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스트Contrast

종뱅. 종수병찬. 인외종x사람뱅

최종수라는 남자는 한 번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양초가 세 개 끼워진, 영화에서나 보았던 고풍스러운 촛대 하나로만 밝혀진 어스름한 실내에서 그는 반쯤 어둠에 녹아 든 모습으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한참 그를 지켜본 후에야 병찬은 처음 그를 만났을 때부터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움직임이 없다.

사람은 좀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존재다. 눈을 깜빡이고 저도 모르게 어깨나 팔 근육을 움직이게 된다. 그 모든 동작을 참는다 해도 호흡으로 인해 생겨나는 미세한 진동이 있기 마련이다.

최종수의 몸은 어떠한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생기라는 것이 없었다. 가만히 서 있는 그는 사진이나 정지화면처럼만 보였다.

“넌 이제부터 날 가르쳐야 해.”

최종수가 웃었다. 얼굴 근육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입꼬리 하나만으로. 오싹한 기분에 병찬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완전히 속았다. 시골 별장에서 혼자 지내는 열아홉 살 아이를 돌봐 주는 쉬운 아르바이트라고 했다. 여름 방학 내내 알바 뛰어서 벌 돈의 몇 배나 되는 금액을 두어 주 만에 벌 수 있는 개꿀 알바라고 했다. 아이의 사정을 좀처럼 말해주지 않기에 어떤 사정으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고3 학생일까 했다. 시골 별장에 있다니 몸이 약해서 요양 중일까? 혹시 부모를 잃었나?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며 얼굴도 본 적 없는 아이를 동정하기도 했다.

알바를 소개한 대학 선배는 별장 문을 열어주고는 약속이 있다며 허둥지둥 떠나버렸다. 그때 이상함을 감지하고 도망쳤어야 했는데. 발을 들여놓은 건물 안이 지나치게 어둡다는 것도, 도저히 혼자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넓이의 별장 저택이 몹시 음산하다는 점도 수상한 것뿐이었다.

멋대로 부풀려온 상상이 만들어낸 동정심이 이런 곳에서 혼자 지내는 아이가 딱하다며 부추겨 별장 안까지 발을 들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병찬은 꼼짝없이 별장의 주인에게 붙잡히고 만 것이다. 사람이 아닌 것.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 열아홉 살 소년의 외형을 한 기이한 자에게.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건 듣고 왔어?”

처음 만난 순간 최종수가 인사도 없이 대뜸 던졌던 말은 진실이었던 것이다. 중2병이 아직 낫지 않은 꼬마라고 여기고 코웃음을 쳤지만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앳된 티가 남은 예쁘장한 얼굴을 가졌지만 언제든 병찬의 목숨을 가져갈 수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 한시간 동안 깊게 터득해버렸다.

병찬이 대답을 못하고 있자 최종수가 재촉하는 시선을 던졌다. 아니, 이쪽을 보고 있는 게 맞나? 최종수라는 이 남자는 호흡이 없고 움직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눈에 초점도 없다. 끝 모를 심연처럼 그늘진 눈이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병찬은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긁적였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라며 그는 입을 열었다.

“알겠어. 사람처럼 보이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지. 그런 걸 가르쳐본 적이 없어서 잘 될 지는 모르겠는데 한 번 해보자.”

최종수가 눈을 떼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촛불 조명이 만들어내는 강한 음영이 드리워진 얼굴이 섬뜩하다.

“해보자…?”

“크흠. 해보죠.”

외양만으로는 병찬보다 두어 살은 어린 정도로 보이는데. 그런 녀석에게 존대를 하며 고개를 숙여 보이려니 조금 언짢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너보다 어려 보이는 사람에게 존대하는 건 불쾌해?”

“혹시 마음도 읽고 그래…요?”

“딱히. 가능은 하지만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아. 인간의 속마음은 기분 나쁜 부분이 너무 많아.”

최종수의 표정에도 목소리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하지만 어쩐지 지금 그의 감정을 조금 알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한숨을 쉬면서 제 기분을 더 강하게 드러내거나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한 척하지 않았을까.

그 인간 아닌 존재는 여전히 고저 변화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난 네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살았어. 그리고 이 신체로 산 것만 해도 100년이 훨씬 지났고.”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왜 이제서야 사람 흉내를 내려고 하는데요?”

반사적으로 물은 병찬은 급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동안 사람 흉내도 못 배우고 뭘 했냐는 구박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입밖으로 꺼내는 건 막을 수 있었다.

“과거에는 세상이 그리 밝지 않았어. 낮만 피하면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거든. 그런데 이 몸으로 옮겨 탄 이후 오래 잠들어 있다 깨어나보니 밤이 너무 밝아져 버렸어. 이젠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다들 너무 쉽게 알아채고 말아.”

최종수의 무덤덤한 이번 대답에서도 병찬은 약간의 감정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귀찮고 민망하고 약간 짜증스럽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려면 확실히 지금 이 괴상한 모습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어디에서건 사람들을 흠칫 흠칫 놀라게 만드는 괴물이겠지. 조금 딱하기도 하고. 목숨이 안전한 건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이래도 되나 싶지만 조금 흥미롭기도 하고.

병찬은 살짝 웃었다. 최종수의 초점 없는 눈이 병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가 이 별것 없는 인간에게 도움을 청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음… 일단 눈과 숨부터 해보죠. 사람은 눈이 마르니까 눈도 깜빡여줘야 하고, 숨도 쉬어야 하니까 어깨나 가슴도 좀 들썩이거든요. 그쪽은 그런 거 안 해도 괜찮은 거예요?”

“이건 그냥 껍질이니까. 딱히 숨을 쉬거나 먹거나 하는 행동으로 생존시켜야 할 필요도 없고.”

“그래도 해요.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면.”

병찬은 최종수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우선 눈부터 깜빡여 봐요.”

최종수는 눈을 꾹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묵직하게 움직이는 긴 속눈썹이 볼 위로 짙은 그림자의 춤을 만들어낸다. 나비의 날개짓을 보는 것 같다. 어쩐지 현혹될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에 병찬은 슬쩍 눈을 피했다.

“눈 너무 꽉 감지 말고요. 나 하는 것처럼 가볍고 빠르게….”

병찬은 제 눈을 가리켜 보이며 가볍게 눈을 깜빡였다. 그걸 지켜본 최종수가 두어 번 눈을 깜빡여본다. 아무래도 의식적으로 하는 깜빡임은 무겁다. 최종수도 그걸 느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종수가 순식간에 병찬의 앞으로 이동했다. 큰 손으로 병찬의 목덜미를 움켜잡는다. 그리고 천천히 병찬의 이마에 제 이마를 붙였다. 병찬의 시야는 어둡고 그늘진 두 눈으로 가득 채워졌다.

“잘 모르겠어. 해 봐. 따라할 테니까.”

급격히 좁아진 거리가 거북해 긴장한 눈꺼풀이 멋대로 툭툭 감기고 떠졌다. 눈 앞에서는 크고 푸른 빛이 도는 어두운 눈이 눈꺼풀에 가려졌다 다시 드러나고 있다. 병찬이 깜빡이는 리듬을 흉내 내고 있었다.

“이게 맞아? 너무 빠른 거 같은데.”

닿아 있는 이마만큼, 마주보고 있는 눈 만큼, 가까워진 목소리가 물었다. 긴장감에 어깨가 굳었다. 병찬은 겨우 대답했다.

“너무 가까워서 좀… 불편해서.”

“제대로 해.”

눈 앞의 시선을 똑바로 받을 자신은 없어 병찬은 여전히 눈을 살짝 내리깐 상태였다. 그래도 의식적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눈이 말라 자연스럽게 깜빡여지도록.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동안 날카롭게 곤두섰던 신경이 서서히 진정되어갔다. 병찬의 눈이 자연스러운 속도로 깜빡이게 됨에 따라 같은 속도로 따라하는 최종수의 눈 움직임도 조금 자연스러워져 갔다. 사람의 눈이 눈꺼풀에 지워지고 다시 드러나는 간격을 터득해간다.

문득, 입술과 턱 부근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느낌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병찬이 중얼거렸다.

“호흡….”

“숨을 쉬어야 사람으로 보인다면서.”

최종수는 병찬이 쉬는 숨도 흉내를 내고 있었다. 병찬의 따뜻한 숨과는 다르다. 이 기이한 존재가 생존을 위해 할 필요 없는 호흡을 흉내 내어 내뱉는 숨은 서늘하기만 하다. 병찬의 호흡을 따라 하느라 한 박자 느리던 최종수의 숨이 천천히 병찬의 리듬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겹쳐진다. 동시에 공기를 들이마시고, 동시에 내뱉고. 가까이 맞붙은 두 사람 사이에서 따뜻하고 차가운 숨이 겹쳐진다.

처음 접하는 작고도 낯선 기류를 의식한 순간 저도 모르게 심장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병찬은 민망한 기분을 감추기 위해 웃었다.

“이거 좀… 어색하네요.”

최종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살짝 웃었다. 병찬이 지은 미소를 흉내 낸다.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얼굴의 미세한 근육을 움직여가며. 사진이나 정지화면처럼만 보였던 그 얼굴이, 괴물로만 느껴지던 그 얼굴이 순식간에 화사해진다.

놀라서 들어올린 눈에 최종수의 눈이 다시 비쳤다. 크고 어두운 눈동자에도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초점이 생겼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지금 그 깊이 모를 눈동자는 병찬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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