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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오늘 날씨는 눈입니다.

준쟁 교류회 《준쟁할거다, 우리는.》 참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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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캐릭터의 사망 요소가 있습니다.


Prologue

20XX년 12월 23일. 밤 11시 49분.

하루가 대략 10분 정도 남은 오늘은 진재유의 생일이었다. 큰 키에 맞춘 아일랜드형 식탁 위에는 두 사람이 먹기 적당한 케이크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전혀 없는 딸기 케이크가 산뜻했다. 눈처럼 뿌려진 슈가 파우더가 제법 겨울 아이들과 어울렸다.

똑같은 나이만큼 꽂아둔 초가 은은했다. 조명이 꺼져 어두운 사위를 밝히는 유일한 빛이었다. 노란빛 투명한 샴페인에 탄산이 보글거렸다. 한 조각씩 먹기 좋게 플레이팅 된 크래커와 곁들일 크림치즈는 견과류가 섞여 있었다. 입가심용 과일 몇 종류는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아 반짝거렸다. 얇게 저민 시판용 하몬이 뜬금없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화롭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조촐한 자리였다. 생일이 나란한 두 사람만을 위한 소박한 축하였다. 한 해의 끝자락. 남들은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였으나 오직 두 사람만은 서로를 축복했다.

“올해도 생일 축하해, 재유.”

“니도 생일 축하한디. 아직 10분 정도 이르지만.”

진재유가 키득거렸다. 성준수도 따라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12월 23일의 진재유 생일을 마무리하는 건 성준수의 몫이 되었다. 그 덕에 뒤이어오는 성준수의 생일을 가장 먼저 축하해주는 건 자연스럽게 진재유였다.

언제부터 두 사람 몫의 생일을 축하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서로의 곁을 지켰다. 농구를 했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얼결에 이능력을 각성해, 멋모르고 던전을 공략한 20대 초반을 지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연애를 시작하고, 집을 합친 지금까지. 숱한 고난에 늘 서로가 있었다. 23일의 끝자락과 24일의 시작을 함께하는 게 당연했다.

“아! 촛농 떨어진다. 얼른 소원 빌고 불 끄자.”

분홍색 초가 녹아 딸기 위로 한 방울 떨어졌다. 진재유는 퍽 진지하게 눈까지 감고 소원을 빌었다. 성준수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재유는 손을 모아 쥐고 눈을 내리감은 채 소망했다. 성준수는 늘 지켜보기만 했다. 남자는 원을 이뤄내는 사람이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감은 눈꺼풀이 고요히 들렸다. 주황빛 스민 둥그런 눈동자에 무던하나 애정이 어린 낯이 들어찼다. 당연하게 마주치는 곧은 눈이었다. 진재유는 입가 가득 호선을 담은 채 몸을 앞으로 당겼다. 성준수도 자연히 상체를 숙여 케이크 가까이 다가갔다.

생일 축하 노래는 없었다. 달큰한 케이크 냄새가 코끝에 미미하게 맴돌았다. 흔하게 맞추는 합도 없이 두 사람은 동시에 촛불을 불었다. 사위가 찰나 어두워졌다. 달칵. 스위치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얀 형광등이 팍, 켜졌다. 꺼진 촛불 위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환해지기를 기다린 사람처럼 진재유는 손가락으로 생크림을 찍었다. 재빠르게 성준수 뺨에 크림을 올렸다. 조명을 켜기 위해 일어선 몸이 우뚝, 멈췄다. 상황을 판단하는 진한 눈매가 끔뻑거렸다.

“풉…….”

그 모습이 어찌나 애 같은지. 진재유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웃음이 번진 어깨가 바들거렸다.

“아, 진재유!”

입술 사이를 가르는 소리가 상황을 명료하게 만들었다. 성준수는 한 박자 늦게 손을 뻗었다. 여전히 높은 의자에 앉아있던 진재유는 속절없이 손목이 붙들렸다. 애인을 기어코 잡아둔 성준수는 개구지게 구겨진 콧잔등 위에 생크림을 가득 얹었다.

“코! 아, 코에 다 드간다!”

“그러게 누가 먼저 시작하래?”

탓하는 문장들이 가벼웠다. 성준수는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손을 뻗었다. 진재유는 면면 천진함을 담은 채 도리질 쳤다. 싫은 티는 없었다. 소소한 장난이 즐거웠다. 온전히 서로와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다. 두 사람의 소성笑聲이 기분 좋게 울렸다.

“항복! 내 항복하께! 고마해라. 먹을 거로 장난하는 거 아이다.”

“아까도 말했는데, 시작은 네가 먼저였어.”

“우와. 양심 다 어쨌노. 내 얼굴을 봐라.”

성준수는 모르는 척 으쓱였다. 동시에 한 발자국 다가가 간격을 좁혔다.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선 단단한 어깨 위로 팔을 걸쳤다. 크림이 묻은 얼굴이 위로 들렸다. 높은 탁자에 맞춰 산 의자였지만 운동을 했던 신장은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진재유의 턱 가는 겨우 성준수의 가슴팍 정도였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뒤로 흘렀다.

“와 그래 보노.”

차분한 목소리가 다정했다. 진재유는 제 어깨 뒤로 늘어진 길쭉한 손을 감쌌다. 툭툭 불거진 마디 사이로 손가락을 얽었다. 투박한 피부는 장난치던 생크림에 비하면 볼품없이 거칠었으나 잡고 있으면 온전히 맞물렸다. 진재유는 다 덮이지도 않는 손을 살살 문질렀다.

“얼굴 보라길래.”

성준수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코끝에서 달콤한 향내가 맴돌았다. 콧등에 살며시 입술을 눌렀다. 녹은 크림이 끈적했다.

입술 틈으로 들어온 생크림은 고소하면서도 느끼했고 어렴풋이 생딸기 맛이 났다. 성준수는 조금 더 고개를 틀었다. 곡선이 진 뺨도 비슷한 맛이었다. 혀를 살짝 내어 핥았다. 눅진한 단맛이 내려앉았다. 노랗게 그을린 살갗에 숨결이 고였다. 진재유는 그 숨이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워져 몸을 움츠렸다.

“준수.”

“응.”

집중한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낮았다. 입맞춤을 빙자한 탐닉은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콧등에서 뺨을 맴돌던 입술은 이제 턱 주변과 목덜미 언저리에 머물렀다. 얇은 피부에 입술을 부볐다. 살결에서 심박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 일단 얼굴부터 씻고 하자.”

남자의 행동이 멈췄다. 목덜미에 묻었던 얼굴을 느리게 들어 올렸다. 가까이에서 맞춘 시선은 농밀하고, 깊었다. 두 사람 다 서로에게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새카맣고 온전한 빛깔이었다.

“씻으면서 하는 건?”

한 번씩 튀어나오는 애인의 말은 상상을 초월하는 돌직구였다. 그저 귓바퀴만 붉혔던 열기가 삽시간에 퍼졌다. 목덜미부터 주근깨가 돋은 뺨까지 죄 홧홧했다. 드문드문 녹은 크림이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겼다.

진재유가 부끄러워하든 말든 성준수는 얽혀있던 손을 당겨 제 목뒤로 걸었다. 같이 운동을 했다지만 타고난 체격과 완력은 무시하지 못했다. 그대로 진재유의 엉덩이를 받쳐 안아 올렸다. 진재유는 떨어지지 않게 반사적으로 남자의 어깨를 짚어 허리를 바로 세웠다.

“니 진짜!”

“왜. 거울도 있고. 괜찮을 거 같은데.”

시야가 뒤집혔다. 이제는 성준수가 진재유를 올려다보았다. 성준수는 진재유를 안은 채 욕실로 향했다. 밤 11시 57분. 정각까지 3분 정도 남은 시간은 두 사람만의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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