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전력 2천 자

[준쫑] 단문

30대

성준수의 소소한 취미 중 하나는 바로 애인 희롱이다. 그냥 눈앞에 있어서 감상했을뿐이지만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렇게 설명하는 중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아무리 사귀는 사이라도 상대가 싫어할 만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되물을 수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성준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면.

“오. 최종수 엉덩이 폼 미쳤는데. 어제 레그 좀 쳤냐?”

“아, 성준수! 진짜 하지 말라고.”

옷방에서 바지에 어울리는 허리띠를 고르는 최종수의 엉덩이를 주무르면 즉각 반응이 온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를 바 없고, 그의 주장에 의한 희롱이 성립된다. 성준수는 외마디 비명을 무시한 채 탱탱한 근육을 주물러댔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이 정도면 어제는 하체를 좀 친 정도가 아니라 그냥 하체만 조졌다는 뜻이다. 엉덩이는 주무르기 좋지만 그러다 보면 벌리고 싶어서 안 되고, 허벅지도 제법 단단해졌을 테니 만져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바지를 벗겨야 한다. 나갈 준비 중이라 말로 좀 꼬신다고 벗어줄 것 같진 않으니 오늘은 이쯤하고 물러갈까 생각하는데,

“아, 바지가 안 어울리나…….”

최종수가 허리띠 두어 개를 들어보더니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채웠던 바지 단추를 도로 풀었다. 지퍼를 내리면서 자꾸 이쪽을 힐끔거리는 게 누가 봐도 저를 신경 쓰는 눈치다. 어제는 둘 다 귀가가 늦은 탓에 씻고 먹고 소화 좀 시킨 뒤에 바로 잤었다. 붙어 자긴 했지만 자다 보면 떨어지게 마련이고, 자느라 몸이 평소보다 빵빵한지 단단한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몇 년 전이었다면 뭔 지랄인지를 생각했을 텐데 짬밥 좀 먹었다고 사고 방식부터 달라지는 게 웃겼다. 요지는 최종수가 이 ‘희롱’을 내심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건 희롱이 아니라 그냥 있는 애인 몸 만지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바지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면서 드러나는 다리는 누가 봐도 운동 선수의 몸이다. 선수가 아니라면 헬스 트레이너나 보디 빌더 정도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다른 극단적인 몸이 아니라 정말로 농구만을 위해 포지션을 중점으로 만들어진 근사한 몸이다. 가끔 이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감상만 하는 시간을 가지는 상상을 할 만큼 제 눈에는 매력적이었다. 사실 이건 얌전한 설명이고 속된 말을 빌리자면 존나 꼴리게 생겼다는 뜻이다. 성준수는 고민도 하지 않고 손을 뻗었다. 선 채로 만질 수 있는 곳이라 봐야 대둔근 아니면 대퇴이두근밖에 없지만 이걸로도 충분했다. 제 손이 움직일 때마다 흠칫 놀라면서도 시선을 거두지는 않는 놈의 반응까지 함께라서 뭔가를 더 하지 않아도 만족감이 들었다. 그가 나갈 예정만 아니었더라도 뒤를 돌아보라는 말 정도는 했을 것이다. 그러면 옷방에서 나가는 건 적어도 한 시간 뒤의 이야기가 될 테다.

“내가 가끔 생각하는 건데.”

“하지 마. 안 듣고 싶어.”

“니 다리에 비벼도 존나 좋을 것 같다.”

“아, 성준수!”

“너 그거 아냐? 니는 섹스할 때 필요한 근육은 또 존나 말랑말랑해.”

“하나도 안 궁금하고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어…….”

“최종수 존나 꼴리게 생겼네. 오늘 왜 나가지?”

“한 달 전부터 오늘 나간다고 했잖아! 너 진짜 미쳤어? 변태야? 나 보고 맨날 그런 생각만 해?”

“어.”

당당한 모습에 할 말을 잃은 최종수가 세상 싫다는 얼굴로 멀찍이 떨어져서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그래 봤자 두 발자국 정도고 그것도 달라붙으면 붙을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고 삐딱하게 서서 팔짱을 낀 채 감상했다. 만들어진 몸 위로 천이 덮이는 과정은 언제 봐도 흥미롭다. 그냥 천을 몇 개 걸쳤을 뿐인데 그게 옷이 되고 패션이 된다는 게 그렇다. 셔츠 가터를 허벅지에 감는 걸 보고 있을 땐 이 뒤에 만나러 갈 사람이 시부모님만 아니었더라도 취소시켰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작게 휘파람을 불자마자 매섭게 뒤를 돌아보는 얼굴에 민망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이제 나가라고는 하지 않는 걸 보니 제가 쳐다보는 게 그럭저럭 익숙해진 것 같았다. 하여간 귀여운 새끼.

“야. 너 진짜 안 갈 거야? 우리 엄마랑 아빠는 너 좋아하니까 맨날 와도 된댔어.”

“생각 없다. 가족끼리 식사하는 건데 내가 왜 가.”

“너도 이제 우리 가족이잖아.”

신발까지 매끈하게 신어놓고 자꾸 말을 붙이는 걸 보면 어지간히 나가기 싫은 모양이다. 아니면 진짜로 데려가고 싶어서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오늘은 집에서 쉴 생각이었으므로 그만 말하고 얼른 가라는 의미로 입맞춰 주자 금방 얌전해져서 도로 눈을 감는다. 또 해 달라는 뜻이다. 서로 다른 방향의 아쉬움 가득한 키스는 최종수의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할 즈음에 끝났다.

“나 진짜 갈게……. 아빤가 봐.”

“오냐. 연락해.”

“응.”

전화를 받으며 허겁지겁 나가는 애인 겸 배우자를 배웅한 뒤 성준수는 위로 크게 기지개를 켰다. 아무도 없는 집이면 저도 나갔겠지만, 이제 이 집은 제 집이자 최종수의 집이었다. 그러니 반신욕도 하고, 농구도 보고, 낮잠도 자다 보면 볼일을 마친 최종수가 돌아올 것이다.

목표를 쟁취한 삶은 나쁘지 않다. 성준수는 간만에 이 느긋함을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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