…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문득 한 국군國君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태공조어 이수삼촌太公釣魚 離水三寸이라. 나는 삼척 떨어진 거리에서도 물고기를 낚을 수 있으니 강상과 비하여도 한 수 위가 아닌가. 문득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아 물고기 하나를 걷어차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아까보다 한층 짙어진 자줏빛 하늘이 나를 다시 한번 맞이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익숙함과 편안함이고, 바다는 그런 것을 한 순간도 나에게 쥐여준 적이 없었다.
술에 취해 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시인이 있다. 나는 눈을 감지 않고도 그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다. 이미 사방이 흑해黑海였기 때문이다. 흑단과 같은 색으로 매끄럽게 흐르는 강물은 조금의 일그러짐도 없이 달빛을 비추었다. 이상향에 젖은 시인은 저도 모르는 사이 손을 뻗었을 것이고, 헛된 꿈에 집어삼켜지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터다. 폐부를 얼리는 차가운 현실감을 시인은 무엇으로 받아들였을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바다는 다시 한번 꿈틀거리며 난폭하게 흔들렸다. 해로를 외울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한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이상을 좇는 것은 삶이 평안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정체된 강은 달을 비추지만 들끓는 바다는 달을 집어삼키듯이.
문득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니 피 냄새와 생선 냄새가 뒤섞여서 코를 찔렀다.
대단한 악취였다.
익숙하게 온도 없는 바닷물 속으로 몸을 던지려던 찰나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기억을 뒤지던 나는 한 박자 늦게 그것이 검마라는 것을 깨달았다. 뒤를 돌아보자 색마가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한 번 실패한 작전이라면 적어도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앞에 서 있던 검마가 어깨를 눌러 나를 주저앉혔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버텨보려 했으나 언제부턴가 힘이 풀린 다리는 더 이상 일어서 있기를 거부했다.
좋아,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이건 충분히 쓸만한 작전이었다. 나는 일어나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검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사람을 바다에 욱여넣다니 지금 날더러 익사하라는 거요? 질문을 입으로 꺼내기도 전에 검마가 두 손을 뻗어서 내 얼굴을 이리저리 구경했다.
검마가 내 얼굴을 붙잡은 채로 입 모양으로 말했다.
“운∙기∙조∙식”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 일단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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