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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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한 점을 말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쟁준 재유준수 / 대학생 / 웹발행

7대운동, 가비지타임 배포전, 9디페에 참가했던 회지 <서운한 점을 말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의 웹발행본입니다.

웹 업로드용으로 문단 공백을 수정했으며, 그 외 내용상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포스타입에도 같은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인 관계의 대부분은 충동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성준수는 생각했다.

준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몇 번이고 눈을 비벼도 보이는 것은 같았다. 하얀 천장과 하얀 벽, 하얀 바닥. 거기에 방석 두 개와 이 리터짜리 생수 두 개까지. 창문도, 전등도 없는 이 방은 신기하게도 아주 밝았는데, 덕분에 준수는 제 앞에 앉아 있는 재유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내도 모른다. 일나보니 여던데.”

그 말을 끝으로 한참 침묵이 이어졌다. 준수가 힐긋, 재유를 보았다. 사흘 만에 보는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준수가 고개를 돌렸다. 재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너도 자다가 끌려왔어?”

재유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치당한 건가? 대체 누가? 준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서성거렸다. 짐작 가는 사람은 없었다.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원한을 사진 않았다. 설령 누군가에게 밉보여 끌려왔다고 해도, 자신뿐이라면 모를까 재유까지 이곳에 있는 건 말도 안 됐다. 재유에 대한 평가는 항상 좋았다. 재유는 대부분의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냈으며, 말수도 적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니까. 준수가 한숨을 내뱉었다.

“준수, 저짝 벽에 있는 거 읽어봐라.”

재유가 손가락으로 왼쪽 벽을 가리켰다. 뭘 보라고? 재유의 손가락을 따라 바라본 벽에는 어떤 글씨가 쓰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벽과 똑같은 색의 흰 종이가 붙어있고 그 위에 검은색으로 인쇄가 된 형태였다.

“...이게 뭐야?”

재유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읽어봐도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서운한 점을 말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내용은 밑도 끝도 없이 황당했다. 준수가 벽에 붙은 종이를 떼어내 보려 했지만, 대체 뭐로 붙인 건지 종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톱으로 긁어도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딱딱한 콘크리트 벽의 일부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붙어있을 뿐이었다. 결국 종이를 훼손하길 포기한 준수가 벽을 쾅쾅 두드렸다.

“손 다친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재유가 조심스레 준수의 손을 잡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익숙한 온기에 준수가 손을 내리고 헛기침했다.

“...재유 넌 짐작 가는 사람 없어?”

“떠오르는 사람은 없는데. 딱히 원한 사고 댕기지도 않았고....”

“하, 나도 그래. ...난 뭐 업보가 있긴 하지만....”

재유가 방석 두 개를 바닥에 깔고 툭툭, 앉으라는 듯 두드렸다. 슬쩍 눈치를 보던 준수가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나 때문에 너까지 끌려온 건 아니겠지?”

“니 때문에 내가 와 끌려오는데.”

“아니, 그냥 혹시나....”

“우리 사귀는 거 아무도 모른다. 걱정 마라.”

준수는 저 말에 뼈가 담겼음을 눈치챘다. 미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준수가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냈다. 보통 납치하면 핸드폰 같은 것부터 압수하지 않나? 범인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참 특이하다고 생각하며 준수가 메신저 앱을 켰다.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사람이... 준수가 기억을 더듬으며 채팅방 탭을 눌렀다. 그리고 곧 준수는 그 행동을 후회했다. 최상단에 재유와의 채팅방이 고정되어 있어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유와 나눈 마지막 메시지는....

{괜찮아. 진짜 늦어. 먼저 자.}

삼 일 전, 자신이 보낸 메시지였다.


서운한 점을 말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오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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