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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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

쟁준 재유준수 / 농없세 대학 연극동아리 AU / 쟁준 AU 게스트북 <luck out!> 참여 작품

* 쟁준 AU 게스트북 <luck out!> 에 참여했던 작품입니다.

* 업로드 규격에 맞춰 문단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 그 외 맥락에 맞춰 내용을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젠더프리->브로맨스 표기, 단어에 맞춘 성준수 대사 수정)

* 수정 외 원고 추가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동아리 하나일 뿐이다. 제대로 된 무대 장치도 없고, 연극영화과 학생도 없는, 두 학기쯤 이어가면 기적인 그런 동아리. 매주 연습 시간마다 절반이 빠지고 실력은 나아지지도 않는, 괜히 들어왔다며 하소연하게 되는 곳. 이런 데 끝까지 붙어있자는 생각이 드는 건 역시 우리가 낭만적인 사람이라서일까, 아니면 네가 있어서일까.


암전

w. 오준


성준수, 지상대학교 새내기.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막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끝낸 참이었다. 강의실을 나서는 데, 같은 과 학우들이 벌써 밴드다 댄스다 하며 떠드는 것이 들렸다. 고등학생 땐 그 활동마저 생기부 용도로 쓰였던 게 동아리였다. 준수 역시 고등학교 이 학년부터 영어 회화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었다.

대학에 왔으니 동아리의 개념도 좀 다른 걸까. 학교 축제에 동아리 신분으로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또래들이 부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 대학생이니까. 대학교에 왔으니 고등학생 때처럼 공부만 하고 살기는 싫었다. 신입생일 때 최대한 놀아야지. 그렇게 생각한 준수는 학교 커뮤니티에 들어가 동아리 홍보 게시판을 보았다. 아까 들었던 밴드와 방송을 비롯한 동아리 홍보 글이 줄줄이 올라와 있었다. 신입생 게시판에도 몇 개 글이 보이는 걸로 봐선,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을 노리는 것 같았다. 준수가 홍보 글의 제목과 미리보기로 보이는 짧은 글만 훑어보며 스크롤을 내리던 참이었다. 어떻게든 눈에 띄려 온갖 이모티콘을 붙여가며 홍보하던 것들과 달리, 간결하고 정갈한 제목이 있었다. 준수가 게시글을 클릭하자, 마찬가지로 간결한 본문이 이어졌다.

연극동아리 [암전]에서 신입 부원을 모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암전’은 올해 처음 만들어진 동아리로서, 연극을 좋아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실제로 연극을 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대본, 무대연출, 연기까지 동아리 내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며, 1학기 말 중앙동아리 승격 및 2학기 초에 있을 학교 축제에 서는 것을 목표로 모집을 진행합니다.

신/재학생분들의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아래로는 동아리 신청 폼인 듯, 링크가 하나 붙어있었다. 아직 중앙동아리도 아니고,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신생 동아리. 동방은커녕 인원수 부족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그런 동아리였다. 애초에 연극을 좋아하지도,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듯이, 그런 불완전함에 이끌리는 건 본능이다.

신청 폼에는 작가부, 연출부, 배우부 세 군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쓰여 있었다. 평생 살면서 글이라고는 생기부 채울 때 쓴 독후감뿐이었고, 연극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니 연출도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배우를 선택했다. 몸으로 때울 수 있고, 셋 중에 그나마 가장 가능성 높은 선택지였다.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동아리 면접 당일, 카페에 들어선 준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름 할 말도 생각했고 짧은 연기도 준비해 갔던 터라 준수는 어리둥절했다. 다음 주 금요일에 학교 강당에서 신입 부원 환영회가 있으니 꼭 참여해달라는 말과 함께, 준수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암전’의 일원이 되었다.


신입생 환영회 날, 강당 안은 사람으로 꽤 붐볐다. 인원수가 부족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연극이라는 이름이 주는 낭만에 매료된 사람이 많았다. 그곳에서, 성준수는 진재유를 만났다.

“아, 미안타. 앞을 못 봐가.”

두 손 가득 과자 상자를 들고 바삐 옮기던 재유와 부딪혔을 때, 준수가 들은 말이다. 준수는 그런 재유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투리를 쓴다던가, 얼굴의 주근깨가 특이하다거나 싶어 쳐다본 건 아니었다. 준수가 본 것은 재유가 입고 있는 과잠의 팔 부분이었다. 24라는 숫자는 그가 저와 같은 신입생이라는 걸 뜻했고, 그렇다면 일 학년일 텐데 왜 환영회가 시작되길 기다리지 않고 과자를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본격적으로 환영회가 시작되고, 면접 때 봤던 삼 학년 선배 둘이 강당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앞으로 동아리가 어떻게 굴러갈 거고, 누가 회장이고 누가 총무인지 같은 사무적인 얘기를 듣던 준수의 옆자리에 재유가 앉았다. 준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질문을 내뱉었다.

“너 일 학년 아니...예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인지, 동갑이라고 생각되는 재유에게 자동으로 반말이 튀어 나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억제했다. 재유는 그런 준수를 잠시 가만히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맞는데, 와?”

그러고 보니 재유는 처음 부딪혔을 때도 반말했었지. 마음이 편해진 준수도 다시 반말로 말을 꺼냈다.

“아까 짐 옮기고 있었잖아. 신입생이 왜 일을 하나 해서.”

“아, 그건 그냥 도와달라 캐서. 별거 아이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던 준수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흘렀다.

환영회 순서는 쭉쭉 흘러,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다. 신생 동아리기에 모두가 초면이었고, 이름과 학번, 소속 부 정도를 말하는 자기소개는 선배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순서가 돌아갔다.

“신입생 성준수입니다. 배우로 들어왔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큰 듯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가 조금 잦아들자, 재유가 입을 열었다.

“똑같이 신입생인 진재유입니다. 담당은 무대연출입니다.”

진재유. 준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입안을 구르는 발음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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