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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어놓았던 그 선을 넘기까지 앞으로 한 발

Type: Lemonade

- 캐릭터+키워드 3~6개 정도만을 가지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프리타입 Type: Lemonade  신청글입니다.

- 파이널판타지14 장르 휘틀로다이우스 드림 / 콜리에서 신청받아 작업한 글입니다:)!

- 별도 요청사항이 없었기에 드림주 이름 그대로 기재되어있습니다.

- 주신 신청내용: 친구이상 연인미만의 관계에서 선을 한발짝 넘어가기,우정과 사랑의 정의, 서로 관계에 대한 정의, 바보라서 그런거 모름

- 드림주는 남비에라입니다:) 종족적인 특징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 신청 글자수는 공미포 1만자. 총 공미포 10,878자로 마무리했습니다.


우리가 그어놓았던 그 선을 넘기까지 앞으로 한 발

 

copyright by. Mer 

 

‘너는 휘틀로다이우스를 사랑해?’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마도 ‘글쎄……?’ 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일라이가 휘틀로다이우스를 처음 만난 것은 저 먼 과거의 엘피스가 아니라 1세계 저 깊은 해저에 만들어진 환영도시 ‘아모로트’에서였다. 사실 이것을 ‘만났다’라고 정의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만난 것은 그 때다.

 

“안녕, 그립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 너.”

 

처음 아모로트에서 마주했을 때 이후로 그 해저도시를 찾아갈 때마다 일라이는 줄곧 그를 만나고는 했는데, 혼을 구성하는 에테르의 색을 볼 수 있다더니, 근거리에서 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있어도 제법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보인 모양인지, 아모로트에 방문할 때면 종종 그쪽에서 먼저 찾아오고는 했다.

 

“후후, 또 만났네? 그립지만 새롭기도 한 너.”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알아?”

“어라? ‘보이니까’라고 분명 저번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사람이 이런 저런 일을 겪다보면 기억을 못할 수도 있지.”

“후후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 그런데, 혹시 여기 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어?”

“…….”

 

대답 회피인거야? 정곡을 찔렸다면 유감이야. 그렇지만 정말로 네가 이곳에 와있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면, 고작 환영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까지 쓸데없게 구현해 놓은 에메트셀크를 탓하도록 해야지. 나는 그저 ‘그’가 만들어낸 환영일 뿐이니까. 거침없는 언사다. 정작 탓할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고 별바다로 떠났으며,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상대가 저런 발언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얕궂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곧 사라질 환영에 불과한 존재임에도 그는 꽤나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들어왔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마음에 담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어림짐작 해보게 되는 것이었다.

 

*

 

환영과의 만남 이후, 일라이가 다시는 만날 리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와 다시금 재회한 것은 비탄의 바다, 제노스와 파다니엘을 막기 위해 향한 달에서 부서진 칼 근처에 맴도는 사념들에게 둘러싸였을 때였다.

 

“아, 잠깐만. 한참 떠드는 중에 미안하지만, 좀 비켜줄래?”

 

위협받는다고 느낄 즈음 때마침 들려온 목소리에 일라이를 위협할 듯 둘러싸던 사념체들이 하나둘 모습을 감추며 사라졌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으나, 그가 하는 말을 한 두 마디 들었을 뿐임에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휘틀로다이우스, 그였다. 그것도 아모로트에서 마주쳤던 환영이 아닌 진짜 그 본인. 아젬과 같은 혼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생판 남일 리가 분명한 그가 어째서 자신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 하던 상대는 일라이에게서 그간의 일을 전해 듣고 그저 한참을 웃을 뿐이었다. 그러고 나서 전해들은 소식은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휘틀로다이우스, 그는 조디아크를 소환하는 제물이 되어 조디아크를 이룬 채 그것과 함께 이곳 달에 봉인되어 있었다는 것. 일라이는 그에 대해 전부 알지 못하기에 상대가 왜 조디아크를 이루는 제물이 되어 이곳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상대는 그저 웃으며 일라이가 무슨 일을 하려는지 모르지만 자신은 너를 믿을 테니 너도 너를 믿고 나아가라는 말을 그에게 해주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사람이 이곳에 묶여 있나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조디아크의 봉인을 이루는 검을 부수고 있는 파다니엘 탓에 일라이는 휘틀로다이우스와 헤어져 그들을 저지하러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짧고도 짧은 재회였다.

 

*

 

설마 또 볼 일이 있겠나 싶었던 휘틀로다이우스와 ‘또’ 마주했다. 다시금 이 별에 찾아온 종말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 갖은 리스크를 끌어안고도 굳이 향했던 엘피스에서였다. 성견의 방에서 엘리디부스의 도움을 받아 엘피스로 갓 넘어왔을 때, 흐릿해진 존재감 속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보강된 후에 건네는 목소리에도 장난기가 가득 묻어 있는 것이 아무리 봐도 그것은 그 사람 특유의 말투이거나 천성인 탓이었으리라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본다. 어째 아모로트에서 만났던 파편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싶었지만 일라이는 그것을 깊게 따지고 드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럴 수도 있지.’하고 쿨 하게 넘겨버리는 것이었다. 그저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 사람이구나, 그 정도의 감상만이 남았다. 전에 만났던 휘틀로다이우스‘들’도 말했던 ‘친구’와 비슷한 혼의 색깔 탓에 그의 사역마라는 오해를 받은 채로 얼결에 목적은 서로 다르나 목적지가 같은 일행이 되어 그들을 쫓아다니게 된 일라이에게, 휘틀로다이우스가 돌아다니기 편하게 옷차림 좀 바꾸자는 제안을 해온다.

 

“옷차림이 너무 튀니까 일단 주위와 어울리는 복장으로 갈아입자. 너, 로브는 혹시 만들 줄 알아?”

 

그가 생각해도 원초세계에서부터 입던 이 옷은 로브만을 입고 다니는 이곳 사람들 틈에서 굉장히 튀어 보여서 금방 이목을 받아 돌아다니기 힘들어 보일 것이 자명했다. 모험가로 다닌 지가 얼만데,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옷차림을 그들과 맞추는 것에 동의하니, 휘틀로다이우스가 밧줄과도 같은 무언가를 건네준다.

 

“그럼 이 ‘에테르 밧줄’로 로브의 재료가 될 생물을 잡아와 줘.”

 

2종류를 1마리씩만 잡아오면 돼. 그에게 받은 밧줄을 들고 주변에 날아다니는 나비를 향하여 무기를 겨누고 뛰어간다. 체력을 떨어뜨린 다음에 붙잡으면 된다고 했던가? 역시 고대인들이 살던 세계의 생물이라 그런지 원초세계나 1세계에서 만났던 마물 급으로 강하다. 결과적으로 두 마리 다 포획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일라이는 그 대신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휘틀로다이우스의 곁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일라이의 모습을 보며 파학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로브를 만들기 휘한 에테르를 확보하기 위해 생물을 잡아다 달라고 한 것은 자신이긴 한데, 어쩐지 만신창이가 되어 잡아온 모습을 보며 절로 웃음이 터진 모양이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거야?”

“……그냥 평소처럼 돌진해서 때려잡았을 뿐이라고.”

“푸흐, 너 정말 단순하구나? 설마 평소에도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싸울 일이 필요할 때 그냥 바로 돌진! 막 그러는 거 아냐?”

“……휘틀로다이우스, 나도 내 단점에 대해선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짚어주지 않아도 돼.”

“아하하, 미안. 그렇지만 그 부분이 네 단점이라 생각한다면……, 글쎄? 때로는 그 점이 좋을 때도 있는 거 아냐?”

 

당장 내 친구만 봐도 그래. 너도 그와 같은 혼의 색을 가지고 있어서 비슷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도 역시 닮은 점이 있네. 아니, 이건 아젬들의 천성인걸까? 내 친구도 무슨 일이 생기면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돌격! 하고 뛰어 들어가서 처리해버리거든. 때로는 그런 단순한 부분도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에메트셀크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는 휘틀로다이우스를 그저 멀뚱하게 보며 일라이는 생각했다. 스스로도 단점이라고 생각하던 부분을 긍정해준 첫 사람이라고…….

 

* * *

 

에메트셀크가 비행을 돕는 광경을 구경하면서 대화를 나누다 얼결에 연인들의 이야기로 넘어와 버렸다. 아니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이시대의 사람들도 평범하게 연애를 하고 사랑을 했으며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순수하게 감탄하니 도리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투정을 들었다. 아니 물론 자식을 낳았다는 부분에서는 너희들도 유성생식을 했어?! 하고 크게 놀라는 바람에 투정을 부리던 휘틀로다이우스가 정말 웃기는 사람이라고 배꼽을 잡고 땅을 구르며 웃는다.

 

“대체 너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던 거야?”

“아니, 전에……, 아니다.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까먹었나봐.”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도 아직 모르는 너에게 과거 1세계에서 에메트셀크를 만나 너희도 평범하게 감정을 나눴고, 연인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어. 사실은 말할 뻔 했지만, 뱉으려다 생각나버린 것이다. 그는 아직 자신이 한참 후의, 이 아름다운 세계에 종말이 찾아오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다 종국에는 14개의 세계로 갈라져버린 미래에서 온 사실을 모른다. 뭐, 그마저도 벌써 7번이나 통합되었고 미루었던 종말은 다시금 찾아왔지만……. 머쓱하게 머리를 긁고 있다 보면 겨우 배 잡고 구르기를 멈춘 휘틀로다이우스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웃음기가 가득한 말을 건넨다.

 

“우리도 평범하게 연애하고, 사랑놀이도 하고 그런다고.”

“……키스도 해?”

“그렇……, 지?”

“해본 적 있어?”

“이렇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거야?”

“……실례라면 미안. 그냥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어. 다들 좋다고만 하니까…….”

 

푹 숙이고 있으면 실례는 맞지만, 네가 순수하게 궁금해 하는 것 같아서 화는 안 내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슬쩍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하니 꽤나 장난기가 가득 담긴 눈동자가 저를 마주보고 있다. 아, 이거 백퍼센트 놀림당할 것 같은 느낌인데……. 불안한 눈길로 보고 있으니 별안간 질문이 하나 던져진다. 그래서 왜 궁금한 거야? 왜냐니?

 

“나 키스해본 적 없으니까, 어떤 느낌인지 몰라.”

“뭐? 키스 해본 적 없어?”

“아무래도? 연애라는 걸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럼 어떤 느낌인가, 시험해볼래?”

“……에?”

 

별안간 입술이 맞닿았다. ……맞닿았나? 냅다 입술을 뺏겼음에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인지 자각 없이 두 눈만 끔뻑이는 일라이를 보며 휘틀로다이우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쩜 이게 설마 첫 키스인가? 그런 거야?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한 모양인지, 일라이의 뺨이 붉어지며 미간이 와락 구겨진다. ……휘틀로. 놀리지 말라는 반응에 한참을 웃어대던 상대도 그제야 진정한 듯 숨을 몰아쉬며 생리현상으로 눈꼬리에 맺혔던 눈물을 닦아낸다.

 

“정말 이정도로 놀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그야, 갑자기 그렇게 당하면…….”

“갑자기?”

“갑자기 맞지.”

“……음, 그런가?”

 

그렇지만 궁금하다며?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날치기로 첫 키스를 뺏기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물론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지는 못하고 불만만 가득한 표정으로 잔뜩 흘기니 다시금 낮게 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첫 키스를 뺏어버린 셈이야? 물어오는 말에 정곡이 푹 찔린다. 짜증난다는 듯 바라보지만 상대는 어깨를 으쓱 하며 웃을 뿐이었다.

 

“억울하면 한 번 더 하는 건?”

“남사스럽게!”

“아하하! 뭐 어때? 다들 저기에 집중해서 이쪽은 관심도 없어 보이는데.”

 

그렇지만 역시 네가 싫다 하면 억지로 안 해. 어쩐지 죄짓는 기분인데? 역시 네 혼의 색이 내 친구와 닮아서 그런가봐. 또 그 발언. 자신을 놀리는 것만큼이나 거슬리고 짜증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신은 상대에게 꽤 무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안쪽에서 간질간질하게 올라오는 무언가의 감정이 느껴졌지만, 일라이는 그 감정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어느덧 비행연습을 끝마친 에메트셀크를 부르러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했다. 그것이 질투와도 비슷한 감정이었음을 아는 것은 꽤나 머나먼 훗날의 일이리라…….

 

* * *

 

에메트셀크는 미래의 일을 듣고 믿기지가 않는다며 부정의 말을 내뱉다가 혼란만 가득 품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휘틀로다이우스가 쫓아가는 것을, 일라이는 그저 말없이 지켜만 봤다. 평소라면 자신들의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냐며 화를 냈을 일라이도, 저렇게 거센 부정의 반응 앞에서는 한순간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에메트셀크는 자신들을 부정한 것이 아닌, 그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고 있었으니까……. 긴 이야기를 나누던 탓에 시간이 너무나도 늦어 버린듯 쉬었다가 다음 조사를 재개하자는 베네스의 말을 따르기로 한 일라이는 오지 않는 잠으로 인해 뒤척거림을 계속하다 결국 건물 바깥으로 나와 웅크려 앉았다. 깊게 생각하다보면 금방 잠에 들어버리는 것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으나, 어쩐지 오늘은 쉬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깊게 잠식한 이유 없는 우울감 때문이리라……. 조금 더 잘 설명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이 너무 단순해서 너무 상대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 말을 한 것은 아닌가, 삽질을 하려던 찰나에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여기서 뭐하고 있어?”

 

자야할 시간 아냐?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생글생글 웃는 낯을 하고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다가오는 익숙한 인영이 보인다. 휘틀로다이우스. 이름을 부르니 휘적휘적 옆으로 다가와 저가 앉은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주저앉는다.

 

“이미 앉아버렸지만 앉아도 괜찮지?”

“……아니라 하면 일어나게?”

“그건 아니지.”

“근데 왜 물어보는데.”

“예의상? 우리 키스도 한 사이인데 그렇게 매정하게 굴 거야?”

 

아, 이건 없는 셈 치기로 했던가? 무, 무슨! 당황해서 뺨을 붉히면서도 대충 뭔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니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멋쩍게 웃는 모습이 일라이의 눈에 들어온다. 너야말로 여긴 어쩐 일이야. 에메트셀크를 쫓아간 것 아니었어? 퉁명스럽게 물으니 커진 눈이 되돌아온다. 아, 혹시 질투? 네 옆에 있어주기를 원했다거나? 아냐! 웃기는 소리하지 마! 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되돌아왔다. 그제야 다시금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아, 이 사람한테 또 놀림 당했다. 내가 무슨 네 놀잇감이라도 되는 줄 알아?! 괜히 더 짜증나서 씩씩거리고 있으면 웃을 만큼 다 웃은 상대가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 그랬다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자꾸 놀릴 생각이라면 들어가서 잠이나 자.”

“이런, 너도 안자고 있잖아?”

 

피차 서로 잠이 오지 않는다면 이야기상대라도 해주는 게 서로에게 더 좋지 않겠어? 이렇게 떠들다보면 잠이 올지도 모르잖아?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 설마, 잠들었을 때는 안까지 옮겨달라는 건 아니지? 나 굉장히 연약하다구! ……휘틀로다이우스! 아하하, 알았어. 그만 놀릴 테니까 화내지마.

 

“그래도 이제야 좀 너 같아졌어.”

“……?”

“조금 전까지 꽤 풀이 죽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냐?”

 

일라이는 그제야 자신의 우울했던 감정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또 놀림 당한 것은 굉장히 짜증나는 일이지만, 덕분에 쉬 사라지지 않던 우울감이 단번에 사라져버렸으니 고맙기도 한 일이지만……. 아, 그래도 역시 놀림당한 사실이 짜증난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다른 방법으로 풀어줄 수도 있는 거잖아! 괜히 짜증나서 잔뜩 노려보니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얼굴로 두 손을 들고 항복표시를 표하는 모양새가 꽤나 웃겨서, 일라이는 피식 웃음소리를 흘리며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풀이 죽어있던 거야?”

“……그저, 더 잘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을 뿐이야.”

“충분히 잘 전달했다고 생각하는데?”

 

믿고 안 믿고는 우리의 선택이지. 너는 네가 겪은 사실만을 말했을 뿐이잖아? 그럼 그걸로 된 거야. 받아들일지 말지는 에메트셀크의, 그리고 내 선택이지.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당장 정보가 부족한 우리가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안 그래? 그의 말이 맞다. 일라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쓸데없이 우울해하지 말고 이제 들어가서 자야지. 나는 일 때문에 계속 에메트셀크와 함께 동행 하겠지만, 너는 그래도 베네스님과 함께 다닐 테니 걱정을 덜었네. 설마 아직도 자러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릴 생각은 아니지? 그가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얼른 자러가지 않으면 또 키스할 거야.”

“……! 됐어! 잘 거야!”

 

저 몹쓸 고대인! 또 놀리기나 하고 앉았어!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는 일라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휘틀로다이우스가 한참을 즐겁게 웃었다는 것은 휘틀로다이우스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메테이온을 데리고 조물원 안으로 틀어박힌 헤르메스를 쫓았다. 그렇게 들어가게 된 조물원 안에서 어떻게든 저지해보겠다며 에메트셀크가 헤르메스를 상대하는 동안, 카이로스가 완전히 기동하기 전 일라이를 탈출시킬 틈을 찾겠다고 두리번거리던 휘틀로다이우스가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그를 그쪽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나가면 우리는 이곳에서의 일을 잊겠지만, 너는 안 돼. 왜 그런지는 알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 작게 웃은 휘틀로다이우스가 흘긋 한창 대치중인 둘을 건너다보고는 일라이를 끌어당겨 조용히 입을 맞춘다. 벙 찐 얼굴로 다시금 입술을 뺐긴 일라이가 반박할 틈을 주지 않은 채, 휘틀로다이우스는 웃으며 활을 어느 한 지점으로 겨눌 뿐이었다.

 

“휘틀ㄹ……!”

“쉿. 자, 너는 뛰어들 준비를 하도록 해.”

 

담백한 말투에 미간을 와락 구기며 무기를 고쳐 쥐는 것도 잠시, 헤르메스가 이쪽을 향해 날리는 공격을 본 일라이는 앞뒤 생각 없이 그대로 휘틀로다이우스의 앞을 가로막으며 뛰어들었다. 정말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가 이것을 노렸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곳에 균열이 있었는지 그런 복잡한 것은 따질 머리가 되지 못했고, 당장은 그저……, 그래, 교황청의 울긋불긋 노을 진 하늘 아래의 그 일이 떠오른 탓이라고 하자. 일라이는 그렇게 드넓은 공간 아래로 추락했다. 물론 죽지는 않았다. 어디부터가 휘틀로다이우스의 양동작전이었고, 어디서부터 베네스가 눈치를 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르고스를 대동하고 나타난 베네스 덕에 그는 아르고스를 타고 하늘을 날아 진짜 균열의 틈으로 향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어서 가!”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가라.”

“…….”

 

아르고스의 등 뒤에 올라타 균열을 통해 탈출하면서 본 네 얼굴의 색은 어떤 색이었을까? 안도? 아니면 미래를 부탁한다는 희망과 당부의 색? 은은하게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했음에도 알 수가 없다. 스스로가 바보여서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 맞았는지 조차 분간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이곳을 빠져나가고 저 카이로스가 작동하고 나면 휘틀로다이우스는 이곳에서 자신과 있었던 모든 일을 깡그리 잊어버리겠지. 처음 너와 이곳에서 만났던 그 순간부터, 장난스럽게 웃고 누구보다도 짓궂게 놀리면서도 자신의 단점을 긍정적으로 봐주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좋다고 말해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아, 이건 내가 그에게 그랬다는 사실을 알린 적이 없으니 잊어버릴 일도 없겠구나. 비록 별의 바다로 향하고 나면 기억이 날지도 모른다고는 하나, 그 때가 언제일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조차도 알 수 없다. 비에라는 오래 사니까 별바다에 돌아간 그가 모든 치유를 마치고 환생했을 때까지 저가 살아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당장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는 과거의 사람이고, 나는 현재의 사람이기에……. 이곳에서 탈출하고 난 뒤에 우리는 그간 지나온 나날처럼 다시금 웃으며 대화하고 장난치고, 때로는 화도 냈던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없겠지. 이 모습이 너와 나의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니 조금 아쉽다. 난 아직 휘틀로, 당신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의내리지 못했는데…….

 

안녕, 손을 뻗어 봐도 닿지 않는 너.

 

*

 

“……다행이야, 무사히 빠져나가겠네.”

 

비록 우리는 이곳에서의 일도, 그동안 들었던 미래의 일도 전부 잊어버리겠지만. 웃으면서 내뱉는 소리에 옆에서 한숨을 쉬며 미간을 구긴 채로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인다. 그 미간의 주름은 언제쯤 펴지는 거야, 에메트셀크? 네놈과 그녀석만 아니었어도 생길 일조차 없었다. 너무하네. 시답잖은 농담이나 주고받으면서 아르고스를 타고 베네스님과 함께 멀어져가는 네 모습을 눈에 담는다. 처음 흐릿한 모습일 때부터 친구인 ‘그 녀석’과 너무나도 똑 닮은 색이라 눈이 갔던 너, 지금도 여전히 그 색을 담고 있는 너. 미래에서 왔다고 했으니 분명 ‘그 녀석’의 일부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네가 참으로 좋았다는 것을 너는 알까? 물론 둘은 같은 혼을 지니고 있어도 그 천성을 제외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맞을 터이기에 다른 것이 맞겠지만……. 이쪽으로 간절하게 손을 뻗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손을 흔들어준다. 네가 이곳을 나가고 나면 우리는 너와의 일을 전부 잊어버리겠지. 내 친구와도 너무나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너. 사실 지금도 나는 너에 대해 어떻게 정의 내리기가 어려워. 아젬과 같은 혼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사람. 그 혼에 새겨진 천성과도 같은 모습은 때대로 닮았다고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지 않은 사람. 사역마? 라기엔 너무나도 뚜렷한 인격체. 내가 너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사실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 너를 좋아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글쎄. 좋아하긴 하지만 이건 연인들 사이에서 내뱉는 좋아함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물론, 이곳에서 나가고 나면 이 감정 또한 말끔하게 잊어버리겠지. 어쩐지 조금 아쉽지만, 나는 별바다에 돌아갈 즈음 생각나게 된다면, 그 때는 정의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조금의 기대를 품어보며 너를 배웅해. 미래를 잘 부탁해, 내 또 다른 작은 친구.

 

* * *

 

아르고스의 시야를 공유에서 확인한 휘틀로다이우스의 상태는, 약간의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그래도 걱정한 것에 비하면 꽤나 멀쩡한 몸 상태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억까지 멀쩡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베네스의 말대로 카이로스가 제대로 작동해서 그들의 기억은 완전히 깨끗하게 뒤덮인 듯, 자신과 만났던 그 시점부터의 일을 말끔하게 잊어버린 후였다. 아, 너는 이제 나의 존재를 모르겠구나. 분명 베네스가 아르고스를 통해서 상황을 살피자고 하지 않고 직접 그가 그의 상태를 살피러 갔더라면 그를 보자마자 냅다 뛰어들어 정말로 잊어버린 것이냐고 따지고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은 생각 외로 엄청 단순하니까……. 봐, 지금도 그가 나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굉장히 못마땅해 하고 있는 내가 있어. 그가 나를 잊어버린 것은 불가항력이었음에도…….

 

“……지친다.”

“조금 쉬었다가죠. 짧은 시간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어요. 당신도, 나도. 그래도 그들이 준 기회 덕에 잊어버리지 않고 들었던, 그리고 봤던 일들은 전부 제 머릿속에 있어요.”

 

여기서부터는 이제 내 차례에요. 당신은 당신의 싸움을 하세요. 물론, 그전에 조금 쉬어요. 힘차게 달려온 만큼. 여행자들에게도 휴식은 언제나 중요하니까요. 웃으며 말을 건네는 베네스의 배려를 받아 휴식을 취했다. 원하는 정보는 모두 얻었고, 그는 더 이상 ‘그들’과 마주할 수 없다. 이제는 정말 기다리고 있는 동료들의 곁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베네스의 배웅을 받으며 일라이는 엘피스에서 1세계로, 과거에서 본래 그가 있어야 할 시간선으로 돌아간다. 카이로스에 의해 깔끔하게 기억이 사라진 휘틀로다이우스가 마지막까지도 마음에 걸렸지만, 카이로스에서 베네스와 함께 탈출하면서 봤던 그의 얼굴은 생각 외로 꽤나 태연했기에, 안에서 했던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라진 기억도 별의 바다로 흘러들어갈 즈음이면 다시 떠오를 것이라 믿고 엘피스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절대 오늘 일을 잊으면 안 돼.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되든……, 우리의 싸움이야. 그리고 너에겐 너의 싸움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탈출 당시의 휘틀로다이우스가 했던 말을, 그는 잊지 않았다. 아무리 제가 단순한 바보라고 한들, 그의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진짜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렇다, 이곳은 그들의 싸움이었다. 그에게는 아직 원초세계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의 싸움이 남아있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시야가 일렁이고, 그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계를 뛰어넘는다. 시공간을 뛰어 넘는 동안 보이는 과거의 일들 중 ‘그’가 스스로 자신을 조디아크의 소환 제물로 바치러가는 장면을 보고 저 바보가! 하고 한순간 외치기는 했으나, 그 뒤의 일은 차마 볼 수 없다 생각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잡혀있었던 ‘그’는 자신이 얼마 전 달에서 조디아크를 이기고 그가 소멸하면서 그와 함께 별바다로 돌아갔다. 저 일은 이미 지나간 과거. 연연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가슴은 아팠다. 그랬어야만 하는 일이었을까……. 하지만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약간의 어지러움 끝에 돌아온 시야에 보이는 곳은 익숙한 천장과 배경. 성견의 방이다. 두고 온 과거의 사람이 마음에 걸리지만, 당장의 그는 원초세계에서 자신이 없는 동안 종말을 막기 위해 힘내고 있을 새벽 동료들에게로 돌아가, 자신의 얻은 정보들을 알려주고 함께 싸워나가야 할 일이 더 우선이었다. 그는 미련 없이 원초세계, 올드 샬레이안으로 향하는 텔레포를 시전 했다.

 

너와 함께 해왔던 그 싸움이, 네가 그 뒤로도 싸워왔을 많은 싸움들이 헛것이 되지 않도록, 나 또한 나의 싸움에서 힘을 내도록 할게.


이것은 일라이가 엘피스로 넘어가기 전의 이야기.

그러나 어쩌면 그 시간대와 이어져왔을 휘틀로다이우스의 이야기.

 

조디아크에 매여 있던 혼이 그의 소멸과 함께 해방되며 성해로 흘러들어간다. 굳은 결의로 가득 찬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휘틀로다이우스는 작게 웃었다. 그 혼은 작게 나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어도 여전히 앞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구나. 비록 우리가 바라던 그 시절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너는 그 시절의 ‘내 친구’처럼 이곳저곳을 누비며 문제를 해결해주고, 여전히 그 혼의 색을 가진 사람다운 삶을 이어 나가겠구나…….

 

“비록 너는 이것을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이것도 어쩐지 나쁘지 않잖아? 안 그래, 하데스?”

 

고독함을 견디지 못하고 환영까지 만들었으나 결국엔 저보다 먼저 별바다로 떠나버린 나의 또 다른 친구야. 이제는 별바다에서 다시금 만나겠구나. 그립지만 새로운 내 친구는 별바다에서 만나려면 아직 한참은 더 기다려야겠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을 견뎌왔으니 그 정도의 시간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별의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혼의 겉면에 카이로스로 조작된 기억으로 씌워져있던 것이 서서히 녹아들며 그 속에 잠들어있던 기억이 서서히 떠오른다. 아, 나는 너를 향한 이 감정조차도 그 당시에 정의내리지 못했었구나, 문득 그렇게 깨닫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별바다에 잠들며 윤회의 길에 다시금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 있어. 혹여 내가 환생하기 전 네가 이곳에 와서 함께 만날지도 모르지……. 그립고도 새로운 나의 작은 친구, 혹여 이곳에서 다시금 만나거나, 다른 곳에서 우리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재회하게 된다면, 그 때는 내가 이 감정에 대한 정의를 내려서 너에게 들려주도록 할게.

 

* * *

 

그 몸이 에테르로 산화하며 빛과 함께 흩어지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담긴다. 그들은 이제 별의 바다에 잠들어 치유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금 환생을 거듭하는 생을 살아가겠지…….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말했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또 다시 함께 놀자는 약속도 나눴다. 영원히 만나지 못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아. 나는 단순해서 너희를, 너를 찾는데 오래 걸릴 지 모르지만, 너희는 내가 너희들의 가장 친애하는 친구와도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그 파편이라는 것을, 그 일부라는 것을, 알아보던 사람들이니까. 비록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특수하게 명계의 사랑을 받는다는 소리를 듣던 눈 탓이라고 해도……. 단순한 자신보다는 그들이 저를 더 빨리 찾아낼 수도 있다. 어쩐지 그런 예감이 드는 것이다. 그들과는 별의 바다에서도, 그리고 환생한 뒤에도 다시금 만날 수 있다는 그런 확신에 가까운 예감. 그들이 듣는다면 단순한 바보인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비웃거나 박장대소를 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지만, 말 한번 곱게 안하는 에메트셀크와는 달리, 휘틀로다이우스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다시 만나게 되면 꼭 다시 함께 놀자고 약속을 건네주었으니까……. 뒤나미스의 힘 때문에 이 별에 종말이 찾아왔지만, 결국엔 그 힘 때문에 인간은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기에…….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열심히 기원하다보면 저는 먼 훗날 그와 다시금 만나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다시 재회하게 된다면 그때는 확실하게 그에게 말을 전하리라.

 

“좋아해.”

 

그 한마디를……. 이것이 과연 사랑을 기반으로 한 표현인지, 그저 친구 사이에 나눌 수 있는 애정의 표시인지는 그가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지금은 그저 먼 미래에 그와 다시 재회하게 된다면 그렇게 말을 건네고 싶을 뿐이니까.

 

*

 

“……어라? 그립지만 새로운 우리 친구, 네가 아직 여기에 올 때는 아닌 것 같은데.”

“……─.”

 

어째서 네가 이곳까지 흘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아직 이곳에 올 때가 아니야. 우리와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온 거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나? ……후후, 농담이니까 그렇게 보지 말고. 자, 다시 돌아가. 너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내 작은 친구야, 너는 아직 우리 곁으로 올 때가 아니야. 응? 좋아한다고? 하하, 나도 너를 좋아해. 이것이 친구로서인지, 연인들 사이에 나눌 법한 뜻의 좋아해인지는……, 나중에 네가 잘 생각해보고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 답을 내려줘. 약속이야, 친구.

 

자, 이제 너를 기다리는 사람들 곁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나중에 또 봐, 일라이. 나에게 좋아한다는 진지한 감정을 고민하게 해준 내 유일한 사람.

 

* * *

 

만약 누군가 나에게 ‘너는 휘틀로다이우스를 사랑해?’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마도 ‘글쎄……?’가 아닐까? 그렇지만 역시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부디…….

 

‘사랑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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