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나리오 툭, 툭. 투둑. “……비 많이 오네…….” “무슨 생각 해?” “……그냥. 멍때리는데.” 아무래도 오늘 뭘 하긴 힘들 것 같다.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며 카나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아쿠아는 말없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저 성격은 변하질 않네, 하는 상당히 모난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쿠아는 나오던 발걸음을 돌렸다.
너는 떠났고 나는 남겨졌다. △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일주일? 한 달? 아니, 그렇게 길게 가지는 못 할 것이다. 고작해야 사나흘 정도가 한계일 것이라고 나 자신도 생각하고 있었다. 끝을 직감한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겠지. 하지만 나는 못내 이것이 너에 대한 끔찍한 저주라고 생각하고 만다. 네
우리들은 살아남았다. ◆ 시원한 바람을 얼굴으로 맞으며, 두 사람이 해가 떠오르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같은 해안에서 여명의 끝자락을 바라보던, 그런 기억이 있다. 그때에 너는 무슨 표정이었는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두 사람은 얼마간 목석처럼 미동도 않다가는 긴 머리의 여자가 먼저 고개를 돌리고 걷기 시작하자 짧은 머리의 여자도 긴
약간의 유혈주의, 논씨피에 가까움 시스투스 피 냄새가 가득한 방에 갇힌 게 며칠 째 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족들과 같이 여기로 끌려왔지만, 먼저 이 방을 나간 부모님은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다. 나는 멍하니 어둠으로만 칠해져 있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창문에는 두툼한 쇠창살이 덧대어져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나는 이 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