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아이스크림

종뱅. 종수병찬. 국대종뱅. (아직)안사귐.

보던 유튜브 동영상이 끝나 다음으로 볼 영상을 고르고 있던 때였다. 놀란 목소리가 사운드가 멈춘 이어폰을 비집고 들어왔다.

“헉, 큰일 났다!”

종수는 소리가 들린 버스 통로 건너편 좌석을 돌아보았다. 버스 창에 양 손과 이마를 댄 채 내다보고 있던 병찬이 허둥지둥 일어나더니 통로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간다.

병찬이 떠난 창 쪽을 주시했지만 뭐가 큰일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멈춰선 버스 창 밖으로는 한가로운 시골 풍경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호기심 반, 뻐근한 허리를 좀 펼까 싶은 마음 반으로 종수는 병찬의 뒤를 따라 버스를 내렸다. 왕복 2차선 도로에 멈춰선 버스 앞으로는 차 몇 대가 함께 서 있었다. 도로 건너편 멀리에 몇 대의 차가 멈춰 있는 것도 보인다.

국대 2차 합숙 훈련을 위해 선수촌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대표팀 선수들이 탄 버스는 선수촌까지 얼마 남지 않은 도로에서 갑작스럽게 멈춰 섰다. 내려서 상황을 보고 온 버스 기사는 트럭 적재화물이 도로에 쏟아져서 수습하는 동안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주고는, 정리를 돕는다며 멈춰선 차량들 앞으로 가버렸다. 보아하니 아직도 도로 정리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리를 펴고 기지개를 켠 종수는 버스를 돌아 병찬을 찾았다. 대체 뭐가 큰일인 거야?

병찬은 도로를 건너 저만치 밭둑에 들어서 있었다. 허리를 바짝 굽히고 보폭을 줄여 종종종 걷고 있다. 고개를 갸웃한 종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병찬은 뒤따르는 종수를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밭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멀어질 뿐이었다.

“야, 거기 서! 옳지 옳지… 아, 가지 말라니까!”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걸어가던 병찬이 겨우 멈춰 섰다. 그 자리에 쪼그려 앉는다. 곁으로 다가가 내려다보니 병찬은 꼬질꼬질한 얼룩 고양이 한 마리를 꼭 붙잡고 있었다. 고양이의 목에는 비닐 노끈이 엉켜 있었다. 버스에서 병찬이 말한 큰일의 정체는 이것인 모양이다.

병찬은 흘끔 종수를 올려다보더니 묵묵히 고양이 목에 감긴 끈을 풀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풀어보겠다고 발버둥을 친 탓인지 비닐 노끈은 단단히 얽혀 있었다. 게다가 겁먹은 고양이는 계속해서 도망치려 버둥거린다. 고양이를 한 손으로 잡아 누르고 다른 손 하나로 푸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종수는 함께 쪼그려 앉아 노끈 푸는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겨우 끈에서 풀려나자마자 고양이는 하악질을 하고는 정신없이 달아나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며 병찬은 웃었다.

“아이고, 은혜도 모르는 녀석이네.”

더럽혀진 손을 털며 일어선 병찬이 또 놀란 소리를 내었다.

“어, 큰일 났다!”

“또 뭔데?”

이번에는 뭘 본 건가 싶어 종수는 코웃음을 치며 일어섰다. 병찬을 따라 도로 쪽을 돌아본 종수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버스가 없었다. 국가대표 농구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사라졌다. 버스 앞에 줄줄이 서 있던 차들도 모두 사라졌다.

두 사람은 정신없이 왔던 길을 달려 차도로 돌아갔다. 길을 따라 먼 곳까지 바라보아도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도로에 흩어진 화물이 정리되고 길이 열리자 버스는 출발해버린 듯했다. 두 사람을 제외한 대표팀 선수들 14명은 2인 좌석을 하나씩 차지하고 깊이 잠들어 있었고, 버스 기사는 자리를 비웠으니 두 사람이 내렸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아 씨발, 박병찬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뭐? 내가 뭘 어쨌길래. 네가 멋대로 따라온 거잖아.”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야 그렇다. 하지만 애초에 박병찬이 큰일이라고 호들갑 떨지 않았으면 이럴 일은 없었을 거라는 분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미간을 잔뜩 찡그린 종수를 지켜보던 병찬이 씩 웃었다.

“뭐 어때. 이런 것도 추억이지. 전화해서 다시 데리러 와달라고 하면 되잖아.”

가볍고 침착한 그 말에 종수의 마음은 조금 진정되었다. 종수는 병찬을 바라보았다. 병찬도 종수를 물끄러미 마주 본다. 종수의 눈썹이 다시 찌푸려졌다.

“왜? 뭐? 빨리 전화나 걸어.”

병찬은 여전히 종수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일 뿐이다.

“종수 네가 걸어. 사회성 없는 너도 선배님들이나 코치님 번호는 있을 거 아냐? 아무한테나 걸어서 기사님 바꿔달라고 해. 죄송하다고 하고 데리러 와달라고 하면 되니까.”

“…뭐야. 박병찬 너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 네가 전화하고 네가 사과하라고.”

“그치만 나 핸드폰 없는데?”

병찬은 파란 반바지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 넣더니 훌렁 까뒤집었다. 동전 몇 개가 요란하게 튀어 날아간다.

“핸드폰이 왜 없어?”

종수의 목소리는 다급하게 갈라졌다. 흙길에 흩어진 동전을 주워 모으며 병찬이 대답했다.

“바지가 얇아서 걸리적거리길래 가방에 넣어 놨지.”

“아이 씨….”

주운 동전을 반바지 주머니에 넣던 병찬이 퍼뜩 깨달은 듯 종수를 돌아보았다.

“왜? 종수 너도 폰 없어?”

내내 느긋하던 병찬의 목소리도 다급해졌다.

“차에 두고 내렸어….”

종수의 대답에 병찬은 머리를 싸 쥐고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 머리 위로 7월의 무거운 햇빛이 차곡차곡 내려앉고 있었다.

병찬은 지난해 윌리엄존스컵 대회 출전 대비 합숙훈련으로 선수촌에 와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 부근이면 대충 한 시간, 길어야 두 시간이면 걸어서 선수촌에 도착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기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코치나 다른 선수들은 국대로 뽑힌 프로 선수 중 가장 어린 병찬, 그리고 NCAA 디비전1 칼리지 선수이자 국대 팀 공식 막내인 종수가 어디서 사라진 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찾으러 와줄 가능성은 없었다.

택시를 탈 수도 없다. 이 한적한 한낮의 시골길에 지나가는 택시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직접 부를 핸드폰도 없다. 게다가 둘 다 지갑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그늘 한 점 없는 도로 가를 걷기 시작했다.

해는 거의 머리 위로 올라와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뜨거운 날씨다. 한국의 여름 답게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무겁다. 고작 걷기만 하고 있을 뿐인데 금방 숨이 턱턱 막혀왔다.

종수는 국대 저지 상하의를 모두 입은 차림이었다. 버스 에어컨 때문에 근육이 굳을까 싶어 입었던 것인데 햇빛 쨍쨍한 한낮의 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 그에 비해 병찬은 하얀 반팔 면티에 헐렁한 반바지라는 가뿐한 차림이다.

“더워어어!”

그런데도 우는 소리는 병찬에게서 먼저 나왔다. 반팔 티셔츠 목을 들썩이며 땀으로 젖어가는 몸에 어떻게든 바람을 불어넣으려 한다.

“징징대지 마.”

“종수 너는 덥지도 않냐?”

병찬이 종수를 향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종수는 대답하지 않고 턱으로 흘러내린 땀을 손등으로 훔쳐내었다.

한동안 조용히 걷던 병찬이 발을 멈췄다. 그러더니 종수에게 달려든다.

“뭐야, 박병찬!”

“보는 내가 더워서 못 견디겠다! 너 지금 존재만으로도 주변 온도를 2도 정도는 올리고 있다고!”

저지 지퍼가 병찬의 손에 잡혀 쑥 내려간다.

“벗어, 최종수! 벗으라고!”

“이거 놔! 내가 알아서 벗을 테니까!”

결국 종수는 저지 상의를 벗어 들었다. 저지 상의를 벗고 반팔 티셔츠 차림이 되니 한결 가뿐해졌다. 땀에 젖은 몸이 걷는 동작으로 만들어지는 미약한 바람에 조금씩 식었다. 그제야 이제껏 저지를 어떻게 껴입고 있었나 싶었다.

바라는 대로 저지도 벗었으니 가만 내버려두면 좋겠는데 십여분도 지나지 않아 병찬이 또 흘끔거리기 시작한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 짜증이 솟은 탓인지 모르는 척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아 씨, 또 뭔데!”

“너 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걷냐?”

“햇빛 눈부시잖아.”

“그러다 거북목 된다.”

“냅둬. 뭔 참견을 하고 지랄이야.”

싸늘하게 내쏘아도 병찬은 그다지 신경 쓰는 기색이 없다. 기분 상해하지도 않고, 같은 수준의 험한 말로 맞서지도 않는다. 그건 꽤 불쾌한 느낌이었다. 포스트업으로 힘껏 미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는 상대를 만난 기분이다.

박병찬과 처음 마주친 고교때 쌍용기 시합에서도 그랬다. 교체되어 들어온 주제에 고교 최강팀 장도고를 상대로, 그것도 한참 뒤쳐진 점수차인 주제에 연신 싱글거리는 꼴이 재수없었다. 무릎 부상으로 사라졌다가 몇 년 만에 돌아온 노땅의 얼굴에서 웃음을 지워버리려고 몇 번이나 험한 말을 했었다. 하지만 2쿼터가 끝나고 코트를 내려가는 박병찬은 조형고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고 있었다. 짜증나는 인간.

지금의 박병찬이 어떤 수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쌍용기 대회에서 종수는 박병찬을 포스트업으로 밀어냈었다. 이후 만났던 다른 경기에서도 그랬다. 별것도 아닌 게 태연한 척하고 있어. 그 기억을 떠올리며 종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확실하게 밀어냈던가. 분명 슛을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박병찬을 완전히 밀어낸 수준까지는 아니다. 잠시 괜찮아졌던 기분이 다시 불쾌감으로 젖었다. 그나저나 그 몇 년 전의 기억이 왜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점까지도 불쾌하고 짜증스럽다.

생각에 잠겨 걷는 동안 종수의 고개는 점점 땅으로 수그러들고 있었다. 어느새 발치의 바싹 마른 흙길만 내려다보며 걷고 있는 꼴이다. 문득 발치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있었다. 종수는 발을 멈추고 그대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대로 걸어가던 박병찬이 뒤를 돌아보았다.

“최종수, 안 오고 뭐하냐?”

종수가 대답하지 않고 계속 바닥만 보고 있자 병찬이 느릿느릿 다가와 같은 곳을 내려다보았다. 굼뜨던 동작이 갑자기 잽싸진다. 병찬은 흙먼지 뒤집어쓴 500원 동전을 주워 들고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오, 사람은 앞을 보며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가끔은 바닥을 보는 것도 괜찮잖아.”

“입만 열면 헛소리냐. 그건 주워서 뭐하게?”

“글쎄다. 어쨌건 내가 주웠으니 내꺼.”

병찬은 반바지 주머니에 동전을 쏠랑 집어넣었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과 부딪쳐 짤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미국에서는 가끔 동전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동전 따위 쓸 일도 없고 최근 몇 년간은 만져본 적조차 없다. 박병찬도 대부분 카드를 사용할 텐데 뭐하러 굳이 동전을 줍는지 모르겠다.

해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올수록 두 사람은 점점 조용해졌다. 길을 따라 걸은지 30분이 지났다. 병찬도 이따금 흥얼대던 콧노래를 그쳤다. 이제는 더운 건지 목이 마른 건지 땀을 흘려 지친 건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종수가 조금 어지럽다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곁에서 느릿느릿 걷고 있던 병찬이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더워서 드디어 미쳤나 싶었다.

저만치 달려간 병찬이 제자리 뛰기를 하며 돌아보았다.

“야 최종수! 빨리 와. 뭐해?”

혹 선수촌에 거의 다 온 건가 싶어 길 앞을 살폈지만 여전히 도로 옆으로는 한참 밭이 이어질 뿐이다. 저 멀리 건물 몇 개가 모여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병찬은 바로 그 건물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 마트 있어, 마트. 빨리 오라니까!”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간판 하나에 익숙한 대형 할인 체인 마트 로고가 찍혀 있었다. 신나서 달려가는 병찬을 따라 종수도 달리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거대한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는 체인 마트지만 여기서는 편의점보다 조금 클까 싶을 정도의 단층 매장이었다. 대체 왜 달려온 건가 싶었지만, 자동문 안으로 들어서자 시원한 냉기가 몸을 적셨다. 여기는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다. 종수는 뜨겁게 달아오른 몸에 한층 싸늘하게 느껴지는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어지러울 정도로 뜨거워진 머리가 조금 식은 후에야 종수는 병찬을 찾았다. 뭘 하고 있나 했더니 저편에서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종수는 천천히 그리로 다가갔다.

“아이스크림?”

“더우니까. 근데 여긴 쌍쌍바가 없다.”

종수는 건성으로 아이스크림 냉장고의 윗면 유리를 들여다보았다.

“그건 왜?”

“나눠먹으려면 그게 좋잖아. 하지만 없으니까… 하나 사서 반씩 나눠먹자. 길에서 주운 500원까지 합치면 한 개는 살 수 있을 거 같아.”

병찬이 주머니에 든 동전을 짤랑거리며 꺼내보였다. 에어컨 바람에 땀은 좀 식었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몸 안쪽의 열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차갑고 달콤한 아이스크림 맛을 생각하니 바싹 마른 입에 침이 돌았다. 어, 그런데 잠깐만. 하나 사서 나눠 먹자고? 대체 어떻게?

잠시 생각하던 종수는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됐어. 너나 먹어.”

“아 왜? 네가 먼저 반 먹고 줘. 난 그런 거 신경 안쓰니까.”

“됐다고.”

종수는 문가로 걸어가 시큰둥하게 밖을 내다보았다. 여기서 선수촌까지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걸까. 한번 에어컨 공기를 쐬었더니 다시 뜨겁고 습한 바깥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냉장고 앞에 웅크리고 있던 병찬이 환호를 지르는 것이 들렸다. 오예, 이거다! 드디어 처먹을 아이스크림을 고른 모양이다.

카운터에 갔던 병찬이 종수의 곁으로 달려오더니 눈앞에 뭔가를 내밀었다. 반사적으로 얼굴을 물린 뒤 살펴보니 반으로 자른 더위사냥이었다.

“생각해보니 너 커피 좋아했지? 이거면 딱 나눠먹을 수도 있으니 좋네.”

병찬은 더위사냥 다른 반쪽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차가운 커피 아이스크림이 모양 좋은 입가에서 부서진다. 종수는 내밀어진 더위사냥을 받아 물었다. 입에서 목을 타고 가슴 속까지 달콤한 냉기가 흐른다. 둘은 유리 자동문 밖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어어? 저 녀석 뭐 하는 거야.”

두어 입 만에 반쪽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어 치운 병찬이 빈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매장 밖으로 급히 뛰어나갔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종수는 반도 다 먹지 못한 더위사냥을 들고 천천히 뒤를 따랐다.

병찬은 마트 이웃 가게인 공구상 앞에 세워진 1톤 트럭에 다가서 있었다. 시동이 켜진 트럭 짐칸에 등이 까맣고 배가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다. 병찬은 고양이를 향해 팔을 휙휙 내저었다.

“요 녀석아. 거기 올라갔다 차 출발하면 어쩌려고 그래? 어디까지 갈 줄 알고?”

고양이는 병찬을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태연하게 앞발을 핥으며 딴청을 부리고 있다. 종수는 입 안의 아이스크림을 삼키고 물었다.

“박병찬. 넌 고양이에 왜 그렇게 신경을 써?”

“고양이는 잘해주면 은혜 갚는 거 모르냐? 고양이의 보은 안 봤어?”

“뭔 개소리야 진짜.”

“사실은… 어떤 녀석이랑 되게 닮아보여서 나도 모르게 자꾸 신경 쓰게 되는데.”

병찬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고양이를 향해 내려오라며 효과 없는 손짓을 한다.

앞발을 느긋하게 핥던 고양이가 반짝 고개를 들었다. 공구상에서 나오는 사람을 보고는 퍼뜩 놀란 것처럼 짐칸에서 뛰어내려 달아나버린다.

공구상에서 나온, 아마도 트럭 차주인 듯한 중년 남성이 병찬을 향해 물었다.

“거 뭐하는 거요?”

“죄송합니다. 짐칸에 고양이가 올라갔길래요.”

고개를 끄덕인 아담한 체구의 중년 아저씨가 병찬을 쭉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곁에 선 종수도 위아래로 살핀다.

“어이쿠, 둘 다 키가 크기도 하네. 뭐하는 사람이오?”

“저희는 농구 선수예요. 둘 다.”

“아, 그럼 저기 선수촌?”

“예. 거기 가다가 실수로 버스를 놓쳐버려서 걸어가던 중입니다.”

병찬이 실실 웃으면서 트럭 주인과 대화하는 동안 종수는 마지막 남은 아이스크림 조각을 삼키며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트럭에서 뛰어내린 고양이는 멀리 가버리지도 않고 저만치에 서서 얌전히 앉아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고양이는 씩 웃더니 뽀르르 달려가버렸다. 뜨거운 햇빛 때문에 보인 착각이겠지.

“야야. 종수야! 얼른 얼른!”

병찬이 종수의 팔을 마구잡이로 잡아끌었다. 대체 뭐야? 또 뭔데? 물을 틈도 없이 병찬은 열린 트럭 문으로 종수를 밀어 넣었다.

“아저씨가 선수촌 앞으로 지나가신대. 태워주신댄다. 얼른 감사하다고 인사드려라.”

종수는 운전석에 앉은 중년 남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다 뒤통수를 부딪치고 말았다. 좁은 트럭 좌석 지붕은 종수의 키에 터무니없이 낮다.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병찬이 곁으로 올라탔다.

비좁은 좌석에서 종수를 밀어대며 밀착한다. 짜증스럽다. 코트에서는 포스트업에 밀리는 인간인 주제에 코트 밖에서는 멋대로 종수를 밀어댄다. 막무가내로 밀고 당기고, 어지럽게 사람을 흔들어놓는다. 아무리 흔들고 긁어 놓으려 해도 자기는 꿈쩍도 하지 않고 웃기나 하는 주제에.

낡은 트럭이 털털거리며 출발했다. 문득, 박병찬이 말한 고양이를 닮은 사람이라는 건 누구일지 신경이 쓰였다. 대체 누구길래 이 흔들리지 않는 인간이 모든 고양이에게까지 신경쓰게 만드는 걸까.

종수가 생각에 잠겨 손에 든 빈 더위사냥 포장지만 바라보고 있거나 말거나, 짜증나는 박병찬은 종수를 사이에 두고 트럭 차주와 떠들어대고 있었다. 말할 때마다 종수를 꾹꾹 밀어대면서.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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