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 센티넬해방전선 上

센티넬버스 준쟁

옴니버스식 구성입니다. 각각의 회차는 독립성을 가지며 AB는 다음 회차에서 리버스가 될 수도, 포지션이 바뀔 수도, 다른 인물과 엮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CD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 각 회차는 독립성을 가진다고 믿고 있으나... 이제는 확신이 없네요...

* *  카피드 · 레프트 · 리브즈 上과 패치워크 형식으로 직조된 사랑 : 기상호의 경우 下 에 짧게 언급된 준수와 재유의 설정을 활용합니다.

* * * 약 4만 7천 자 분량

-4.

AM 02:37

- 야 성준수!

야이씨발 지금 몇 신데…

- 너 임마 담에 나 만날 때는 딱 인사박고 존댓말 해라, 어?

뭔… 새끼 잠꼬대 한 번... 처자라 그냥.

- 내가 해냄. 이 몸이 드디어. 여기 있는 AJ 4 유충을 다 정리하셨다.

……네가?

- 어어? 소대장따리 말버릇이 건방져? 보자마자 대가리 박게?

…너 혼자서? 태안이냐 지금?

- 엉 성충이 아니라 그런지 할만 하더라고. 야 쉽더라?

센 척은 새끼가… 잘 됐네, 진급에 목숨걸더만. 축하한다 임마.

"그래서?"

"…평소 워낙 일 욕심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진급 앞두고 실적도 내고 싶어했었고 AJ 4 건으로 출장도 여러 번 가봤었기 때문에,"

한 장교가 AJ 4의 유충을 박멸했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자못 자랑스러운 목소리였다. 최초 보고자는 성준수 소령. 그는 성준수와의 무전 후 긴급구속되었다. 센티넬의 능력으로 삼십여 명을 살해한 혐의였다.

"성준수 소령."

"일척."

"따로 지시할 거 없겠지? 짬이 있는데."

그 장교는 AJ 4를 처리한 자기를 왜 구속하느냐고 물었다.

왜 포상은 못할 망정 이렇게 포박하느냐 물으며 끌려갔다.

"……네."

"직속상관 아닌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랬으면 성준수고 뭐고 진급누락됐어, 밑엣것들 관리 못한다고."

장교는 민간인학살범으로 명패를 바꿔달았다. 

"소령도 준장은 찍어야지, 안 그래?"

바야흐로 모두가 진급을 앞둔 시기였다. 

- 4-1.

성준수 소령은 갈 곳 없는 여느 부대원들처럼 여기에 서 있다.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를 생각하며. 아니 작전을 앞둔 장교가 보았던 풍경을 떠올리면서. 친구는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은 결단코 민간인을 사살한 적이 없다고 했다. 취조하던 수사관이 뻔뻔하다고 느낄 만큼 당당했다. 청에서는 수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범행 당시 범인의 뇌가 보던 이미지를 영상으로 재현했다.

"그것 참, 이 양반 머리가 완전 이렇게 됐네…"

"이거 봐! 이거 보라니까?! 야 준수야! 아니 소령님 이 양반들 진짜 왜 이러냐? 아니 곧 진급인데 이렇게 불려다니면 나를 어떻게 보겠냐고…! …생각합니다."

"……"

장교는 틀림없이 작전을 하고 있었다. 혈혈단신 용약하여 유충들을 제거했다. 장교의 능력은 압력을 가동하는 것이었고 영상에서 유충들은 기름을 짜내는 자갈처럼 쥐어짜졌다. 장교는 작전을 수행했다. 적어도 그의 뇌 속에서는.

영상을 벗어나면 흉악범이 민간인을 학살한다. 그들은 무력의 우위가 확연한 센티넬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AJ의 표피를 우그러뜨리는 힘은 금방 살이 터지는 인간들을 살상하는 압제가 되었다. 성준수 소령이 유충들이 너무 쉽게 죽지 않더냐고 묻자 장교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소령님도 아시다시피 2령 유충은 표피가 무른 편이잖습니까.

그러므로 실제 사건은 이러하다. 장교는 민간인을 AJ의 유충으로 오인, 능력을 써 민간인 삼십여 명을 잔혹하게 도륙했다. 장교의 뇌는 지금도 오인을 계속하고 있다. 장교의 '작전'이란 민간인 학살의 장교식 번역어였다. 수사관들은 사태를 간결하게 정리했다. 정신병자네 이거. 오직 장교만이 이 사태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전이 어땠는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센티넬이 예전같지 않다는 말은 질리도록 들었다. 능력도 효율도 예전같지 않댔고 자주 이상소견이 발견되었으며 걸핏하면 부상으로 골골거렸다. 성깔도 가지각색으로 좆같았다. 센티넬이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아도 멀쩡한 놈 하나가 없었다. 성준수 소령 기준으로 현 센티넬들은 하나같이 관심병사들이었다.

그래도 민간인을 도살하는 센티넬은 없었는데…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그는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물고 숨을 터트렸다. 계급으로는 너덧 개나 차이가 났으나 장교와는 동기였다. 성준수야 돌연변이처럼 소령으로 튀어올랐지만 보통의 센티넬들이 그처럼 되려면 디뎌야 할 디딤돌들이 제법 많았다. 장교가 그처럼 조바심을 낸 것도, 넘어야 할 단계가 까마득해 그랬을 테지.

"그럼 뭐하나…"

그는 세워진 비석을 시비걸듯 툭툭 친다. 이런 돌발상황으로 특진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대령은 꿈도 못 꿀텐데. AJ의 상아를 다듬어 세워진 기념비는 폭염과 방사능에 부식되어 볼품없었지만 형태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간첩사살기념비

XXXX년 X월 X일 대한민국의 센티넬 XXX를 납치하려던 간첩 XXX 일당을 몰살한 본 부대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센티넬들의 고귀한 얼을 기리기 위해 부대원 일동은 이곳에 기념비를 세운다

나라를 위해 이 한 몸을 바치자

일신일척一身一擲 부대 센티넬사단

간첩사살기념비는 축소한 첨탑처럼 뾰족했다. 칼날처럼 벼려진 상부를 바라보다 눈이 부셔 눈가를 찌푸리면,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들은 죄 희미했고 사연은 더욱 흐릿했다. 기념할 게 그렇게 없나. 전향 의사도 안 묻고 사람 다 쏴죽인 걸 기념한단 말인가.

아군 중 전사자나 부상자는 없었을까. 그 중 미쳐버린 사람은 없었을까. 눈이 돌아 사람을 죽인 그 새끼처럼.

0.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다. 민간인을 구해야 할 센티넬이 도리어 인명을 해쳤으니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정부에서도 신속하게 수습에 나섰다. 있어서는 안 될 참사가 일어났음에 책임을 통감하고 범인은 뇌검사와 유전자 채취가 끝나는대로 즉살할 예정이며 앞으로는 민간인 보호에 더한층 만전을 기할 거라 했다. 이만하면 아주 인도적인 처사임을 그도 모르진 않았다. 귀찮게 처형 절차를 밟는 대신 AJ의 간식거리로 어디 풀어버릴 수도 있었겠지.

다만 장교는 여전히 이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휘몰아닥치고 있었고 사건의 정황도, 사고 영상도, 목격자의 증언도 그가 살인범이라고만 했다. 그는 아무것도 납득할 수 없었기에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차 있었고 성준수 소령을 만날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그가 모종의 음모에 연루되어 제거대상이 된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쯤 되서는 성준수도 그의 증상을 알 것 같았다. 이걸 무슨 병이라고 부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장교가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세계와 진짜 현실은 불일치했다. 따라서 그가 모범적으로 작전을 수행해도 응당한 포상이 주어질 수 없었다. 그가 작전을 기획한 곳은 그의 뇌 속이었으나 실제로 작전이 수행된 곳은 뇌 바깥에 실재하는 장소였다. 그가 유충이라고 믿었던 것은 사실 사람이었다.

사람은 절대로 자기 뇌를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증거를 보여줘도 그것은 조작이었다. 그는 거대한 왜곡 속에 살기에 왜곡을 깨닫지 못하고, 성준수는 어느 순간 설득을 멈추었다.

성준수 소령은 사형 판결에 동의했으나 장교가 마침내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약간의 유예를 바랐다. 형이 집행되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전문가를 만나고 상담을 받길 바랐다. 그게 아니라면 장교의 죽음은 그냥 개죽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그는 그가 믿는 그대로 살해당하는 셈이니까.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닫지 못한다면, 장교는 절대로 유족들에게 사죄하지 않을 것이다.

세간에서 말하듯 자신의 만행을 추호도 뉘우치지 않는 인면수심의 범죄자로 죽겠지.

성준수 센티넬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센티넬 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린다.

0.

한국 센티넬 연합은 이름과는 달리 자그마한 사조직이었지만, 나름대로 장교의 구명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오랜 시간 장교를 보아온 전우들이 원조를 자처했다. 군 내부에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뿐, 옅은 연민은 조직을 벗어나는 즉시 고사했고 바깥에서는 축제처럼 사형일을 고대했다. 연합은 장교에게 필요한 외부의 동정을 얻어내려 백방으로 손을 썼다. 각계 각층의 단체에 연대를 요청하는 것도 그 일환이었다.

그런 까닭에 성준수 소령은 들어서자마자 즉각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크고작은 단체의 관리자들과 씨름하여 연대를 얻어내야 했다. 소령 급의 센티넬이 배석해 준다면 면이 서는 것은 당연하고 게다가 그 성준수다. 성준수 센티넬의 영향력이 그들을 낙관하게 만들었다. 저희가 다 알아서 할게요 소령님은 가끔씩 고개만 끄덕여 주세요.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호언장담하는 이들의 의욕을 꺾기 싫어 입을 다물었지만,

"아, 한가련에서 오셨죠?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한가련이요? 아니오."

처음부터 성준수 소령은 어쩐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지 않았었고 남자가 들어오는 순간 확신했다.

보아하니 쉽지 않겠다.

1.

"어? 진재유 씨… 아닙니까? 한국 가이드연합의…"

"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전국 가이드 총연맹에 있습니다."

"네? 그… 둘이 무슨… 차이가…?"

"한가련은 우리랑 노선이 다릅니다. 제가 한가련을 나온 게 최근 일이라 모르셨던 모양이네요."

큼지막한 눈 아래에 점점이 주근깨가 돋은 남자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입을 다물면 완고한 인상을 주었다. 그의 생경하고 딱딱한 억양 탓이기도 했지만, 피차 곤란한 상황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진재유라는 한 개인의 심정적 지지가 아닌 한가련의 확실한 연대성명을 원했고 그것은 어그러졌다. 다 알아서 하겠다던 이들은 어색한 얼굴로 담뱃갑을 흔들었다. 저들끼리 대책회의에 들어가는 거겠지.

'어쨌건 가이드 쪽이랑은 무조건 얘기를 좋게 끝내야 해. 규모는 아쉬워도 받아야 하는 거 알잖아.'

'아니 전국 가이드 총연맹은 또 무슨 그먼씹 단첸데… 그게 그거 아냐?'

남자는 과묵했고 건물은 나쁜 자재를 썼고 성준수는 벽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그는 숨죽인 불평이 얇은 벽을 타고 남자에게까지 들릴까 연신 눈치를 보았다. 남자는 두터운 침묵 속에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한국 센티넬 연합. 그 글자를 보며 남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럼 한가련, 아니 음…전국, 전국,"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그런 거는 우리같은 그먼씹 단체보단 한가련이랑 진행하는 게 맞지 싶습니다. 저희는 됐습니다."

지들도 좆만한 주제에 존나 가리네, 뭐 이런 생각?

난처한 표정으로 어물대는 이들 앞에서 문이 닫힐 적에도 그는 좀 갈등했다.

남자를 잡을까, 말까.

1-1.

발이 빠르네. 그는 벌써 저만치 가 있는 남자를 보며 생각했다.

"재유 씨, 재유 씨."

"뭐 또 할 말 있습니까?"

발이 빠른 남자는 선선히 돌아보고 물었다. 무작정 남자를 뒤쫓던 그가 그제야 할 말을 제대로 떠올린다.

"재유 씨의 소속 단체에 대한 무례한 언급으로 불쾌하게 해 드린 점,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원하시면 지금 불러 사과시키겠습니다."

"여기가 머리가 맞네. 저기요, 저 사람 계속 쓸 겁니까?"

"……"

"정으로 사람쓰면 큰일 못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것 땜에 불렀어요?"

"아닙니다."

"그럼 이제 할 말 하세요."

할 말은 모르겠고 하고싶은 말은 많았다. 진재유가 아니라 그 누가 들어도 적절치 못한 얘기였다. 하고픈 말은 찍어누르고 해야할 말을 천천히 궁글린다. 입술을 수도처럼 잠그고 하나만 생각한다. 마음을 돌려야 돼. 그의 동기는 소위 그먼씹이라는 신생 단체는 물론이고 진재유 단 한 명의 동정이라도 절실하게 필요한 처지였다. 범인의 일관된 무죄 주장은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유전자 채취는 며칠이면 끝이 난다. 자신에게 떨어진 죽음을 납득하기 위해 친구는 점점 더 세세한 음모론자가 되어갔다. 유충이라며 사람을 죽였으니 애초부터 미친놈이었다 치더라도, 그 놈이 더 미쳐가는 꼴을 보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되게 염치없게 군다는 거 압니다. 그래도, 그래도 한 번만 눈 딱 감고 넘어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자 속 편하게 지껄이는 놈들을 보면 영원히 잠잠해지지 않는 바닷가로 끌고가 대가리를 파묻고 싶었다. 파도가 잠잠해질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도닥이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정말 한 명 한 명이 절실합니다. 센티넬들과 직접 접촉하는 직군에서 연대해 준다면 파급력도 클 겁니다. 제가, 저희가 막 말도 안 되게 살려달라고, 그런 거 아닙니다."

어떻게 사람을 죽여놓고 사면을 바라겠습니까? 센티넬인데요. 민간인 서른보다 센티넬 한 명이 중하다는 거 아닙니다. 내심 그렇게 생각하는 센티넬들이 있긴 한데 뇌가 좀 헐거운 새끼들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튼 다들 그래요 걔 정신병자라고. 그런데 걔가 병자면요, 죽기 전에 진단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그게 그 새끼 사인이 될 텐데, 지 상태를 인지하든 못 하든 병자에게 사인을 알려주는 건 최소한의 의무 아닙니까? 이런 말 좆같지만 그 새끼 이렇게 되기 전까진 본분에 충실했고 누구보다 헌신하는 센티넬이었습니다. 나같은 거랑 비교도 안 됐어요. 적어도 그 정도는 알 자격이 있단 말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한 명 한 명이 아쉽고 일단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때는 조직의 외연 확장이 제일 중요한 일 같아서 제가 세운 원칙과 타협도 했었고요. 그 결과, 아이고 쪽팔리라… 한가련이랑은 노선 차이로 갈라서게 됐죠. 그, 제가 이렇게 말하는 거 진짜 꼰대같아 보이는 거 아는데요."

"……"

"선생님, 크게 타협하면 크게 잃습니다."

진재유는 그의 조직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떠나온 단체와 신생 단체 사이에는 노선 차이로 갈라져 나올 만큼 큰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남의 눈엔 보이지 않을만큼 사소하거나 심지어 혹자는 그게 그거라고 여길지언정 그가 조직에 가진 애착은 희석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가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옮겨왔기에.

차마 그를 다시 붙잡을 순 없었다.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곳은 좋은 조직이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2.

진재유의 혹독한 비판 덕에 그는 여러가지를 깨닫게 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모두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었다. 성준수와 센티넬 연합의 관계 설정 문제였다.

진재유는 뒤따라온 성준수를 머리라고 칭했지만 여기엔 그런 게 없었다. 제대로 된 책임자가 있었으면 그날이 그렇게 엉망진창이 되지도 않았겠지. 명의로는 센터의 센터장이 연합의 회장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회장이란 이름 뿐, 페이퍼컴퍼니의 바지사장 같은 존재였다. 해서 센티넬 연합은 말만 거창하지 실상은 실무자들 서넛이 전부인 친목모임과 진배없었다. 일개 상사인 성준수 소령이 우두머리로 보였던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들에겐 협상의 경험도 스스로를 방어해 줄 계급도 없으므로 더더욱.

"그러면 지금 한가련 관계자랑 연락이 되어야 하잖아."

"계속 해보고 있는데 회신이 없어."

"아 내가 입만 안 털었어도 진재유한테라도 다시 연락해 볼 텐데…"

의욕은 있으되 로드맵은 없고 인맥은 있으되 구심점은 없는 이걸 연합이라 불러도 되는가?

"어떻게든 수를 내야 돼. 이대로 가다간 가이드들도 무시하는 게, 역시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할 걸?"

"…단체를 움직일 자신이 없으면 개인적인 차원으로 우회하지. 큰 거 욕심내지 말고 쉬운 거부터. 나도 지인들한테 부탁할 테니까, 아는 가이드 총동원해서 서명이라도 받아와. 서명 모은 다음에 그걸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는 그가 올바른 방식을 취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혹시 주변에 한가련이 왜 찢어졌는지 알 만한 사람 없어?"

이 조직은 바지를 갈아입을 때가 되었다.

3.

찢어질 만 했네.

그의 감상은 이러했다.

가이드는 두 부류로 나뉜다. 전용가이드, 공용가이드.

혹은 세 부류로. 전용가이드, 공용가이드, 안드로이드.

한가련 초기에는 전용가이드가 주축이 되었으나 점차 공용가이드도 일정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 무리가 되었음에도 그들은 데면데면 공존했는데 처한 상황의 차이가 주요 의제설정도 다르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용가이드가 센티넬-가이드 계약의 강화와 센티넬 파트너의 폭력 및 성폭력에 관한 법률, 그리고 계약이 파기된 일방의 재산권을 비롯한 일체의 권리 보호에 골몰하는 동안 공용가이드들은 정규고용 정년보장을 외쳤다.

공용가이드들이 정규고용 정년보장을 선취하자 양측의 간극은 빠르게 벌어졌다. 이는 처한 상황의 다름이 주요 의제설정의 차이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원초적으로는 서로의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까지 포함하면 가이드의 수효는 무한에 가깝게 쏟아졌다. 센티넬의 변심이 곧 계약의 종료인 전용가이드들의 불안은 공용가이드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진화했다. 공용가이드들은 사랑받지 못하는, 매력없는 가이드이자 자나깨나 전용이 되고싶어 질척거리는 무수리들이었다. 공용가이드들은 당장 내일 변심할지도 모를 센티넬의 총애를 맹신하며 센티넬 빽으로 거들먹거리는 천치들이라며 맞받았다. 경쟁심은 사람을 곧잘 치졸하게 만들고 센티넬이 있는 가이드들은 늘 곤두서 자신의 몫을 빼앗기지 않으려 사투했다. 여기만 해도 공용으로 들어왔다 전용된 가이드가 한둘이야? 말론 저러면서 뒤로는 허접한 센티넬 전용이라도 되고 싶어 안달이 났던데. 지들도 아는거지. 여럿의 노예가 되느니 한 명의 인형이 낫다는 걸.

공용가이드들이 센티넬 파트너의 폭력 및 성폭력에 관한 법률의 적용대상에 자신들도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졌다. 이제는 봉합이 불가능했다. 한쪽에서 파트너의 뜻을 모르냐고 소리치면, 맞은편에서는 폭력이 뭔지 모르느냐 외쳤다. 정규고용은 가이드가 정규직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며 정년보장은 가이드가 정년까지 폭력과 학대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한편으로는 독점적 관계에서 행해지는 폭력과 비독점적 관계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다른 양상을 띄므로 각자 다른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양측은 갈수록 첨예하게 대립했다. 공용가이드의 가이딩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하는지 형법의 보호를 받아야하는지 헷갈려하는 이들이 있었다. 노동착취와 성폭력을 고의로 혼동하는 이들도 있었다.

끝없는 논쟁 끝에 공용가이드들의 요구는 투표에 부쳐졌고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었다.

그 후 진재유는 한가련을 탈퇴했다. 혹은,

내쫓겼다.

"아무리 봐도,"

그는 한 영상을 보고있다. 한가련의 가이드들이 데면데면하게나마 공존하던 시절인 듯했다. 화면에서는 비가 내렸고, 빗소리는 울룩불룩 튀었다 진재유의 음성을 반향했다. 곳곳에서 입김이 번졌다 사라진다. 목소리는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여러분, 우리에게 천장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들은 정말 하나처럼, 한 목소리로 외쳤다. 호응은 더할 나위 없이 열정적이었다. 그땐 그랬을 것이다.

정말 우리에게 천장이 없습니까?

진재유가 즉석에서 말하는 거라면 그는 탁월한 연설가일 것이고,

우리에게 우산이 있다 하여 저 지붕을, 저 서까래를 없다할 수 있습니까?

비를 맞지 않기 위해 남의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하는 이들을 우리의 동지가 아니라 단언할 수 있습니까?

우리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우지 않는다고 우리의 천장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의 천장을 직시합시다.

감사합니다.

직접 쓴 글을 읽는 거라면 가슴을 뜨겁게 하는 작가일 테니까.

"쉽게 쫓겨날 인물은 아닌데…"

조직의 최고참에 가까운 진재유가 그렇게 간단하게 축출된 이유는 두 가지로 축약되는 듯했다.

첫째, 그는 그를 보호해줄 센티넬이 없었고, - 다시말해 현재는 공용가이드였고 - 종종 객관성을 결여한 판단을 내렸다. - 달리말해 공용가이드에게 편파적인 입장을 취했다.

둘째, 그는 섹터 4 출신이다.

"섹터 4? 섹터 4 출신인데 가이드라고?"

여타 섹터의 유전자가 센티넬 배합용 원자재로 쓰이는 것과 달리, 섹터 4는 유일한 민간인 유전자보관소였다. 당국도 섹터 4의 유전자까지 몽땅 복제해야 할 정도로 인구 감소가 심각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섹터 4는 범죄자, 사상범, 남파간첩 및 정부에서 규정한 요시찰인물을 영구히 격리시킬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니까.

한가련의 주류는 줄곧 전용가이드였고 지금도 그 비율은 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는 진재유의 독특한 억양이 범죄자들의 은어가 남긴 흔적일 것이라는 말이 정설처럼 떠돈다고 했다. 확인할 순 없지만 진재유에 관한 소문은 아마 더 많을 것이다.

섹터 4 출신의 공용가이드인데 초창기 멤버라…

눈엣가시였겠네.

"그래서, 어디로 연락해야 하지? 그 총연맹이라는 데랑 얘기하려면."

4.

정부에서는 갖가지 이유로 미적거렸다. 사형일은 석연찮고 거푸 연기되었다.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다행이라 느껴도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장교는 여전히 귀기울여 듣는 이 하나 없는 공허한 결백과 진단명없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가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마저 방치되고 있었다. 서면으로 또 대면으로 수차례 요구했다. 도대체 왜 의사를 불러주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정여론이라도 일까봐 그러는걸까? 저러다 자살해버리길 바라는걸까?

"찾으셨습니까."

"어, 앉지."

대장 이하 장성들이 자리를 권한다. 성준수가 허리를 곧게 편다.

다이아몬드 셋 한 놈, 다이아몬드 하나 한 놈.

"서 준위가 드디어 범행 일체를 자백했어."

"잘 못 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리발을 내밀더니 이제야 순순히 자백하더라고. 홧김에 그랬다나 봐."

"자백이, 그러니까…... 진술이 일관적이었습니까?"

"자네 지금 나 신문하나?"

"아닙니다."

여러 번에 걸쳐 검증된 진술입니까? 진술할 때마다 달라지는 부분은 없었습니까? 자백 당시 외압은 없었습니까? 고문해서 허위 자백 뜯어낸 거 아니냐고.

아니 지금 진술의 신빙성을 담보할 수 있을만한 상태입니까?

"…그럼 이제 검진받을 수 있습니까?"

"유전자 채취랑 뇌 검사를 군바리가 하나? 머리가 안 돌아가? 우리가 왜 욕먹어가면서도 안 죽이고 있겠어? 의사라면 지겹게 만나고 있을 걸세."

"거기에 정신과 의사도 있습니까?"

"성준수 소령."

"일척."

"뭐하러 의료원의 소중한 시간을 직책도 없는 정신병자에게 써야 하지? 그놈 정신병에 명찰 붙이면 그 새끼가 죽인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나? 유족들이 알고보니 저놈 참 불쌍한 자식이네, 하고 봐주기라도 할까? 적게나 죽였으면, 쯧."

"……"

"소령, 정신차려. 그놈 이제 군인 아니고 범인이야. 센티넬이 아니고 살인범이라고. 초진료도 못 댈 병신새끼 병원비는 누가 대게? 성 소령이?" 

"예."

"하…… 저새끼 진짜 예사 꼴통이 아니네."

"제 급여에서 까겠습니다."

다이아몬드 세 개가 역정을 낸다. 다이아몬드 위에 별을 단 놈이 점잖게 웃는다. 자자 진정들 하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정하고 있었는데 저 새끼만 진정하면 될 것 같은데 이 새끼는 왜 나한테까지 지랄이지?

"둘이 막역하지 않았나. 심란할 만도 해. 요즘 소령이 실속없는 친목에 목매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야."

"…...?"

"물 좋고 공기 좋은 데로 발령해 줄 테니 머리 좀 식히다 와."

"어디 말씀이십니까?"

"소흑산."

이런 미친…

"AJ 13이 최근 AJ 9의 도래지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있었네. 알을 파먹는다는데, AJ 11에다 AJ 9와도 공생하기 시작하면 곤란해져. 해안선 유지에 위협이 될 걸세."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씨발…

성준수는 강점도 한계도 명확한 센티넬이다. 그는 공기를 응축해 발포할 수 있었는데, 유효 사거리가 월등하게 넓었다. 작전 시 슛이라고 부르는 이 기술을 전술적으로 응용하기 위해서는 예리한 시각과 정밀한 타점을 가진 센티넬에게 움직이지 않는 좌표가 주어져야 했다. 위에서는 성준수 센티넬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최적의 시기에 그를 불러냈다. 즉 근접전이 불가능하고 공격 시에는 움직임이 거의 없는 4령 4일이 지난 AJ 4의 이빨에 인류의 절반이 죽은 후에.

AJ 4가 그를 부른 셈이다.

"사막이래도 여기랑 다를 거 없어. 방어지역이 넓지도 않고. 몸이 편할거야."

그는 AJ 4에 특화된 센티넬은 아니지만, 특화된 기술을 갖고 있는 센티넬이었다. 그리고 그의 능력은 AJ 4에게 가장 파괴적으로 작동했다. 성준수에게 AJ 9나 13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것들과 대적할 수 있는 센티넬은 그 말고도 많았지만 AJ 4와 대치할 수 있는 센티넬은 손에 꼽았다.

"대답이 없군. 불복하는 건가, 소령?"

"아…하,"

그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뭐 마려운 새끼처럼 답을 독촉하는 꼴에서 비로소 모든 게 확연해져서였다. 그는 지금 한직으로 밀려난다. 보복성 인사를 겪고 있다. 왜? 요즘 그가 실속없는 친목에 목매고 있기 때문에. 한평생 실속없는 친목이란 하나뿐이었다.

"실속없는 친목이란, 센티넬 연합을 이르시는 겁니까?"

"슬슬 돌아가 짐을 싸게. 섬이라 준비할 게 많아."

"센티넬 연합은 센티넬 지원센터의 작은 모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말야. 따지고보면 이 조직 전체가 센티넬 지원센터가 아닌가? 당최 그런 게 왜 필요한지 모르겠어. 둘러앉아 징징대봐야 소모적인 친분쌓기에 지나지 않는 것을."

항명한다 해도 명령 불복종으로 그를 징계하진 못할 것이다. 현재 군에서 센티넬 성준수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은 없다. 하지만 연합도 되지 못한 소모임을 치기는 쉽겠지.

"제 빈자리는 정말 클 겁니다."

짐을 싸러 가자.

"후회하실 겁니다."

4-1.

"일척."

경례한 성준수가 물러간다. 곧게 벌어지는 어깨에서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진 두 손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있다. 교본에 나올 법한 전형적이고 모범적인 자세였다. 성준수는 단독 작전을 수행할 수 있고 교전중인 부대를 엄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정예였다. 뿐만 아니라 현 시점에서 유일무이한 능력을 갖고 있는 센티넬이었으며 독립적이고 실질적인 지휘권을 갖고 있는 영관급 간부였다.

"다시 태어나도 정신을 못 차리네, 제 버릇 개줄까."

말소된 그의 이력까지 감안해보면, 그는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다.

억세게 운이 좋은 성준수에게 운이 더 따라붙으면 성준수 소령은 성준수 중령이 될 수도 있겠지.

대령은 되지 못하겠지만.

"우린 결원을 어떻게 메꿀지에나 집중하자고. 정 또 헛짓거리 하고 싶으면 무인도에서 AJ랑 그 좋아하는 연대 실컷 하겠지."

"예. 여기 명단을 보시면…"

다이아몬드 세 개를 단 대령의 손아귀에 쥐어진 수십의 이름이 구겨진다.

5.

사막이 처음은 아니었다. 신두리에 파견된 센티넬들을 지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주력부대를 지원하는 것과 제가 주력이 되어 AJ 9를 처리하는 건 또 달라서. 더군다나 척 보아도 국지전엔 불리한 지형이었다.

"지형이 해안사구랑 다른데…"

"여기는 풍성사구라고 합니다."

소흑산의 사막은 능선의 한가운데를 도끼로 쪼개어 벌어진 자리에 모래를 채워넣은 것처럼 생겼다. 산란기가 임박한 개체들이 몰려들텐데 센티넬의 위치를 엄폐할만한 지형지물이 전무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병력을 노출했다간 곧장 전멸할테고...

"하 씨바꺼 진짜…"

왜 여기 보냈는지 알 만했다. 천혜의 조건을 갖춘 AJ의 요람이었다. 먼 옛날에는 충신들의 유배지였다던데 나도 한 번 존나 뺑이쳐보라는 거지. 지형도 낯설고 제대로 상대해본 적도 없는 종들에 맞춰 병법도 수정해야 할 걸 생각하니 한숨만 터지는데 무엇보다 골치아픈 것은 가용인원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쪽수 없어서 개별행동 위험하니까 소속 가이드랑 같이 온 애들 있으면 희망자에 한해서만 숙소분리 해 준다고 해, 웬만하면 붙어 있으라고. 범용가이드들은?"

"저쪽 영사에 있습니다. 불러올까요?"

"아니, 내가 간다."

6.

누군가가 들어오겠다는 듯 기척을 냈다. 문을 대신하여 여러 겹의 피륙으로 덧대어진 장막은 길이가 짧아 방문객의 신상을 아무렇게나 떠벌린다. 센티넬이네. 휘장 아래로 까만 군화 한 켤레가 답변을 기다리며 말없이 서 있다.

여닫을 때마다 텁텁한 소리가 나는 휘장이 홱 걷힌다.

"오늘 일정 없는 걸로 알……"

임마는 다시봐도 잘생겼네.

센티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뭔가 말할 듯 입을 떼었다가도 다른 가이드들을 일별하고 이내 그만둔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진재유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여긴 누구셔?"

"안녕하세요?"

진재유 눈에 잘생긴 센티넬은 남들 눈에도 틀림없이 미남일 것이다. 그를 흘끗대던 가이드 전부가 어느새  은근슬쩍 몰려든 게 그 증거였다. 남자의 눈이 느릿하게 좌우로 움직인다. 총 인원을 어림하듯이.

대강 숫자를 확인한 그가 발뒤꿈치를 나란히 붙이고 바르게 경례한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육신. 일신일척 부대 센티넬 사단 성준수 소령입니다."

FM대로 관등성명을 대는 얼굴은 갓 임관한 군인처럼 딱딱했다. 별스럽게 여겨질만큼 꼿꼿한 자세에 버겁도록 각 잡힌 자기소개였다. 발랄하게 다가왔던 이들이 위축되는 게 느껴졌다. 아, 그 유명한 성준수… 속닥대면서도 다가오진 못한다. 지나치게 깍듯한 센티넬에게 겁먹는 건 사실 자연스런 일이다.

언제나처럼 진재유가 먼저 손을 내민다.

"진재윱니다. 소속은… 없고요."

"범용가이드 여러분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보다 손가락 한 마디쯤 큰 손이 무겁고 묵직하게 손을 맞잡고 떨어져나갔다.

7.

전국 도서벽지와 격오지에서 시달린 황금마차(자치센티넬 복지지원단의 은어. 지원단으로 차출된 공용가이드들이 가이드가 없는 통제구역을 순회하며 가이딩을 한다.)의 수행원들은 가이딩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진종일 자리에 누워있기 일쑤였다. 온몸에서 비린내가 나. 내가 생선이 된 것 같아. 씻고싶다. 그런 말도 누워서, 먹는 것도 누워서, 쉬는 것도 누워서, 가끔은 우는 것도 누워서.

그들이 눈을 반짝이며 활기차게 떠드는 것은 실로 간만의 일이었고 그 주제가 무엇이든 진재유로선 환영이었다.

"성준수 지인-짜 잘생겼더라."

"매너도 좋잖아. 무섭긴 하지만… 인사하는 거 봐."

"소속 있겠지?"

"야 꿈 깨. 소위라고 해도 눈앞이 깜깜한데 소령이다 소령."

딴 게 아니라 성준수가 가이드 복지네… 성준수한테 잘해줘야겠네.

"솔직히 저 정도는 되어야 빽이라고 할 만하지 않냐? 뭔 줘도 안 할 떠돌이 센티넬 하나 잡았다고 거들먹거리는 꼬라지 보면 어이털려서 진짜…"

"야야 말조심해. 그런 애들 여기도 있다."

"뭐 어때? 그런 애들은 지 센티넬한테 꼭 붙어 있을텐데."

그래도 이 주제에 낄 자신은 없다.

그들은 기착지를 모두 거쳐 마지막 발령지에 도달했다. 당분간은 시간에 쫓기며 옮겨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다. 편한 마음에 그저 편하게 하는 말일 것이다.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도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도 아닐 것이다.

그걸 아는데도 그는 가끔 흩어져 버린다.

의미없는 시간을 보냈고 의미없이 버려졌는데 의미없는 시간을 헌신이라 의미없이 믿어왔던 것 같아서.

"야 난 떠돌이라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으니 누구 하나라도 잡았으면 좋겠어."

"나도. 솔직히 떠돌이에 금방 죽는 센티넬이랑 계약? 업계포상이지. 오히려 좋아."

그 결과가 이거다.

나는 남의 그늘도 나의 그늘로 삼고 싶었지.

그걸 남들은 오지랖이라고 했고… 지금은 내가 봐도 오지랖같지.

"어디가?"

"잠만 나갔다오께. 바람 좀 쐬게."

"오~ 바람~"

"설마 성준수 꼬시러?"

그 자리의 모두가 즐겁게 웃어서, 그도 재빨리 따라웃었다.

"되겠나 내가."

시대의 한계라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해전의 조직자는 지나치게 순진하고 멍청했다.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8.

해풍이 얼굴에 끈적끈적 달라붙는다. 바람을 쐬겠다곤 했지만 산맥 한가운데에 짐승이 혀를 빼문 듯 길게 늘어져있는 사막과 노송 한 그루 없는 해변엔 해를 피할 곳이 없었다. 태양열로 자글자글 끓는 모래밭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 그는 체념하고 발길을 돌려 막사로 돌아가다 넘어진 석상 옆에 위치한 정자를 발견한다.

이미 그늘 아래엔 선객이 있었다.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입술로 툭툭 밀던 성준수 센티넬이 까딱 목례한다. 아까만큼 예의차리진 않은 인사였다.

"더워서요, 잠깐만 있다 갈게요."

"네."

둘은 나란히 앉아 넘어진 석상과 선창에 부려진 그물, 무너진 돌담 따위를 보며 같이 묵묵했다. 그새 이마에 밴 땀이나 긴 침묵이 이상하리만큼 의식되었다. 보고 있지 않은데도 땀에 젖은 그의 앞머리는 찌를 듯이 선명하고 긴장한 듯한 표정 역시 보이는 것만 같다. 오지랖은 아마 이럴 때나 펼치는 거겠지.

사람들은 그걸 친한 척이라 한다. 

"이제 한 팀인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차차 하겠습니다."

"아니 당장 반말하라는 게 아니라, 그 말투를 좀 편하게…"

"그것도 차차."

하 빡세네…

"...여러번 연락했었습니다."

"황금마차가 오지만 돌잖아요. 소령님이랑만 연락이 안 된 게 아니라, 우리 애들이랑도 연락 다 끊겼었어요."

"아."

"우이도는 계획이 연 단위로 짜져있더라고요. 앞으로는 연락 잘 될 겁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성준수가 짧게 웃었다.

"그래서 그 ㅇ… 연맹 분들이랑은 이제 연락이 닿았습니까?"

"연락만 되지요 연락만. 소령님한테 별 도움 안 될 걸요? 제가 이래 끈 떨어진 뒤웅박 된 거 보면 모릅니까. 아무것도 못 하게 다 흩어놨어요 다. 여서 내 혼자 뭐를 뭐 어떻게 하라고…"

"혼자가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무슨…"

한가롭게 흘러가는 구름들을 바라보던 성준수가 고개를 돌리고,

"센티넬 연합은 재유 씨가 있는 곳보다 더한 그먼씹이지만,"

이마를 톡톡 두드린다.

"그래도 여기가 그 '머리'인데, 관심없습니까?"

진짜 허접한 조직이던데 그나마 거기서 머리를 똑 떼서 무인도에 던졌다고…

소령이면 출세가도에 있는 인산데 왜 여서 삽질하나 했더니 윗선에 잘못 보인 건 확실한갑네.

"……그러면 얘기가 좀 달라지긴 하죠."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얼굴인 거 보면 자기 역량으로라도 끌어가겠다는 거겠고.

그럼 한 번은 들어볼 만 하지.

9.

모래밭이 온통 새까맸다. 사막은 AJ 9로 지천이었다. 그가 주시하는 중에도 쉼없이 모래위로 솟아올라 우글거렸다. 해변엔 전함만큼 크고 빛깔이 화려한 깃이 포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위에서는 AJ 9와 13의 공생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그를 배치했고 성준수 소령은 산란기에 이른 AJ 9의 공격에 대해서는 대비했으나,

- 전원 방격복과 마스크 착용하고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AJ 11의 연이은 도래는 대비하지 못했다.

- AJ 11에게 붙잡힐 경우, 가능한 한 바다로 떨어진다. 전투수영과 낙하훈련 성적이 미비한 대원들은 후방에서 AJ 9의 유충과 알의 수거를 맡되...

그러나 이 소대원들도 AJ 9의 공격에 확실히 대비되어 있을까?

- 절대 사구에 도보로 접근하지 않고 수송용 드론을 이용할 것.

그것은 알 수 없다.

성준수를 엿먹이려고 그랬는지 담당자가 무지했는지 받은 정보는 다 엉터리였다. AJ 9의 알을 파먹는 건 AJ 11이었다. AJ 9는 앞뒤 종횡으로 바삐 움직이며 위협적으로 뿔을 뻗쳤으나 상당수의 알을 약탈당했다. 정작 그를 여기 던져놓은 원흉인 AJ 13은 보이지도 않았다. 덕분에 멋모르는 센티넬들만 죽을 맛이다.

"하…"

뿔은 좌우로 흔들리며 가시거리를 혼란케 하고 타점은 빠르게 이동했다. 이 상황에선 아무리 좌표를 정확하게 설정해도 오격이 되고 만다. 오격을 몇 발까지 허용할까. 삼림을 오격하면 은폐용 지형지물이 더더욱 희소해진다.

"저건 움직이면서 쏘아야겠네."

슛을 따로 훈련하지 않으면 전장을 더 위태롭게 만들것이다. 하지만,

- 지금부터는 내가 엄호한다. 각자 위치로 돌아가 개인정비 시간을 갖고 부상병들은 반드시 가이딩을 받는다.

그럴만한 시간이 있을까? 운용할 시간이 있다면 그래도 될까?

-전원 철수.

성준수 소령은 회군을 명령한다.

10.

고공에서 추락한 센티넬들은 전원 골절상을 면하지 못했다. 운나쁘게 모래로 떨어진 이들은 복합골절로 정신을 놓았다. AJ 9 대응조는 난각에 묻은 보호액에 피부가 녹아내리거나 창상을 입고 실려갔다. 병영을 둘러본 소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치명상을 입은 병사들도 방격복 덕에 전사는 면했다. 가이딩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소령님."

두꺼운 천이 홱 젖혀지는 소리에 돌아보면 헤어밴드와 아대를 착용한 진재유가 다가온다.

"전용가이드 있으세요?"

"없습니다."

"가이딩 받으셔야겠네요."

"지금은 센티넬로 단독행동을 하면 안 돼서, 가이딩 받아야 할 만큼 능력 쓰지 않았습니다." 

"…센티넬인데요?"

"내가 여기 배치된 유일한 지휘관입니다. 현재 현장을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란 얘깁니다."

지휘랑 전투를 동시에 수행하기엔 손이 모자라고, 아예 지휘만 하기엔 대원들이 못 미덥고, 능력을 안 쓴다고 체력이 안 깎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오늘 능력을 안 쓴 것도 아니고… 인간의 몸으로 빚을 수 있는 온갖 소음이 가리개를 넘어 일정한 크기로 구획된 공간을 채운다. 피와 구급약과 체액이 뒤섞인 냄새가 흘러온다. 그는 정직하게 동한다. 하지만 인내한다.

"……"

"받아야 될 땐 받습니다."

아직 진재유에 대한 행동지침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말은 언제 편하게 하실 거예요?"

"차차."

"하… 도도하시네."

"그렇습니까."

그는 최근 한가련 측으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요즘 어째서 센터가 바빠지고 연합을 찾는 장병들이 많아졌는지도 들었다. 부사관이 최근 무슨 일로 가장 골머리를 썩는지도 전달받았다.

그는 절대로 절대로 진재유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

"내 혼자라도 말 깐다 하면 건방집니까?"

성준수가 살짝 웃었다.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하,"

장교는 아직도 처형되지 않았다. 정부는 외부의 항의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버텼다. 그도 알아챈 증상을  모를 리 없다. 필시 그는 모르는 무언가, 아니 그도 모르고 장교도 모르는 무언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할 일이 남았다고 믿을 수밖에. 더하여 그가 서울을 떠난 후 군에서는 자잘한 문제들이 연이어 발생했는데, 관리소홀과 부주의로 인한 우발적 사고라기보다는 차라리 불길한 조짐처럼 보였다.

"손."

"……?"

"본격적인 가이딩은 안 하고요, 잠시 점검만 할게요. 효율 봐야 되니까." 

의심의 여지없이 개혁이 필요함에도 군 조직은 자정하려는 의지가 없다.

조직 밖에서라도 동인을 끌어들이지 않는 한 개선은 요원하다.

"효율 점검은 복무규정에 있잖아. 안 하는 거 규정위반 아이가."

반말을 쓰시겠다면 맞춰드려야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사로이 손깍지가 끼워진다. 헐렁해서 위로 조금 밀려올라간 아대 아래로 툭 불거진 손목뼈가 보였다.

"어...?"

"와. 좀 달라비나?"

"...너 가이딩, 진짜 되게 잘 한다."

좀 놀라울 정도로, 그러니까 어지간히 작살나지 않고서는 점막 가이딩도 필요없을 정도의 효율이었다. 그는 얼떨떨하게 손목을 매만진다. 진재유는 의기양양 웃고 있다. 이상한 기분.

"내같은 인간이 가이딩도 못해봐라, 바로 잡히가지."

그는 오랜만에 다소 센티넬스런 생각을 했다.

얘랑은 죽어도 못 자겠네.

그러자 풋 웃음이 나왔다. 

11.

일이 끝나면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엎어진다. 효율을 따지기에 앞서, 피와 살이 터지는 현장에서 복귀한 군인들에게 섹스는 전투의 여진을 가라앉힐 좋은 진정제다. 생사가 위태로울 때야 효율 좋은 가이드가 최선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효율이 나쁜 가이드도 차선은 되고 최선과 차선의 간격은 아주 좁다. 전쟁을 치른 센티넬들은 자주 섹스와 가이딩을 구분하지 못했고 다행히도 어느 쪽이든 그들은 치유받는다. 센티넬들은.

센티넬에겐 가이드가 있지만 가이드에겐 가이드가 없다.

교전을 마친 센티넬들은 흥분해 달려들지만 가이드의 교전은 아마 센티넬이 쇄도한 이후부터.

숙련된 병사를 당해낸 가이드들은 흔히 부상병이 된다.

"아이씨 가지말라고 붙잡고 안 놔줘서 팔 빠졌어… 이런 건 진짜 법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냐?"

"연합 연합?"

"너 뭐 한가련 그런 거 해?"

"아니 지난번에 한 번 빠진 뒤로 계속 빠지잖아…! 짜증나 진짜…"

"일 끝났는데 더 해달라면 짜증나긴 하더라."

우리에겐 정해진 시간만 일할 권리가 있고 그 센티넬은 너를 붙잡을 권리가 없으며 그가 너를 붙잡은 만큼 추가수당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걸 알아서 진재유는 조용히 어깨만 붙잡는다.

"이리 온나."

"아야…"

"손 무릎에 걸고."

규정은 별처럼 하늘에 떠 있고 가이드는 땅에서 고전한다.

"아파도 참아라. 니 혼자서 하면 어깨 잘못 끼울 수도 있으니까."

고통은 가깝고 이상은 멀 때면, 그는 이름모를 가이드해방전선의 혁명군들을 생각한다. 가이드-해방-전선. 천천히 되뇌다보면 궁금했다. 수장이라는 자를 데려와 묻고 싶었다. 이 꼴을 보여주며 묻고 싶었다. 당신은 혹시, 터무니없는 꿈을 꾼 건 아니었냐고.

어깨가 맞춰지는 통증에 가이드가 오만상을 찌푸린다.

12.

이래저래 어려운 섬이었다. 현장을 탐사해도 자료를 분석해도 애매했다. AJ 9와 11은 섬을 나눠쓴다. 두 종의 서식지는 분리되어 있었고 사막을 둘러싼 삼림을 경계로 AJ 11은 해변을, 9는 사막을 점거하고 있었다. 영감님들이 걱정했던 평화로운 공생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그러다 난데없이 두 세력이 충돌한 것이다.

"진짜 영문을 모르겠네. AJ 13에 관한 건 더 파봤어?"

- 아무리 찾아도 그게 답니다. 업무할 시간도 없고… 소령님 죽겠지 말입니다.

그 말많은 AJ 13은 대체 어디가고...

"야 우는소리 할려고 무전 치냐?"

- 아니 애새끼들이 서로 피떡 될 때까지 치고박고 싸웠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아 진짜 돌겠습니다!

"하 존나 부럽다 힘이 남아도네. AJ랑 붙고도 기운이 뻗쳐 동기들을 뜯고 패고... 기합 좀 줘라 밤에 할 거 없고 심심한 모양인데."

- 그랬다가 애들 몇이 엎어지는 바람에 걍 나가리 됐습니다...

"아니 그런 놈들은 인간적으로 전역을 시켜야지 뭐 하는 거야 대체?"

- 아니이… 원래 안 그랬는데...

"그런 놈 안 그런 놈 날 때부터 정해져 있어? AJ 13 데이터나 빨리 찾아. 못 찾으면 우리 여기서 다 뒤질 것 같으니까."

그는 주둔지를 떠날 수 없다. 모든 소식은 간접적으로만 날아온다. 작은 사무실에서 끝없이 서류만 보던 부사관 때처럼 행정업무에 치이는 기분이다.

한국 가이드 연합회

수신자 가이드 지원센터 산하 한국 센티넬 연합

제목 한국 센티넬 연합의 연대요청에 대한 회신

귀 기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귀 기관에서 요청하신 사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드립니다.

답변내용

한국 가이드 연합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센티넬 및 이를 옹호하는 단체와는 결코 연대할 의사가 없음을 알립니다. 끝.

몇 번을 읽어도 막막한 공문과 여기저기서 그를 호출하는 소음. 그가 모르는 새 소문을 탔는지 연합을 찾는 센티넬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다. 불성실하고 무성의한 가이딩으로 골든타임을 넘기는 바람에 능력에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가이딩한 가이드를 고소해야겠다고, 소송의 제반 과정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요새 애들은 왜 이렇게 허접이지…"

자기 소속을 고소할 가능성은 낮다. 지 얼굴에 먹칠하는 꼴이니까. 골든타임 어쩌고 징징대면 불운한 범용가이드 몇은 십자포화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센티넬이란 동물이 위에 대고 짖진 못해도 밑에 놈들 물어뜯는 것엔 비상한 재능을 발휘하는 족속들이지.

"소령님 방금 멘트 좀 꼰대같았지 말입니다."

"야 이게 꼰대면 그냥 꼰대 하련다. 뭔… 어휴 나같으면 쪽팔려서라도 못 그러겠네."

"지들끼리 맞장뜬 거 말씀이십니까?"

허접은 허접이고 저걸 다 받아주면 진짜 허접해지는 건 이쪽인데, 상황이 금방 바뀔 것 같지 않다. 좀 전에도 센티넬 하나가 씩씩대다 돌아갔단다. 딱, 딱, 손가락이 공중을 튕기는 소리. 어느 조직이든 이상한 놈 한둘은 있다. 이게 열 명 스무 명이 될 수도 있겠지. 그래봐야 소송까지 불사하는 한가한 놈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센티넬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은 문제였다. 적극적으로 동조하진 않아도 컨디션 난조일 때 가이드를 간편하게 갖다써도 된다는 생각이 암암리에 퍼질 공산이 높았다. 가뜩이나 효율에 죽고사는 종족이다. 상황이 안 좋아지면 제일 먼저 부실한 가이딩을 핑계로 자신의 효율을 변명하는 사례가 생길 것이다. 뿐인가, 말 안 들으면 소송 걸겠다 협박하는 새끼들이 무조건 나온다는 것에 그는 전 재산도 걸 수 있었다. 

"오늘 일정있는 범용가이드 있던가?"

13.

"그때 성준수 가이딩한 거 누구였어?"

"재유 손 잡고 있는 거 봤던 것 같은데."

"뭐야, 관심없는 척하더니."

이것은 곤란하다.

성준수 소령은 매너있게 가이드들을 대했다. 매너라고 해봐야 말을 낮추지 않고 법령을 지키는 정도였지만, 공용가이드로서는 넘치는 호사였다. 물론 그것이 의도 없이 베풀어지는 친절이라고 믿을 만큼 순진한 축은 없을 것이다. 누구든 몇 번은 그런 상관을 만나니까. 운이 좋을 때 만나는 상사들은 성준수만큼 가이드에게 젠틀했다. 대개는 가이딩을 받기 전까지만.

"둘이 친해보이던데."

하지만 그들은 달갑게 과거를 잊는다. 매번 새롭게 감격한다. 가이드에게 다정한 센티넬을 분별없이 사랑한다. 마음을 얻겠다고 처절하고 무용한 경쟁을 벌이며 서로를 할퀸다. 결국 누군가 승리해 계약을 얻었을 때, 다정했던 센티넬의 잔인한 본모습을 보게 되는 비극은 흔해서 진부하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센티넬의 독점욕은 영원하지만 대상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

"재유 가이딩에 언제부터 신경썼다고 견제질이야 갑자기?"

"솔직히 다른 애랑 점막 가이딩한 것보단 재유랑 손잡는 게 낫다고 생각하잖아? 괜히 히스테리야."

"아 그래도 신경쓰인다고!"

때로는 경쟁심리가 투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걸 그는 힘겹게 깨달았지만, 그때조차 진재유 자신이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았다.

"아니 가이딩 뭐 하지도 않았었는데…"

성준수가 잘생겨서 그런가? 이해할 수 없는 과잉반응이다. 그가 매력적인 외양을 타고난 것도 아니고, 점막가이딩을 하는 것도 아니요, 성준수가 그에게 곁을 준 것도 아니건만, 어떻게든 가이드를 안심시키려는 시도는 번번이 헛수고로 끝나고 그는 양심이 덜 죽은 사기꾼이 된 기분이다. 성준수 소령이 진재유에게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는 얘기 같은 걸 해봐야 뭐 하나, 애초에 성준수가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데…

'가 봐.'

'나 왜? 네가 가!'

'니가 제일 가까이 있잖아!'

기민한 가이드들이 스스로 조용해지고 시선이 휘장 아래 놓인 까만 군화 한 켤레로 모이면, 벙긋벙긋 서로를 종용하다 패한 손이 굼뜨게 가림막을 열어젖힌다. 예상대로 군화는 성준수 소령의 것이고 그는 심상찮은 분위기를 읽었는지 짧게 고갯짓하고 곧장 돌아섰다.

"잠깐 봅시다."

"네 소령님."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가림막이 제자리로 돌아가고도 눈동자 몇 쌍이 뒤통수에 철썩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 큰일 났네...

14.

답변내용

한국 가이드 연합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센티넬 및 이를 옹호하는 단체와는 결코 연대할 의사가 없음을 알립니다. 끝.

"...여전히 냉철하시네…"

한가련은 규모가 큰 조직이다. 지향과 목표가 확실하며, 가이드의 지위향상과 처우개선을 위해 복무한다. 연합은 모두와 연대할 필요도 용의도 없으며 그런 의향을 숨길 이유도 없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가이드의 생래적 조건에 기인한다. 가이드와 센티넬은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로, 그들의 계약은 걸핏하면 찢어지고 해지는 불안한 것이었다. 연합은 가이드를 보호할 수 있는 적합하고 안정적인 계약관계를 법제화하는 데만도 지난한 세월을 바쳤다.

그러나 모두가 계약을 할 수는 없었고 계약 밖에도 사람이 살았다.

그것이 진재유가 여전히 냉철할 수 없는 이유였다.

"끝. 이 글자가 너무 매정해서 상처 좀 받았습니다."

"아아- 그러면 한가련이랑은 어차피 잘 안 됐겠네요."

상대가 농담처럼 말하면, 그도 농담처럼 말할 수 있다.

"한가련은 계약으로 엮인 페어가 상대를 고소해도 계약을 보호합니까?"

"누가 고발했는지에 따라 다르겠죠."

"지금 재유 씨 있는 곳도 대응방식은 동일합니까?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왜요? 무슨 일인데요?"

"이제 슬슬 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상대의 진담에도 농담처럼 말하는 방법은 아직 배우지 못해서,

상대가 진심으로 물으면 그도 진심으로 답할 수밖에 없지만.

14-1.

가이딩 후 센티넬은 가이드를 격없고 가볍게 대하며, 무시하고 경멸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알몸을 목격한 이들끼리의 허물없음 때문인지 그 순간만큼은 가이드에게 생사여탈권을 뺏기는 듯한 무력함에 대한 복수심인지는 모르나 센티넬들은 계급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친밀하고도 무례해지기 십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더 친밀하고 더 무례하며 늘 평균을 상회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생명이 가이드의 손 아래 놓이는 걸 정녕 못 견뎌하는 부류였다. 그것이야말로 나약함의 표지임을, 가이드 진재유는 쉽게 알았다.

통상적으로 약한 센티넬들은 평균보다 긴 가이딩시간을 요한다.

이들에겐 가이드의 가호로 목숨을 건진 후 그들을 짓밟으며 훼손된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까지가 가이딩의 완성이었으며, 센티넬로서의 가장 큰 능력은 아마 가이드를 착취하는 능력일 것이다.

그 능력 하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일취월장 잘도 느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ㅅ… 놈들 이해 못 하겠지만, 어디든 ㅈ... 화풀이하고 싶은 기분은 압니다. 그런데 지 기분대로 지랄하겠다는 새끼들 북돋아주고 순조롭게 화풀이하도록 지원해 줄 순 없습니다. 저 개인으로도 당연하고 연합 차원에서는 더더욱 불가합니다. 그래서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근데 이거 제가 알아도 되는 거예요? 대외비일 것 같은데."

성준수는 진재유와의 협상엔 실패했으나 어느 정도의 협약을 이끌어냈다. 그렇건만 그는 그들 중 누구에게도 협약의 이행을 기대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진재유가 약속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연합의 일원으로서는, 성준수의 처지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비밀 지켜 주실거라 믿습니다."

"아니 뭘 믿고…"

그러나 협약의 일방이 먼저 조건을 이행했을 때, 상대는 그에 응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뭘 믿어서가 아니고, 그 새끼들이 육갑 떨고 자빠지느라 바빠서 그렇지 원래 군인은 비무장 상태의 상대에겐 방어할 시간을 충분히 줍니다. 가이드가 AJ도 아니고 뭐하러 기습을 합니까?"

그럴 민첩성이 있으면 최전방에서 AJ나 몸 바쳐 막아 보던가, 하여간 물경력 새끼들이 꼴값은 이십팔 색으로 다종 다양하게들 해요 씨발… 지금껏 나름대로는 굉장히 예의를 차리고 있었던 듯, 터져나오는 말이 거침없었다. 축적된 불만이 상당해 보였다. 하는 말을 듣노라면 협약 같은 건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이 또한 꽤나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상대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의를 베푸는 형식을 취한다면, 이쪽에서도 보상에 선의까지 더해 보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14-2.

이건 단순히 가이드 개인에 대한 고소가 아니다. 저효율과 비효율에 대한 처벌을, 가이드에 대한 형벌로 치환한 것이었다.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가이드를 단죄하겠다는 의지가 읽혔다. 열심히 안 해서 그렇겠지. 가이딩을 제대로 못했으면 가이드도 벌을 받아야지. 모두가 똑같은 효율을 낼 수도 모든 가이딩이 모든 센티넬을 살릴 수도 없는 세상에서 이런 믿음이 보편적으로 통용된다면, 가이드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회복이 느린 센티넬에게 매달려 필사적으로 가이딩을 하고도 조금만 더 하게 해달라 애원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그의 효율을 저해해서는 안 되니까. 센티넬의 능력을 손상시켜서는 안 되니까.

그는 입장의 역전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맘처럼 안 될 겁니다. 지들 말마따나 센티넬의 효율 저하와 가이딩의 연관관계는 제시도 못하는 놈들, 고소하겠다고 와서는 가이드 제대로 특정하지도 못하는 새끼들 개소리 진지하게 들어봐야 듣는 사람만 우스워집니다."

하지만 그 중 하나라도 성공한다면?

확률이 아무리 희박해도 자기가 걸리면 백 퍼센트지, 최소한 한 명은 모난 돌을 맞는 것이다.

운 나쁘게 여럿이 성공한다면?

새로운 분풀이 방법을 발명한 센티넬들 덕분에 고소가 새로운 유행이 될 수도 있겠지.

"공용가이드는 스케줄에 따라 움직입니다. 진짜 바쁜 현장에서는 자기가 누굴 얼마나 가이딩했는지 알지도 못 하고요. 기억나는 게 없는데 무슨 수로 자기를 보호합니까… 고소하면 그냥 당하는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봐도 그는 다시 도움을 청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는데.

"……도와주실 겁니까?"

그럼에도 그 말은 적잖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

"재유 씨는 저희를 도와주실 겁니까?"

민간인을 학살하는 센티넬과 연대하는 단체를. 성준수가 노래하듯 말했다.

14-3.

"그럼 약속합시다."

약속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몸으로 성급하게 첫 약속을 한다. 발인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조약이라면 그의 맘이 이토록 무겁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새끼손가락 두 개가 가볍게 얼렸다. 목이 졸리는 것 같았다.

"뭐 싸인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거 안 해도 약속 지킬 사람은 지키고 공증받고 지장찍고 별 쇼를 다 해도 어길 사람은 어깁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저도 모르게 숨을 몰아쉰 것은 그래서였을 것이다.

"소령님, 접때 말씀하신 지질분석도와 강우량에 따른 시나리오 가져왔습니다."

"들어와."

"보니까 확실히 구조가, ...엄…"

"그럼 전,"

"잠시 부관이랑 얘기 좀 하겠습니다."

"…네 소령님."

부관은 그를 흘끗 곁눈질하곤, 안 보는 체 다시 보았다. 악의라고 할 순 없어도 짓궂은 호기심이었다.

어쩌면 삐딱한 웃음을 걸고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병사들에게 주의를 주게 될지도 모르지.

"곧 끝납니다."

"네."

성준수는 그의 정중한 태도가 진재유를 곤란하게 하고 있다는 걸 생각도 못할 것이다.

"…..어휴 씨발 내 이럴 줄 알았다. 제일 빠른 기동훈련 언제야."

"사흘 뒤로 잡았는데 앞당겨야 합니까?"

"아니, 너네 원래 좆밥이었는데 내가 몰랐던 거냐 아니면 요즘 급격히 좆밥이 되고 있는거냐? AJ 정벌 나가는 것도 아니고 훈련인데 이렇게 띄엄띄엄한다고?"

"아니 그거는 좀 억울합니다. 좆밥이라니요, 애초에 소령님은 저희랑 씨가 다르지 않습니까!"

"씨? 씨? 니 나한테 쌍욕하냐 지금?"

"아니 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섭한 말씀을... 하하하…하하하…"

부관은 금세 익숙해진다. 적응할 필요도 없는 일상이다. 성준수가 평범하게, 예컨대 진재유를 부관대하듯 했다면 그는 진재유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고위 센티넬이 가이드를 하대하는 일은 당연해서 이목을 끌지 않으니까. 반대로 가이드에게 공대하는 센티넬이나 센티넬에게 말을 놓는 가이드는 당연하지 않으므로 시선을 끈다. 다른 취급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종내엔 구설수가 된다. 적어도 센티넬들 앞에서는 말을 낮추는 것이 그들에겐 이롭다. 모르지도 않을텐데.

주목을 받는 건 좋지 않고 앞으로의 일에 불리하고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상사와 대화하며 신기한 눈길을 받는 것보단 적당히 막 대하고 적당히 무시하는 상사에게 외면당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성준수가 가이딩을 받길 바랐고 그게 안 되길래 억지까지 써가며 말을 텄다. 건방지게 굴면 괘씸해하며 반말지거리 해줄 줄 알았다. 그랬는데… 은근슬쩍 다시 말을 높이자마자 성준수 역시 존대로 되돌아갔다. 성준수는 그의 말투를 진재유와 연동시켰다.

바란 적도 없는 시혜였다. 남들과 다르고 싶지 않았다. 맞존대도 맞반말도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성준수와 진재유는 동등하지 않다. 동등하다고 착각할 맘도 없다. 인위적으로 평등해질 때마다, 예의도 모르는 몰상식한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그건 그를 아주 비참하게 했다.

그는 무례한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분수 모르는 무매력이라 욕먹기도 싫었다. 제 손으로 약점을 갖다바치고도 주제파악 하나 못하는 인간이 될까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 모두가 알다시피 누구든 몇 번은 괜찮은 센티넬을 만나니까 물을 수도 없었다. 무슨 의도로 이러는 거지? 뭘 바라는 거지? 내가 당신과 동등하다고 착각하길 바라나? 아니면 당신과 친한 사이라고 오판하기를?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 앞으로도 계속 이럴 생각인가?

"...아까 그거 무슨 말인데?"

"어...? 무슨 말?"

확인차 시험해보면, 그는 낮춤말을 씀으로써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또다시 표현한다.

가이드에겐 불복이 없고 그는 다만 까먹지 않으려 잇새로 복습한다.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높낮이가 같은 말을 써도 우리에겐 상하가 있다...

15.

"그 씨가 다르다고."

"아…"

성준수는 한쪽으로 고개를 기울이곤 낯선 얼굴을 했다. 자랑스러운 것도 같고 슬픈 것도 같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대답과는 어울리지 않는.

"나는 완전복제 센티넬이거든."

"아 그…!"

바로 그 완전복제 센티넬…

근데 왜 그런 얼굴이지.

…이건 명예로운 일이 아닌가.

모든 센티넬들은 조각조각 재활용되지만 원형 그대로 재사용되는 센티넬은 극히 드물다. 완전복제라는 말은 그가 개조 및 후가공 없이도 즉시 전력으로 활용가능한 빼어난 센티넬이라는 증명이니 응당 긍지를 가져야 마땅했다. 복잡한 게 아니라 저게 실은 겸손을 가장하는 거였나 생각이 들자 그는 절로 퉁명해진다. 그러면 그렇지.

"...내 진짜 몰라서 묻는데 이거 혹시 자랑이가?"

하하하. 성준수 소령은 꼭 아까 본 그 교관처럼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자랑이면?"

"칭찬해줘야지."

"어떻게? 해 봐."

그러더니 부하에게 별로 기대가 없는 상관처럼 지시했다.

"……?"

"나 기다리고 있는데."

대답을 기다리긴 하지만 딱히 바라는 말도 없는 듯한 어투였다. 권태가 숨겨지질 않았다.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그 말에조차 권태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15-1.

"안 해도 돼."

가이드로 사는 것은 센티넬에 대한 동료애를 매분매초 산산조각으로 짓바수는 일이지만, 그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평생 만날 일 없겠지만, 그래도 만약에, 만일에 말로만 듣던 완전복제 센티넬을 직접 만나게 된다면 어떤 말을 할까. 거의가 완전복제 센티넬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고 진재유 역시 완전복제 센티넬이 지치지 않고 - 혹은 지쳤더라도 - 되살아나 사람들을 살리는 영웅이라는 것밖엔 모른다.

타인의 삶이 목적인 삶.

진재유가 생각하기에, 그건 인간이 쟁취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삶이었다.

"그냥 해본 말이야. 그냥, 뭐라고 할지 궁금해서."

대표적인 완전복제 센티넬 최종수가 무시무시한 효율만큼 수려한 용모로 이름이 높았던 터라 완전복제 센티넬이라고 하면 보통 최종수의 초상을 떠올린다. 아주 아름다운 형상. 이상적인 센티넬. 성준수는 그가 처음 만나는 완전복제 센티넬이었지만, 성준수 또한 대단히 잘 관리된 효율에다 무척 천사같은 얼굴을 갖고 있어서 그는 별 어려움없이 상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이드라면 어찌할 수 없이 센티넬을 선망하고 진재유도 예외는 아니다.

"전에 보니까 말 잘하는 것 같길래."

그의 앞에 한 센티넬이 있다.

완전복제 센티넬, 그 말은 너무 짧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밀봉되었던 몸을 다시 움직이는 센티넬. 과거에 보존된 몸과 멸실 속에 잠들었던 마음을 깨워 인류를 응시하는 센티넬.

선망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

시선이 영원처럼 마주친다.

잠깐의 영원이 두 눈동자 속에 머물다 달아난다.

"…...어떻게 칭찬하냐면,"

"아 이제 시작이야?"

"우리는 네가 너무 소중해서 너를 온전히 되찾길 바랐구나."

"……"

"너는 한 번에 보내기엔 너무 중요한 사람이라 우리에게 다시 와 주었구나. 우리는 네가 꼭 필요해서... 네가 우리 곁에 계속 있었으면 했었나보다. 아마 우리는 이 세상에서, 너와 같이 살고 싶었구나… 이렇게."

가만히 듣고 있던 성준수가 픽 웃었다. 야, 좀 간지럽다.

16.

소령은 혹독하게 휘하를 단련시켰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강도였다. 다들 죽는 소리를 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려 목표를 늘리고 병졸들을 재우쳤다. 다해봐야 백 명도 안 되는 새끼들이 기동성도 없으면, 뭐 차례 지켜서 뒤지러 갈래? 야음을 틈타 실시되는 훈련은 AJ 11의 습격 후를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조명탄 하나 없는 밤바다로 병사들이 연이어 곤두박질한다. 그는 석상처럼 전방을 응시하다, 멀리서 조용한 물보라가 일면 신경질적으로 호령했다.

"등으로 떨어질 거면 비싼 낙하산 쓰지말고 맨몸으로 떨어져! 이 훈련 왜 하는지 몰라?"

운좋게 낙하훈련을 면한 부대원들은 모래밭도 녹을듯한 한낮마다 암벽 위를 구르고 뛰느라 녹초가 되었다.

"씨발 여기가 누드비치야? 방격복에 목숨 달아놨어? 야, 걸어? 똑바로 안 해? ...지금부터 10분 안에 방격복 탈의하고 군복으로 환복 후 재집합한다. 제식훈련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하여 열외자 가려낸다. 이상."

소령은 특히 장비 무게로 전투 시 반응속도가 떨어지는 것에 질색을 했기 때문에, 훈련은 걸핏하면 맨 처음으로 돌아가 재개되었다. 가히 고난의 행군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16-1.

실전을 방불케 한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훈련이므로, 가이딩의 필요는 많지 않았다. 방사가이딩이면 완치될 경상이 다수였고 종종 타박상이나 좌상을 입은 센티넬이 번을 선 가이드에게 접촉가이딩을 원하는 정도였다. 지금까지는 점막가이딩을 요구할만큼 중상을 입은 사례가 없었다.

"가자니까?"

"아니 잠깐만… 아니 괜찮으신 것 같은데…"

그러므로 이것은 가이딩이 아니다.

"너 가이드잖아. 가이드가 센티넬 가이딩 안 하겠다고? 진심?"

"아니 그게 아니라요… 어디, 어디 다치셨는데요…?"

"야, 니가 보면 뭐 아냐? 아니 내가 가이딩을 받아야 되겠다니까?"

또 팔이 빠지면 수건을 물면 된다. 고통을 견디느라 잇자국을 새긴 수건을 보며 농담이나 하면 된다.

그래도 괜찮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참아야 할 만큼 아프다면, 그래서는 안 되고.

"전우님. 너무 세게 잡아당기시면 애 다칩니다. 최근에도 어깨 탈골된 적 있거든요."

커다랗게 뜨인 눈동자가 초조하게 진재유와 센티넬 사이를 오간다. 눈을 깜빡깜빡하며 뭔가 신호를 주는 것 같은데, 무슨 뜻일지가 뻔해 쓴웃음만 나온다.

잘못은 저 새끼가 하고 겁은 니가 먹고.

참 효율적인 분업이지.

"좋게좋게 따라오면 나도 이렇게 안 하지."

"……"

"쓸데없이 힘빼지 말고 편하게 가자 어?"

우리에겐 정해진 시간만 일할 권리가 있고 그 센티넬은 너를 붙잡을 권리가 없으며 그가 너를 붙잡은 만큼 추가수당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걸 알아도 진재유는 이 말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규칙이니까.

지키는 사람보다 어기는 사람이 많고 지켜지지 않는 날은 그보다 더 많아도 규칙은 규칙이니까…

"공용가이드는 정해진 시간만 일할 권리가 있고 전우님은 당직이 아닌 가이드에게 가이딩을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정히 비번인 가이드의 가이딩을 원한다면 추가수당을 지불해야 합니다. 지금 전우님은 법을 위반하고 계십니다."

"하! 그래, 나 법 어겼다. 뭐 어쩔 건데, 어? 니가, 뭐를, 어쩔, 건데."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이깟 거 만든다고 개고생한 옛날 사람들이 불쌍하니까.

센티넬이 이마를 툭툭 민다. 손가락에 점점 힘이 실린다. 그가 밀리며 휘청거리자 겁먹어 눈치만 보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갈게요! 갈게요! 이러지 마시고, 아 화내지 마시고요…" 

"아니이... 내가 묻잖아, 어? 뭐 어쩔건데 니가?"

"신고하겠습니다."

"어, 신고해 신고해. 갔다와서 교육 몇 시간 받으면 그만이야, 그거 갖다 협박하고 앉았냐? 할 거면 지금 당장 신고해라? 오늘 신고해도 3박 4일은 지나야 답 올 텐데."

그러고는 짐짓 신난다는 얼굴로 악을 쓰며 말한다. 

그 전까지 가이딩 존나 받아야지!

"하……"

그는 온 생애를 토해내듯 깊은 한숨을 쉰다.

아무리 연습해도 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악의에 질려버리지 않는 것. 인류를 경멸하지 않는 것. 인류에 대한 경멸을 한 인간에 대한 증오로 가능한 작게 축소시키는 것. 체념하고 싶을 때 체념을 참는 것. 지쳐도 포기하진 않는 것…

"네. 부대원들이 다 엉망진창이니까 전체 교육 해달라고 해야겠네요."

"야 잠깐만 뭐?"

"지금 당장 신고하라면서요? 단체로 법을 위반했다고 하면 3박 4일까지 기다릴 필요없이 하루만에 답 올겁니다."

"하… 나 엿 멕이려고 허위 신고까지 하시겠다고?"

무슨 자신감이지.

니가 유독 진상이라 그렇지 니네 다 엉망진창인 거 맞잖아.

"…...너 혹시 질투하냐? 너한테 가이딩 해달라고 안 해서?"

"네?"

"아니 그렇잖아. 오늘 너 비번도 아니고, 솔직히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젠데 죽자고 달려드니까. 남이사 누구랑 가이딩을 하든 니가 뭔 상관인데? 내가 뭐 그렇게 죽을 죄 졌냐? 그냥 가이딩 좀 하겠다는데 사람 죽일 놈을 만들고. 그럼 이유가 하나밖에 더 있어? 상대가 니가 아니라는 거에 열받은 거 아냐. 이거 질투심 장난 아니네."

"……"

진짜 대답할 말이 안 떠올라 말이 막히는 건 오랜만이다.

침묵은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고 이제 다 알겠다는 듯 비슬비슬 웃는 꼴은 같잖아서 웃음도 안 나오지만,

"야 추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 내 모습이 추하긴 해. 늘 남 일에 힘 빼지 말고 내 인생이나 잘 살라는 충고나 듣지. 듣지 않으면 니가 뭔데 끼어드느냐 야유하지. 고집을 꺾지 않아 나는 더욱 추해지지. 하지만 나보다 내 고집이 늦게 꺾일 거야. 나는 사실 남 일에 힘 뺀 적이 없거든.

세상에 진짜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문제는 잘 없어요.

다 어느 정도는 나의 문제죠.

16-2.

"와 웃긴다. 가이드들 질투 무섭다더니 정말이네?"

"뭐야? 뭔데 무슨 일인데?"

놈은 재밌는 치정사건을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처럼 킥킥거린다. 주변의 이목을 의식하는, 다분히 과장된 웃음이었다. 웃음은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다. 흥미거리를 찾아 모여든 이들에겐 정말 치정사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 센티넬을 두고 경쟁하는 두 가이드라니 오죽 우스꽝스러울까. 이들은 당장에라도 폭소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 나 센티넬 갖고 가이드끼리 싸우는 건 첨 봐. 둘이 싸워? 어떻게 싸우는데? 번갈아 가이딩 시켜보고 점수매기자. 둘 중에 많이 싸게 하는 애가 이기는 걸로.

"……"

그는 조직을 떠나면서 새로운 원칙을 세웠다.

무력하게 모욕당하는 모습을, 적어도 동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배운다. 주변의 영향을 받고 경험을 나누며 성장한다. 공용가이드들은 패배감을 가장 빠르게 학습했다. 어쩌면 모국어보다 더.

축적된 실패가 너무나 많았다. 매번 실망하거나 슬퍼하는 것조차 피로할만큼 많았다. 사람들은 타인의 패배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의욕을 잃는다. 동료의 완패는 마음을 완전히 꺾어버린다. 한 번 뿐인 승리의 기억은 금세 증발하고 좌절은 당연해진다. 공유하는 게 패배감뿐인 집단은 가장 필요한 순간조차 용기를 채굴하지 못한다. 타인의 패배는 결국 본인의 패배가 된다. 더 나쁘게는, 한 번 싸우지도 못하고 패배자가 되어버린다.

승리를 잇달아 학습하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진재유는 그 답을 모른다.

그래서 실망하거나 슬퍼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깝다거나 아쉽다거나… 부정적인 감정이라면 뭐든 좋았다. 당연하지만 않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완패 같은 건 이때까지 간접경험한 걸로 충분하니까. 

"...오해십니다."

그는 오늘도 조금의 이변도 없이 짓밟히고야 말겠지만, 발버둥쳐 봐야 당연하게 떨어지는 수모를 꾸역꾸역 삼켜야만 할 테지만,

그 과정만은 석패이고 분패여야 했다.

저항은 그의 윤리이고 분투는 그의 의무였다. 

끝내 용기가 없더라도, 싸울 엄두나마 낼 수 있도록.

적어도 누군가는 싸워본 패배자가 될 수 있도록.

"그래애- 그게 니 맘이 편하면 그렇게 해."

"저는 강한 센티넬이 좋습니다."

"뭐...?"

"전우님은 제 기준에 조금 부족합니다."

"...너 지금 웃었냐?"

그는 스스로가 우스워 자꾸만 실소한다. 잔뜩 폼 잡고 있는대로 의미부여 해봤자 말대답이나 하는 건데. 그런데도 센티넬들은 승급심사를 관전하는 관중마냥 떠들썩하게 감탄한다. 꼭 한 센티넬을 두고 경쟁하는 두 가이드가 아니더라도 재밌는 볼거리를 보여주면 그만인 이들은 무엇에든 폭소할 준비가 되어 있다. 헐. 센티넬인데 까였어. 어캄? 웃음이 순식간에 관중들에게로 옮겨갔다. 분노 혹은 수치로 새빨갛게 불 붙은 얼굴이 손짓한다.

"야. 너 이리 와 봐. 이리 오라고."

"야야 조용히 해! 가이드가 공인한 '약한 센티넬' 님이 말씀하시겠다잖아!"

"진짜 어캄? 태어나길 약하게 태어났는뎅... 지금이라도 다시 태어나야 되나?"

"씨발 닥쳐라 진짜…"

"전우님들도 가이드 취향 말씀하시잖아요. 저도 제 취향 말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건 맞지."

"저 새끼가 약해서 긁힌 거지, 강한 개체를 찾는 건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차원에서..." 

"씨발아 니가 내가 강한지 약한지 어떻게 아는데? 내가 작전하는 거 봤냐?"

"야 오늘따라 왤케 예민하냐? 약한 센티넬 좋아하는 가이드도 잘 찾아보면 있겠지!"

"전우님이 강한 센티넬이었으면 점막 가이딩을 받아야 할 만큼 훈련이 고되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아서…"

고작 말대꾸 몇 마디 하면서 지나치게 비장한 마음이 들고 마는 것은,

고작 말대꾸 몇 마디 하는 그를 지나치게 절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우글우글 몰려든 센티넬들로부터 저만치 떨어져도 하얗게 질린 낯색은 돌아오지 않고 입술을 떨면서도 마치 곧 죽을 사람보듯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신호를 보내본다. 괜찮아, 안 죽어.

죽더라도 끽소리도 못하고 죽는 것보다야 좀 끽끽대다 죽는 게 낫지.

"야, 야, 수건 던져 수건!"

"그 정도야? 체력 문제 심각하네…"

"씨발 지는 뭐 얼마나 대단한 가이딩한다고… 니는 뭐 효율 좋아서 황금마차 타고 위수지역 돌아다니냐?!"

16-3.

인정할 때마다 기분이 좋진 않지만, 끽끽댈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제 가이딩은 훌륭합니다."

"……"

"와 이거 이제 막 던지네. 내가 지금 확인해볼까? 어?"

"……"

"겪어보신 적이 없어 모르셨던 거겠지요. 이해합니다."

효율이란 인간이 자의적으로 분절한 불가산한 단위에 지나지 않는데도 인간을 완벽하게 독재한다. 센티넬들은 효율에의 복종을 오래전에 체화한 하수인이자 지배인이다. 눈치빠른 축부터 조용해진 이들이 눈짓 몇 번으로 논의를 매듭짓는다.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자리를 끝내기로 한다.

"야야 그만해. 분란 만들지 말자."

"씨발 왜 나한테 지랄이야? 저 새끼가 먼저 시비 털었어!"

"쟤 인기 좋아. 효율이 쓸 만할 거야."

"효율이랑 인기랑 뭔 상관인데? 아니 병사에서 본 적이 없는데 인기가 좋긴 뭐가 좋아?" 

그를 설득하기 위해 그들은 오른쪽을 손가락질한다. 손가락은 벽을 가리키고 있다.

"저 쪽에서 인기 많다고."

……

"알아먹었지? 괜히 꼬투리 잡혔다 연대책임 지지 말자고. 영감 성질머리 모르냐?"

인간은 벽 너머를 상상할 줄 안다. 그런고로 수긍은 빨랐다. 센티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말 좀 주고받았다고 온몸이 까라진다. 이게 뭐라고 긴장씩이나 하냐고, 존심 상하게. 한숨을 쉬지 않기 위해 길게 숨을 들이마신다. 끽끽대는 게 힘들어질 때면 그랬듯 가정법으로 문장을 만든다. 상상은 반드시 현실보다 끔찍해야 하며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필히 악몽을 꾸어야 한다. 가정 속에 세워진 수천 개의 세계가 그를 현실로 반송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잔인해진다. 가령, 효율의 자비도 베풀어지지 않았다면 진재유의 삶은 어땠을까.

16-4.

답은 도처에 널려있다.

"야…! 야이 또라이야…! 어차피 말도 안 통하는 거 왜 나서가지고 매를 벌고 그러냐 진짜… 어차피 저 새끼들 띨빡이라 말 안 통하는 거 알잖아…"

"……"

"맞는 말이고 자시고 백날 말해봤자 저새끼들이 니 말 듣는 척이라도 할 것 같아…? 차라리 AJ가 영어회화 하는 게 더 빠르겠다! 말해봐야 니만 눈밖에 나고 니만 손해라고... 니 속만 터진다고……"

센티넬이 모두 떠난 뒤에도 목소리는 커지는 법을 모른다. 윽박을 지르면서도 말끝은 투정처럼 자신없게 끌린다. 그는 이럴 때마다 그가 겁먹은 것과 비겁한 것을 똑같이 취급해 내심 경멸하지는 않았었는지 생각한다. 공용가이드는 퇴직 전까지 여러 근무지를 옮겨다녀야 하고 파견지는 커녕 상대를 고르거나 피할 수도 없고 다소 불이익을 겪더라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 관계를 좋게 유지하려고 애쓰는 게 생존의 방책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모두가 진재유가 될 수는 없는데 모두가 진재유같기를 바랐어.

안 그러면 내가 너무 힘들어서…

"듣고 있어…? 너 그러다 진짜 인생 고달파져..."

"일이 있으면은… 직접 얘기하는 거는 어렵지, 센티넬한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말아야지.

"그런데 대신 얘기해 줄 수는 있지."

당사자로 직접 나설 수는 없어도 서로의 대리자가 되어줄 수는 있지. 서로가 겪는 불의를 제 3자인 척 고발해줄 수는 있지. 연대가 겁이 나면 각자가 각자의 제 3자로서 느슨하게 흩어져 있으면 되지. 동지가 꺼려지면 서로에게 사려깊은 타인이 되어주면 되지...

그는 이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내한테 약속 하나만 해 줄래."

"뭔데...?"

"내가 아까 가한테 얘기한 거 있잖아,"

"무슨 얘기...?"

"……"

"…...뭐 그…... 권리… 수당… 권리 그거?"

"어 그거."

그에겐 천금 같고 귀한 단어들을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마지못해, 금기처럼 얘기해도 전처럼 상처받지 않는다.  

"그거 왜."

"나중에, 언젠가 나중에… 니 보기에 나한테도 누가 나한테 그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 그런 때가 오면,"

"……"

"그때는 니가 내한테 그 얘기 해도."

"……"

의구심과 희미한 반감, 아직 남아있는 불안이 희고 깨끗한 얼굴을 채운다. 잠깐동안 아무말도 오가지 않았으나 그는 짐작한다.

묻고 싶겠지. 

너 한가련 그런 거 해?

그가 몸담은 새로운 조직은 와해만 간신히 면했고 목표도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데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깨진 건지도 모르겠으니,

지금은 차라리 가해전 그런 거 한다고 말해야겠지만.

"……알았어."

"……"

"알았다고."

어렵사리 대답한 얼굴 위로 불안이 암세포처럼 부리나케 번진다. 조마조마한 손끝이 입술에 물려 까득까득 비명을 지른다. 어디선가 도굴한 용기를 최대한 박박 긁어모아 얻은 불안이다. 아니 만용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차라리 객기라고 할 만했다. 그래서 진재유는 그가 낸 용기가 얼마만큼의 용기인지를 안다.

지금은 이걸로도 충분했다. 이거 하나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고맙디."

17.

생명을 가진 것들은 살아있는 한 영역을 확장하기 마련이다. AJ 또한 그러했고 인류는 이에 맞서 AJ의 서식지 확대를 억제하고 인간종을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통제구역에도 센티넬을 보내 관리했다. 개체수가 감소하여 인간종이 소수종이 되어버린 지금, 이 작업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과업이었다. 통제구역이 뚫려 구축된 방어망이 축소될수록 인간의 자생지는 협소해지고 종국에는 종의 멸절로 향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군사적 요충지에 센티넬 일부(이하 자치센티넬)를 강제로 이주시켜 명목상이나마 자치권을 부여하여 무인도와 무주지를 전담하게 했다. 곳곳에 흩어져있는 자치센티넬에겐 일정한 주기로 공용가이드가 파견되었다. 그것이 센티넬이 누리는 복지의 전부였다. 거시적 관점에서야 전술적 거점이지만,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인적 하나 없는 통제구역에 자원하는 센티넬은 한 명도 없었고 결국 수도에 있어도 전력이 되지 못할 하급 센티넬들만 임용되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정부가 당장 죽어도 전열에 지장을 주지 않을 최소한의 인원만 주둔시켰기 때문에 한 줌도 안 되는 하급 센티넬에게 이것저것 베풀어봤자 돈 낭비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는 논리였다.

가이드만 보면 눈깔이 돌아버리는 센티넬들도 따지고보면 다 정부가 키운 병이었다. 자치권으로 다스릴 거라곤 짐승뿐인 빈 땅의 왕들은 그들을 수행하는 최소한의 인원과 함께 고립되었다. 베풀어지는 공물이래봤자 가이드가 전부인데 그것마저 공급이 드물다면, 기다리다 미쳐버린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성준수는 질리도록 떠들었다. 몇 번이나 강조했다. 틈날 때마다 주지시켰다. 가이딩 시 가이드라인을 따르라. 메뉴얼을 지켜라. 센티넬의 수만큼 가이드의 수도 한정되어 있다.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대의가 아니라 니 목숨을 위해서 가이드에게 친절하라. 이 명령에 복종하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이행하라. 항상 명심하라. 병사가 다치면 분대가 고전하고, 병사가 죽으면 분대는 패배한다. 

입 아프게 얘기해도 쉽지 않을 건 알았지.

이렇게 빨리 일이 터질 줄은 몰랐지만.

AJ는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훈련의 완료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풍족하게 공급되는 먹이를 배불리 먹은 AJ 11의 새끼들은 비행연습에 돌입했다. AJ 9 또한 알을 빼앗긴 설움을 설복하듯 무자비하게 생식했다. 야간 훈련은 기약없이 연기되었다. 점호할 공터 한 뼘이 없었다.

그 날은 아마 새끼들의 첫 사냥 연습날이었을거라 생각된다.

밤낮없이 날개가 퍼덕이고 지축이 진동했다. 새끼들은 정연하게 날았다. 주둥이로 콕콕 산등성이를 찍을 때마다 섬은 장난감처럼 흔들렸다. 수목을 덮어씌워 위장한 진지마저 옷 벗기듯 간편하게 해체되었다. 

- 제군들에게 명한다.

- 지금부터 절대로 소리내지 않는다. 소음으로 공격대상을 자극하지 않는다. 

천진한 발톱이 해변을 파고들었다. 그 서슬에 사막이 와르르 흘러내리며 넓어졌다. 호기심 많은 새끼들이 주둥이로 발톱으로 병사 몇을 굴리거나 꿰어가며 놀았다. 놓아주었다 도망치면 붙잡고, 달아나면 끌고왔다. 이 상황에서도 대형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AJ가 만든 도형 안에 갇힌 센티넬들은 맥없이 허우적거리다 경련했다.

- 방격복 우측 하단의 비상장치를 절단해 에어백을 작동시킨다. 작동시 7번 자세를 취해 최대한 충격을 완화한다. 신호 끝나는 즉시 포복 상태로 작업 시작한다. 셋, 둘, 하나. 

병사들은 더 깊이 방격복 안으로 파고들며 떨었다. 공기는 초라한 방어구이자 발톱질 몇 번에 소멸하는 덧없는 방패다. 기껏해야 시간이나 벌 뿐, 의지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한 부피임에도 센티넬들은 매달린다. 에어백은 머지않아 효용을 다할 것이다. 섬의 최전방은 좁고 그가 밟고 있는 이 자리가 섬의 끝이다. 다른 수는 없다. 

- …하나 더 명령한다.

2개 이상의 분대가 모여 소대를 이룬다. 진형 밖에 있는 대원들을 모조리 모아도 반격하기엔 어림없는 수였다. 오격이든 헛발질이든 타점을 빗맞히든 진형에 균열을 내어야 부상병들을 빼올 틈이 생긴다. 

"하 씨발 더럽게 왔다갔다…"

그는 꼬리깃에서 산란하는 햇빛에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신중하게 목표물을 겨냥한다. 기왕이면 명중하고 싶었다. 각도가 잘 안 나와서 원하는 만큼 깔끔하게 떨어질 것 같진 않지만... 

성준수가 돌아온 이래, 최전방은 늘 슈터의 영역이었다. 

- 절대로 정신놓지 않는다.

바람이 훅 끼치자 소형 어선 크기의 알록달록한 깃털이 푸르르 흩어진다. 눈이 끔뻑끔뻑 여닫히고 머리는 의아한 듯 기웃댄다. 

"아오씨 짧다."

쯧, 슈터는 혀를 찬다. 슛 좋은 거만 골라쏘고 싶은데 지금은 가릴 때가 아니다. 그래도 너저분한 궤도는 불만스러워 다시 해 보고 싶다. 좀 던져 보면 알 것 같은데… 과욕이겠지.

적진을 톺아보면, 덩어리진 방격복 뭉치들이 희미하게 꿈틀댄다. 생존의 부호였다. 그는 재차 확신한다. 

- 전군에게 전한다.

골라던질 때가 아니다. 개체수가 많으니 질 좋은 슛 몇 개 던지는 것보다 공격로를 예측할 수 없게끔 방향성도 통일성도 없는 타격으로 물량공세하는 게 상책이다. 과연 내가 얼마나 끌고 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긴 한데...

- …지금부터 10분 안으로 퇴로 확보하고 진형 밖으로 후퇴하라. 후방 지원군은 부대원들을 2인 1조로 낙오자 없이 엄호하여,

무리 사이를 가르며 날아간 공격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끼에에에엑. 신호를 주고받은 머리 몇 개가 유연하게 한 바퀴 회전한다. 몸과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돌아간 머리는 꽤나 기괴하고 저것들 시야에 사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겠지 생각하면 좀 막막하고. 

- ...전원 생환한다.

반대로 돌아간 머리는 그 자리에서 각자의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 놀이를 방해받은 새끼들의 눈동자가 섬뜩했다. 그는 마스크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우씨 꿈에 나올까 무섭네.

17-1.

자치센티넬 분대와 서울에서 차출된 분대는 번갈아가며 기행과 전투를 담당했다. 역량의 향상으로나 능률적 측면으로나 한쪽에 전투를 전담시키는 게 정석이지만, 전투를 전담하는 쪽은 월등히 높은 사망률과 부상위험 또한 부담하게 된다. 일정 부분 손해가 나더라도 업무를 분담하는 것이 소령이 시행할 수 있는 가장 공평무사한 방법이었다. 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이 방식을 밀고나갔다. 감수할 만한 귀찮음이었다. 그렇지 않았던들 소대의 통솔에 꽤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반복적으로 업무를 교대하고 인계하며 임무상의 경계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도 이들 사이엔 미묘한 거리가 있었다. 이곳에 먼저 자리잡은 자치센티넬들은 터줏대감 행세를 하고 알게 모르게 텃세를 부렸다. 서울에서 온 센티넬들은 한직으로 발령나고도 목이 뻣뻣한 자치센티넬들을 우습게 여겼다. 소령은 한 쪽을 편애하거나 차별한다는 의혹을 사지 않기 위해 각별히 주의했다. 시기를 잘못 타면 사소한 앙금도 삽시간에 격화될 수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규정대로 가야 전원이 지연 없이 적시에 가이딩을 받을 수 있다. 가이딩 중단되는 일 없게 철저히 감독해." 

"알겠습니다."

"점막가이딩 실행 전까지 재량껏 인원 분산해서 소수 가이드에게 업무 집중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네 소령님."

팽창하는 공기의 부피를 못 이긴 방격복들은 넝마가 되어 돌아왔다. 슈터가 AJ의 주의를 끄는 동안, 지원군들도 진형 안으로 돌격하여 부상자를 이송하느라 피범벅이 되었다. 너나없이 신음했고 앞다투어 가이드를 찾았다. 센티넬이 흘린 피가 기름띠처럼 익숙하게 바닥을 기었다. 

"존나 피똥 싸가며 살려놓은 애들 가이딩 못 받아 죽은 귀신 만들지 말고…"

"어…!"

별안간 부상병 하나가 난입해 가이드의 손을 우악스럽게 낚아챈다.

"야 빨리, 어? 아파 뒤지겠다고…"

다리가 없는 와상 위는 가장 먼저 센티넬에게 방사나 접촉가이딩을 우선조치하고 점막가이딩의 필요를 판별하는 최일선이었다. 의식이 있는 센티넬들은 통성을 부르짖고 기절한 센티넬들은 의식없이 와상 위를 넘나드는 북새통에서, 한 손이 꺾인 진재유가 반쯤은 피곤하고 반쯤은 짜증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재유가 자원한 걸까?

시취가 가장 지독한 자리였다. 

"...아직 전우님 순서가 아닙니다."

"씨발 좀 만진다고 닳냐? 효율도 높으면서... 이럴 시간에 가이딩 하고 보내주겠네."

"조금만 기다리시면 전우님 순서 옵니다."

"점막가이딩도 싫다며, 내가 씨발 혀를 빨겠대? 좆을 빨아달래? 얌전히 손만 잡고 가겠다잖아!"

두 눈 뻔히 뜨고도 새치기를 당한 부상병이 작게 중얼댔다. 씨발 병신인가… 그렇잖아도 살얼음판이던 공간이 확연하게 경직되었다. 그는 울룩불룩 솟는 제 손의 핏줄을 응시하다 고개를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진화하지 않으면 분대간의 분쟁으로 비화할지 모를 불씨였다. 

"...차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야 할 줄은 몰랐군."

센티넬은 여전히 가이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소령이 직접 두 손을 끊어냈다. 쥐어터트릴 듯 힘이 담긴 손아귀에서 다른 손을 탈환할 때, 손끝이 옅게 찌릿거렸다.

"지금은 관등성명을 댈 차례라는 것도 손수 가르쳐야 할 줄은 정말로 몰랐는데."

"충성. 자치센티넬 신안군 우이도 분대,"

"위치로."

"……"

"'원' 위치로."

"……"

센티넬은 불만스런 기색을 지우지 않은 채로 대기열에 도로 가 선다. 이탈했던 가이드들이 머뭇머뭇 가이딩을 재개한다. 오래지 않아 와상 위는 처음처럼 소란해지고 손을 몇 번 털어낸 진재유도 소란의 일부로 섞여든다. 규정도 아리까리해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고... 성준수는 언짢게 혀를 찼다. 내 기분 풀겠다고 여기서 지랄해봐야 가이딩하는데 방해나 되지.

"귀관은 가이딩 끝나는 즉시 귀대해 소환이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충성."

"아니지."

"……"

"대답."

"……네."

"다시. 귀관은 가이딩 끝나는 즉시 귀대해 소환이 있을 때까지 대기한다."

"…네 소령님."

전시상황은 사소한 규칙을 모두 압도하고 긴급도에 가장 높은 가산점을 준다. 가이딩 받을 때 가이드라인 잘 지킨다고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메뉴얼 지킨다고 상 주는 것도 좀 어긴다고 벌 주는 것도 아니며 관련 규정은 형해화된 실정이니, 편제된 단위마다 임의로 정해놓은 규율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소령은 이해한다. 

하지만 충분히 알아듣도록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소령님, 부르셨습니까?"

"보고 원활한 가이딩 진행에 훼방놓는 센티넬 있으면 이유 불문 계급 불문하고 데려와."

"적발 즉시 말입니까?"

"하… 응급상황 종료되는대로 데려와. 다만, 아군의 신속한 쾌유에 심각하게 방해가 되는 경우라면…" 

병사가 다치면 분대가 고전하고, 병사가 죽으면 분대는 패배한다.

"선 조치 후 보고해도 책임 묻지 않겠다."

"…지시사항 이행하겠습니다. 일척."

17-2.

그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딱한 사정은 아니었지만, 여하간 사정 청취를 함으로써 절차상 할 일은 다 했다. 

"이 손은 옥수고 저 손은 손인가? 똑같은 손인데 자네 손 먼저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 대체 어디서… 기다리고 있는 전우 제쳐두고 먼저 가이딩 받을 권리를 얻었는지 대 봐. 나는 준 기억이 없거든." 

"…없습니다."

"분대장."

"충성."

"말 몇 마디 쪼갠다고 수가 나겠어? 이것 참… 사람이 도마뱀 흉내 좀 낸다고 속아줄 수도 없고."

"……"

"분대장."

"충성."

"군인답게 다시 말한다. 실시."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다시."

"저에게는, 먼저 가이딩 받을 권리가 없습니다."

"좋아."

문책을 할 때 관중을 두는 것은 망신을 주겠다는 의도다. 적어도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게 아니더라도 굴욕적인 패전으로 사기가 바닥을 친 소대에 분열의 빌미가 되고싶은 마음은 없고 소령은 간소한 행정을 선호한다. 이에 분대장은 참모 하나 두지 않은 공관에서 약간은 불손한 뒷짐을 지고 있다. 

"아무리 계급이 깡패라지만, 진짜 깡패처럼 굴어서야 되겠어? 생도든 장성이든 빨리 가이딩받고 싶은 마음은 다 같은데." 

"죄송합니다."

"합의 안 한 가이딩 강요는 규정 위반이라는 건 알겠지."

"그건…! 네 그렇습니다."

"상응하는 징계 처분 확정날 때까지 병장으로 강등한다." 

"소령님!"

어린 소령과 독대하며 방만하게 이완되었던 몸이 왈칵 솟는다. 소리치는 서슬에 공기가 일었다. 부릅뜬 눈이 소령을 쏘아본다. 못내 분통이 터지는지 쥐고있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고있다. 소령은 평온하게 절차를 마저 집행한다.

"이의있나?"

"…손이잖습니까."

그는 한참을 씨근대다 쥐어짜듯 말했다. 잔뜩 억울한 투였다.

"고작 손이잖습니까, 소령님!"

"끝인가?"

"소령님이 몰라서 그렇지 걔 그런걸로 효율 깎이고 그런 애 아닙니다. 한 번에 몇 명씩 가이딩해도 끄떡없는 애예요. 그런 애 손 좀 잡았다고, 고통이 심하니 접촉가이딩 좀 빨리 해 달라고 한 게 그렇게 중징계 받을 일입니까? 막말로 제가 싫다는 애 강간친 것도 아니고, 센티넬이 가이딩 요구한 게 강등거리나 됩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항변은 점점 더 격앙되었다. 말하면서 스스로도 확신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무고한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는 양, 가혹행위를 강제하는 상관에게 잘못 걸린 양 떳떳하고도 비통한 웅변조였다.

성준수로 말하자면, 우스웠다. 이 씨발놈은 사정청취의 기본부터 안 되어 있어. 

억울한 것부터 말하지 말고 일이 일어난 순서대로 말해야지. 1. 대기열을 이탈하여 와상에 접근했다. 2. 접촉가이딩을 수행중이던 가이드를 제압해 가이딩을 중단시켰다. 3. 붙잡힌 가이드에게 가이딩 해 줄 것을 강요하다 퇴장당했다. 이 수순인데 가이딩 요구 자체를 무시당한 것처럼 약을 치질 않나,

"고작 손 잡는 것도 못 참나?"

"통증이 심했습니다!"

"자네 통증은 뭐 그 어떤 것보다 먼저 해결되어야 할 중차대하고 특별한 통증인가? 그럼 앞으로도 통증이 심하면 새치기해서 접촉가이딩 해달라고 주물럭거리겠네? 가이드는 아파서 막 인상을 쓰고." 

"소령님! 말씀이 심하십니다!"

"아, 통증이 너무너무 심하면 그 자리서 빨개벗고 점막가이딩 내놓으라고 자지라도 깔 건가?"

"이, 이…!"

자지 깔 거냐고 물었는데 무슨, 자지 빨아달라는 요구라도 당한 듯한 표정을 짓고...

피곤해 뒤지겠는데 세상 억울한 새끼들은 왜 또 이렇게 많아...

모욕감인지 뭔지로 숫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던 어느 순간 불현듯 피로가 엄습했다. 몸이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가는 기분. 센티넬은 목덜미와 두피 안쪽을 힘주어 누르며 시험하듯 눈을 감았다 뜬다. 한 게 없어서인가 개운치 못한 피로감이다. 

"정리하면 자네는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사람이지. 내가 아프면 전우들의 권리를 빼앗고, 그럴 땐 규정을 무시해도 되고. 전장에서 전우들은 아군이고 가이드는 우군이다. 오늘 자네는 우군을 해쳤고 그럼으로써 아군들의 빠른 치유에 지장을 줬어. 자네는 자네 상황이 좋을 때만 우리의 아군이겠지. 그런 자에게 우리의 등을 맡길 수 없다. 분대장을 해서도 안 돼. 분대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사람이니까."

자치센티넬들이 들고일어난다면 어떻게 할지는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고,

"알겠나, '병장'?"

그는 성의없는 손짓으로 병장을 쫓아낸다. 피로를 느끼자마자 손도 까딱하기 싫어지는 건 오랜 고질병이다. 참전에서의 성취도와 피로도가 반비례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생각 또한 센티넬을 급격하게 지치게 한다. 그는 어느새 얼룩덜룩해진 목덜미를 연신 주무른다. 

18.

그는 눈을 감고 있다. 조금만 덜 시끄럽다면 잠들어 버릴 듯도 하다. 시간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필경 그랬을 것이다. 

- 검사결과로는 그렇대요. 완전히 불능不能이 됐다고. 

"확실해요?"

- 네 확실히. 이제 이 사람들 따로 분류할 것 같아요.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거의 민간인이랑 다름없는 수준이다 이 얘기가 아니라 정말로요?"

- 연구소에서는 벌써 실능자들失能者이라고 부르더랍니다. 말 그대로 능력을 잃은 거래요.

어쩐지 계속 말을 애매하게 한다 싶더라니… 도무지 '능력'을 '손상'시켰다는 게 무슨 뜻인가 싶었다. 

처음에는 사지에 출정했다 효율이 저하된 센티넬 몇 명이 왕년을 못 잊어 부리는 생떼라고 생각했다. 센티넬의 체력 수준과 부상의 중증도, 가이드와의 상성, 가이딩 시작 시기와 강도 등 수많은 요인들이 효율에 개입하므로 센티넬의 효율이 떨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잦았고 그런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센티넬도 생각보다 흔했다. 오래 일하고 싶은 센티넬들은 스스로를 주의깊게 관찰하며 통제할 수 있는 선 안에서 가능한 한 효율을 잘 관리하는 것에만 진력했다. 한때는 AJ를 마비시킬 수 있던 능력으로 지금은 겨우 지네 한 마리를 굳게 만드는 게 전부라면 아무래도 우습고 창피하니까. 

그러나 능력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이상하긴 하네. 원인이 뭐래요?"

- 그걸 모른대요. 

"원인 불명이면 전역 후 처리가 복잡하겠는데요?"

- 그러니까 더 저러죠. 납득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유는 모르고, 어떻게든 남 탓하고 싶고, 책임 소재 돌릴 사람 있으면 보상도 더 받을 테니까… 

"아니 효율 저하도 솔직히 억진데 무슨 수로 가이딩으로 능력을 잃냐고요…" 

- 본인들은 철썩같이 믿고 있던데요. 가이딩 잘못받아서 능력 없어졌다고.

그럼 그 가이드가 센티넬이겠지.

상대의 능력을 뺏는 능력이 있겠지.

답답하다. 왜 이해를 못 해? 왜 원인과 결과를 잘못 짝지어놓냐고. 가이딩을 받아서 능력을 잃은 게 아니라 가이딩을 받았음에도 능력을 잃은 거겠지. 그러면 애초에 둘 사이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거잖아. 

은퇴 전에 민간인 된 거면 복에 겨운 줄도 모르고...

센티넬들은 전사할텐데 지들은 병사하겠네.

늙어 죽으면 호상이지 씨발새끼들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고 지랄이야.

- 얘기 들어줄 사람도 없는지 날이면 날마다 오는데… 하… 뻗치기 하면 답이 없어요…

"지금 민간인 신분이면 센티넬 부대시설 출입 못 할 텐데요?"

- 그렇긴 한데… 그렇게 모질게 못 하겠어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센티넬이었는데…

"하 뭔…"

- 불쌍하잖아요… 계속 센티넬이다가 하루 아침에 민간인 됐는데 눈에 뵈는 게 있겠습니까...

"진짜 개소리 하지마라."

그는 기어이 몸을 일으키고 눈을 뜬다. 손을 뻗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고 입에 문다. 곧이어 터지는 한숨은 흡사 불 붙은 담배를 끽연한 듯 깊다. 그는 한숨으로 담배필터를 질근질근 씹는다.

"공감하고 싶어? 연민하고 싶어? 그럼 네 공감에 책임을 져."

- ……

"저거 다 받아주지? 그럼 그게 들어줄 가치가 있는 얘기가 돼. 걔네는 지멋대로 자기 불행의 원인으로 가이드 점찍어 놓고 하루하루 망상속에서 그게 진짜인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그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구라에 남한테 피해만 주는데 있을 법한 썰이 된다고. 왜? 듣는 사람이 있으니까. 니들이 들어주니까. 가끔 맞장구도 쳐줄 테니까. 니들 태도가 걔네 망상을 지속시키는 거야 알아? 그게 센티넬을 위한 일이야? 지들 맘에 차는 망상 계속하게 냅두는 게?"

- ...넵.

"직접 못 하겠으면 성준수 소령이 해산하란다고 말해. 또 뻗치기 하면 해산시켜. 꼬우면 중령 달고 개기라 그래."

- 진짜 그래도 될까여…

"이런 때 쓰려고 대가리 한 거야. 해."

- 아니… 이렇게 내놓고 하시면 소령님이... 소령님으로 군생활 끝날 수도 있는데… 승진이 쪼끔...

"중령 달면 무서워서 이런 짓 못 한다. 해도 된다고 할 때 해."

- 넵.

니들이 아직 뭘 모르네. 

난 어차피 중령 못 달걸.

19.

그는 한참동안 손바닥으로 눈을 꾹 누르고 있다 거칠게 마른세수를 한다.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가던 몸은 이제 한 면씩 떨어져 나간다. 인간이 정사면체나 정육면체 따위가 아니라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떨어져 나갈 파편이 이렇게나 많으니.

"불능은 내가 불능이네…"

눈 안쪽이 둔중하게 끓고 손끝은 뻑뻑하다. 너무 피곤하다. 진짜 더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소령님."

"들어와."

스르르 걸상에 파묻히던 몸이 천천히 세워진다. 오늘은 유독 하루가 기네… 그는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반복해 눈을 감았다 뜬다. 늘어진 손이 삐져나와 지시를 대행한다. 

"용건 짧게 하자 피곤하다." 

"오늘도 가이딩 받아야 할 만큼 능력 쓰지 않으셨습니까?"

고개를 들자 헤어밴드와 아대를 착용한 가이드 진재유가

뭐랄까, 내 가이드처럼?

"……아닙니다."

"가이딩 받으셔야겠네요."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견적부터 내보까요."

손을 내밀자 이번에도 예사로이 손깍지가 끼워진다. 이내 손바닥 전체가 후끈거린다. 센티넬이 길게 숨을 들이마신다. 흠… 오늘은 좀 빡셌나 보네요.

"뭘로 하실래요, 포옹? 입술?"

"둘 다 별로…"

"그럼 점막?"

"손."

"저야 괜찮지만… 오래 걸릴 텐데요."

"점막도 쌍방이 원하면 오래 걸립니다."

"허어…… 네. 손."

진짜 잘한다…

떨어져나갔던 조각들이 그에게 되돌아온다. 달려들어 살처럼 붙는다. 뒤죽박죽 뭉쳐지던 파편이 한데 개어 면이 되었다 곡면이 되었다 전체가 된다. 시야는 뒤늦게 깨끗하다. 뻑뻑하던 눈가도 가라앉았다. 그는 맑은 정신으로 재생되는 몸을 감각한다. 사이좋은 아이들처럼 두 손을 맞잡고 앉아서. 

"…...아까 그냥… 그 전우님 말대로 그냥 제가 빨리 끝내버렸으면 일 안 커졌을 텐데… 죄송합니다."

"오해 없었으면 합니다. 맹세코 친분에 기운 판단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별 일 아니었잖아요."

"꼰대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제 경험상 작은 것에 목숨을 걸어야 큰 거에도 분노할 명분이 생겼습니다."

"하…… 내가 진작 그걸 알았어야 했는데…"

진재유가 허탈하게 미소한다. 손틈새로 열보다는 빛에 가까운 입자들이 반짝이다 사라진다. 잃은 줄도 몰랐던 편린들이 그에게 덧붙고 덧붙고 덧붙는다. 그는 여러 번 덧발리며 단단해진다. 유약처럼 두꺼운 광채를 입고 반짝인다. 그는 깍지를 더 파고든다. 닦이고 털리고 메워지면서, 그는 다시금 견고한 센티넬이 된다. 가이딩 내놓으라고 환장할 만도 하네… 그는 한숨과 감탄을 동시에 삼켰다. 

"효율이 좋아 그런가, 확실히 다른 센티넬들보다 빠르시네요."

"시간 오래 뺏지 않아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손에 닿는 피부는 제 피부인데도 좀 징그러울 만큼 연하고 미끄럽다.  

예쁜 도자기가 된 기분이군. 

"저도 다행이네요, 시간이 좀 남아서. 말씀드릴 게 있었거든요."

20.

한 번은 이런 얘기를 할 것 같았다. 

"소령님. 이때까지 여러모로 배려해 주신 거, 그리고 막사에서 있었던 일도…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령님이 직접 나설 만큼 심각한 문제도 아니었던 것 같고… 앞으로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말씀드렸듯이 별 일도 아니었고..." 

그는 진재유에게 가이딩을 받으며 생각해보았다. 그의 자격에 대해서. 

타인의 기쁨엔 아무런 자격없이 더불어 즐거워도 되지만, 누구나 아무나 기뻐해도 되지만 

타인이 겪는 불의에 자격없이 화내는 건 무례한 일 같았다. 내 것 아닌 불의에 분노하는 것은 엄격한 자격을 요하는 것 같았다. 허락하지 않으면 화 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는 피가 안 통해 하얗게 질린 손을 보며 분개했지만, 그 감정이 정당한지는 알 수 없었다. 요행히 그에게는 소령이라는 계급이 있었고 계급은 때때로 자격과 호환된다. 그래서 성준수 센티넬은 공공연히 개입해 진재유 가이드가 겪고있는 불의한 사태를 중단할 수 있었다. 

사태가 종료되고 책임자가 처벌된 후 진재유가 내린 판단은 이러하다. 

그는 그게 무엇이든, 일정한 자격을 못 갖추었기 때문에 진재유가 겪는 불의에 대해 화낼 권리가 없다. 

에둘러 말하자면 '소령이 직접 나설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왜?

"아까도 점막 가이딩 하고싶으셨으면 그렇게 하셨으면 됐고요, 다음엔 그냥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굳이 저한테까지 예의차리시지 않아도,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저는,"

진재유는 지치지 않고 제 할 말만 쏟아냈다. 반박할 게 너무 많아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무엇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 니 효율을 내가 알고 내 효율은 니가 알 텐데 점막가이딩을 요구하라고? 접촉가이딩으로 복구할 수 있는 내상임을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그래도 괜찮다고? 손목엔 멍이 들었지만 그거 사실 별 일 아니고 심각한 사안도 아니었으니 앞으론 아닥하고 있으라고? 문제가 생겨도 방관하라고? 그걸 다 종합하면 예의차리지 말라는 말이 된다고?

그럴 리가 있나. 

"왜 그래야 합니까?"

"그거야…"

그는 이미 진재유의 메뉴얼을 만들었고 그것은 그의 것이었다. 다른 메뉴얼은 필요도 없고 있어봐야 혼선만 초래한다. 심지어 진재유가 직접 제시한 메뉴얼이라 할지라도. 

"나는 바보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굴어야 재유 씨 환심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굴면 반감을 사게 될지 알고 있단 얘깁니다."

내 메뉴얼은 꽤 잘 기능합니다 그리고, 

진재유 씨가 무엇을 쟁취하려 투쟁해왔는지 아는데 굳이 외면할 이유가 있습니까?

재유 씨의 목표가 까마득히 멀리 있다는 걸 내 소대원들에게 직접 확인하면 내 기분이 째지기라도 한답디까?

적극적으로 진재유의 마음을 얻으려 시도한 적은 정말이지 없다. 그랬다면 좀 더 공세적인 입장을 취했겠지. 그는 어디까지나 자중하며, 점수를 따지는 못할 망정 잃지만은 않겠다는 심정으로, 방어적이고 소극적이면서도 극진하게 진재유를 대해왔던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나무라는 격이었다. 

"...그러면 제가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아시겠네요."

"제겐 중요합니다."

"왜요?"

따지고보면 성의껏 반론할 필요조차 없다. 사실 관계가 안 맞으니까. 

그는 차라리 이런 물음을 고대해왔다.

"그게 왜 중요한데요."

"...궁금하지 않으시잖습니까."

"내가 성질이 더럽어가, 그래 말하면 진짜로 궁금해져뿌는데."

왜냐면… 그도 궁금했거든. 정말로 몰랐거든. 

진재유의 호오를 거스르지 않는 것, 까놓고 말해 진재유에게 잘 보이는 일이 어째서 그에게 중요하냐고 물었을 때...

"나도 섹터 4 출신입니다."

"……"

"대답이 됐을까요."

답이 무얼지, 그리고 어떤 답을 할지. 

성준수는 성준수의 답을 듣고 다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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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논리적인 순록

    저는 정말로 작가님이 쓰시는 성준수가 너무너무 좋습니다.... 단어 하나하나 너무 준수같아요ㅠㅠㅠ '지들도 좆만한 주제에 존나 가리네'<-여기에서 속절없이 웃음이 터지다... 일이 흐트러져도 자기 하나만은 제정신으로 할 일 잘 하고 있으려하는 준수 모습도 정말 좋고요, 유능하고 칼같은 다소 불같은... 그리고 가이드한테 예의 잘 차리는 준수가 넘 멋있네요 ㅠㅠ 그리고 가이드들은 쉽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도 ... ㅎ ㅏ ... 가이드를 지키려는 재유의 모습도 너무 좋았습니다. 당장 외적인 것보다 뭣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지켜주려하는게 ㅠㅠㅠㅠ 용기있는 재유... 강단있는 재유야..... 뭔가 ... 가이드들한테까지 견제 받고 뒷담화 당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또 진재유 그 자체같아서 그냥 ㅠㅠㅠ재유야... 하면서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ㅠㅠㅠ 센가버를 이렇게 사회구조적으로 엮어서 보여주셔서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이런 센가버를 42년 동안 기다려왔습니다... 읽으면서 정말 너무 안타깝고 긴장됐지만 벅차고 즐거웠어요 ㅠㅠㅠ

  • 유연한 병아리

    업데이트 소식을 듣고 초흥분상태가 되어 화장실 가서 잠시 춤을 추고 왔습니다 읽지 못하고 댓글 먼저 남기지만 선생님의 창작활동이 누군가의 커다란 기쁨이 되었습니다 오래오래 건필해주세요ㅠㅠ -- 준수의 차례가 돌아왔네요. 그것도 재유와 함께. 가이드해방전선이 생각나는 제목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다른 환경에서도 이 친구들이 해방을 이루고자 하네요. 다른 매체에서 삶에서 무엇을 기억하는지가 자신을 결정한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편을 보니 기억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도 자신을 결정하는 것 같아요. 이 친구들은 기존의 기억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재유는 가해전 수장이였던 자답게 이번 편에서도 나름의 길을 다지네요. 새로운 몸으로 탄생하고도 늘 가이드를 사랑했던 종수 생각이 납니다. 재유째유 가해전을 순수하고 멍청하다고 하면서 궁금해하는데 그게 바로 너였거늘... 준수 효율 점검 받자마자 자네마네 하는거 너무 앙큼해요. 이번 준수는 군인이라 머리 길이 걱정을 했는데 육군기준 간부는 가르마를 탈 수 있다고합니다. 다행히 가르마는 사수했네요. 준수 지휘하고 전투하고 징계 내리는 소령모먼트도 좋아요. 세계관의 가이딩(치료)와 성적인 접촉, 인간 복제, 안드로이드 등과 그로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의 다방면에서 바라보는 해석도 너무 좋아요. 재유의 칭찬도 생각치도 못한 방향에서의 해석이라 감동받았습니다. 비센티넬이던 재유가 다시 등장할 수 있었던 설명을 보고 설마했는데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입을 틀어막을 수 밖에 없었어요. 둘과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서준위의 처우는 어떻게 될지 다음편도 기다리겠습니다. 평안과 사랑이 함께하는 날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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