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전력 2천 자

[준쫑] 단문

이능력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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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어서 밤눈이 밝지 않으면 제대로 걸어다니기 힘들었다. 성준수가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건 암흑에 익숙한 군인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감이었다. 최종수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날이 밝을 때까지 숲을 헤맸을 테고, 어쩌면 출구를 찾지 못했을는지도 모른다. 지부와 연락할 수단이 전혀 없는 상황이었으니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하지만 성준수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최종수에게선 센티넬 특유의 날카로운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오 분 정도를 걷자 놀랍게도 공터가 있었다. 정확히는 숲 안에 골목처럼 갈림길이 있고, 그 길 입구나 안쪽에 컨테이너 같은 집이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집이라고 추정했을 뿐 실제 쓰임새는 알 수 없다.

“이쪽.”

최종수는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가볍게 목례하며 저를 안쪽으로 데려갔다. 그의 집은 컨테이너보다 작고 아담했는데, 언젠가 야외 취침할 때 사용했던 텐트보다는 좀 더 컸다. 출입문이 지퍼로 되어있는 대신 완전히 닫으면 안쪽이 전혀 들여다 보이지 않는 신기한 구조다. 최종수가 먼저 등불을 옆에 내려두고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들어오라는 뜻이겠지. 성준수는 결국 군화를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까지 개방되어있으면 아무리 작게 대화해도 누군가는 듣는다. 알아서 지퍼를 닫는데 등 뒤에서 웃는 소리가 났다. 마주보고 앉자마자 웃음기를 거둔 최종수의 얼굴이 마지막 기억보다 환해 보여서 성준수는 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연계 센티넬의 폭주는 항상 있어왔기에 그들은 등급 배치가 끝나면 반드시 가이드와 페어를 맺는다. 폭주를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막아보자는 윗대가리들의 쓸데없는 참견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최종수만이 예외였다. 등급이 맞는 가이드가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어떤 가이드를 붙여도 수치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서로의 등급이 맞거나 높아야만 수치가 낮아진다는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윗대가리들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되었다. 그를 위해 수많은 연구 인력들이 새로운 진정제를 개발해왔으나 큰 의미는 없었다. 최종수는 임무가 배정되면 나가서 능력을 쓰고, 돌아와서는 연구소에 틀어박혀 실험체가 되는 생활을 반복한 끝에 폭주를 일으키고 실종되었다. 최종수가 불명예 제대 처리된 이후 최세종이 아들의 폭주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지부장 자리를 내려 놓았을 때 성준수는 짐을 정리하는 그를 찾아가 말했다. 최종수 아직 안 죽었습니다. 최세종도 이현성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반응이었으나 대답만이 달랐다. 아들이 죽기를 바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그래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찾겠습니다. 최세종이 형언하기 어려운 얼굴로 혼잣말 같은 답을 돌려주었다. 찾아도 데려오진 말게. 적어도 군인이라면 속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 성준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

“나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최종수가 말했다.

“누가 뭐래?”

“눈으로 그랬잖아. 나 죽이러 온 거면 이거 민간인 사살이라 회부 당할 거야.”

“얼씨구.”

말뽄새를 보니 제가 아는 최종수가 맞긴 맞았다. 성준수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헛웃음만 지었다. 찾아내면 일단 멱살부터 잡고 얼굴이나 한 방 갈길까 했는데, 독기 다 빠진 얼굴로 표독스럽게 굴어봤자 간식 뺏기기 싫어서 저항하는 고양이나 다름없어서 의욕이 증발했다. 참고로 그 고양이는 지부 뒤편에 살았으며 최종수가 닭가슴살을 주러 갈 때만 나타나서 애교를 피우다 사라지곤 했다. 그 애착 동물에 그 도우미가 아닐 수 없다.

“누가 너 죽이러 여기까지 오겠냐?”

“그럼 네가 올 일이 뭐가 있어?”

이 말에는 대꾸할 필요가 없다. 성준수는 대답 대신 바지 주머니에 넣어 다녔던 군번줄을 꺼내 최종수에게 던졌다.

“너 행방불명 처리 돼서 지금 네 신분 증명할 거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거라도 가지고 있어.”

최종수가 느리게 그것을 들어올렸다. 폭주의 잔해에서 찾은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그날 임무를 나가기 전 최종수에게서 직접 받았던 그의 신분증이다. 주인을 찾았으니 돌려줘야지. 평생 가지고 다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일찍 찾아서 다행이었다.

“버린 줄 알았어…….”

각인이 새겨진 면을 손끝으로 훑는 동작에 미련이 뚝뚝 새어나온다. 성준수는 보고도 모른 체했다.

그가 폭주의 가능성을 품에 안고도 지부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쨌든 제 발로 걸어 나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울 지부에 적을 두고 있는 군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최세종이 제대를 설득했지만 거절했다는 소문도 자자했으니 지부에서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름만 들어도 알게 된다.

잔해 정리를 도우러 왔던 박병찬이 한 말도 일리는 있었다. ‘걔는 사살 당하는 게 나았을지도 몰라.’ 성준수는 종종 그 말을 곱씹곤 했다. ‘중압감이 있어야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의 심정 같은 거 생각해 본 적 있어? 일단 난 없고, 그렇게는 못 살겠더라고.’

“지금은 늦어서 못 나가. 자고 일어나면 밥 먹고 가. 데려다 줄게.”

“여기가 어딘데?”

“그건 못 알려 주는데…… 그래도 안전한 곳이야. 나도 발 뻗고 잘 수 있어.”

최종수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침낭을 꺼냈다. 아, 배고프면 뭐라도 가져다 줄게. 먹고 싶어? 아니…… 생각 없어. 최종수 하나만 믿고 음식을 입에 넣기엔 주변 사람들을 전혀 믿을 수 없어서 내키지 않았다. 인기척이 나지 않기에 망정이지 누구 발소리 하나라도 들렸다간 당장 뛰쳐나가 목에 칼을 들이댔을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행방불명된 군인’의 소재를 찾으려면 못 찾을 것도 없다. 이 안에서 이루어진 대화는 모두 기밀이어야 했다.

“야.”

“어.”

왜 자야 할 시간에 등불 따위를 들고 숲을 걸어다녔는지, 왜 군가를 흥얼거렸는지, 왜 여기 있는지, 왜 능력이 없어진 건지.

궁금한 게 너무 많았는데 어쩐지 물어봐선 안 될 것 같았다. 최세종은 보고도 모른 체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잊은 척이라도 해야 최종수가 살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다면 애초에 찾으러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군번줄 따위 그냥 버리고 처음부터 최종수라는 사람은 없었던 것처럼 살았을 것이다.

하여간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불가능한 일만 시킨다. 성준수는 별 따위 하나도 보이지 않는 적막 속에서 눈을 감았다.

“보고 싶었어.”

너무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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