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oor three days’ holiday
지삼즈 교류회 《아, 맞나. 어, 맞아.》 참여글
Prologue
애틀랜타 도심 외곽에 자리한 편의점은 허름했다. 출입문에 걸린 오픈 팻말이 무색하게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주위로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애틀랜타는 다른 도시에 비하면 따뜻한 곳이었지만, 1월까지 시원한 맥주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구태여 아스팔트가 깨진 편의점을 찾지 않았다.
매대 근처에는 한 남자가 쓰러진 채였다. 낡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었다. 색 바랜 조끼 유니폼 위로 구멍이 보였다. 세 개의 구멍 주변은 피로 젖어 있었다. 누운 등 뒤로 피 웅덩이가 고였다.
흰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체스판 타일은 지저분했다. 제대로 말리지 않은 물걸레로 닦아 퀴퀴한 냄새가 났다. 피와 뒤섞여 역했다. 숨쉬기가 거북했다. 지금 이 편의점은 구역질 나는 공간이었다.
진열되었던 과자나 젤리가 온천지 널브러졌다. 시계는 위협적으로 쏜 총격으로 박살이 났다. 넓게 난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그늘을 만들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밖을 살펴보는 남자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경계하는 태세가 저격수와 비슷했다.
“밖이 심상치 않아.”
툭 튀어나온 눈알이 바쁘게 굴렀다. 눈치가 더럽게 빨랐다. 도심 외곽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지나치게 고요했다. 어수선하면서 조용했다. 이질적이었다.
“여긴 우리밖에 없어. 하나 있는 직원도 너희가 죽였잖아.”
“닥쳐!”
품 안에 건장한 남자를 가둔 사람이 으르렁거렸다. 마찬가지로 손에는 총이 들려있었다. 총구가 인질의 관자놀이를 겨누었다.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손가락이 팽팽했다. 인질범이 시근덕거렸다. 등을 기댄 음료 냉장고에 흰 김이 서렸다. 몸은 뜨거운데 유리는 차가워 서리가 일었다. 가슴팍이 크게 오르내렸다.
잡힌 남자는 차분했다. 어깨를 으쓱였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케이블타이로 손목이 묶인 탓이었다. 정장 재킷 아래로 둘러맨 홀스터는 비었다. 허리춤에 선명한 배지는 FBI의 표식이었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믿을 만한 구석이 되지 못했다.
“정말이다. 애초에 총은 느그들이 들고 있는데. 뭐 그래 쫄아있노?”
그들과 대치한 다른 사람이 대신 말을 이었다. 역시 허리춤에는 인질과 똑같은 배지가 있었다. 양손을 앞으로 내어 비슷하게 손목이 묶여 있었다. 발 멀리에는 밀어 던진 권총이 뒹굴었다. 포로의 자세였다. 무해를 피력하는 모습이 무력해 보였다.
J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기민하게 상황을 살폈다. 인질범에게서 유약한 흥분을 읽었다. 찰나의 틈은 빠져나갈 기회였다. J는 조그마한 사이를 놓쳐선 안 되었다.
“너도 닥쳐! 한마디만 더 하면 이 새끼 대가리를 터뜨려 버릴 줄 알아!”
인질범이 총구를 들먹였다. 행동이 다급했다. 전형적인 무질서형 범죄자였지만, FBI와 대치는 아마 논외였으리라. 날 선 범인을 자극하는 것은 위험했다. J도, 인질이 된 요원도 파악한 사실이었다. J는 입을 닫았다.
“시끄러워. 바깥소리가 안 들리잖아!”
“나한테 명령하지 마!”
하지만 걸림돌은 따로 있었다. J는 혀 아래를 차지 않기 위해 애썼다. 언성이 높아졌다. 한 팀이었던 살인범 두 명은 곧 붙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와해하기 시작했다.
인질은 물론 J의 표정까지 굳었다. 그들 총은 장전이 되어있었다. 그중 한 자루는 동료의 머리를 겨눈 채였다. 훈련된 요원들은 안면 근육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제발 자극하지 마라. 바람은 늘 무색했다. 특히나 생사가 달려있다면 신은 더더욱 무심했다.
공간을 가르는 총성은 정확히 인질의 머리를 관통했다. 피가 비산했다. 귀가 먹먹하게 울렸다. 생기 잃은 동료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J는 밀어 던진 총을 향해 몸을 던졌다. 창가에 붙어 있던 남자가 J를 조준했다. 묶인 손이 익숙하게 권총을 장전했다. 총구가 목표물을 겨누었다. 푸른 기가 형형한 검은 눈은 인질범에게로 향했다. 바닥에서는 썩은 냄새가 났다.
연달아 총성이 났다. 일대를 울리는 소리는 세 개였다. 유리창을 깨뜨린 한 발은 방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산발하는 유리 조각이 날카로웠다. 겨울 공기가 불어닥쳤다. 역하게 부유하던 피 냄새가 소용돌이쳤다.
쓰러진 사람은 다섯 명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은 J뿐이었다.
“이상 무!”
“생존자가 있다! 들것 가지고 와!”
두꺼운 군홧발들이 널브러진 과자나 젤리를 짓뭉갰다. 깨진 유리가 바스락거렸다. 고인 핏물과 뒤엉켰다. 후각은 섞인 냄새를 새롭게 인식했다. 난잡했다. 뱃속이 드글거렸다.
“재유!”
이명이 일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물속처럼 웅웅댔다. J는 엎드린 채로 꼼짝하지 못했다. 총이 관통한 오른쪽 허벅지가 피에 젖어 축축했다. 왼쪽 옆구리로 총알이 스쳐 화끈거렸다.
가물한 눈에 죽은 동료가 걸렸다. 동료의 눈은 새카맸다. 동공이 풀려 초점이 없었다. 마주쳤다. 핏기가 가신 눈꺼풀이 감기지 않았다. 다리를 강하게 압박하는 힘이 느껴졌다. J가 눈을 감았다. 사방이 피 냄새였다. 정신이 멀어졌다. 사위가 깜깜해졌다.
오늘도 사람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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