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ERA+

의외의 수확

마도님의 선물

루드비히 와일드 x 테트라 지오메트릭

Written exclusively for you Copyright

© 2024 by Probably Choi

테트라는 미식가는 아니었지만, 음식의 풍미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적당한 가격에, 마음에 드는 분위기, 자꾸만 생각나는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는 건, 마치 보물찾기 같아서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한번 성공하면 그 기억만으로도 힘내서 지낼 수 있었다.

그날 찾아간 식당은 구석에 앉아있는 여자 손님 혼자 있는 곳이었다. 테트라는 그 여자와 적당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고, 메뉴판을 준 사장은 천천히 고르시라고, 미국식 억양이 짙게 묻은 목소리로 얘기한 뒤 주방으로 향했다. 주인을 맞이한 주방에서는 무언가가 튀겨지는 소리와 함께 걸쭉한 액체가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름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위장을 자극하자 테트라는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뭐 먹지. 일단 자기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가 메뉴판을 펼쳐 보았다.

간판만큼이나 평범한 버거 가게의 메뉴판이었다. 양이 적은 손님이나 어린아이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주니어 사이즈 버거 부터 다소 기름진 모습의 디럭스 버거, 사이드로 시켜 먹을 수 있는 튀김류와 스프까지. 음식의 종류가 다채롭지는 않았으나 버거 가게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어필하는 메뉴였다. 테트라는 신중하게 메뉴의 이름과 그 아래에 달린 설명, 그리고 손으로 그린 듯한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혼자 앉아있는 여자가 시킨 음식이 준비됐는지 가게 주인이 음식을 한가득 들고나왔다. 접시에 우뚝 선 버거, 옴폭한 그릇에 담긴 스프, 접시에 쌓인 감자 튀김과 소스. 한눈에 봐도 제법 양이 되었다.

“자, ‘더블 에스’ 하나!”

“고마워요. 맛있겠다!”

기대를 잔뜩 품은 채 대답한 손님은 앞으로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테트라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즐거움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식 영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그녀도 고향 음식이 그리워서 이 식당으로 찾아온 게 아닐까. 테트라는 잠시 감상에 젖어 들었다가 이내 고개를 짧게 흔들었다. 이미 그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왔고, 나아가는 선택지뿐이었다. 이따금 능력자가 아닌, 평범한 딸의 삶을 바라던 부모님의 생각에 마음이 아픈 순간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일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능력자들 사이에서는 능력을 사용하는 게 '평범' 아니던가. 언젠가는 웃으면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테트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급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까 혼자 온 손님이 받은, 특이한 메뉴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더블 에스?”

Sophia’s Special! 이름하여 소피아 특별 정식. 디럭스 버거 중 한 가지에 감자튀김, 클램 차우더, 코울슬로 그리고 자기가 선택한 음료까지 한꺼번에 주는 메뉴였다. 보통 세트 메뉴는 감자튀김이나 클램 차우더나 코울슬로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지막지한 양이었다. 하지만 테트라는 제 앞의 버거에 칼을 찔러넣는 여자 손님을 바라보며, 어쩐지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그녀는 손을 살짝 들어 주문했다.

* * *

이 세상에는 만용이라는 부르는 게 있다. 다른 말로 객기, 허세, 폭용 등으로 표현되곤 한다. 혹자는 용기와 만용의 차이는 성공과 실패라고 하지만, 테트라는 어휘의 섬세한 간극 따위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 다 못 먹겠어…!”

한숨처럼 흘러나온 항복 선언이었다. 테트라는 겨우 바닥을 드러내는 스프 그릇을 한번, 한입 베어 문 버거의 잔해를 한번, 그리고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감자튀김과 손도 대지 못한 나머지 사이드 디쉬를 바라보았다. 보통 스프 그릇보다도 깊은 그릇을 처음 맞이했을 때부터 겸허하게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크리미한 클램 차우더를 한 스푼 입에 머금자마자 느껴지는 고소한 버터 향과 눅진한 식감 너머로 피어오르는 조개의 풍미에 테트라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클램 차우더뿐만 아니었다. 아직 겉면이 바삭한 감자튀김은 잇새로 조심스럽게 물어 반토막 내자 그 사이로 포슬포슬하게 익은 감자가 뽀얗게 모습을 드러냈다. 시야를 살짝 일그러뜨리는, 뜨거운 증기는 갓 튀겨낸 감자튀김을 더더욱 돋보이게 했다. 테트라는 만족스럽게 기다란 감자 튀김 하나를 입에 물고 칼로 버거를 콕콕 찔렀다. 테트라가 칼로 건드린 부분이 파삭, 하고 부서지면서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안쪽이 보였다. 번 사이의 패티가 녹은 치즈로 감싸인 것까지 확인한 테트라는 눈과 코를 즐겁게 하는 식사에 기꺼이, 흠뻑 젖어 들 기대감으로 식기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지만.

클램 차우더도, 감자튀김도, 버거도, 코울슬로도, 심지어 버거 사이에 들어간 구운 양파까지도 혓바닥을 즐겁게 만들었지만 테트라의 위장은 그만 한계를 맞이했다. 그녀가 손을 살짝 들어 가게 주인에게 웅얼거렸다.

“저기… 남은 거 포장해주세요.”

더블에스를 시키고 포장하는 손님이 드물지 않았는지 주인은 껄껄 웃으며 테트라 앞의 접시를 치웠다. 한동안의 휴식 시간동안 콜라를 쪽쪽 빨아 마시던 테트라는 제게 내려앉는 시선을 느꼈다. 테트라와 마찬가지로 더블에스를 시켰던 여자 손님이었다. 저기, 있잖아요.

“이거 남은 거 데울 때 팬에 버터 조금 넣으면, 진짜 맛있어요!”

그냥 올려놓으면 타거든요. 그렇게 말한 여자는 코울슬로를 우물거렸다. 아, 고맙습니다. 지나가듯이 말한 조언에 테트라가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여자가 싱긋, 미소를 짓고는 감자튀김을 하나 입술 사이로 물었다. 힘들이지 않고 ‘더블 에스’를 차근차근하게 해치우는 여자를 보다가 테트라는 생각보다 금방 포장된 음식을 한 손에 받고, 다른 손으로는 자기도 모르게 손님에게 인사하며 가게 밖을 나섰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위장이 가득 차버린 기분이 들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했다. 다음에는 다른 메뉴에 도전해볼까. 그리 생각하며 테트라가 힘차게 집으로 향한 순간, 달갑지 않은 금발이 보였다.

“이런 허름한 가게가 취향입니까?”

루드빅이 테트라와 가게 간판을 번갈아 가며 보고는 그 누구도 원치 않은 평가를 내놓았다. 시비인지 인사인지 모를 말에 테트라는 입매를 꾹 다물고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무시, 무시가 답이야! 느긋한 구두 소리가 뒤쫓아오는 걸 들으면서도 테트라는 말없이 제 갈 길을 갔다.

마도님 감사합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