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종뱅. 종수병찬. 장도종뱅.

“어떤 새끼야?”

3학년 선배가 주먹을 휘두르며 내지른 고함이 체육관 벽을 울렸다. 1학년들은 바짝 얼어붙었다. 3학년 선배의 손에 들린 노란 포스트잇 조각을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푹 떨구고 있다. 저 커다란 주먹이 실제로 휘둘러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정도는 예상하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하늘같은 운동부 선배의 고성과 흉흉한 표정 앞에서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1학년은 없었다.

그에 비해 2학년들은 제법 여유가 있다. 기다리면 해결될 거라는 태평한 생각이 다소곳한 무표정을 가장한 얼굴들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탈의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주장이 걸어 나오자 2학년들의 얼굴에는 안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주장 박병찬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그런 생각들이다.

검은 장도고 저지를 어깨에 걸친 병찬이 체육관의 긴장된 분위기를 훑더니 3학년 선배에게 걸어가 손에 들린 포스트잇을 빼앗았다. 노란 종이조각에 적힌 내용을 눈으로 훑더니 이내 장난스러운 표정이 되어 3학년 동기를 무릎으로 툭툭 걷어차기 시작한다.

“아 쫌. 왜 버린 걸 굳이 가져와서 애들을 잡고 있어?”

“네 등에 포스트잇 붙인 거 분명 이 놈들 중 하나잖아. 이 새끼들이 선배를 우습게 아는데 그냥 두냐?”

병찬은 연신 키득키득 웃으며 3학년 동기를 체육관 구석으로 밀고 갔다. 그리고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모양이다. 주장 박병찬은 웃고 있고, 고함 지르던 선배는 씩씩거리는 모습이다.

여전히 바짝 얼어붙어 있는 1학년 무리 속에서 종수는 병찬과 3학년 선배의 실랑이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종수는 소집 당한 1학년과 2학년 농구부원들 중에서 노란 포스트잇에 써 있는 내용을 아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바로 그 포스트잇을 박병찬의 등에 붙인 것이 종수였으니까.

야간 훈련이 끝나고 녹초가 된 농구부원들이 하나둘씩 체육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1학년들이 뒷정리를 마치고 떠나자 체육관에는 늘 그렇듯이 개인 연습을 하는 두 명이 남았다. 하나는 3학년인 주장 박병찬이고, 다른 하나는 1학년 최종수다.

종수는 볼 캐리어를 끌고 와 자유투 라인 앞에 섰다. 두어 번 볼을 바닥에 튕기고 받아 슛을 던진다. 종수의 자유투 성공율은 아직 박병찬의 것에 살짝 못 미친다. 하지만 고작 몇 퍼센트 차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박병찬의 성공율을 능가할 자신이 있다.

그런 생각으로 던진 첫 슛은 림에 맞고 튕겨 나오고 말았다. 코트 저편에서 갑작스럽게 날아온 말 때문이다.

“최종수. 너지?”

종수는 어깨 너머를 흘끗 쏘아보고는 캐리어에서 두번째 볼을 꺼내 들었다.

“뭐가요?”

“거짓말쟁이라고 쓴 포스트잇.”

“…….”

숨이 턱 막혔다. 어떻게 알았을까. 붙였을 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는데. 종수는 두번째 슛을 쏘기 위해 들어올렸던 팔을 다시 내렸다. 코트를 가로질러 웃음 소리가 날아왔다.

“자유투 쏘려다 팔 내리면 원샷 날아가잖아.”

“선배가…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잖아요.”

하드우드 코트 위로 고무창이 닿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진다. 어느새 종수의 등 뒤까지 다가온 병찬이 조용히 물었다.

“농구부 후배들 다 공평하게 이뻐한다고 말한 게 그렇게 못마땅했어?”

종수는 차마 돌아볼 수 없었다. 양 손으로 볼을 움켜쥔 채 그저 고개를 숙이고 서있을 뿐이다. 한참만에 종수가 작지만 분명한 소리로 내쏘았다.

“말도 안 듣고 시비만 거는 후배라고 생각하면서 예뻐하는 척하지 마세요. 위선 같아서 기분 나쁘니까.”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알았다, 알았어.”

그 말은 바늘처럼 종수의 심장을 찔렀고, 딱 예상한 그대로의 고통은 한편으로 안심을 주었다.

병찬의 발소리가 코트 저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종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멀어지는 발걸음 수를 조용히 헤아린다. 이제 코트 저편 골대 앞에 멈춰서겠지. 그렇게 생각한 후에도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종수는 뒤를 돌아보았다. 병찬은 코트를 벗어나 탈의실과 샤워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있었다. 문 손잡이를 잡은 채로 박병찬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그러고는 멀어진 거리만큼 커진 목소리로 말을 던진다.

“앞으로는 농구부 후배들 중에서 각별히 종수를 이뻐한다고 말해 줄게. 그럼 돼?”

대답도 듣지 않고 웃음 소리만 남긴 채 박병찬은 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종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한 감정으로 차오른 습기에 시야가 일렁이고 있었다.

“아 씨…. 저 거짓말쟁이가 또….”

얼굴 안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열기가 너무 뜨거워, 종수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

리퀘스트 받아서 쓴 단문 스피드라이팅. 지운줄 알았던 파일을 찾아서 업로드.

‘등짝에 붙은 포스트잇, 거짓말, 넘겨짚기….

합쳐서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좋아하는 거였다네요.’

리퀘스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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