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지타임

오빠의 불타는 호떡집

PITA BREAD by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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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돌리자 은색 냄비 안에서 자글자글 갈비찜이 끓는다. 맛있겠네. 짧은 감상을 남기고 채널 버튼을 하나 더 아래로. 이번엔 광활한 바다에서 낚시가 한창이다. 한번도 해 본 적 없어서 재밌으려나 모르겠다. 또 아래로 옮기자 이번엔 바지다. 홈쇼핑 바지는 사서 길이가 맞은 적이 없다. 하나 더 아래로. 이번엔 카메라가 분주히 시장 골목을 헤치고 나아간다. 울산의 한 재래시장, 여기에 줄 서서 먹는 맛집이 있다는데? 나레이션이 지나가고, 교복 입은 학생과 빨갛고 파란 바람막이를 입은 어르신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 집이 그렇게 맛있어요? 그럼요! 사장님이 맛있고 호떡이 잘생겼어요!

 

"와......."

 

설마 저런 말을 진짜 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PD가 시켰나? 그러나 머리를 길게 기른 여학생은 진심인지 양손으로 따봉을 하고 있었다. 호떡만큼이나 맛있는 사장님? 대체 어떤 분이길래? 나레이션만큼이나 영중도 궁금했다. 시골 재래시장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줄을 서는 맛집? 핀 찍어놨다 나중에 가야지. 구글 검색창에 '생생정보 울산 호떡'을 검색하며 티비를 본다.

 

- 몇 개 먹을래?

- 여섯 개요! 한 사람당 두 개씩이요.

- 하나씩만 먹어.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 두 개 먹어도 밥 다 먹을 수 있는데요!

 

비닐장갑을 덧씌운 목장갑을 이로 물어 벗고 까르르 웃는 소녀들에게서 카드를 받아 육천 원을 결제한다. 저기, 잠깐 말씀 좀 물을게요! 혹시 사장님과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제가 사장인데요.

어색하게 웃으며 성준수가 카메라를 본다. 민소매에 나일론 앞치마를 입고 한 손에 호떡 반죽을 들고서.

맙소사. 영중은 엉거주춤하게 몸을 일으켰다.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어깨를 카메라가 훑는다. 생활 정보 프로그램에서 하면 안 되는 카메라 워크 아냐, 저거? 놓친 줄도 모르고 바닥에 방치된 핸드폰에는 검색 결과가 덩그러니 떠 있었다. 울산 중앙시장 불타는 호떡집. 생생정보 9월 14일 방영.

 

 

 

 

 

일요일 오전 9시, 영중은 서울역에서 울산행 KTX에 올라탔다. 그나마도 우등석은 매진이라 일반석밖에 자리가 없었다.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매하게 다리를 복도에 걸치고 눈을 감았다. 성준수가 호떡을 굽는다. 진짜야? 진짜였다.

은퇴 후의 준수를 생각해본 적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농구 코치와 감독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식빵 구워대는 감독으로 움짤이 만들어질 게 눈에 선했다. 심판도 괜찮았다. 준수는 보는 눈이 정확하고 누굴 편애해서 판정 내릴 사람도 아니니 공정한 심판이 될 수 있을 거다. 농구가 질렸다면...... 걔네 어머니처럼 세무사가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공부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됐지만 악착같은 면이 있으니 학원에 다니면 자격증도 금방 따겠지.

그렇지만 호떡집 사장님은 아니었다. 기름을 튀기며 호떡을 뒤집는 준수?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들은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아니면-그래, 간혹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그런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연인으로 나와 본인이 담근 효소들을 자랑하더니 효소 인터넷판매 업체였다던가 하는 것들. 아니 호떡으로 무슨 홍보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가정 속에서 진실을 확인하는 방법은 쉬웠다. 가서 본인이 하는 말을 듣는다.

도착할 때까지 페이퍼컴퍼니로 의심했던 불타는 호떡집은...... 진짜 있었다! 시장 세 번째 골목 안쪽에, 불 꺼진 두붓집과 건어물집을 지나 줄이 20미터는 족히 되는 듯 했다. 쭈뼛거리며 거대한 불판 앞으로 걸어가자 호떡 반죽에 계피 설탕을 퍼 넣는 준수가 있었다.

 

"맨 뒤로 가서 줄 서세요."

"준수, 오랜만이네?"

 

부지런히 반죽을 오므리던 손이 멈춘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친다. 어떤 반응이려나. 영중은 은근히 기대했다. 당황하려나? 그것도 좋다. 2년 만에 호떡 가게 사장님과 잘나가는 KBL 선수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겠지.

치익. 손에서 떨어져 나온 반죽이 불판 위에 떨어졌다.

 

"줄 서세요."

 

그러나 호떡 가게 사장님은 가차 없었다.

 

 

 

호떡 하나 먹자고 장장 1시간을 기다렸다. 어느새 점심시간을 넘겨 뱃속에서는 난리가 났다. 저기 김밥집 있던데 간단하게 먹고 올까. 자리를 벗어나기에는 기다린 시간이 아까웠다. 기다리다 적당히 빠질 줄 알았던 사람 중 진짜로 포기한 사람은 얼마 없었고. 지금 벗어나면 다시 줄 서야 한다는 생각에 영중은 꾹 참고 마침내 호떡 불판 앞에 도착했다.

 

"쯧. 몇 개 드실 거예요?"

 

포기하고 가길 바랐는데 기어코 저 줄을 서서 다시 왔다. 호떡 하나 먹자고 한 시간을 기다려? 나 같으면 국밥 때리고 집에 간다. 호떡집 사장님이 하면 안 되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호떡은 실시간 품절 중이다.

 

"열 개."

"혼자 온 거 아냐? 뱃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나."

"나 배고파. 스무 개 시키려다 참은 거야."

"호떡으로 배 채우는 새끼를 다 보네. 만원이요."

 

카드를 꺼내려다 머니클립에 끼워져있는 만원이 보여 꺼내 내민다. 준수는 장갑도 벗지 않고 손가락 마디로 잡아 앞치마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다. 어쩐지 재래시장 생선가게 사장님이 생각나는 동작이었다. 재래시장 호떡 가게 사장님이니 크게 다를 건 없나.

 

"언제쯤 끝......."

"다음 분은 몇 개?"

"저희도 열 개요!"

 

준수는 다음 주문을 받으며 또 파란 지폐 한 장을 수거한다. "지금 기다리셔도 못 사실 수 있어요! 재료 끝나갑니다!" 새로운 손님이 줄을 서자 그렇게 외친다. 영중이 제가 섰던 줄을 돌아보았다. 줄은 점심 먹고 온 손님들로 더 늘어나 있었다. 제가 한 시간 기다렸으니 아마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재료가 없다고 했으니 두 시간은 안 넘을듯싶었다.

영중은 얼른 꺼지라는 듯 거칠게 내밀어지는 검은 봉지를 받고 맞은편 커피집 간이의자 앉았다. 미리 타 놓은 블랙커피에 얼음을 동동 띄워주신 이모님이 흐뭇하게 웃었다. 호떡집 총각이 참한 데다 잘생겨서 보기 좋다니까. 영중은 싱거운 블랙커피를 마시고 호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렇네요.

 

 

 

가게는 두 시간 만에 문을 닫았다. 죄송합니다! 재료가 다 떨어졌어요! 내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쉬워서 기웃거리는 손님들에게 퉁명스럽지도,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은 담백한 태도였다. 그러나 영중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철문을 조금 내리고 불판 앞에 튄 기름을 닦고 밀가루 포대 위에서 플라스틱 팻말을 가져와 문 옆에 건다. 재료 소진으로 금일 영업을 종료합니다. 하나같이 익숙한 동작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호떡 장사를 한 거지?

간이 의자를 포개 가게 안쪽에 들여놓고 나서야 준수는 허리를 펴고 영중 쪽을 보았다. 이모님, 잘 마셨습니다. 블랙커피 두 잔과 밀크커피 한 잔, 보리차 한 잔을 마신 총각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면 외부 음식을 먹어도, 두 시간을 죽치고 앉아있어도 용서되는 법이다.

 

"시간이 남아도나 보다? 호떡 열 장을 두 시간씩이나 처먹고."

"사장님 손맛이 워낙 좋아서 음미해서 먹었지."

"지랄. 두 입에 다 먹을 수 있으면서 내숭은."

 

손가락을 까닥이자 영중은 쪼르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4평짜리 작은 가게는 냉장고와 밀가루 포대 등으로 가득 차있었다. 오래된 벽걸이 에어컨에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지만 하루 종일 켜놓은 불판 열기에 내부는 더웠다. 준수는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꺼내 영중 앞에 내려놓았다. 칽. 의자가 정겨운 소리를 냈다.

 

"밥은 먹었고?"

"이제 먹어야지. 호떡 다 팔기 전엔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준수는 그렇게 말하며 한쪽에 치워놓았던 김밥, 튀김, 떡볶이 등등을 가져왔다. 지나가던 동네 상인들이 하나씩 주고 간 것들이다. 아이고, 오늘도 호떡집에 불났네. 이거 먹으면서 일해! 쓰러지겠네! 저 덩치가 어딜 봐서 쓰러진다고.

냉장고를 열어 계란 두 알을 가져와서는 불판 위에 깨서 뒤집개로 휘휘 푼다. 김밥을 한 알씩 올려 뒤적거리는 모양새가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다.

 

"넌 왜 그러고 일해?"

"뭐?"

"나시에 앞치마만 걸치고. 공연음란죄 아냐?"

"뭔 미친 소리야. 반평생을 나시 입고 운동한 새끼가. 그럼 더워 죽겠는데 긴팔 입고 일해?"

 

그게 어떻게 같은 나시야. 몸에 달라붙는 검은색 나시를 입고 앞치마를 메고 있으면 가게 밖에서 볼 땐 상의를 안 입은 것처럼 보였다. 알고 저러나? 세일즈 포인트? 사장님이 맛있고 호떡이 잘생겼어요. 그 고등학생의 반응이 PD가 시켜서 나온 게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여물고 밥이나 먹어." 계란물을 묻힌 김밥을 초록색 에나멜 접시에 담아 내민다.

튀김을 불판 위에 올려 데우면서도 준수는 계속 땀이 나는지 수건으로 얼굴이며 목을 닦았다. 이 장소도, 에나멜 접시도, 저 커다란 불판도 성준수와 어울리는 건 하나도 없었다. 농구선수 성준수를 떠올릴 수 있을 만한 건 여전한 근육과 땀을 닦는 수건밖에 없었다. 보라색 수건에 적힌 준향대 대동제. 파란색 수건에 흰색으로 자수 놓인 지상최강 동창회. 저건 또 뭐야?

 

"왜 왔냐?"

 

김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준수가 물었다. 그러게. 왜 왔지.

개 같은 농구. 때려치운다고 악에 받쳐 소리 지르고 떠났을 때도 연락 한번 안 했는데 티비에서 얼굴을 보니 무작정 보고 싶어졌다. 방송이 끝나고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겨우 확인할 수 있던 가게 정보가 이젠 방영이 끝나기도 전에 검색됐다. 농구를 그만두면 서울 어디에서 사무직으로 취직할 줄 알았던 네가 호떡이나 뒤집는 모습을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방송에서 호떡 굽길래 맛이나 보려고."

"아 씨...... 어쩐지 손님이 너무 늘었더라. 방송 안 한다고 할 걸."

"세도 못 내고 있어서 일부러 방송 탄 거 아냐?"

"반죽하다 뒤질뻔했는데 뭔 소리야."

 

통통.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준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학원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어어, 아들?"

"호떡 남은 거 있어요?"

"오늘 손님이 많이 와서 다 나갔네. 내일 아저씨가 하나 빼둘게."

 

미안하니 이거라도 먹고 가라며 데워놓은 오징어 튀김 중 제일 통통한 걸 아이 입에 물려준다.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하는 아이를 익숙하게 배웅하는 준수를 보는 영중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들? 아드을?

 

"......눈깔 넣어. 저기 문방구 집 아들내미야."

"아주 친한가 보다?"

"뇌물을 받은 게 있어서."

 

그러더니 예의 앞치마 주머니 안으로 손을 쑥 넣더니 영중에게 던졌다. 약 모양으로 하나씩 까먹을 수 있는 불량식품이다.

 

"너도 많이 아파 보이는데 약이나 먹어라."

 

준수는 아이처럼 킥킥 웃으며 말했다. 하나 사면 하루 종일 나눠 먹으며 놀던 간식이다. 어렴풋한 그때를 떠올리며 두 개를 톡톡 까 입에 넣었다.

 

"편해 보이네."

"그렇지. 몸 고생이야 별반 다를 거 없는데 마음이 편해. 다른 선수 견제 안 해도 되고, 경기 안 풀린다고 스트레스받는 것도 없으니까. 내년에 얼마 받을지, 재계약은 될지 하루하루 불안했는데 그런 게 없어."

"호떡집 사장님은 언제부터 한 거야?"

"일 년 반? 전 주인 할머니한테서 한 달 정도 배우고 가게 그대로 인수했어. 지금도 종종 놀러 오셔."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방석 쌓인 의자와 손바닥만한 티비가 있었다. 골동품 아냐? 아직도 현역이야. 저걸로 티비 보면 재밌어. 전원을 켜자 색이 조금 바랜 화면에서 멀쩡하게 다큐멘터리가 나온다.

 

"가게 열기 싫을 때도 있는데, 운동하기 싫던 거 생각하면서 그냥 해. 루틴대로 호떡 팔고, 내일 장사할 거 준비하고."

 

늘 거뭇하게 끼어있던 다크서클도 안보이고 혈색도 좋아 보였다. 간판도 다 떨어져 가는 낡아빠진 가게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오래된 푸근함이 느껴졌다. 준수가 전보다 둥글어진 것도 그 덕일까.

 

"나도 호떡 장사나 할까?"

"할 거면 울산 말고 다른 데서 해. 컨셉 겹쳐."

"너네 가게에서 알바하면?"

"우리 가게 코딱지만 해서 알바 못쓴다. 빨리 서울로 꺼져."

 

준수는 피식 웃으며 먹은 것들을 정리했다. 빨리 마무리하고 밥 제대로 먹으러 가자. 밀가루 포대를 꺼내 계량도 없이 부어 반죽을 만드는 손놀림이 익숙했다. 여전히 지독하게 안 어울리는 모습이지만 영중은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나 급하게 내려오느라 올라가는 열차 예약 못 했는데. 병신. 그럼 걸어가든가. 바쁜 와중에도 대꾸하는 준수의 입에는 웃음이 걸려있었다. 매정하게 말해도 하룻밤 정도는 재워줄 게 분명했다.

 

 

 

 

 

전영중은 다음 시즌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은퇴 경기도 없는, 구단으로써도 당황스러운 결정이었다. 누군가 은퇴를 결정하게 된 이유를 묻자 전영중은 맑게 웃으며 말했다.

 

호떡 구우러 가야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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