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장] 녹음001. 방울 소리

약 1만 6천 자 / 로한 x 죠스케 호러 테마 단편

어쩌다죠죠 by 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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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매그너스 아카이브 패러디/약 크로스오버.

히가시카타 죠스케가 1999년 9월 27일과 그 이후 들었던 소리에 대해 진술합니다.



[딸깍]

히가시카타 죠스케

 크흠.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하는 거랬죠.


키시베 로한

 네가 겪은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누락하는 구석 없이 솔직하고 상세하게 말하라, 고 했다.

 크게 어려운 주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만, 보아하니 네놈한테는 아닌 것 같군.


히가시카타 죠스케

 참나, 누가 어렵댔냐? 그냥 평소에 녹음 같은 거 잘 안 하니까 적응이 안된다는 거지.

 아니, 애초에 댁은 그냥 헤븐즈 도어로 열어보면 되는 걸 왜 나한테 말하게 시키는데?


키시베 로한

 아까 일러뒀잖아? 내 스탠드로 읽을 수 있는 정보라 해도, 그 일을 겪은 당사자의 진술은 질이 다르다고. 그 당시에 네가 실시간으로 느낀 감정을 직접 말하는 거다. 거기서 오는 생동감과 리얼리티에는 대체할 수 없는 가치가 있어. 특히 이번 사건은 주로 ‘감각’을 기만하고 있으니까… 

[테이블 삐그덕거리는 소리]


히가시카타 죠스케

 뭐, 뭐, 알겠슴다. 어쨌든 처음부터 말하면 된다는 거 아냐. 

어디 보자…  처음이라고 해봤자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건 아니고, 한 달 전 일임다. 그때가 9월 27일 월요일이던가? 아마 맞을 검다. 주말 동안 오쿠야스랑 캠핑 갔다 와서 신나 있었는데, 바로 다음 날에 등교해야 하길래 무지 귀찮았던 기억이 나거든요.

아무튼 요지는, 그날은 평소랑 그닥 다를 것 없는 월요일이었어요. 학교 갔다가 오쿠야스랑 하교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좀 사 먹고. 마침 또 적당히 화창해서 아이스크림 사 먹기 딱 좋은 날씨였슴다. 그러고 집에 와서, 엄마가 잔소리하길래 전날에 대충 방바닥에 늘어놨던 짐 정리하고. 그러고 저녁 먹고. 설거지 좀 도와드리고, 시간이 비길래 지난주에 하던 비디오 게임 마저 깨다가 일찍 자러 갔어요. 

그러니까, 어… 그날 한밤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물론 그런 건 누가 친절하게 예고해 준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아니죠. 내가 스탠드 공격을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고, 그 정도야 알고 있슴다. 그런데 그건… 뭐랄까, 다른 스탠드 공격이랑은 느낌이 달랐다고 해야 하나… 

[테이블을 톡톡 두들기는 소리]

 아 알았어 알았다고. 안 그래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자세하게 얘기하려고 했거든요? 하여간 성질하곤…

 

 아, 아무것도 아님다~

 어쨌건.

그날은 다음날 학교도 가야 하니까 일찍 침대에 누웠슴다. 밤 열 시쯤 됐으려나? 그날따라 잠도 잘 오더라구요. 댁이 우리 집 근처에 자주 와봤음 알겠지만, 거기 나름 도로변이라서 오토바이라도 지나가면 소리가 엄청 크게 울려요. 가끔 밤에는 길고양이 같은 녀석들이 싸우는 소리도 나고. 옆집에서 큰 소리로 싸우거나 공사 같은 거 하면 당연히 알아차리죠. 그런데 그날은 딱히 그렇지 않았슴다. 되게 조용했던 기억이 나네요. 들리는 소리라 봤자 바람에 잎사귀가 날리는 소리나 커튼 펄럭거리는 소리 정도? 그 덕에 빨리 곯아떨어졌어요. 꿈도 안 꿀 정도로 편안하게 잤고요.

그러다가…  눈을 떠보니 아직 아침이 아니더라구요. 캄캄한 한밤중이었슴다. 왜 그때 일어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워낙 깊이 자는 편이라 보통은 그런 일이 없거든요. 너무 일찍 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잠결에 뭔가를 느꼈던 건지. 아무튼 침대 옆에 시계를 집어 들어서 확인해 보니까 정확히 새벽 두 시였어요. 일어날 시간까지는 한참 남았길래, 다시 눈 감고 그대로 자려고 했죠.

그런데 한참 누워있자니 주변이 너무 조용한 검다. 아무런 소리도 안 들렸어요. 그건 말이죠, 잠들기 직전에 느꼈던 분위기랑은 달랐슴다. 자기 전에는 최소한 소리는 계속 들리고 있었어요. 바람 소리라든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같은 거. 그런 소리는 조용하긴 해도 항상 게임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오고 있잖아요. 한 번 신경 쓰기 시작하면 들리는데, 익숙해지면 또 안 듣게 되는 식으로요.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그땐. 사방이 완전히 고요했슴다. 하도 조용해서 어느새 내 숨소리밖에 안 들리더라고요. 잠시 위화감은 들었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밤중이라 더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자려고 눈을 감고 있는데 어떤 소리가 들렸어요.

깔깔, 하는 소리. 

웃음소리? 아니면 뭔가가 딸랑거리는 소리였던 것 같기도 함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희미했어요. 평소라면 신경도 안 썼겠지만 그땐 워낙 주위가 조용해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이상한 소리라 치고 그냥 넘기기엔… 이미 잠은 다 달아난 상태였고요.

 멀뚱히 누워 있자니 삼십 초쯤 지나서 다시 뭔가가 들렸어요. 

 똑같이 방울 소리처럼 명랑한 웃음소리였죠. 이번엔 조금 더 컸슴다.

그게 들린 순간 벌떡 일어나서 스탠드부터 불렀어요. 한 번은 우연이라 쳐도 두 번 연속해서 똑같이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우연이 아닐 거다, 이딴 장난을 치는 게 적 스탠드유저든 유령이든 간에 뭔가가 나를 노리고 있는 건 확실하다 싶었슴다. 그 상태로 숨죽이고 있었더니 한 번 더 들리더라구요. 그 직전보다 약간 더 크게, 깔깔 하는 소리가.

 뭔지는 몰라도 그 자식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만약 그렇다면 이쪽도 맞이해 줄 준비를 해야겠지. 그렇게 판단을 하고, 최대한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서 거실로 걸어갔슴다. 

 적 스탠드가 나한테 찾아오고 있는데 장소가 거실이든 내 방이든 그게 그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 방 바로 건너편이 하필 엄마 방이라, 이왕이면 싸움은 좀 멀리서 해야 하지 않겠냐?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슴다. 물론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죠스케 군이 해결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무튼 그래서, 거실까지 걸어가려고 마룻바닥에 내려와 섰슴다. 부엌부터 거실까지 온 집안이 조용한데 내 발소리랑 숨소리만 들리고 있었죠. 하도 조용한 탓에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울리더라고요. 거실에 도착했을 때는 그새 내 발소리 때문에 웃음소리를 놓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아니었슴다. 왜냐면, 그다음 웃음소리는 집 안에서 들렸거든요. 

 여전히 인기척은 전혀 없었어요. 현관문이 열린 적도 없었고요. 오직 깔깔 웃는 건지 종 같은 게 딸랑거리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그놈의 소리만 아주 명쾌하게, 부엌 쪽에서 들리는 검다. 

 로한 선생님은 알겠지만 나 웬만한 일엔 눈 깜짝 안 하고 넘어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땐 솔직히… 이런 말 하긴 진짜 쪽팔리는데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어요. 

 오해하진 마십쇼. 무서웠다는 건 절대 아니니까. 그보단 좀 더… 긴장했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물론 이런 생각도 같이 하고 있었죠. 이 자식 가까이 오기만 해봐라, 그놈의 깔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내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로 패줄 테니까. 소리를 내는 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인지 뭔지는 몰라도, 그 소리가 바로 네놈 위치를 발각시키는 힌트가 될 거다.

 

 다음 순간 바로 내 등 뒤에서 깔깔 소리가 들렸어요. 당장 그쪽을 정확히 겨냥해서 크레이지 D로 주먹을 날렸슴다. 뭔가 둔탁한 게 닿더니 뼈가 산산이 으스러지는 감각이 확실히 느껴졌어요. 잡았다 이 자식, 하고 외치면서 휙 고개를 돌렸죠. 그랬더니 거기엔…

 거기엔.

우리 엄마가…… 쓰러져 있었어요.

내 스탠드에 맞아서 얼굴 반쪽이… 날아가 있더라고요.

 [잠시 침묵]

 [부스럭거리는 소리]

 휴지 필요 없슴다. 

 우는 거 아니거든?


키시베 로한

누가 뭐랬냐, 피는 닦으라고. 

지금 입술 깨물고 있잖아.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

 [부스럭거리는 소리]

 …….

 아무튼… 그래서. 

 그래서, 당장 스탠드로 고쳤죠. 깔끔하게. 

 그리고 엄마를 안아 들고 생각했어요. 이놈은 없애버려야겠다. 게다가 방금은 소리로 나를 속여서 엄마를 공격하게 만들었지만, 이제 엄마는 여기 내 눈앞에 있으니 다시 엄마가 위험해질 일은 없다……. 적어도 방금 같은 수작은 못 부리게 됐다는 검다. 

 그렇게 기다렸어요. 다시 소리가 울리기를. 

 그런데 삼십 초가 지나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슴다. 오직 그 지랄맞은 침묵만 끝없이 늘어지고 있는 거예요. 머리는 차갑게 식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는데도.

  그러다 침묵을 뚫고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어요. 똑, 똑, 하고 딱 두 번이요.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 치고는 지나치게 간결하고 명쾌했어요.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그 노크를 듣는 순간 그게 아까 그 웃음소리와 같은 존재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겠더라구요.

 내가 뭐 어쨌겠어요? 엄마를 단단히 안은 채로, 크레이지 다이아몬드의 사정거리를 정확히 계산해서 현관문을 향해 주먹을 연타했죠. 0.1초도 안 돼서 현관문 문짝이 산산이 찢겨나갔어요. 그 뒤에 있는 게 누구든 곤죽이 되어버리긴 충분했슴다. 설령 덜 맞았다 해도 일어나려는 순간 부숴주겠다고 생각하면서 산산조각난 문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다 부서진 문 사이로 찬 바람이 불어오는 소리만 귀에 맴돌았어요. 멀리서 자동차 다니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고. 하지만 그 빌어먹을 웃음소리는 더 이상 안 들렸어요. 

 …그날은 그게 끝임다. 


키시베 로한

 그게 끝이라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예, 뭐… 문을 고쳐두고 혹시 몰라서 해 뜰 때까지 엄마 옆을 지키긴 했죠. 그래서 다음날 학교에선 하루 종일 곯아떨어졌고. 댁한테 이런 얘기까지 필요한지는 몰라도요.


키시베 로한

 내 입장에선 많이 얘기할수록 좋아. 특히 디테일은 항상 중요하지… 생생함은 사실적인 디테일에서 나오는 법이거든.

 아무튼, 지금은 이런 얘기는 접어두자고… 그래서 다음엔 어떻게 됐지?


히가시카타 죠스케

 뭐어, 여기부터는 댁도 조금씩 주워들었을 텐데. 일단 이게 스탠드유저든 유령이든 뭐든 간에 상당히 위험한 건 분명하니 당장 친구들한테 알렸슴다. 오쿠야스랑 코이치는 그런 현상은 겪어본 적 없다고는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게 앞으로 누굴 언제 습격할지 모르니 다들 경계를 늦추지 말고, 각자 가족 곁을 최대한 지키는 걸로 의견을 모았어요. 갑자기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기 시작하면 바로 연락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눈에 닿는 곳에 가족이 있도록 하자, 또 다들 될 수 있는 대로 녀석의 정체를 파헤치자고요. 유카코나 훈가미, 토니오 씨한테도 얘기를 했슴다. 댁한테는… 아마 코이치가 얘기를 했겠지?


키시베 로한

 그래. 

 그 얘기를 전해 들은 게 9월 29일이었으니… 코이치 군이 너한테서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바로 연락을 줬다는 뜻이겠군.


히가시카타 죠스케

 빨라서 좋네요. 

 그래도 그쪽은 딱히… 걱정할 건 없었던 것 같지만. 그 점은 다행임다.


키시베 로한

 그게 무슨 뜻이야?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니 그러니까, 로한 쌤은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 없잖아요? 그래서… 댁은 걱정할 게 하나 줄었던 거니까. 다행이라고. 


키시베 로한

 그 말이 어떻게 틀려먹었는지 반박할 방법이 당장 세 가지나 떠오르는데, 우린 갈 길이 머니까 넘어가지. 반박은 네 진술을 다 듣고 나서 해도 될 테니까 말이다. 


히가시카타 죠스케

 …… 맘대로 하십쇼?

 아무튼 그래서, 9월 마지막 주는 다들 하루하루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지냈슴다. 조금이라도 주변이 조용해지는 것 같으면 귀를 쫑긋 세우고 그놈의 방울 소리든 웃음소리든 그 소리가 들리는지 확인했어요. 속으로는 삼십 초를 세면서요.

 그런데 아무것도 안 나타나더라고요. 나뿐만 아니라 오쿠야스나 코이치도 딱히 이상한 일은 없었다고 했어요. 모리오쵸의 다른 스탠드유저들한테 연락해 봐도 마찬가지였죠. 댁도 그렇고. 그렇게 집안을 들쑤셔 놓고 종적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놈 목적이 뭐였든 간에 이룬 건 하나도 없는데? 좀 이상했슴다. 하지만 도통 나타나질 않으니 어쩌겠어요? 

 게다가 그 난리를 겪고도 우리가 그놈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었어요. 전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는지 신문 기사를 뒤져봐도 특이한 걸 찾지는 못했고요. 생각해 보면 딱히 놀랄 일은 아니죠. 그 자식의 특징이라 봤자 기껏해야… 모든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다, 대략 삼십 초에 한 번 짧고 맑은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소리만으로 소중한 사람을 공격하도록 페이크를 칠 수 있다 정도니까.

 어쨌든…

 그렇게 10월이 됐고, 다음 주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어요.

 그 다음 주도 마찬가지였슴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도. 모두가 아무 일 없었다고 말했어요.

 그쯤 되니 오쿠야스나 코이치도 그렇고 나도 약간은 마음이 놓이더라구요. 아, 경계심이 풀어졌단 건 아님다. 뭔가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항상 의식은 하고 있었어요. 다만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정도?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는 걸 보니까, 어쩌면 그놈은 나랑 한 판 하고 나서 자기 목적을 쉽게 달성할 수 없는 걸 깨닫고 떠나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슴다. 이 얘기를 친구들이랑도 나눠 봤어요. 코이치가 전해주기로, 로한 쌤은 좀 다른 의견이라고는 했지만. 

 뭐랬더라. 그러니까—


키시베 로한

 그 존재가 뭐든 간에, 그것이 습격한 건 바로 너니까 최소한 목표는 명확하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그래서 언젠가는 나한테 돌아올지 모른다. 맞죠?


키시베 로한

 그래. 솔직히 예상 밖이야. 너도 비슷한 의견이었을 줄 알았는데?


히가시카타 죠스케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님다. 그냥… 계속 기다리기만 하다 보니 슬슬 다른 생각도 들기 시작한 거지.

 뭐 결과적으로는… 로한 쌤이 맞았다고, 인정은 해야겠지만.


키시베 로한

 딱히 들어맞아서 유쾌했던 예측은 아니군.


히가시카타 죠스케

 거야 그렇죠.

 [후 하고 숨을 내뱉는 소리]

 문제의 사건은… 그렇게 4주가 지나고 나서야 일어났으니까. 더 정확히는 10월 30일 밤이요. 

 뭐… 여기서부터는 댁도 알 테니까 내 입장에서 겪은 것만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되겠네요.

 어디 볼까…

 10월 30일은 토요일이었고… 엄마는 집에 없었어요. 오랜만에 이모네 집에 들르는 김에 하룻밤 자고 온다고 그랬거든요. 그때 나한테도 같이 갈지 물어봤던 걸로 기억함다. 뭐어, 나도 무지 가고 싶긴 했지만 오쿠야스랑 다음 날 아침부터 할로윈 파티 준비하기로 약속을 해놔서 너무너무 아쉽게도 못 가겠다고 그랬죠. 사실은 이모가 모리오쵸 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닥 아쉽지도 않았는데. 아 이건 엄마가 들으면 화내겠네. 

 암튼, 그래서 집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어요. 당연히 엄청 놀았죠. 아마 밤 열 시가 넘은 시점이었을 거예요. 그때 전 이때가 기회다 하고 슈퍼 마리오 64 마지막 스테이지를 깨고 있었슴다. 로한은 모르겠지만 거기서 보스인 쿠파한테 가려면 올라가야 하는 계단 같은 게 있어요. 거길 지나치고 있었는데 게임 브금이 갈수록 작아지더라구요. 

 ‘뭐지? 스피커 같은 게 고장 났나?’ 싶어서 일단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로 고쳤어요. 그런데도 소리가 계속 작아지더니 잠시 뒤엔 아예 안 들리더라구요. 닌텐도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는지 의문이었슴다. 만약 불량품이면 가게 찾아가서 한마디 단단히 해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들리지 않는 건 게임 소리만이 아녔어요. 아예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있었슴다. 어느새 온 집안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더라고요. 

  TV 화면 속에선 마리오가 계속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어요. 조용히. 

 그걸 알아챈 순간엔 더 이상 게임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죠. 당장 일어서서 스탠드를 불러놓고 가만히 기다렸슴다. 그 빌어먹을 깔깔 소리가 들리길 고대하면서요.

 아니나 다를까, 삼십 초쯤 기다리니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슴다. 한 달 전이랑 똑같이 아주 명랑하게, 똑 똑 하는 소리가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쇼. 엄마는 그날 들어올 일이 없고, 엄마라면 우리 집 현관에서 노크할 리도 없잖아? 

 물론 뒤에 있는 게 진짜로 우리 집에 용건이 있는 사람이고, 그 소리가 날 속일 가능성도 있긴 했슴다. 그치만 일단 패고 봐서 나쁠 거 없다, 잘못 때렸으면 고쳐주면 되니까, 하고 단숨에 결론짓고 현관문 쪽으로 달려갔죠. 모든 게 조용한 가운데 스탠드가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정적을 가득 채웠고… 

 스탠드의 주먹이 문 뒤의 뭔가에 가서 닿는 순간 알았어요. 크레이지 다이아몬드가 이번엔 확실히 이 자식을 넝마로 만들었다는 걸. 그리고 이 자식은 적어도 엄마는 아니고, 내가 아는 다른 사람도 아니라는 걸요.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잡았을 거라고 확신했죠.

 다 부서진 문 너머로 서서히 먼지가 가라앉고 나니 잔해 사이에 쓰러진 놈이 보이더라구요. 

 그건… 

 당신이었어요. 

 로한 선생님.

 [잠시 침묵]


키시베 로한

 …… 계속해봐.


히가시카타 죠스케

 ……. 

 그땐 너무 놀랐슴다. 순간 두 눈을 의심했죠. 댁이 거기서 나올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게다가 펀치를 날릴 때 스탠드에 닿은 감각은 분명히 어딘가… 낯설었단 말임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진짜로 그랬다고요.

 하지만 거기 누워 있는 건 누가 봐도 댁이었고,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슴다. 그래서 일단 쌤을 내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로 고쳤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쌤이 눈을 뜨더라고요. 그러곤 날 잠시 쳐다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서 집 안에 들어갔어요. 나는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안 됐지만 일단 따라 들어갔죠. 뭐… 댁도 이런 건 대충 알겠지.

 들어가자마자 난 댁한테 온갖 질문을 다 쏟아냈슴다. 대체 밖에서 뭐 하던 거냐, 이 밤중에 여긴 왜 왔냐, 혹시 그 깔깔거리는 자식을 보거나 들었냐 분명히 방금 이 근처에 있었는데, 대답 좀 해라 그만 좀 둘러보고. 쌤은 그런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 안을 휙 둘러보더니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는 곧 천천히 거실을 한 바퀴 돌았슴다. 하도 답답해져서 댁 어깨를 막 잡아세우면서 따지려던 참이었어요. 

 다시 주변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지더라구요.

 나도 모르게 로한 어깨를 더 꽉 잡았어요. 그러고는 곁눈질로 주변을 살폈슴다. 속으로는 삼십 초를 세기 시작했고요. 

 댁은 어깨를 세게 잡혀서 그런가 약간 움찔하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어요. 그러고는 서서히 입꼬리를 올리는 게 보였슴다. 세상에, 이 미친놈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 싶었어요. 하지만 시비를 걸 여유도 없었으니까 그냥 무시하고 있었죠.

 이십오 초쯤 셌을 때 댁은 내 쪽으로 완전히 고개를 틀고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슴다. 심지어 눈꺼풀도 전혀 깜빡이지 않고 두 눈동자를 고정하고 있었어요. 여전히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띄운 채로요. 그 상태로 완전히 가만히 있더라고요. 점점 더 불쾌해지길래 결국 침묵을 깨고 소리쳤어요. 아까부터 기분나쁘게 왜 그러냐고, 말이라도 좀 해보라고.

 그랬더니 댁이 입을 열었어요.

 그리고 웃었죠. 

 깔깔, 하고. 

 아주 맑고 경쾌한 소리였어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난 반사적으로 공격을 했어야 했어요. 웃음소리에 한두 번 반격한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 그땐… 내 몸도 스탠드도 바로 움직이지 못했슴다. 

 너무 놀라서 그랬던 건가? 

 아니… 그건 아니고. 

 지금 생각하면…

 헷갈려서였던 것 같슴다. 


 눈앞의 로한이 진짜 로한인지, 아니면 로한인 척하는 웃음소리인지. 그걸 더 이상 알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망설이는 순간이었슴다. 로한이 휙 일그러지더니 어깨에 있던 내 손을 단단히 감쌌어요. 스탠드를 불러 펀치를 날리려고 했지만 그 펀치도 바로 감싸버렸고요. 그때 모습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슴다. 꼭… 유리가 불 속에서 녹아내리는 것처럼 로한을 닮은 그게 늘어나고—꼬이더니—나랑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를 반쯤 삼켜서 옴짝달싹 못 하게 굳혀버렸어요. 그래, 마치 호박 속에 박제되는 그놈의 모기 표본처럼 말임다. 

 더 끔찍했던 건, 단단하고 끈적거리는 점액 같은 걸 통해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깔깔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고막에 꽂히기 시작했슴다. 내 스탠드한테도, 나한테도요. 이제는 세로로 꼬여버린 입에서 소리가 계속 울려퍼지더니 점액이 마구 울렸어요. 딸랑, 딸랑, 딸랑, 깔깔, 깔깔, 딸랑, 깔깔 하고. 진짜로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어요. 정신을 차려서 손발을 움직이려고 해 봐도 도무지 정신이 차려지지가 않는데 대체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때 갑자기 소리가 뚝 그쳤어요. 

 점액이 어느새 떨어져서 바닥에 고이기 시작했어요. 고개를 들어 보니 그 로한 같은 놈이 바닥에 쓰러진 채로…

 페이지가 활짝 펼쳐져 있었슴다. 

 그 옆에는 댁이 그 놈을 가리킨 채 숨을 고르고 있었어요. 댁이… 그러니까, 쓰러진 놈 옆에 나타난 사람이 진짜 로한이었던 거죠.

 너무 놀라서 몇 초간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로한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름도 크게 불렀던 것 같고. 로한은 날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저걸 보라고 다급히 말했어요. 로한의 손짓을 따라서 페이지로 시선을 옮겼더니 뭔가 기묘한 게 있었어요. 원래 헤븐즈 도어에 당한 사람은 이런저런 얘기로 가득 차 있죠, 안 그래요? 그런데 그 놈의 페이지에는 딱 두 단어만 반복되고 있었슴다.

‘위험해’, ‘도망쳐’라고요. 

온 페이지가 다급하게 휘갈긴 글씨로, 그 단어로만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어요. 로한은 거기다 우리를 공격할 수 없다고 쓰려고 했지만 이미 쓰여 있던 '위험해' '도망쳐'가 스르륵 움직이더니 그 글씨를 새까맣게 덮어버렸슴다.

 게다가 페이지 한가운데는 마치 누군가 파낸 것처럼 둥그렇게 파여 있었어요. 꼭 보리밭에 남은 비행접시 자국 같았죠. 그런데 거기 누워 있는 건 웬 외계인 같은 게 아니라 더 이상한 거였어요. 

 사람 머리통만한 방울 하나였으니까.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슴다. 헤븐즈 도어로 까봤는데도 대체 이 자식이 뭘 하는 자식인지도,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여기서 방울까지 튀어나오니까 정말 갈피를 못 잡겠더라고요. 그냥 존나 이상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와중에 방울 대가리 자식은 페이지를 닫고 서서히 점액을 그러모아 몸뚱이를 일으켰죠. 곧 다시 주위가 음산할 정도로 조용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내 머릿속에 맴도는 건 딱 하나였죠. 저 자식 입을 닥치게 하고 싶다. 닥치게 해야만 한다. 

 마침 거실 테이블 위에 커다란 유리병이 있었어요. 엄마가 외박하신대서 혼자 마시려고 사온 음료수 병이었슴다. 그걸 들어서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로 산산조각냈어요.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방울 자식이 입을 열자마자—

 유리병을 고쳐서 그놈 머리통을 병 속에 넣어버렸슴다. 공기를 빼고, 유리병만 고쳐서, 머리통이 들어간 병을 완전히 진공 상태로 만들어버린 거예요. 이래 봬도 나, 과학 시간에 배운 걸 까먹진 않았거든요. 소리는 매질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전달되니까, 완전한 진공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거.

 그 인간—아니 방울—은 입을 뻐끔거렸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곧 그 자식이 온몸으로 소리를 내려는 듯 격렬하게 진동할 때도 마찬가지였슴다. 방울 자식은 한참 동안 소리 없이 그렇게 절규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는 서서히 투명해졌죠. 먼저 그 많던 점액이 사라지더니, 병 안쪽의 방울만 남았고… 그 방울마저도 서서히 사라져갔슴다. 

 결국 병 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아니, 최소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할까. 그렇다 쳐도 그게 사라졌는지, 아니면 단순히 보이지 않는 건지 병을 다시 깨서 확인해 볼 생각은 없슴다. 난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 

 참, 유리병은 아직도 내 방 침대 밑에 있어요. 죠타로 씨한테 연락해봤는데, 스피드왜건 재단이 그걸 병째로 수거해갈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제가 맡아놓기로 해서요. 

 아무튼… 그 소리에 관련된 일은 대충 그렇게 끝이 났슴다. 

 이 정도로 말했으면 됐나?


키시베 로한

… 음. 알겠군. 좋아. 궁금했던 건 대강 해결했어. 


히가시카타 죠스케

그래? 잘 됐네요~ 뭐. 

나야 녹음 대가로 알바비 받으니까 더 잘 됐지만요. 그쵸?


키시베 로한

빨리 받고 싶다는 소리를 돌려말하는 건 또 뭐야? 어차피 곧 줄 거다.


히가시카타 죠스케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잠시 침묵]

아… 근데요. 로한 쌤.


키시베 로한

뭔데, 또.


히가시카타 죠스케

대체 뭘 알겠다는 거야?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어요? 이 자식에 대해서? 


키시베 로한 

[쯧 하는 소리]

나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의심이 가는 정황은 몇 가지 존재해. 특히 그 녀석의 정체 쪽으로는 말이지.


히가시카타 죠스케

그러니까 그게 뭔데?


키시베 로한 

…….

그 녀석을 내 스탠드로 열었을 때 쓰여 있던 게 뭔지는 너도 봤다고 했지. ‘위험해’, ‘도망쳐’라는 단어들, 기억나나?


히가시카타 죠스케

그럼요. 근데?


키시베 로한 

 그 단어들은 전부 서로 다른 글씨로 쓰여 있었어. 휘갈겨 써서 언뜻 보면 같은 사람이 쓴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위험해’도 ‘도망쳐’도 어느 하나 동일한 글씨가 없었지. 

 내가 그걸 알아챈 건… 

 [잠시 침묵]

 그 속에서 내 글씨를 발견했기 때문이야.


히가시카타 죠스케

 뭐? 그냥 댁이 우리를 공격하지 못한다고 쓴 걸 잘못 본 거 아냐? 로한은 그놈을 전에 만난 적도 없다며.


키시베 로한 

 그렇지 않아. 확신할 수 있어. 왜냐하면, 거기 있던 ‘위험해’와 ‘도망쳐’는 내가 어렸을 적 글씨였거든. 

 정확히는 네 살 때지.


히가시카타 죠스케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키시베 로한 

 생각해 봐. 페이지 위의 모든 단어가 서로 다른 글씨로 쓰여 있는데, 나의 네 살 시절 글씨도 거기 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

 이제껏 헤븐즈 도어로 열었던 사람들은 각각 동일한 글씨로 서술되어 있었어. 그런데 이 존재는 그렇지 않아. 그건 그 존재가 무엇이든 간에 하나의 자아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소리일 거다. 여러 사람의 마음 혹은 영혼에 영향을 받았을 거야. 그리고 당연히 네 살 시절의 내 자아와도 관련이 있고. 

 즉 그 존재는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느낀 공포와 위험이 모여 만들어진 존재겠지. 이것도 결국은 가설이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 있는 해석이야.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니 잠시만 잠시만… 

 그러니까 댁 얘기는 대충 이해가 되긴 해요. 생각해보면 말도 되는 것 같고. 어쨌든 그 자식, 일반인이나 스탠드유저는 아닌 게 확실하잖아. 그런데 그거랑 네 살짜리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 거야?

 설마 뭐… 당신, 엄청난 위험에라도 처했던 검까?


키시베 로한 

 아, 그거. 

 간단해. 네 살 때 나는 키라 요시카게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거든. 나도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정보지만.


히가시카타 죠스케

 뭐라구요?! 진짜로???

 아니… 왜 지금까지 얘기 안 했어요???


키시베 로한 

 그걸 내가 왜 얘기해줘야 하는데?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니 그… 중요하잖아? 


키시베 로한 

 뭐가, 그게? 너한테 말이냐?


히가시카타 죠스케

 그러니까—…. 에라이, 됐다 뭐…


키시베 로한 

 그래.

 그보다 다시 방울 얘기로 돌아가면… 그 존재를 구성하는 것에는 ‘예전부터 이 마을 사람들이 겪어 왔던 공포와 위협의 감각’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겠지. 그 존재의 활동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십오 년 전에 이 마을에 있었던 건 명확하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무래도 그래 보이네요…

 그런데, 그럼 진공 병에 가둬 놓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그 정도로 쌓인 감정들이 한번에 없어질 리는 없잖아.


키시베 로한 

 그래, 아마 그 존재의 힘은 일시적으로 사라졌을 거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고…

 다만 그런 공포의 원인 중 키라 요시카게는 이제 없으니, 그 존재가 돌아온다 해도 좀더 약해진 채 돌아오겠지. 게다가, 소리를 내는 능력을 제한시킨 건 사실이니까.


히가시카타 죠스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잠시 침묵]

 아니 근데, 궁금한 게 더 있슴다. 


키시베 로한 

 또 뭔데? 


히가시카타 죠스케

 그 존재 얘긴 아니고요, 로한 얘기야. 아니, 그 존재랑 관련된 로한 얘긴가?


키시베 로한 

 물어볼 게 있으면 빨리 해.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댁이죠?

 왜 그 방울 녀석이 댁인 척 했고, 로한은 또 왜 우리 집 앞에 있었던 거예요? 그것도 토요일 밤에. 

 계속 궁금했는데 그땐 하도 정신이 없어서 물어보는 걸 깜빡했지 뭠까.


키시베 로한 

 음.

 그 존재가 왜, 어떻게 내 모습을 따라했는지는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어. 짐작만 할 뿐이지. 

 아마도… 네 집 근처에 내가 자주 나타나서 그랬을지도 모르겠군. 


히가시카타 죠스케

 당신이? 거기 자주 왔다고? 


키시베 로한 

 그래. 


히가시카타 죠스케

 대체 왜… 아, 설마.


키시베 로한 

 아까도 말했지만, 네 집을 그 존재가 다시 찾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히가시카타 죠스케

 가족이 없다 해서 걱정할 게 적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이 뜻이었구만. 그쵸? 


키시베 로한 

 뭐… 여러 뜻 중 하나지.


히가시카타 죠스케

 뭐야~ 그럼 당신, 설마 매일 밤에 들렀던 거예요? 한 달 동안~?


키시베 로한 

 …그럴 리가. 

 첫 주에는 매일 갔는데, 그땐 나타나지 않더군. 네 집에 계속 가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다음부터는 일주일에 한두 번만 가기로 했어. 

 대신 네 집에 도청기를 설치해 뒀지. 그러면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내가 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으니까.


히가시카타 죠스케

 뭐?

 [잠시 침묵]

 뭐라고.


키시베 로한

 그러니까, 도청기를—


 [탕 하고 테이블 울리는 소리]


히가시카타 죠스케

 야 이 미친놈아!!!!! 그거 아직도 있어??!!!


키시베 로한

 네놈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뗐지, 지금은.


히가시카타 죠스케

 거 참 다행이네~ 라고 할 줄 알았냐? 애초에 남의 집에 도청기를 다는 것부터가 미쳤거든??! 그거 범죄야, 이 또라이야!!! 


키시베 로한 

 알아. 아는데, 그게 상황을 파악하기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히가시카타 죠스케

 …댁은 도대체가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아니 그럼 빌어먹을 양해라도 구하든가요? 그게 그렇게 어려워?


키시베 로한 

 이봐, 이봐, 이봐, 그게 통했겠어? 내가 갑자기 너한테 찾아가서 네놈 집에 수상한 게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도청기를 설치해야겠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루 24시간 무기한으로 녹취할 생각이다, 라고 했으면 네가 오케이했겠냐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그렇게 말하면 누가 미쳤다고 오케이를 해?


키시베 로한

 내 말이 그 말이라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니—


키시베 로한

 아무튼 허락을 구하지 않고 네 집을 3주간 도청한 점은… 사과하지.

 하지만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야.


히가시카타 죠스케

 알고 있거든요. 그쯤 해두십쇼. 

 앞으로 우리 집에 뭘 설치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검다. 아니, 아예 반경 오백미터 안으로 얼씬도 안 하는 게 좋겠네!


키시베 로한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하……. 미안하면 다냐?


키시베 로한 

 그럼, 뭐… 원하는 거라도 있어?


히가시카타 죠스케

 ……도청기에 기록된 파일은. 다 지웠죠?


키시베 로한 

 그럼.


히가시카타 죠스케

 안에 뭐가 녹음됐는지는, 기억 안 나고?


키시베 로한

 기억 안 하려 노력해보겠다.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니 진짜—


키시베 로한

 현관문 쪽에 설치했던 거라, 사건 관련 녹음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었어. 잊어버리기 좋은 내용이란 뜻이지.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 예. 듣던 중 다행이네요. 난 또 내 방이나 화장실 같은 데도 도청했나 했는데.


키시베 로한

 어차피 소리 왜곡은 너를 타겟으로 하는 이상 네 생활 반경 안에서 일어났을 거야. 굳이 더 달 필요가 있나.


히가시카타 죠스케 

 뭐 그래요, 그렇다 치자고.

 그런데 나는 화가 아직 안 풀렸거든?


키시베 로한

 그래서?


히가시카타 죠스케

…… 

……

 공평하게 나도 로한을 3주간 도청하죠 뭐.


키시베 로한

 뭐라고?


히가시카타 죠스케

 나도, 로한을, 도청하겠다고요. 3주 동안.


키시베 로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내가 널 도청한 건 그 존재를 막겠다는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그런데 네놈은 뭐야? 그냥 앙갚음이잖아!!


히가시카타 죠스케

 앙갚음도 확실한 이유인 건 맞잖아요?? 게다가 혹시 모르죠, 로한 말대로 그 놈이 완전히 소멸하진 않았을지?! 그러니까 만에 하나를 위해서 나도 댁을 도청해야겠슴다!!


키시베 로한

 이게 진짜 미쳤나?!


히가시카타 죠스케 

 누가 할 소린데?!


 [잠시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



키시베 로한

[쯧 하는 소리]

 그러든가. 

 대신, 위치는 동일하게 현관문 앞이다. 알겠어?


히가시카타 죠스케

 ………… 엉?


키시베 로한

 네놈이 우겨놓고 왜 놀라는 거야? 할 생각이든, 안 할 생각이든, 확실히 정해.


히가시카타 죠스케

 ……

 ……

 &$*€%¥%&@ [입속에서 무언가 빠르게 웅얼거리는 소리]

 아 한다고!! 하면 되잖아 도청!!!!


키시베 로한

 그래, 마침 내 집에서 만났으니 당장 나가서 달면 되겠네. 기기 쓰는 방법은 가르쳐 주지.


히가시카타 죠스케

 아 예에… 하…

 [의자 끌면서 일어나는 소리]

 근데 이건 계속 틀어놓을 거야?


키시베 로한

 아, 그게 있었군.

 녹음 종료. 

 [딸깍]





후기

• 영국 호러 팟캐스트 The Magnus Archives의 스타일을 참고한 글입니다. 녹취록 형식과 호러 요소의 구성을 조금씩 따왔습니다.

• 매그너스 아카이브와 스피드왜건 재단의 접점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크로스오버는 일단 패스.

• 쓰다 보니 4부의 중심 테마를 반영하는 사념체가 탄생해 버렸습니다. 

• 죠죠 녀석들은 공포물도 공포물 아닌 걸로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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