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곡
2024년 새해 기념. 지삼온 [동병상련] D1에서 배포합니다.
“해 뜬다.”
“어어.”
준수가 서울에 가지 않은 날, 재유가 해 뜨는 시간을 찾아본 날. 아침 러닝을 멈추게 하는 그런 날. 어제도, 내일도 분명 똑같을 터일 태양은 훨씬 밝았고, 날은 포근했다.
새해 첫 곡
진재유 X 성준수
“새해 복 많이 받아.”
“준수 니도. 해피뉴이어다.”
웬 영어? 하고 준수가 웃었다. 맨날 락 듣더니 영어도 잘하네. 하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재유는 제 뒷목을 긁적이며 준수의 뒤를 쫓았다. 준수가 달려가는 방향에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문득 밝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신년의 해였는지, 앞서 달려가는 네 등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햄들, 새해 첫 곡 뭐 들으실 거예요?”
신발을 벗으며 희찬이 그렇게 물었다. 아침 일찍 가족들과 해돋이를 보고 바로 숙소로 왔단다. 첫 곡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하고 태성이 되묻자, 희찬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희찬의 설명에 따르면, 새해 처음으로 들은 노래에 따라 그 해가 흘러간다고 한다. 희찬은 이 얘기를 하며 작년에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들었다가 출판사에 취업한 사촌 얘기를 들먹였다. 준수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기는 이미 미국에 나갔어야 했다며 반박했지만, 상호와 다은은 벌써 저 구석에 앉아 각자 이어폰을 꽂은 채였다.
“냅둬라. 그런 미신 하나쯤은 다 있다아이가.”
툭 내뱉은 재유가 핸드폰을 찾았다. 그러고는 슬슬 눈치를 보며 다은의 옆에 자리 잡고 앉는 걸 보니, 재유도 노래를 고를 게 뻔했다. 준수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며 재유의 앞에 털썩 앉았다.
“재유, 네 플레이리스트에선 들을 게 없겠다.”
재유가 힐긋, 눈을 올려 준수를 보자 준수가 말을 이었다.
“네가 듣는 노래들 가사를 좀 봐봐. 어딜 봐도 새해 첫 곡으로 알맞진 않을 것 같은데.”
재유가 고개를 갸웃하며 플레이리스트를 뒤적였다. 락이라고 다 험한 가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내용도 많은데. 그러나 굳이 입 밖으로 불만을 꺼내진 않았다.
재유는 대답하는 대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독님은 좀 늦게 오신대요. 막 울린 톡방을 확인한 희찬이 그렇게 말했다.
태어나서 열 번도 넘게 맞은 새해다.
올해가 특별히 다르게 느껴지는 건,
재유와 준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해라서일 거다.
대학에 합격하는 순간은 꿈 같았다. 그래서인지 새해가 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린 언제까지고 고등학생이고, 언제까지고 열아홉이고, 언제까지고 이 좁은 숙소에서 부대끼며 잠들 것 같았다. 승대가 전학을 가고, 기철이가 농구를 그만둘 때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했다. 현실성이 없어서? 아니. 그 누구보다 현실감을 느껴서. 재유는 그런 생각을 했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새해가, 십 대의 마지막 몇 년을 장식했던 현실감을 깨뜨렸다.
재유가 농구공을 퉁, 하고 튕기며 머리를 뒤흔들었다. 옆에서 준수가 물었다.
“일대일?”
재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어 번 더 공을 튀겼다.
“다른 아들은?”
“아이스크림. 내가 카드 줬거든? 이거 이기면 네가 쏘는 거다.”
카드까지 줘놓고 뭘. 재유가 중얼거리자 계좌이체 있잖아. 하고 준수가 받아쳤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재유가 픽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물론, 져 줄 생각도 없었다.
결국 아이스크림은 준수가 냈다.
새해라고 태성이 떡국을 끓였다. 고명이 잔뜩 올라가 있는 데다 맛도 좋아 사 먹는 것보다 몇 배는 만족스러웠다. 부른 배를 조금 꺼뜨리고 난 후, 준수가 재유를 불렀다. 소화도 시킬 겸 산책이나 가자는 뜻이다. 12월 중순부터였나. 둘은 이렇게 종종 산책하러 가고는 했다. 재유가 대학에 붙었을 때, 준수가 붙었을 때, 크리스마스 다음 날 같은 때. 그런 특별한 날마다 둘은 숙소 근처를 걸으며 얘기를 나눴다. 이제 졸업이니 여기도 아쉬워지겠다거나, 그동안 고생 많았다거나, 남을 애들이 걱정된다거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숙소로 돌아오면 잘 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그러겠지. 재유가 겉옷을 챙겨입었다.
“춥다.”
“그래도 어제보단 나은 것 같은데.”
하아. 준수가 입김을 내뿜으며 대답했다. 니 그거 모순된 행동이다. 그런가? 그런 얘기를 하며 걷던 재유의 눈에 작은 코인노래방 가게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희찬이 그랬지. 새해 첫 곡에 따라 일 년이 달라진다고.
“준수.”
“어”
“코노 가자.”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노래방을 자주 가는 편도 아니었고, 가봤자 지상고 농구부 다 함께 몇 번 간 게 다였다. 단둘이 간 적은 없었으니, 준수가 당황한 눈으로 재유를 보았다. 그러나 재유는 진지했다. 슬쩍, 준수의 팔을 잡아 노래방 쪽으로 이끌기까지 했다. 알았어. 갈게. 간다니까. 팔 좀 놔줘, 재유. 준수가 어정쩡하게 걸음을 옮겼다.
“너 뭐 부를 건데. 또 락?”
2인용 부스에 구겨 앉아 준수가 물었다. 재유는 어깨를 으쓱했다.
“고민 좀 하께. 니 먼저 불러라.”
준수는 마이크를 들고 톡톡, 두드리며 뭘 부를지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리모컨을 들고 인기 차트 창을 띄웠다. 몇 번 페이지를 넘기던 준수가 대충 유명한 발라드 하나를 선곡했다. 전주가 흘러나오고, 준수가 두어 번 목을 가다듬더니 조금 어색한 음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건 재유의 새해 첫 곡이었다. 다른 히트곡처럼, 시시콜콜한 사랑을 노래한 잔잔한 발라드. 이 세상에서 너만 보인다느니, 널 만난 순간이 거짓말처럼 아름답다느니, 네가 좋다느니. 그런 뻔하고 시시한 가사가 이어졌다. 절절한 가사에 비해 진정으로 공감하는 사람은 몇 없을 그런 노래였다. 아마 재유가 스스로 찾아 들을 일은 없을 그런 대중가요.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래 가사처럼 뻔하고, 우스운 일이지만, 준수가 노래하는 그 사랑이 재유에게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재유의 시야에 준수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준수를 만난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네가 좋아.
그 가사만큼은 진실이었다.
준수의 노래는 정적을 채우기 위한 대충이었고, 노래 가사 또한 아무 생각 없는 말의 나열이었다. 재유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향하고 있지 않은 그런 목소리였다. 그래도, 재유의 첫 곡은 아무렴 충분했다.
준수의 노래가 끝난 후, 재유는 리모컨의 박수 버튼을 눌러 호응했다. 준수가 마이크를 꽂으며 민망한 듯 손을 휘저었다. 왜 부끄러워하냐고 묻자, 남자 단둘이 있는데 부르기엔 쑥스러웠단다. 재유는 그런 준수가 답지 않게 꽤 귀엽다고 생각했다.
“준수, 니 오늘 노래 뭐 들은 거 있나?”
“아니. 왜? 재유, 너도 새해 첫 곡 그런 거 신경 써?”
“그냥, 기분 내는 거지. 그럼 닌 이거 들어라.”
말을 마친 재유가 선곡한 건, 평소와 같은 락 음악이었다.
돌아가는 길, 둘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 홀짝이며 걸었다. 오랜만에 락 스피릿을 뽐낸 재유가 너도 하나 먹으라며 두 개를 뽑아서였다. 숙소가 가까워졌다.
고백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재유는 둘의 관계가 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대학에 가면 지금보다 더 못 보겠지만, 뭐 어때. 가끔 만나 얘기를 나누고, 가끔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가끔 이렇게 아침과 밤을 보내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숙소에 도착했다. 재유가 다 마신 음료수 캔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준수,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뭐야, 아침에 얘기했잖아.”
“두 번 얘기하지 말란 법 있나.”
그날, 재유의 플레이리스트에 시시한 유행 발라드가 하나 추가되었다.
<새해 첫 곡>
진재유 X 성준수 비공식 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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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 @orjunsu (X,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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