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개인작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유리창은 알 수 없는 자국과 먼지로 더럽혀진 채였다. 멜은 소매 끝으로 붉은 얼룩을 문질러 닦는다. 얇은 천 너머 미지근한 온기가 선연했다. 한때 자신과 같은 온도로 맥동하고 있었을 생명. 그러나 어떤 감정은 결코 비등하게 주고받을 수 없다.

멜. 구두가 젖을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트린다. 방금까지의 무표정이 거짓말인 것처럼 멜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초대하지 않은 친구. 엉망으로 흐트러진 바닥. 새하얀 나이트가운을 입은 루스는 주변과 완전히 유리된 것처럼 보였다. 여린 손끝이 발치를 가리킨다. 옷이 더럽혀지는 건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어? 내려다본 메리제인은 이미 핏물에 젖어 제 색을 잃은 채였다. 멜은 치미는 고양감을 이기지 못하고 깔깔 웃었다.

지금은 괜찮아. 기분이 좋거든.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루스는 이내 관심을 거둔다. 멜을 비껴간 시선은 자못 흥미롭다는 듯 벌레 먹은 커튼을 향했다. 결국 낡은 집 가득한 피비린내도, 머리가 박살 난 시신도 루스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경쾌한 걸음을 따라 진득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시신은 언제쯤 발견될까? 일주일? 한 달? 어쩌면 영영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르지. 멜은 머릿속에서 또 하나의 이름을 지운다. 목매단 시체처럼 머릿속을 부유하는 리스트는 이제 그리 길지 않다. 목록의 최상단. 반짝이는 스티커와 마커 따위로 화려하게 꾸민 단 하나의 이름.

루스.

둥근 청록색 눈동자가 그녀를 향한다. 멜은 팔을 뻗어 루스의 몸을 끌어안았다. 새벽 공기에 서늘해진 몸이 미적지근한 체온을 받아 가볍게 떨렸다. 얇은 나이트가운 너머 희미한 심장 박동이 들린 것도 같았다. 가끔은 네가 정말 살아있는지 의구심이 들어… 멜은 왼손에 들고 있던 망치를 떨어트렸다. 싸구려 석조 바닥이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박살 났다. 루스는 느리게 멜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건 중요한 일이니?

멜은 눈을 깜박이다 빙긋 웃는다. 설마! 끌어안은 몸은 손짓 한번에도 가냘프게 흔들린다. 메리제인과 맨발이 지저분한 폐허를 거닐었다. 밤바람을 반주 삼는 격식 없는 왈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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